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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리뷰/설교와 목회자

[책리뷰] 코넬리우스 플랜팅가 Jr. - 설교자의 서재

by 카리안zz 2020. 1.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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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방학을 맞이해서

전도사들에게도 새벽설교가 주어지는 영광(?)을 누렸다. 

총 8편의 설교를 했다. 

역시, 

막상 실전은 다르다. 

설교 1편을 준비하기 위해 이리도 치열하다니.

담임 목사님들은 일주일에 많게는 3편을 준비하신다. 

모든게 쉬운게 없다. 

이리도 설교 할 시간이 많아지니깐 

당연히 역량을 발휘하지 못하는 분들은

짜집기나 설교 표절을 할 수 밖에 없다. 

이건 개인의 문제도 있지만 구조의 문제도 있다고 본다. 

 

어쨋든 나도 설교에 관한 책 세권을 샀다. 

설교 비평의 문을 연 

정용섭 목사님의 '설교란 무엇인가',

독특한 책 '뇌는 설교를 어떻게 받아드리는가'

그리고 

'설교자의 서재'를 샀다. 

 

플랜팅가. 처음 그의 이름을 봤을 땐

'어! 그 플랜팅가인가?' 하고 생각했는데 

보니깐 그의 동생이란다. 으미. 

 

여섯 강의를 묶은 책인데 

나는 그 중 4장이 가장 와닿았다. 

내가 설교를 하면서 가장 어려움을 느끼는 이유이기도 하다. 

저자의 표현을 한 번 들어보자. 

"가지각색 사람들이 다 모여 있기 때문에 설교자 편에서 많은 배려가 요구된다는 것이다. 청중 가운데는 젊은 사람도 있고 늙은 사람도 있으며, 많이 배운 사람도 있고 못 배운 사람도 있다. 정신적으로 허약한 사람도 있고 강한 사람도 있으며, 잘 먹고 잘 사는 사람도 있고 겨우 입에 풀칠만 하며 사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인종과 민족 구성도 다양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청중 가운데는 민주당파도 있고 공화당파도 있을 것이며, 문화적으로 진보파도 있고 보수파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설교자가 설교 중에 예를 들어 도널드 트럼프(미국의 부동산 재벌)를, 그것도 가벼운 어조로 언급한다면, 청중의 1/4 정도는 설교자가 미국의 지도층 인사에게 짐짓 무례한 태도를 취한다고 생각한다. 만일 설교자가 트럼프 회장을 존경하는 듯한 태도로 그를 언급할 경우, 또 다른 1/4은 설교자가 교양 없는 장사꾼을 너무 그럴듯하게 존대하고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p.117)

 

이에 대해선 역시 설교자가 지혜로워야 된다는 

뻔하지만 그밖에 답이 없는 조언을 해준다. 

결국 이 문제는 설교자의 역량에 달려있다.

(그래서 내가 이리도 칼을 닦고 있는게 아닌가!)

 

확실히 상황에 대해서 미국 문학적으로 저자는 잘 설명한다. 

결국 나는 이를 읽으면서도 우리 상황으로 재해석해서 읽는 연습을 한다. 

예로 그렇다면 나는 박완서, 신경숙 등 ...(또 떠오르지 않는다 문학을 많이 읽어야지...)

그들의 작품을 한 번 예로 들어서 설교때 적용해봐야겠다.

음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들 평균 한 해 독서량이 1년 9권이라는데 

그리고 문학책을 많이 읽을까. 

기껏해야 자기계발서 같은 책 9권 읽으면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책도 어느정도 대중이 읽어야 공감이 되지. 

그렇다면 책(문학) 말고

예능으로 대체해보는 건 어떨까? 

예능을 보고 적용해 나간다. 

아니 드라마도 좋다.

아니 대중이 많이 소비하는 것을 찾아야겠다. 

어쨋든 우리나라는 문학도 괜찮지만(대중적으로 많이 소비된 문학이여야겠다. 이슈가 된)

미디어를 잘 활용하는게 더욱 한국적이라는 생각이든다. 

 

아, 마음에 와닿아던 문장을 몇개 적기 전에 

하나 번역을 해보겠다. 

저자는 스타인 벡의 '분노의 포도'에서

긍휼을 이야기한다.  휴게소 식당 장면을 예로 들면서 표현한다. 

"한 거친 사내가 먼저 긍휼을 보이면 다른 이들도 이 긍휼에 전염된다는 것, 그리고 긍휼을 보인 사람들은 자신이 평소에 달리 얼마나 '상냥했는지' 깨닫고 늘 편안하게 사용하던 욕설로 얼른 정신을 차리고 '현실'로 돌아온다는 것을 말이다."(p.211)

 

으흐흐흐 사람들의 이러한 태도를 요즘 한국에선 머라고 하는지 아세요??

바로 츤데레!!!!!!!!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마가복음 1장 1절의 표현을 

나는 원피스의 전상전쟁 때 

샹크스가 한 한마디!

"이 전쟁 내가 끝내러 왔다"와 같은 전율을 준다고 바꿔 말할 수 있겠다. 

 

으허허허 지식소매상, 신학소매상은 이러한 대중의 요소를 잘 알고 있으야혀!

실험은 계속된다!

 

마지막으로 자료를 데이타 베이스를 하라고 조언한다. 

정말 캐공감이다. 

자료가 떠오르는데 출처를 모르겠다. 

엄청나게 뒤진다. 

사실 내가 이렇게 문장들을 쓰는 이유도 데이타 베이스를 만드는 목적도 있다. 

어떤 주제에 관해 태그를 걸어라고 하는데 

한번 해봐야 겠다! 

 

자, 느낌이 왔던 문장들이다.

 

"그는 본문이 하는 말을 다른 말로 표현하되 화려하게 꾸미기도 하고 간단하게 요점만 말하기도 하며, 청중들이 본문 설교를 들으며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그런 방식으로 본문이 하는 말을 구체화시키고 색깔을 입히고 부연 설명한다. 바로 여기서 설교자가 사용하는 예화 자료가 그 역할을 시작하며, 회중이 설교자가 독서 때 얻은 것들을 만나게 되는 가장 분명한 지점이 바로 이 부분이다."(p.24)

 

"나는 폭넓게 독서를 하는 사람만이 능력 넘치는 설교를 할 수 있다고 주장하지 않으며, 또한 폭넓게 독서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다 능력 있는 설교자가 된다고 주장하지도 않는다. 나의 주장은 그보다는 수수하다. 즉, 훌륭한 은사를 타고나지도 않았고 타인에게 공감하는 능력도 부족한 사람들, 일반 독서 프로그램은 특별히 그런 사람들을 아주 탁월한 방식으로 벌전시켜 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p.52)

 

"그러나 설교가 이렇게 예측 불가능한 결과를 낳는다고 해서 설교를 즉흥적으로 해도 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설교자에게도 그런 허가증은 주어지지 않는다. 성실한 설교자는 열심히 설교 준비를 한다. 풍성한 결실은 하나님의 선물로 주어지는 것이지만, 열심히 준비하는 것은 설교자의 본분임을 인식하면서 말이다. 실로 하나님을 대변한다는 것은 대담한 일이다."(p. 84)

 

"설교자는 자신의 설교가 청중에게 어떻게 들릴지 계속 판단을 해야 한다."(p.120)

 

"한 작품이 어떤 세상을 그려내고 있는 지에 대해 오만한 태도를 보이지 말라. 그리스도인의 사랑에 비추어 그것을 타도하기 위해서라면 더더욱 그러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이런 식으로 독서를 하기가 얼마나 쉬운지. 이는 참 씁쓸한 일이다. 스콧 피츠제럴드는 A라는 의미에서 볼 때 틀렸고, 마크 트웨인은 B라는 의미에서 틀렸고, 조너선 프랜즌은 C라는 의미에서 틀렸다 등등. 이것은 독서라기보다 사냥에 가깝다. 찾아내서 죽이고, 칼로 도려내서 점심 식탁에 올리는 것이다. 

 우리는 작가의 소설을 읽는 것이지 그 작가의 마음을 읽는 것이 아니다."(p.140)

 

"큰 슬픔 가운데서 하나님의 은혜는 예수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절대 전적으로 충분하지는 않으리라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한갓 인간이 세상의 죄에 대해 사과할 수 없고 속죄할 수 없는 이유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약한 이들을 괴롭히는 가해자 집단이 세상 여러 곳에서 여전히 새된 소리로 괴성을 지르고 있는 이유다."(p.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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