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낀 점
내가 이 책을 왜 읽었는지는 자세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단순히 제목에 끌렸기 때문일 수 있다. 학살에 대해서 이 소설은 어떻게 말하는지 궁금했다. 또, 일본인이 쓴 글이라(물론 이 책을 읽었을 땐 일본과 분쟁이 일어나기 한참 전이다) 혹시나 한국인을 학살했던 기록이 있지 않을까 싶었다.
이책의 줄거리는 대강 이렇다. 진화한 생물이 태어나게 되는데 이 생물의 존재를 미국의 권력자들이 눈치 챈다. 그래서 진화한 생물이 살아남는 여정을 이 소설에서는 긴 시간 그려낸다. 그리고 그 긴 시간 그려내는 가운데 저자는 인간에 대해서 말한다. 여러 이야기들이 있다. 일본에서 살고 있는 한국인에 대한 이야기, (내가 보기엔) 이라크 전쟁을 일으킨 미국의 지도자에 대해서 등 저자는 단순히 흥미로운 책을 낸 것은 아닌 것 같았다.
일본인이 한국인에게 저지른 학살(관동대지진과 조선인 학살)
자신이 사는 좁은 마을밖에 모르는 사람들이 외국인들을 열등하다고 단정해 버린다. 하지만 그들이 말하는 '시나징'과 '조센징'이라는 말은 대체 무엇을 지칭하는 것인가? 나이도 먹을 대로 먹은 사람들이 그런 모순을 깨닫지 못할 정도로 변변치 못한 머리인 것에 중학생이었던 겐토는 그만 질려 버렸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서 겐토는 일본인이 저지른 제노사이드를 알고 오싹했다. 관동 대지진 직후 '조센징이 방화를 저지르고 우물에 독을 푼다'와 같은 유언비어가 나돌자 정부와 정치가, 신문사까지 이 근거없는 소문을 흘리면서 일본인들이 수천 명의 조선 반도 출신 사람들을 말살하도록 부추겼다. 총이나 일본도, 방망이 따위로 사람들을 가지고 놀다가 살해하는 것으로 모자라 희생자를 땅 위에 눕혀 묶어 놓고 트럭으로 치고 나가는 잔학한 행위까지 벌어졌다. 일본이 조선 반도를 무력으로 식민 지배한 것이 당시의 일본인들에게는 켕기는 구석이었던 탓에, 보복이 있을 수 있다는 공포가 오히려 흉폭함으로 이어지게 되었다고 했다. 폭력이 한계치까지 달해 재일 조선인으로 착각하고 일본인을 살해한 일도 많았다. 인종 차별주의자인 할아버지와 큰아버지가 현장에 있었다면 틀림없이 대량 학살에 가담했을 것이다. 다른 민족에 대한 차별 감정을 아무렇지도 않게 입에 올리는 사람들은 무언가 계기가 주어지면 그들 안의 잔인한 감정이 폭발하여 살인자로 돌변했다.
그들의 마음속에는 어떤 마물이 스며들어 있는 것일까? 살해당한 사람들의 공포와 아픔은 어떤 것일까? 일본인의 무서움을 일본인은 알지 못한다.
...
한신 대지진 때는 재일 한국인과 재일 조선인, 일본인이 서로 도왔다고 겐토는 아파트 계단을 올라가면서 생각했다. 시대는 변하고 있었다. 앞으로 올 손님이 부디 일본인을 원망하지는 않기를 바랄 수밖에 없었다. 선조가 어리석으면 후손이 고생하기 마련이었다. (리디북스 아이패드 용, 210-212)
이 이야기를 일본인에게 들으니 참 새롭다. 관동대지진 이후 저렇게까지 끔찍한 일이 있었는지는 몰랐다. 사람을 땅에 눕혀서... 그런 짓을 하다니. 초기 기독교에도 이런 경우가 있었다. 로마, 시저가 황제로 있었을 때다. 로마에서 대화재가 일어났다. 이 일의 책임을 시저가 져야 했다. 하지만 시저는 이 일의 책임을 신흥종교인 기독교에게 넘겨버린다. 가뜩이나 이미지가 안 좋은 기독교이기에 좋은 먹잇감이 되었다.
이러한 일은 지금도 일어난다. 우리도 무슨 일만 있으면 조선족들을 들먹인다. 물론, 살해청부로 그런 일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범죄 팟캐스트에서 들었다. 그런데 거기에서는 자료를 들여다 보자고 한다. 실제 조선족들의 범죄율과 한국인의 범죄율을. 언론과 미디어에서 조선족에 대한 이미지를 흉악범으로 소비하니 그들의 이미지가 안 좋아진다. 실제 데이타로 외국인 범죄가 높은 나라는 몽골이라고 한다. 다른 나라 사람들 범죄율은 그렇게 높지 않다고 배상훈의 프라임에서 들었던 기억이 난다.
트럼프가 인기를 얻은 이유도 여기에 있지 않나? 백인 미국인들의 불만을 멕시코인들이나 아시아인들에게 잘못을 넘겨버리며 저 사람들 때문에 백인 미국인들이 더 못살게 되었다고 선동을 했다. 확실히 이 기저에는 인종주의가 있다고 본다. 쉽게 생각해보자. 우리도 동남아시아인을 영미나 유럽인들처럼 대하는가? 한민족이라는 개념이 잘못되면 인종주의가 될 수 있다고 본다. 지금 중국인에게 혐오를 보이는 것 역시 여기에 해당한다. 모 정치집단이 이런 인종주의 시선을 가지고 있기에 그 당은 멸망해야 된다고 본다.
그래도 이 책의 저자는 한국인과 일본인의 화합을 꿈꾼다. 그 시선이 이 작품에 녹아 있다.
계획이 정해진 뒤 시간이 남자 겐토는 항상 느꼈던 의문을 입에 올렸다.
"너랑 친해지고 나서도 난 전혀 위화감을 못 느끼겠는데, 한국인이랑 일본인 사이에 뭔가 다른 점이 있어?"
"으음·····."
정훈은 고개를 약간 기울이고 생각에 잠겼다.
"거리낌 없이 아무거나 말해 봐."
정훈은 시선을 겐토에게로 옮겼다.
"하나 들어 보자면······ 우리나라 사람만이 사용하는 특별한 감정이 있긴 해. 이건 미국인도 중국인도 일본인도 모르는 마음의 이상한 작용이야. 한국어로는 '정'이라고 해."
"정?"
"응, 한자로는 '뜻 정'자로 쓰지."
"그거라면 일본에도 '정'이란 게 있는 건데"
"아니 아니, 일본어의 '정'과는 달라. 설명하기 어렵네."
겐토는 호기심이 생겼다.
"어떻게 설명해 주면 안 돼?"
"무리하게라도 굳이 설명하자면 사람과 사람 사이를 연결시키는 강한 힘이라고 해야 하나. 한 번 얽힌 상대와는 좋든 싫든 관계없이 정으로 묵이게 되는 거지."
"그럼 우호적인 거라든가 박애 정신 같은 건가?"
"그렇게 아름다운 것은 아니고. 정은 안 좋은 일에도 생길 수 있어. 싫은 상대와도 정으로 이어지기도 하니까. 그러니까 우리는 다른 사람을 100퍼센트 거절하는 일이 불가능하다는 거지. 한국 영화나 드라마의 대부분은 이 정에 대해서 다루고 있어."
"어, 그런 거야?"
겐토는 지금까지 한국 영화를 몇 편 본 적이 있지만 그런 사실은 눈치 채지 못했다. 같은 작품을 감상하면서 사람에 따라 보이는 것이 다른 점이 놀라웠다.
...
"그렇지? 정이란 말의 의미는 정을 알고 있는 사람밖에 알 수 없어. 말이란 것은 그것이 가리키는 것을 모르면 이해할 수 없으니까."
정훈은 이렇게 말하며 웃었다. 과학 전문 용어랑 같다고 겐토는 생각했다. 모르는 사람에게는 아무리 설명해도 이해시킬 수 없는 것과 같이. 그것이 그 사람이 이해할 수 있는 한계이기 때문이다. (452-453)
'정'이란 단어를 어떻게 번역할까? 오바마가 예전 이명박 대통령과 식사에서 '정'이란 단어를 번역하지 않고 그대로 말했다. 아마 재벌이라는 단어도 그냥 해외에선 재벌이라고 쓴다고 했다. 마땅한 번역 용어가 없지 싶다. 성경에도 아람어 그대로 쓰인 단어들이 있다. '달리다굼'이 대표적이다. 이러한 단어들을 그대로 쓴 이유는 그 의미를 번역할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신앙도 같다고 본다. 다른 문화에 사는 사람이 한국인의 '정'이란 단어를 피부에 와닿게 이해 못하듯이 '신앙' 역시도 신앙생활에 입문해보지 못한 사람들은 그 의미를 알기란 한정적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타자를 이해하기 위한 연습이랄까? 다른 세상을 이해하려는 시선을 가진 사람들은 어느 정도 그 한계를 극복해 나갈 수 있다고 본다. 가다머가 말했던 지평의 확장이 그런 뜻일 것이다. 고정된 선입견을 넘어설 수 있는 것이 지평이다. 어쩌면 그 지평의 시작을 저자는 이 책에서 하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저자는 일본인이지만 '정'에 대해서 말하고 있지 않은가?
왜 대량학살이 발생할까?
왜 대량학살이 발생할까? 저자는 이렇게 분석하는 듯하다.
"... 그리고 또 하나, 죽일 상대의 거리를 멀리 두는 것이 중요해."
"거리?"
"응. 두 가지의 개념으로 이루어져 있어. 심리적 거리와 물리적 거리."
예를 들어 적이 인종적으로 다르며, 언어도 종교도 이데올로기도 다르게 되면 심리적 거리가 멀어지며 그만큼 죽이기 쉬워진다. ... 이러한 세뇌 교육이 모든 전쟁에서, 혹은 평소에도 전통적으로 시행되어 왔다. 적국 사람에게 '잽'이라거나 '딩크' 따위로 멸시하는 별칭을 붙이는 것이 그 첫 걸음이다.
"물리학적 거리를 유지하려면, 병기라는 테크놀로지가 필요하지."
심리학자가 이어서 설명했다.
전투 최전선에 서면 발포를 망설이게 되는 병사도 적을 직접 볼 수 없는 원거리에 있으면 보다 파괴력이 있는 공격 수단(박격포 발사나 함포 사격, 항공기 폭력 등)을 주저 없이 사용할 수 있게 된다. 눈앞에 있는 적을 사살한 병사가 평생 치유되지 않는 마음의 상처를 안는 것에 비해, 공중 폭격에 참가하여 100명이나 되는 사람의 목숨을 빼앗은 폭력수는 아무런 아픔도 느끼지 않는 것이다.
"인간이 다른 동물과 구분되는 점은 상상력의 유무라고 말한 학자가 있었어. 하지만 병기를 사용할 때에는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상상력조차 마비되고 말아. 폭격기 아래에서 도망가고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비참한 죽음을 맞이하는지는 눈에 들어오지 않는 거야. 이런 도착 증상을 일으키는 사람은 군인뿐만 아냐. 일반 시민 사이에서도 보이는 보편적인 심리야 알 수 있겠지?" (315-316)
눈앞에서 직접 사람을 죽인 병사들은 평생 병들지만 공중 폭격으로 수 백명의 사람은 아무런 아픔을 느끼지 않는다는 것에서 충격이었다. 정말 그럴 것 같다. 이들은 그저 게임을 하는 것 아닐까? 물리적으로 아무런 감각이 없지 않은가. 더구나 심리적으로 거리가 먼 대상이라면 더더욱 그럴 것이다. 사람이 아닌 존재로 만들어버리면 살인이 아니라 게임이 되는 것이다. 게임 속에서 사람을 무지막지하게 죽여나가도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이들은 현실에서 그러는 것이다.
그리고 저자의 이 말이 이 책에서 말하고 싶었던 핵심이 아니었을까 싶다.
"무서운 것은 지력이 아니고, 하물며 무력도 아닙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그것을 사용하는 이의 인격입니다." (518)
나는 정치인들이 똑똑하길 바랬다. 어느 정도 욕심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명박-박근혜의 시대를 거치면서 책임있는 사람의 인격이 중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제 아무리 똑똑하고 권력과 힘이 있다지만 인격이 망가진 사람이라면? 우리는 간혹 그러한 사람이 어떠한 해악을 끼치는지 종종 목격한다. 어쩌면 가까운 거리에 있는 사람일 수도 있다. 물론, 내가 그러한 인격을 가지고 있는지 종종 살펴봐야 할 것이다. 인간이 망가지는 것은 순식간이니!
나가면서
위와 같이 무거운 이야기나 어려운 이야기를 저자는 마구하지 않는다. 살짝 곁들여서 모를듯 알듯 이야기를 전개해 나간다. 일단 엄청 재미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재미있다. 일본과 아프리카에서 벌어지는 시점들이 오고가고 미국에서 권력자들이 움직이고 이러한 이야기 전개가 지루하지 않게 만든다. 학살에 대해서 알고 싶은 사람들은 이 책 추천한다! 그저 재미만을 위해서나 잔인하거나 잔혹함만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추천한다!
메모
그렇게 외친 겐토가 정훈과 함께 펄쩍 뛰며 기뻐했다. 위험한 상황에서 정훈이 구해준 것이 이걸로 몇 번째인가. (696)
- 관동대지진 사건의 피해자 후손인 한국인이 도움을 준다. '정'의 민족. 이 또한 저자의 의도일까?
책 맛보기
침략을 주도하는 정권 중추에는 전쟁으로 자기 배를 불리는 사람이 있었다. 일찍이 국방 장관으로 군부 산업의 민간 투자 유치를 진행하던 체임벌린이라는 남자는 정권 교체 후에 하야하더니 스스로 민간 투자기업 회장에 취임해서 거액의 이익을 챙겼다. 그 후, 번즈 정권에서 부통령으로 백악관을 복귀하더니 이라크 정벌의 선봉에 서는 한편 전쟁이 시작하기 전부터 전후 재건 사업의 청사진을 그리기 시작했다. 물론 전쟁 뒤 이라크에서 각종 인프라 라 정비를 청탁받은 곳은 그가 경영하던 에너지 기업이었다. 이 시기에 그의 개인 자산은 수십만 달러나 늘었다.
자신의 금전욕을 신보수주의라는 정치 사상으로 호도하는 정치가는 정권 내부에 얼마든지 있었다. 국방 장관 라티머조차 군수 기업과 깊이 결탁되어 있는 상황이었다. (321)
이것은 그냥 암살이 아니라 '제노사이드'라고 생각했다. 목표는 이 세상에 한 개체밖에 없는 인류종. 한 사람을 '제노사이드'하는 것이다. (347)
"나도 그렇게 생각하지만 미국인만이 아니라 인간이 하는 일이 다 완전하지 않아. 법률도 경제도, 모든 시스템이 다 불완전해. 제대로 완성되지 않은 컴퓨터 프로그램처럼 결함이 보일 때마다 패치를 새로 깔아야 하지. 만약 인간이 정말 '호모 사피엔스', 즉 '현명한 사람'이라면 100년 뒤에는 좀 더 좋은 세상이 될 거야" (448)
5분 전까지 평화롭던 아만베레 마을이 지금은 전쟁 무대가 되었다. 이데올로기나 종교 대립 같은 형이상학적인 게 아니라 실제로 맨살이 부딪히는 전쟁이었다. 병사들이 다른 인종의 집집마다 치고 들어가서 식료품이나 연료, 생활물자 등을 약탈하기 시작했다. ...(카리안 주 - 너무 잔인해서 다 옮기지 못함)
폭력이 절정에 달한 듯 발기한 남자들이 강한하고 있던 ...(카리안 주 - 너무 잔인해서 다 옮기지 못함)
죽이기 시작했다. 난징 대학살 때, 일본인이 중국인을 상대로 자행했던 수법이었다. 예거는 이런 장면을 만나도 정신이 무너져 내리지 않도록 군대 시절에 훈련을 받았었다. 러시아 병사가 포로를 학살하는 실제 영상을 몇 차례나 봐야만 했었다. (469-470)
번즈 정권 하에서 법률가들의 일이란 대통령의 뜻에 맞도록 법을 왜곡하여 해석해 주는 것이었다. 말하자면 전군 총사령관인 대통령이 직무 때문에 법률을 무시할 수도 있다는 독재 정치의 완성이었다.
루벤스는 이미 미국은 이슬람 원리주의자와의 전쟁에서 패배했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도 자유를 중시했던 나라는 이제 사라졌다. 그건 그렇다 하더라도 자유 민주주의라는 체제를 지키려고 하면 할수록 위정자가 전체주의에 빠져들게 되는 이유는 뭘까. 국가라는 조직에서 자유는 환상에 지나지 않는 것일까? (589)
"인간에게 선한 측면이 있다는 것도 부정하지 않네. 하지만 선행이라는 것은 인간의 본성에 위배되는 행위이기에 미덕이라고 하는 걸세. 그것이 생물학적으로 당연한 행동이라면 칭찬 받을 일도 아니지 않은가. ..." (595)
모든 정치적 결정이란 이성적인 판단처럼 보여도 의사 결정권자의 인격이 강하게 영향을 미쳤다. 그리고 루벤스는 단호한 대통령의 태도 속에 약간이지만 편향된 인격을 보았다. 그가 누스 말살을 고집하는 이유는 뭔가 개인적인 신념에 의한 것이었다. 그럼 그 신념은 뭘까? (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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