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낀 점
래리 허타도. 작년 돌아가셨다. 고기독론의 대표주자 중 한 분이시다. 이분으로 인해 어쩌면 복음주의권 신학을 하는 사람들은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을 것이다. 물론, 나는 아직 그의 대표작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보진 않았지만 언젠가 도전을 할 것이다. 그래서 주류 신학계에서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그럼에도 래리 허타도, 리처드 보컴, 톰 라이트같은 분들이 있다는 것은 나와 같은 복음주의권 사람들에겐 참으로 신학할 만한 세상이 아닌가 싶다.
이 바로 앞의 책인 <기독교의 발흥>은 사회과학자가 쓴 초기 기독교의 모습이었다면 이 책은 성경신학자가 쓴 초기 기독교의 모습이다. 확실히 전공에 따라 이야기의 전개가 달라진다. 당연한 것이겠지만 허타도는 철저히 텍스트 중심으로 1-3세기 초기 기독교를 그려낸다. 2-3세기에 대해서는 그리 전문적이지 않는 거 같지만 1세기 성경, 특히 바울서신에 대해 이야기할 땐 역시 신약학자다 싶다. 스타크의 책이 전체 구조를 살펴본 느낌이었다면 허타도는 ‘한 개인이 그리스-로마 사회에서 어땠을까’를 그려냈다. 그래서 이교와 초기 기독교와의 차이를 집중적으로 파헤친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 디모데후서 3장 16절. 여기서 모든 성경이란?
이 구절은 참 많이 들어봤을 것이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딤후 3:16) 그런데 조금이라도 성경기록에 대해서 알고 있는 사람들은 이 구절에 의문을 표한다. 이 당시 디모데후서가 쓰였을 때 사복음서는 없었을 것이고 더구나 지금 정경으로 인정받은 구약 39권 + 신약 27권을 합한 성경 66권에 대한 개념이 없었을 텐데 왜 모든 성경이라고 했을까? 그리고 바울은 자신이 쓴 편지들이 나중에 성경이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우리는 너무나 비약적으로 후대에 생겨난 개념을 본문에 투영할 때가 있다. 그 케이스가 바로 그렇다. 지금의 성경을 이때 바울이 쓰는 성경과 직접적으로 동일하게 생각하는 것이다.
WBC 디모데후서 주석이었나? 권위있는 어느 주석을 보니 확실히 이때 모든 성경은 구약과 전승되어 내려오는 예수님에 대한 것으로 본다고 했다. 확실한 건 이때 모든 성경은 구약을 말한다. 그러면 왜 바울은 구약을 읽어야 한다고 했을까? 그건 바로 바울의 선교로 인해 유대인의 이야기(구약)을 모르는 사람들이 늘어갔기 때문이다. 바울은 스페인으로 선교 여행을 떠나고 싶었다. 그러니 로마로 가려던 계획을 세웠던 거고 로마서도 스페인으로 가는 교두보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니 자연스레 유대인들의 구약을 모르는 사람들이 기독교인들이 되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구약을 모르고 예수님에 대해서 알 수 있을까? 전혀 그렇지 않다. 사도행전에서 베드로의 설교와 스데반의 설교에서도 보았듯이 이스라엘의 이야기가 그들이 전하는 복음에 반드시 필요한 요소였다. 로마에 보낸 로마서 역시도 아담과 예수님을 이야기하지 않는가? 구약의 이야기는 기독교인들에겐 필수적이었다. 복음을 이해하려면 더더욱!
이교도 출신의 신자들이 성경 본문을 익숙하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적절한 기회들이 주어졌으리라고 가정해야 한다. 그게 아니라면 이 많은 성경에 대한 인용이나 인유는 이교도 출신의 신자들에게는 아무 뜻 없는 소리로 남았을 것이다. 게다가 성경에서 이야기한 희망과 약속이 예수를 통해 성취되었다는 초기 기독교의 기본 가르침과 복음서의 메시지는 성경 말씀에 관심을 갖고, 그 내용에 익숙해지기 위해 노력해야 할 또 다른 동기를 제공했을 것이고, 성경을 읽고 토론할 수 있는 시간을 마련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기독교 공동체가 형성된 초기부터 개인으로 또 공동으로 텍스트(구약성경 저작물들)를 읽고 토론하는 활동이 빈번하게 이루어졌을 것이라는 추론은 매우 타당하다. 기독교의 공중 예배는 세월이 흐르면서 점진적으로 격식을 갖추며 '정경화' 과정을 거쳐 확립되었지만, 예수 운동의 초기 단계에서도 성경 봉독의 중요성과 영향력은 자명했다. (136)
역사적 예수 분야에 대해서 조금 공부해 보신 분들은 알 것이다. 예전 리뷰를 했던(2020/01/23 - [북리뷰] - 크레이그 에반스 - 만들어진 예수)라는 책에서 말했지만 너무 헬레니즘이랑 신약을 연관시켜서 구약의 이야기가 흐릿해졌다는 것이다. 특히 크레이그 에반스는 구약을 전공하다가 신약으로 오니깐 그런 부분이 더 눈에 들어왔다고 했다. 확실히 에반스의 지적처럼 구약의 영향을 잘 살펴봐야 겠고 역시 헬레니즘의 영향도 같이 살펴봐야 한다. 그래서 신약도 할게 많다.
그리스-로마 문화에서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그가 말한 그리스-로마 사회에서 기독교인이 된다는 것은 많은 희생이 따른다. 기독교의 여러 모습들은 이교도들의 반감을 샀고, 반사회적인 종교 운동이었다. 유대인이 유일신을 섬기는 것은 그들의 민족신을 섬기는 것이기에 넘어갈 수 있지만 이교도의 경우는 달랐다.
모든 신을 숭배할 가치가 있는 존재로 여겼다는 점도 빼놓지 않고 짚어야 한다. 신을 숭배하지 않는 것 - 숭배란 일반적으로 산 제물을 바치는 제사를 의미하는데 - 은 결국 그 신의 실재를 부정하는 것이었다. 모든 신을 빠짐없이 섬겨야 하는 것이 이교도 개개인의 의무는 아니었지만 원칙적으로 모든 신은 숭배받을 자격이 있었다. 따라서 로마 시대의 사람들은 대체로 각기 다른 여러 신을 함께 숭배하는 일에 전혀 거리낌이 없었다. (79)
다시 말해 제국을 구성하는 민족이 신으로 인정하는 신이라면 어떤 신이든 사리와 도리에 맞게 예를 표하는 것을 의미했다. 로마 시대에 다른 도시나 나라에 방문했다고 치면, 그 지역의 수호신들과 관련한 제의에 초대받을 일이 있었을 테고, 그러면 사람들은 거리낌 없이 그 초대에 응했을 것이다. 여러 신들에게 예배하기를 대놓고 거절하는 행위는 비정상적이고 반사회적으로 보였고, 심할 경우 불경스럽고 반종교적인 짓으로 여겨졌다. (80)
로마 시대의 종교적 신앙과 초기 기독교인의 입장이 특히 차이를 드러내는 부분이 바로 '우상'이다. (81)
고린도전서 8~10장에서 바울은 이제 그의 이방인 개종자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이방의 신들에 대해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를 차근차근 설명한다. 이것은 특히 이방 도시에 살고 있으면서 기독교로 개종한 이교도에게는 피할 수 없는 주제였다. 이교도에서 기독교로 개종한 신자에게는 이교도 가족이 있었을 테고, 설령 한 가족이 모두 기독교로 개종한 경우라도 이교도 친척이 있었을 것이며, 당연히 이방 신을 숭배하는 자리에 나가야 할 때도 많았을 것이다. 바울의 개종자들은 가정에서는 물론 그들의 일자리나 사업장에서도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며 사회생활을 유지해야 했다. 따라서 그들이 새롭게 받아들인 믿음을 저버리지 않고 헌신하되, 사회 속에서 어떠한 호라동들에 참여할 수 있는지 그 범위를 판단해야 했다. 아울러 우리는 로마 시대의 사회생활은 대부분 여러 신들에게 공경을 표하는 행위가 수반된다는 사실을 상시할 필요가 있다. (85)
핵심을 짚자면, 과거 자신들이 섬겼던 신들에 대한 예배를 거부하는 이교도 출신의 기독교인들은 민족신을 제외한 다른 어떤 신도 숭배하지 않는 유대인들보다 훨씬 더 큰 반감을 샀다. 유대인들의 경우 민족 고유의 특성으로 이해한다고 쳐도, 유대인도 아닌 자들이 조상 대대로 섬겨온 그 자신의 신들을 거부하고 의무를 팽개칠 아무런 이유도 없었기 때문이다. (89)
이렇게 보면 우상숭배를 거부하는 행동은 그의 가족과 마을, 국가를 등지는 행위였다. 많은 부분이 종교에 종속되어있는 사회에서(경제 역시 신전을 통해 많은 활동이 있었기에) 이는 어찌보면 모든 것을 내다버린 행위와도 같다. 그럼에도 그들은 왜 기독교인이 되었을까. 그것도 다양한 계층에서, 다양한 민족에서.
지금은 교회를 다니는 것이 살아가는 데 유리한 면이 많아졌기에 세삼 다시 묻지 않을 수 없다. 나에게, 우리에게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고기독론, 래리 허타도
고기독론의 주요 선수로 래리 허타도를 든다. 고기독론, 저기독론이 무엇이냐면 과연 예수님을 언제 하나님으로 받아 드렸냐는 것이다. 그래서 책 제목에서 그들의 정체성이 드러난다. 고기독론자들의 책 제목은 <하나님은 어떻게 예수가 되셨나?>(좋은씨앗), 저기독론자는 <예수는 어떻게 신이 되었나>(갈라파고스)로 대변된다. 그러면 이제 나오는 문제가 예수님을 언제 예배의 대상으로 했는지다. 고기독론자들은 처음부터로 잡고, 저기독론자들은 훨씬 후대로 잡는다. (제임스 던은 조금 애매하게 말하나 보다. 이형일 박사의 강의에서 그렇게 정리해주는 것을 들었다. 자세한 건 던의 <첫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를 예배했는가?>를 살펴봐야 할 듯하다.)
그럼 고기독론의 대표 선수인 허타도는 무엇을 근거로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생각하고 예배드렸다고 할까?
첫째, 예수가 중심에 놓이는 특기할 만한 예배 양식이 정착했음을 보여주는 자료는 충분하다. 예를 들어 초기 기독교에 입문하는 의식을 상기해보자. 세례와 예수의 이름으로 기원하는(그의 이름을 '부르는') 의식이 있다. 더욱이 그리스어를 쓰는 공동체는 물론 아람어를 쓰는 (유대인) 공동체에서도 공중 예배식에는 고린도전서 16장 2절의 "마라나타(주여 오시옵소서)"라는 간청에 반영되어 있는 것처럼 예수를 '주님'으로 부르며 탄원하는 행위가 포함되어 있었다. ...
예수를 직간접적으로 높이는 찬가나 송가를 부르는 행위도 신약 성경에 언급되어 있다. 성경의 시편들을 예수에 대한 예언으로 인식했던 것으로 보이고, 아울러 예수를 찬미하는 행위 역시 초기 기독교 예배식의 일부로 자리 잡은 듯하다. ...
...
둘째, 이 숭배 형식이 새로운 발명품 같다는 것이다. ... 고대 유대 전통에 따르면 대천사라든가 경전에 등장하는 영웅, 때로는 하나님의 속성을 의인화한 형태로 창조나 구원 등의 다양한 역사 속에서 고유한 대리인으로서 하나님의 역사를 집행하는 이런저런 존재가 나타난다. 이러한 인물들이 고대 유대 전통에서 '최고 대리인' 개념을 형성했으며, ... 구역성경 속의 최고 대리인 가운데 초기의 예수 운동 공동체 안에서 예수가 높임을 받았던 것만큼 섬김을 받았던 인물은 아무도 없었다. 다시 말해 구약성경의 최고 대리인은 특히, 초창기의 기독교 숭배 의식에서 예수가 차지하는 위치를 설명할 수 있는 적절한 전례나 일치되는 사례가 되지 못한다.
초기 예수 운동 공동체의 신앙과 의례에 나타난 이위일체 개념이 로마 시대의 다양한 유대교 전통 사이에서 특히 예수 운동을 차별화하는 지점이라고 내가 주장하는 것도 이와 같은 이유에서다. 예수 운동은 고대 유대교 전통에서 눈에 띄는 돌연변이였다. ... 이위일체 숭배 형식은 그야말로 동시대에서도 유사한 의식을 찾을 수 없고 그 이전 시대에서도 전례를 찾을 수 없을 만큼 새로운 것이었다. 기독교인들의 신앙과 의례는 그 내용뿐 아니라 형식이 동시대 유대교 집단의 다른 어떤 신앙이나 의례 중에서도 상이했으며 독특했다. (115-116)
이러한 것을 근거로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후부터 예수님을 예배의 대상으로 보기 시작했다고 본다.
소소한 아쉬운 점
뒤에 참고문헌이라고 적힌 페이지는 보니깐 각주였다. 왜 참고문헌을 따로 빼지 않았을까? 그래서 이 책이 어떤 책들을 참고했는지 한 눈에 보기 어려워서 좀 아쉬웠다. 차라리 참고문헌이라는 말을 안 썼으면 그나마 나았을 것인데. 물론, 이 책이 전문 학술서가 아니라서 그런 거일수도 있겠다. 여튼, 소소하지만 아쉬웠다.
나가면서
아마도 로드니 스타크의 책보다는 이 책에서 정서적으로 안정감을 얻을 분들이 많을 것이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다. 특히라 래리 허타도가 보였던 당시 그리스-로마 문명권과 예수 운동의 초창기 가르침과의 대립점들이 가장 눈여겨볼 만 하다. 로드니 스타크의 책이 상대적으로 더 알려져 있는 것 같던데 이 책 역시도 같이 읽어보면 참 좋다! 나는 이 책이 로드니 스타크의 책보다 훨씬 좋다고 생각한다!
메모
네로 황제가 자신에게 쏟아지는 비난의 화살을 돌리려고 어떻게 했는지 기록했다. 타키투스가 전한 바에 따르면, 네로 황제는 그리스도인들을 화재의 원흉으로 지목하고 그들을 악랄하게 처단하는 작업에 들어갔다. (39)
- 빨갱이, 종북, 왕따 등 소수자에게 책임을 전가하기 위한 술수다.
켈수스가 역사에 이름을 남긴 것은 자신이 폄하했던 바로 그 종교 운동 덕분인 것이다! (53)
- ㅋㅋㅋㅋㅋ
1세기가 끝나갈 무렵이면 예수 운동의 추종자들이 주로 비유대인으로 구성되었을 가능성이 크고, 이들은 당시 대다수 유대인이 지지하던 신념과는 판이한 종교적 신념으로 부각되기도 했다. (107)
- 로드니 스타크와는 다른 의견. 2~3세기까지 유대인 선교가 효과적이라고 설명함. 현대의 사회구조(신흥종교)를 기준으로.
바울 서신에 대해 다시 이야기하자면, 이렇게 편지들을 여러 지역에서 회람하고 공중 예배에서 봉독했다는 사실은 적어도 일부 기독교 공동체에서는 이들 문서가 신약성경을 구성하기 이전부터 일찌감치 '정경'의 지위를 얻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143)
- 당시 바울은 자신의 글이 구약의 글들과 같은 권위를 가졌다고 생각했을까?
고린도전서 7장에서 바울은 결혼 문제를 다루는데, 이에 대한 그의 답변은 무척 흥미롭다. 이 대목에서도 앞서와 같이 일부 신자들이 주장하는 바를 먼저 인용하고 나서 자신의 입장을 전개한다는 것이 학계의 통설이다. 고린도 교회의 일부 신자들은 "남자가 여자를 (성적으로) 가까이 아니함이 좋으나(7장 1절)"라고 말하며 금욕을 주창했다. 6장 12~13절에서 신도들의 잘못된 주장을 인용하고 바로 반박했듯이 바울은 7장 2~5절에서 곧바로 이 주장에 반대되는 견해를 제시했다. 위와 같은 주장 때문에 고린도 교회 신자들 사이에는 기혼자임에도 심지어 상대가 배우자라 해도 성관계를 삼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어서 바울은 이를 바로잡으려 했던 것 같다. 그러니까 고린도 교회에는 상반되는 두 가지 견해가 존재한 것으로 보인다. 6장 12~19에서 바울은 창녀와 성관계를 용인할 수 있다고 보는 신자들의 견해를 바로잡았으며, 7장 1~40절에서는 부부간 성생활에서도 금욕주의를 주창하는 사람들의 견해를 바로잡는다. (212-213)
- 오호! 이건 생각도 못했네. 확실히 본문이 다르게 다가온다.
오늘날 사람들이 종교를 생각할 때 윤리를 떠올리고, 올바른 태도나 삶의 자세를 가르치는 일에 종교가 관심을 보이는 것이 당연하다고 전제한다면, 이 역시 구체적으로는 기독교의 영향일 것이다. (248)
- 그렇구나!
책 맛보기
비기독교인들이 초기 기독교를 향해 품었던 적대감의 기저에는 경제적 요인이 짙게 깔린 것으로 보인다. (45)
바울은 이렇게 썼다.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갈라디아서 3장 28절)" 예수 안에서 구분이 없다고 하지만 바울 서신을 꼼꼼히 읽은 독자라면 기독교 공동체에서 계속 신자들을 이런 식으로 분별했고, 바울도 자주 이렇게 신자들을 구분해 불렀음을 익히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바울이 의미한 것은 정확히 말하자면 다양한 민족적·사회적·생물학적 범주가 그가 세운 교회의 구성원들 사이에서 부당한 차별의 근거나 신분의 지표로서 가능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유대인이든 헬라인이든, 노예든 자유인이든, 남자든 여자든 이러한 구분은 '그리스도 안'에서 얻은 새로운 신분, 곧 사회적·종교적 실체인 에클레시아의 일원이라는 신분에 비해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모든 신도는 민족적·사회적·생물학적 범주와 무관하게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정체성을 얻고 신앙으로 한 몸이 되었으므로 서로 지체가 되어 서로를 섬겨야 하는 것이었다. 여기서 강조하고 싶은 점은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신분이 생겼다고 해서 바울의 개종자들에게 민족이나 사회, 혹은 성적 범주 등에서 공식적인 지위가 바뀌거나 눈에 보이는 변화가 발생하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90-91)
"무신론자들을 죽여라!" 무신론 혐의는 로마 시대의 많은 사람들이 기독교인들을 그들이 매우 불경스럽고, 방자하며, 신들을 향해 종교적으로 적절한 예를 갖추지 않는다고 생각했음을 반영한다. 마따히 모든 신을 공경해야 한다는 것이 일반적인 이교도의 생각이었음을 상기하자. (92)
바울의 남성 중심적인 권고의 글은, 기독교 신자인 남편들에게 로마 사회의 통념과는 아주 다른 기준을 제시하려는 의도로 작성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204)
요점은 초기 기독교에서 신자들에게 권면의 말을 전달하는 환경은 스승이나 철학자가 상위 계층의 남자 제자들만 모아놓고 올바른 인생을 사는 법을 토론하는 환경과 분명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가정 경영에 관한 조언이 담긴 그리스 로마 시대의 문헌들에 나타나 있듯이 당시 사회에서는 자유민, 그리고 지배 계층의 남성 저자가 자신과 동일한 사회 계층에 속한 남성들에게 권면하는 형태였으며, 이 역시 초기 기독교의 가정생활 규범이 전달되는 방식과 전혀 달랐다. (236)
훗날 기독교가 된 예수 운동은 초창기부터 지역과 민족의 경계없이, 사회 계층과 성별의 구분 없이 대중에게 가르침을 베풀었으며, 이렇게 신자가 된 이들은 예수 운동에 입회한 순간부터 특정한 신념과 행동에 헌신해야 했다. 이 예수 운동은 비록 처음 몇 세기 동안은 작고 보잘것없었을지 모르나 지역을 초월해 꾸준히 성장하며 그 독특함으로 화제의 중심에 놓였고, 비기독교인들이 수시로 표출하는 반감에서 드러나듯이 외부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245-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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