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오감으로 성경 읽기 네 번째 시간입니다. 오늘이 마지막 시간인 줄 알았는데 다음 주까지 시간이 있다고 합니다. 다음 주 어떻게 할지는 강의 끝 무렵에 이야기하도록 해보겠습니다.
[사진1 – 박경] 제가 수요일, 금요일 마치고 집에 가는 길에 차에서 라디오를 듣습니다. 그 시간 때에 박경의 <꿈꾸는 라디오>가 하고 있습니다. 요즘 사재기 저격으로 굉장히 유명하신 분이더라구요. 그리고 목사님 아들이기도 하던데. 여튼, 이 여기에 <음악이 있는 지도>라는 코너가 있습니다. 음악을 들으면 갑자기 기억이 나는 그런 경험을 사연으로 적어서 보내 주는 것입니다. 저도 그런게 있습니다. 제가 한참 공부를 열심히 하던 때였습니다. 도서관에서 맨날 밤늦게 공부하고 집에 내려가면 어떤 날 큰 달이 바다에 떠있었습니다. [사진 2 –송도 달빛] 그리고 달빛이 온 바다를 비추고 있었습니다. 제가 그때 늘 듣던 음악이 브라운아이드소울의 <바람인가요>였습니다. 한창 썸녀가 있었는데 그 친구 생각을 하며 달빛을 보며 음악을 들으며 자취방을 갔던 기억이 선명이 남아 있습니다. 달빛에 썸녀 얼굴이 가득히 그려졌던 때가 생각납니다. 학교 갈 때나 자취방으로 내려올 때나 그 노래 한창 듣고 있었습니다. 저는 이후로 이 노래만 들으면 영도 달빛이랑 썸녀 생각이 종종 납니다. 특히 영도 앞바다는 잘 잊혀지지가 않습니다. 저는 찬양에도 그런 곡들이 있습니다. <모든 상황 속에서>, <아름다우신>, <그 사랑>, <내 마음을 가득 채운> 이 찬양들을 들으면 마치 대학 1학년 때의 기억을 불러 일으킵니다. 혹시 그런 노래와 사연은 없으십니까?
방금은 개인의 기억이 불러 일으켰는데 우리에겐 집단의 기억이라는 것도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역사의식이라는 것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사진 3 – 봉준호] 최근 봉준호 감독이 어마어마한 업적을 이뤘습니다. 칸에서 대상을 수상하고 아카데미에서 대상을 포함한 핵심적인 상 3개를 다 받았습니다. 이게 60년 만에 처음 있는 일로 알고 있고 비영어권 최초의 일입니다. 미국인들은 자막 읽는 걸 싫어한다는 걸 처음 알았는데 그런 사람들조차 자막을 보고 영화를 보게 끔 만들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왜 이때 봉준호 감독이 상을 받은 건데 전 국민이 환호성을 지르고 감동을 할까요? 어떤 사람들은 이런걸 민족주의라니 집단주의, 전체주의라는 말로 비난하기도 합니다. 봉준호 개인 받은 거지 왜 자신의 가족이 받은 것처럼 자랑스러워 하냐는 것이죠. 어느 정도 이해할 법도 하지만 이런 말들을 하는 분들은 조금 대한민국의 역사성을 잘 인식하지 않는 거 같습니다. 대한민국은 일제 강점기를 거쳐 한국전쟁으로 온 나라가 폐허가 되었습니다. 억눌렸고 무시당하던 입장이었습니다. 그런 나라가 지금 일본을 추월하려고 하고 있고 우리의 문화가 세계인들에게 환영을 받으니 감회가 새로운 것이죠. 저도 개인주의자를 지향하는 사람이지만 이러한 대한민국에 대한 자부심이 나쁜 것으로만 생각되지는 않습니다.
성경에도 그런 집단 기억을 불러일으키는 장면이 있습니다. 아, 이 장면은 유대인들이 들었을 때 직빵으로 생각나는 대목이 있습니다. 마가복음 3장 13-14절입니다.
마태복음 5장 산상수훈이 대표적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산에 대한 기억은 반드시 모세가 산 위에서 오르는 장면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계명을 준 장면을 떠오르게 했습니다. 마태복음에서도 모세가 산 위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해주었던 장면을 연상케 합니다. 차이가 있다면 모세는 전달을 했지만 예수님은 직접 말씀하신 차이점이 있습니다.
이렇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출애굽의 기억은 정말로 강렬했던 집단 기억입니다. 특히나 400년 가까운 종살이 경험은 애굽을 탈출했던 그때를 더욱 갈망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하나님 나라가 아까 나왔는데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조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이 어떤 나라를 건설하실지 많은 기대를 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실제로 정치적인 혁명을 일으킬 거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나라를 건설하실 때 오른쪽 왼쪽 자리에 앉혀달라고 했던 겁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그런 나라를 건설해주실지 알았는데 의외의 모습을 보입니다. 바로 이 장면입니다. [사진 4 삭개오]. 삭개오를 환대해주신 것에서 있습니다. 삭개오는 세리장이었습니다. 당시 예루살렘을 제외하곤 가장 큰 돈을 만질 수 있는 여리고 지역의 세리장이었습니다. 세리들이 로마의 부역자여서 유대인들의 원한을 많이 샀지만 한 가지 더 있습니다. 로마에게 줄 세금의 할당량을 채우면 그 뒤로는 다 자신의 돈입니다. 그러니 엄청나게 수탈을 많이 했습니다. 유대인들이 끔찍이 싫어하고 혐오했을 겁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수군수군 거렸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행동은 전혀 딴 판이셨죠. 바로 그 집에 들어가서 묵으신 겁니다. 그는 죄인이기에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없는데 하나님의 백성으로 인정해 주신 겁니다. 아마 제자들 중에 다수가 이해되지 않았을 겁니다. 특히나 열심당 출신의 시몬은 얼마나 받아드리기 힘들었을까요?
삭개오는 소수자가 아니지만 이스라엘 사회의 배제된 사람들을 예수님께서는 보듬어 주셨습니다. 오늘날에도 배제된 사람들이 존재합니다. 그걸 드라마에서 잘 구현해 냅니다. 잠깐 드라마를 보겠습니다. [이태원 클라쓰], [동백꽃 필 무렵]
성경에서 가장 소외된 사람을 꼽으라면 이 여인을 뽑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사마리아 여인입니다. 이 사마리아 여인에 대해서 잘 표현한 찬양이 있습니다. 한 번 듣고 얘기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김복유 사마리아]
네, 표현을 참 잘 했습니다. 하나 추가 설명을 좀 하자면 당시 여자는 이혼을 당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음식을 못한다던가 지금 아내보더 더 매력적인 사람을 만나면 남자는 바로 이혼을 할 수 있습니다. 너, 이혼! 하면 바로 이혼이 됩니다. 그렇기에 이 사마리아 여인은 남자를 갈아치우고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 5번이나 남편에게 버림받은 여자입니다. 인종적으로도 사마리아인들이라서 계층이 나뉘었고, 거기다 여자입니다. 그리고 그 여자 중에서도 5번이나 버림받은 여자입니다. 그러나 이 여인은 삶을 포기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지금도 같이 살고 있는 남자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 여인이 갈구하고 있는 남편은 영원히 갈증나게 하는 대상입니다. 남편으로는 평생 자신의 갈망이 채워지지 않습니다. 모멸감에서 오는 열등감, 우리의 원죄에서 오는 공허함, 채워지지 않는 이 갈증은 바로 예수님으로만 채울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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