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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리뷰/신앙서적

[책리뷰] 로완 윌리엄스 - 그리스도교(그리스도교란 무엇인가?)

by 카리안zz 2020. 4.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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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낀 점

 제목이 그리스도교라서 좋다. 우리나라에선 기독교라고 하면 교회를 떠올린다. 그러니 기독교=개신교로 이해한다. 가톨릭은 교회라기보단 성당으로 이해한다. 하지만 엄격히 말하자면 가톨릭도 기독교에 속한다. 그렇지만 사람들이 명칭에 따라 다르게 이해하고 있기에 그리스도교라고 번역한 것이 훨씬 맞는 번역이고 적절한 번역이라고 생각한다. 그리스도교라고 한다면 가톨릭과 개신교, 정교회까지 등 모든 종파를 포함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 인류사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이 그리스도교에 대해서 그리스도교인이든 아니든 한 번쯤은 궁금해 할 법하다. 과연 이 종교는 무슨 말을 하고 어떤 종교일까? 그리스도교 인구가 제법 많은 편이긴 하지만 그리스도교 문화가 그리 큰 바탕이 아닌 동양권인 우리나라에서는 특히나 더 궁금할 수도 있을 것이다. 순전히 내 생각이지만 은근히 그리스도교가 어떤 종교인지 궁금한 사람들인 제법 있지 싶다. 

  그런 분이 계시다면 이 책이 제격이다. "예수 천국, 불신 지옥"으로 개신교를 생각하지만 나는 이 구호로 개신교 또는 그리스도교 신앙 전체를 수렴할 수 없다고 본다. 이 구호야 말로 천국에 대한 오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 이야기는 다른 리뷰에서도 종종 말했으니 넘어 가겠다. 

 

좀더 세부적인 목차

 

 이 책은 얇다. 그래서 좋다. 하루 안에 다 읽을 수 있는 분량이다. 그렇기에 여기에 있는 내용을 마구 옮기는 것은 출판사에 죄송할 것 같다. 대략 안의 목차를 말해보겠다. 


1장 그리스도교란 무엇인가? 

 (1) 하느님: 아버지, 아들, 그리고 성령

 (2) 예수: 구원자

 (3) 성서: 기록된 하느님의 말씀

 (4) 성사: 세례와 성찬례

 (5) 그리스도교인의 삶: 사랑, 정의, 기도

 

2장 신앙이란 무엇인가?

 

3장 무엇이 달라지는가?

 

함께 읽어볼 만한 책


 요런 내용이 있다. 간단한 내용을 확인하고 싶다면 아래의 책 맛보기를 살짝 보시길 바란다. 정말 간략하면서 짜임새 있게 그리스도교에 대해서 전달한다. 로완 윌리엄스는 그리스도교를 이렇게 설명했는데 나는 과연 어떻게 그리스도교를 설명할 수 있을까? 아마도 창조 타락 구속의 틀을 가지고 하나님 나라 이야기로 말 하지 싶다. 

 

신앙이 가능하게 하는 것 세 가지(p. 60-62)

 첫째, 신앙은 올바른 의미에서 자기 객관화를 사능케 한다. 신앙은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을 수행하는 중에 실패할 수 있음을 받아들게 한다. 그리고 언제든 다시 회복될 수 있음에 신뢰하게 한다. 신앙은 우리가 부름 받고, 소명을 지니고, 책임 있는 존재임을 보여주지만 동시에 그 부름을 못 따르고, 소명을 어그러뜨리고, 책임을 지지 못하는 실패하는 존재임을 보여 준다. 신앙을 통해 우리는 우리 자신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다. 우리는 실제 우리 자신보다 더 나은 사람인 체하지 않으며, 실제 우리 자신보다 더 못한 사람인 체하지도 않는다. 우리는 우리의 한계를 깨달으나, 동시에 성장하며, 그 와중에 실수하고 실패한다는 것을 받아들인다. 신앙은 우리에게 그러한 현실에 당황하지 말라고, 두려워하지 말라고 이야기한다. 

 둘째, 우리를 둘러싼 세계를 가치있게 여기게 된다. 우리에게 시간과 공간이 주어진 이유가 거룩한 사랑 안에서, 이 사랑을 통해, 이 사랑을 받으며 친밀한 관계를 성장시키기 위함이라면 우리를 둘러싼 모든 것은 소중한 선물이 될 것이다. 당신 곁에 있는 사람 또한 이를 위한 신성한 선물이다. 당신을 둘러싼 물질적 환경 역시 하느님께서 주신 선물이다. 

 셋째, 더욱 온전한 인간이 되게 한다. 인간은 만물의 중심에 있는 거룩한 사랑(하느님)과 친밀하게 관계 맺을 뿐 아니라 다른 이와 친밀하게 관계 맺으며 살아가게 되어있습니다. 그러한 관계에 헌신할 때, 그러한 관계를 통해 우리는 더욱 온전한 인간이 된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우리를 둘러싼 세계와도 친밀한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야 한다. 이는 우리를 더욱 온전한 인간으로 만들면서 세계가 본연의 기능을 하게끔 만들어 준다. 

 

신앙인의 저항해야 할 점 세 가지(63-64)

 첫째, 신앙은 감정적으로 성숙하지 못한 유아적인 태도에 저항합니다. 성숙하지 못한 태도와 시선이란 세계와 인간을 긴 안목으로 보지 못하는 것, 혹은 이를 거부하는 것을 뜻한다. 

 둘째, 신앙은 타인을 착취하는 이기심에 저항한다. 이러한 이기심은 작게는 개인, 넓게는 집단을 자신의 결핍에 맞춰 채워넣으려고 한다. 우리를 둘러싼 모든 사람, 모든 환경을 자신의 욕망을 채우는데 끌어다 쓰려고 한다. 이러한 태도는 우리 주변을 황폐하게 만들고 망가뜨린다. 

 셋째, 신앙은 계산적인 태도, 불신하는 태도로 관계 맺는 것에 저항한다. 이러한 태도의 바탕은 '나'를 위해 그 모든 것이 존재한다는 생각이 자리 잡고 잇으며 타인도 그렇게 생각할 것이라는 가정 또한 자리 잡고 있다. 이처럼 냉소적인 태도는 우리를 갉아먹을 뿐이다. 

 

우리가 속한 사회에 만연한, 그렇기에 그 정도와 방식은 다를지 몰라도 우리 안에 퍼져있는, 가장 깊은 차원에서 우리 삶을 파괴하는 요소들에 저항하는 길, 그 길을 향한 문을 열어젖히는 것이 바로 신앙입니다. 신앙이 열어주는 눈을 통해 이 비극적인 현실을 정직하게 봄으로써, 현실을 넘어설 가능성이 열립니다. 여러 세력이 각축전을 볼이는 세계, 현실에 참된 변화를 빚어낼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묻는다면 그리스도교인은 바로 신앙이라고, 신앙이야말로 정의와 화해를 향한 변화를 진정 가능케 한다고, 그러한 가능성을 품고 있다고 이야기할 것입니다. (64) 

 

나가면서

 창조 - 타락 - 구속을 말하며 그리스도교를 설명하는 것도 괜찮지만 전통적인 의미에서 말하는 로완 윌리엄스의 책을 읽어보라고 추천하고 싶다. 일단 얇아서 좋다. 전자의 설명은 대단히 말이 많은 설명이다. 그리고 후에 더욱 호기심이 든다면 <나니아 연대기>의 작가로 유명한 C. S. 루이스의 <순전한 기독교>를 추천한다. 이 책 역시도 모든 종파가 동의할 만한 내용을 담는데 주력을 쏟았다. 그것이 성공했는지는 (내가 이걸 20대 초반에 읽어서 이제 기억이 많이 나질 않는다ㅠ) 모르겠지만 문학가 특유의 장점이 살린 책이기에 추천한다. 로완 윌리엄스도 루이스도 성공회 소속이기에 성공회 짱짱이다. 비아 출판사도 성공회 관련한 출판사인데(공식인지는 모르겠다) 양질의 책들이 많이 나와서 넘나 짱짱이다. 많이 구입해 주시라!

 


책 맛보기

 

어떻게 해서 이러한 일이 일어나는지 정확하게 말하기란 어렵습니다. 그리스도교인들도 그것을 잘 압니다. 어떤 이들은 우리가 죄로 인해 받아야 할 벌을 예수가 대신 받아 이러한 일을 이루었다고 말했고, 어떤 이들은 예수가 자신을 희생 제물로 내놓아 이를 이루었다고 말했습니다. 어떤 이들은 예수가 사탄을 물리치고 죄의 감옥에 갇힌 우리를 자유롭게 해주었다고 설명하기도 했습니다. 이를 설명하는 방식에 단 하나의 정답이 있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예수의 삶 안에서, 예수의 삶을 통해 하느님의 사랑, 그 완전한 사랑이 이 세상을 꿰뚫고 들어왔다는 것입니다. 이제껏 마주해 본 적이 없는 사랑이 그러한 사랑을 할 수 있는 자유를 잃은 인류에게로 왔다고 그리스도교인들은 고백합니다. 예수의 죽음은 인류를 향한 사랑의 활동이었으며 (복음서에서 기술하듯) 악한 세력에게 우리 대신 값을 치른 것이었다고, 그가 첫 번째 인류가 저지른 죄의 결과에서 인류를 해방했다고 그들은 말합니다. (17-18)


그리스도교인들은 성서가 하느님의 영감으로 쓰였다고 해서 저자들이 하느님께서 불러주시는 내용을 그래도 받아 썼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성서 저자들과 함께, 그들을 통해 당신의 목적을 전하셨습니다. 그렇기에 성서는 우리가 저지르는 실수와 죄에 메이지 않고 그분께서 하시는 말씀을 온전히 드러냅니다. (23)


종교의 응답은 두 가지로 나뉩니다. 하나는 건강한 응답이며 다른 하나는 해로운 응답입니다. 건강한 응답은 우리를 신앙으로 이끌고 해로운 응답은 우리를 끔찍한 종교로 이끕니다. 모든 것이 '나'하기에 달렸고, 결국 '나'가 만물의 중심이며 모든 한계는 '나'의 힘으로 극복할 수 있다는 생각을 포장하는 데 종교가 사용될 때, 그 종교는 끔찍한 종교가 됩니다. 절대적인 진리, 분명한 진실에 접근하는 권한이 '나'에게 있다고 믿게 하는(혹은 '나'만이 접근할 수 있다고 믿게 하는), 이 세상에 대한, 그리고 타인과 나 자신에 대한 '나'의 관점을 공평하며 옳다고 믿게 하는, 그리하여 이 세계가 진정 어떤 곳인지를 다 안다고 믿게 하는, 더는 배울 것이 없다고 믿게 하는 종교란 끔찍한 종교일 뿐 아니라 해로운 신념입니다. 이러한 신념을 가진 이는 설사 스스로는 자신을 무신론자라 부르더라도 실제로는 하나의 해로운 종교적 사고에 사로잡혀 있을 뿐입니다. 나쁜 종교는 인간이 자신이 던지는 모든 물음에 스스로 답할 수 있으며, 우리의 모든 한계를 스스로 극복할 수 있다고 믿게 만듭니다. 그러나 이는 진실이 아닐뿐더라 사실도 아닙니다. 종교가 참된 현실, 실재를 보지 못하게 할 때 그 종교는 끔찍해지며 나쁜 종교는 이를 의도적으로 추구합니다. (39-40)


참된 신앙을 가늠하는 시금석은 그 신앙이 우리의 눈을 열어 실재와 현실을 보게 하느냐, 아니면 현실을 부인하게, 받아들이지 않게, 현실에 눈감게 만드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41)


그리고 참된 종교란 우리에게 보는 법, 우리의 열망이 향해야 할 곳을 가르치는 일련의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법, 표면 너머 이면을 보는 법, 기이하고도 신비로운 순간을 마주할 때 혼란에 빠지지 않는 법, 우리를 가치 있게 해주는 모든 것을 거부하거나 회피하지 않은 채 받아들이는 법, 진실로 인간답게, 인격체로 성장하는 법을 참된 종교는 가르쳐 줍니다. (42-43)


무엇을 원하십니까? 진정으로 삶이 변화되기를 원합니까? 진정으로 온전한 인간이 되고 싶습니까? 참된 인간으로 살기를 바랍니까? 그렇다면 와서 보십시오. 그렇기에 복음서의 시작은 논쟁이 아닌 초대에서 시작합니다. 늘 보던 것만 보는 곳에서 걸어 나와, 무언가 다른 것을 보는 곳으로 나오라고, 자기 자신을 시험해 보라고 그리스도교 신앙은 우리를 초대합니다. (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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