느낀 점
2018년 내가 51권의 책을 읽었는데 가장 최고의(?) 책을 뽑으라면 단연 이 책이다. '뭐 이런 책이 다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최은영 작가가 나온 팟캐스트는 다 들었던 기억이 난다. 나는 왜 이 책을 읽으면서 그런 느낌이 들었을까? 지금 생각해보면 왜 그런지 싶다. 이 책은 7가지 단편 소설을 모았다. <쇼코의 미소>, <신짜오, 싼짜오>, <언니, 나의 작은, 순애 언니>, <한지와 영주>, <먼 곳에서 온 노래>, <미카엘라>, <비밀>이 있다. 특히 가장 좋았던 편은 <미카엘라>, <비밀>편이었고, 그다음 <신짜오, 싼짜오>가 기억에 남는다.
내가 본 이 이야기들은 힘없는 자들의 이야기다. <쇼코의 미소> 편의 소유 - 쇼코 - 할아버지 - 소유의 엄마, <씬짜오, 씬짜오>의 응웬 아줌마, <언니, 나의 작은, 순애 언니>의 순애 이모, <먼 곳에서 온 노래>의 소은, <미카엘라>의 엄마, <비밀>의 말자와 손녀 지민이 그랬다. 힘이 없는 자도 있고, 소수자도 있고 사회에 소외된 사람도 있다. 내가 이 소설을 놀랍게 읽었던 이유는 낮은 사람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이기도 했다. 물론, 이 책은 하류층의 이야기를 쓴 것은 아니다. 아마 소외가 맞지 싶다. 소외된 사람들의 이야기, 힘있는 사람은 전혀 없다. 그들의 이야기가 녹아 있어서 너무 좋았다. 작가의 인터뷰나 팟캐스트를 다 찾아볼 정도로.
하지만 저자는 이야기의 주인공들을 노골적으로 불쌍한 사람들로 그려내지 않는다. 담담하다. 어디에나 있을 법한 사람들로, 그저 우리 주변에 있을 만한 사람으로 주인공들을 그려 낸다. 이 책이 신비했던 이유가 이런 서술에 있는가 싶었다.
나는 특히 <미카엘라>를 읽어보라고 추천하고 싶다. 세월호에 관련된 이야기다(<비밀>도 세월호 관련 단편이다). 세월호의 이야기는 대한민국의 이야기이고 우리가 관심 가져야 할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다. 왜 우리의 이야기인가를 나는 <미카엘라>에서 잘 표현했다고 본다. 얼마 전 세월호 희생자의 아버지가 삶을 마감했다는 뉴스를 듣고 더욱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을 잃어버린 부모님들에게 해서는 안 될 짓을 했던 악한 자들을 나는 보았다. 왜 그들은 그렇게 되었을까. 왜 세월호의 문제를 좌우의 문제로 만들어 버렸을까. 난 세월호의 문제를 좌우의 문제로 만들어버린 자들에게 깊은 분노를 느꼈다.
세월호와 다른 참사들을 비교하는 사람들도 그렇다. 현실은 대구참사를 겪은 분들이 세월호 참사를 겪은 분들을 위로한다. 세월호의 아픔을 이해해야지 다른 참사들도 이해할 수 있다. 아픔을 비교하지 말라. 비교하는 그 자가 악한 자다. 세월호의 아픔만 있냐고 말하는 자가 악한 자다. 세월호의 아픔이 있기에 대구 참사의 아픔이 있는 것이다. 좌에서든 우에서든 아픔을 정쟁화 시키지 말라. 누군가에겐 세월호부터고 누군가는 세월호까지다. 세월호부터 아픔의 이해가 시작되는 사람, 세월호까지 아픔을 품는 사람. 그렇게 되어야 한다.
그리스도인들이 이 세상에 소외되고 연약한 자들의 이야기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가 있다. 그리스도가 그러셨기 때문이다. 또, 성경의 큰 이야기들을 보며 하나님께서는 약한 자들을 통해 일하셨다. 이스라엘을 선택한 이유도 그들이 가장 약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잘났다고 하는 사람들'의 그럴 듯한 허세를 폭로하시려고, 홀대받고 착취당하며 학대받는 사람들. 곧 '아무것도 아닌 사람들'을 일부러 택하신것이 분명하지 않습니까?"(고린도전서 1장 27절, 메시지성경) 그분의 약한 자들에게 지극히 관심이 많으시다.
교회가 회복되었다는 표지는 교인수가 몇 천만명이 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연약한 자들에게 관심이 가졌다는 것에서 그 지표를 알 수 있다.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인간의 몸으로 오셨다는 것. 이미 거기에서 그분은 관심은 절정에 달했고 사랑이 무엇인지 몸소 보이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었으면 좋겠다.
책 맛보기
직장생활에서 서서히 영혼을 잃어간다고 고백하는 친구를 이해해주는 척하면서 속으로는 고소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런 생각을 하는 나 자신의 끔찍함에 놀랐으나 그조차 오래가지는 못했다. (리디북스 아이패드 기준, <쇼코의 미소>, 37)
감정을 말로 표현하는 걸 사내답지 않다고 여기며 깔보던 시대에 태어난 사람이었다. 가끔씩 그런 통제에도 불구하고 비어져나왔던 사랑의 흔적들이 있었다. (<쇼코의 미소>, 52)
소유 엄마 독한 거 보라지. 하나 있는 자식이 저리도 무정하니 죽은 노인네만 불쌍하네. 번듯한 아들 하나라도 뒀으면 이만큼 초라하지는 않았을 거야.
엄마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면서 껍데기만 보고 단죄하는 사람들에 대한 반감이 치솟을 무렵, 나는 그 사람들 편에 서서 엄마를 바라보지 않는 내 모습이 낯설었다. 슬픔을 억누르고 억누르다 결국은 어떻게 슬퍼해야 하는지도 모르는 사람이 엄마였다. 평생을 함께 산 아버지의 죽음 앞에서도 두려움 없이 눈물을 풀어낼 수조차 없는 사람, 울고 게워내서 씻어낼 줄 모르는 사람, 그저 차가운 손과 발, 두통처럼 보이지 않는 증상으로만 아픈 사람이 엄마였다. (<쇼코의 미소>, 53)
나는 쇼코의 그늘을 보지 못했다. (<쇼코의 미소>, 66)
선생님은 반장의 말이 정확하다고 칭찬하고는 미국이 베트남전에 참전한 배경과 전쟁과정에 대해 설명했다. 그리고 그 일이 미국 정부의 실책이었고, 미국으로서는 아무런 득도 보지 못한 전쟁이었다고 결론 내렸다. 투이가 말하고 싶었던 건 그런 게 아니었으리라고, 그 애를 앞에 두고 그런 식의 설명을 하는 건 가슴 아픈 일이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어쩐지 입을 열 수 없었던 기억이 난다. 투이는 분명 교실에 있었지만 그 순간만큼은 그곳에 없는 사람으로 취급된 것 같았다. 나는 등을 구부리고 않아 있는 그애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너희들은 투이의 마음을 조금도 짐작하지 못하겠지. 독일 애들에게 희미한 분노마저 느꼈던 기억도. (<씬짜오, 씬짜오>, 86)
유치한 말과 행동이 속깊은 애들이 쓰는 속임수였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그런 아이들은 다른 애들보다도 훨씬 더 전에 어른이 되어 가장 무지하고 순진해 보이는 아이의 모습을 연기한다.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통해 마음의 고통을 내려놓을 수 있도록, 각자의 무게를 잠시 잊고 웃을 수 있도록 가볍고 어리석은 사람을 자처하는 것이다. 진지하고 냉소적인 아이들을 어른스럽다고 생각했던 그때의 나는 투이의 깊은 속을 알아볼 도리가 없었다. (<씬짜오, 씬짜오>, 94)
아줌마라고 해서 엄마의 모든 면이 아름답게 보였을까, 엄마의 약한 면은 보지 못했을까. 아줌마는 엄마의 인간적인 약점을 모두 다 알아보고도 있는 그대로의 엄마에게 곁을 줬다. 아줌마가 준 마음의 한 조각을 엄마는 얼마나 소중하게 돌보았을까. 그것이 엄마의 잘못도 아닌 일로 부서져버렸을 때 엄마가 느꼈던 절망은 얼마나 깊은 것이었을까. 내가 아는 한, 엄마는 그 이후로도 마음을 나눌 친구를 쉽게 사귀지 못했었다. 그리웠을 것이다. 말로는 그때의 일들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지만, 엄마를 엄마 자신으로 사랑해준 응웬 아줌마를 엄마는 오래 그리워했을 것이다. (<씬짜오, 씬짜오>, 101)
사형은 대법원 판결 열여덟시 시간 만에 집행되었다.
사형이 이미 집행된 줄도 모르고, 사형 판결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길을 가던 가족들은 그 소식을 듣고 주저앉았다. 내 남편, 내 아빠, 내 아들의 얼굴 한번 만져보지 못하고, 안녕, 잘 가, 한마디도 해보지 못하고, 걱정 말라고, 무서워하지 말라고 말해보지도 못하고, 눈이라도 한번 마음껏 맞춰보지 못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그렇게 잃었다. 나라에서는 유족들의 허락도 받지 않고 사형수들의 시신을 강제로 화장해서 가족에게 보냈다. 죽은 몸이라도 만져보고 싶었어요. 기진한 사형수의 부인이 겨우겨우 말을 이었다. 엄마는 그 자리에 오래 있지 못하고 밖으로 나왔다. (<언니, 나의 작은, 순애 언니>, 116-117)
사형이 집행되고 나서야 엄마는 엄마가 세상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고, 앞으로도 아무것도 모르리라는 것을 깨달았다. 엄마는 회사로 가는 버스 안에서 조용히 눈물을 흘렸고 그 일에 대해서 영원히 입을 다물었다. 사람들은 그런 엄마에게 드디어 정신을 차렸냐고, 다들 그렇게 어른이 되어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아무도 엄마의 내상을 들여다보려 하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그건 엄마와는 상관없는 일이었고 누구도 그 일로 엄마가 다쳤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언니, 나의 작은, 순애 언니>, 117-118)
엄마는 살얼음판을 딛듯이 이모의 상처가 닿지 않은 마음들만을 디디려 했고 이모는 엄마가 이모를 조금이라도 가여워할까봐 애써 아픈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언니, 나의 작은, 순애 언니>, 123)
교회에 가서 가족의 평안만을 비는 부모님을 보면서 한지는 그 교회에서 고작 몇 킬로미터 떨어진 거리에서 죽어가는 아이들을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한지는 아버지의 돈으로 좋은 교육을 받았고, 가족에게 헌신적인 어머니의 사랑으로 안정적인 삶을 살아왔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자신이 누려왔던 삶은 부모님의 부로 인한 것이었고, 그 부가 누군가를 착취한 결과는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면 눈을 감았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자신이 진정으로 믿고 의지하는 건 결국 돈뿐이라고 고백했다. (<한지와 영주>, 157)
한지가 생각날 때마다 나는 정원의 풀숲을 걸으며 지질시대 구분표를 암송했다. 하지만 그 암송도 한지에 대한 생각을 멈추게 할 수는 없었다. 그애는 지질시대의 모든 시기마다 숨쉬고 있었다. 지구가 처음 생겨났을 때에도, 지구에 단단한 지표면이 없었을 때에도, 육지 동물들이 나타나지 않았을 때에도, 그애는 그저 거기에 있었다. 내가 기억하는 한 그애는 영원 속에서 살아갈 것이다. 나는 그 사실을 받아들였다. (<한지와 영주>, 193)
선배도 러시아에서 적응하느라 힘든 시기였지만 나에게 선배의 어려움은 말 그대로 남의 일일 뿐이었다. 세상 제일 아프고 괴로운 건 나였으니까, 내 눈에는 내 고통 말고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 이기심에는 선배에 대한 사랑뿐 아니라 나에 대한 사랑도 없었던 것같다. 당시의 나는 사랑할 수 있는 힘이 없었다. 그런 나를 그치지 않고 사랑해준 선배에게 이제 와서 어떤 말을 해야 마땅할지 나는 알지 못했다. (<먼 곳에서 온 노래>, 224)
엄마의 감사 타령 속에서 그녀는 오히려 엄마의 초라한 현실을 봤다. 언제든 외식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굳이 그런 일에 감사할 필요가 없을 테니까. 언제든 양껏 돼지고기를 먹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돼지고기 가격이 내렸다고 감사할 필요가 없을 테니까. 돈이 있다면, 부유한 부모나 남편이 있다면 통증을 견뎌가며 매일 열 시가씩 서서 일할 수 있음을 감사할 필요가 없을 것이므로. 그녀는 차라리 엄마가 스스로의 처지에 솔직해져서 불평하기를 바랐다. 초라한 현실에 대한 엄마의 감사가 얼마간은 기만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미카엘라>, 236)
밥상머리에서 아빠는 말했다. 자본이 가난한 사람들을 소외시키고 있다고, 앞으로는 중산층 붕괴가 가속화되고 더 많은 사람들이 빈곤 속으로 떨어지게 될 거라고.
어쩌라는 건가. 아빠, 지금 집안을 빈곤 속으로 떨어뜨리는 주범은 세상도 자본도 아니고 아빠 자신이다. 자기 밥벌이도 제대로 하지 못해서 아내를 일곱 평도 안 되는 미용실에 하루종일 세워두는 사람이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나. (<미카엘라>, 246)
동네 사람들은 가장 노릇을 못하는 남편과 살고 있는 여자를 동정했다. 미카엘라는 그의 무능함이 여자를 힘들게 했다고 말했다. 맞는 말이었다. 그와 만나고부터 인생은 그녀에게 두 배, 세 배의 복종을 요구했다. 여자는 누구보다도 숨 돌릴 틈 없이 살았고, 단풍 구경조차 가본 적이 없었다. 팔자에도 없는 교도소와 병원을 다녔고, 구멍난 통장을 메우기 위해 휴일 없는 노동을 했다.
하지만 여자는 남편이 노력하지 않았다는 사람들의 말에는 동의할 수 없었다.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자신이 도울 수 있는 현장에 가 있는 것이 그의 업이었고, 그 부분에 있어서 그는 누구보다도 근면한 사람이었다. 그가 하는 일들이 돈이 되지 않는다고 해서 그를 무능하고 가치 없는 사람이라고 단죄할 수는 없었다. (<미카엘라>, 249)
"내 팔십을 살아오면서 흘릴 눈물은 이미 다 흘린 줄 알았어. 아니더군. 아니었어. 그이가, 그 고운 동무가 혼이 다 나가서 가슴을 쥐어뜯는데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이 없어. 그 생때같은 손녀가 그렇게 가버렸는데 그이라고 무슨 수로 견디겠나. 그애 마지막 모습을 보고 그이 딸은 하던 일도 다 팽개치고 여기저기 다니기 시작했지. 자기 딸이 왜 죽었는지는 알아야 할 거 아닌가. 그이도 그이 딸과 함께 광화문으루, 시청으루, 여의도루 다니기 시작했어. 연락이 잘 닿질 않아. 어제도 그일 찾으러 광화문에 갔다 차가 끊겨 거기에 갔던 거라우." (<미카엘라>, 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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