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낀 점
김두식의 책은 나를 실망시키지 않는다. 나의 속 마음을 보는 여러모로 유익하고 재미있는 책이다. 시작하는 서두부터 김두식은 내 마음 속에 있는 욕망을 건드렸다.
별로 특별할 것도 없는 이야기입니다. 저는 거의 매주 KTX 기차 안에서 이런 아저씨들을 만납니다. 공통점은 지하철, 버스, 기차에서 누군가와 큰 소리로 통화를 한다는 것이죠. 통화내용은 99.99퍼센트 아무 내용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목소리는 열차 전체가 쩌렁쩌렁 울릴 정도로 우렁찹니다. 통화 중에는 보통 유력인사와의 관계가 언급되지요. "응, 김 의원 만나고 돌아가는 길이야. 그 친구 여전하더라고·····" "박 회장, 잘 지내시나? 허허허. 나는 별일 없지" "최 검사랑 내가 친하기는 하지. 내가 처리해줄게" 뭐 이런 식입니다. 이런 분들이 하는 대화의 상대방은 사실 휴대전화 너머에 있지 않습니다. 대화의 진짜 상대는 주변에 있는 불특정 다수입니다.
심지어 동료교수 중에도 이런 분들이 있습니다. 국회의원, 부장검사 친구들의 이름을 입에 달고 다니고, 식사 도중에 뜬금없이 그런 사람에게 전화를 걸기도 하지요....
이런 아저씨들을 볼 때마다 제가 느끼는 것은 단순히 '시끄럽다'가 아닙니다. 그 이상의 불쾌함이 있습니다. 아저씨들의 욕망을 예민하게 잡아내 반드시 비웃어야 직성이 풀립니다. 왜 그럴까요? 아저씨들의 욕망이 바로 저의 욕망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아저씨들처럼 미숙하게 자기를 과시하다가 웃음거리가 되는 일은 별로 없지만, 일찍 현직 장관으로부터 뭔가를 상의하는 전화를 받으면, 저는 그날 점심시간이나 강의 중에 지나가는 이야기로라도 반드시 슬쩍 그 일을 언급합니다. 학생들에게 최신 이슈를 알려줌으로써 학습효과를 높이기 위해서라고 변명하고 싶지만 거짓말이죠. 비행기의 아저씨와 욕망을 표출하는 방식에만 차이가 있을 뿐, 욕망의 본질은 다르지 않습니다. 인정받고 싶은 거죠.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날 함부로 무시하지 말라는 과시 같은 거고요. (21-23)
교회에 새로오신 부부가 있었다. 남자분은 군인이라고 하셨다. 나이 35살 정도에 군인이기에 직업군인인가 싶었다. 계급은 대위시란다. 근데 군의관이시다. 의사시다. 아내분도 의사시다. 병원과정을 다 거치고 대구에서 군복무를 하시는 동안 우리 교회에 나오신단다. 지금도 적응을 굉장히 잘 하시고 있다. 문제는 은연 중에 이런 분이 우리 교회에 다니고 있다는 것을 나는 사람들에게 말한다는 것에 있다. 친구와 이야기를 할 때, 코로나 바이러스를 이야기할 때 우리 교회 블라블라를 시전한다. 딱 저기에 나와 있던 욕망이다. 내가 다니는 작은 교회를 함부로 무시하지말라는 무언의 의식이 있었을까.
그래도 사역하는 동안 출신 학교를 묻지 않았던 것은 내 장점이라고 생각했다. 3년 사역을 한 곳에서 집사님 두분이 계셨다. 사역을 옮길 때쯤에 한 분이 경북대 영문학과 출신(대단히 높은 것으로 안다)이며 한분은 숙명여대에 나오셨고 유학까지 나오셨다는 것을 사역을 그만두기 한, 두 주 전에 알게 되었다. 이 사실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는 사실에 나는 나름 뿌듯했지만 만약에 그분들의 스펙을 미리 알고 있었더라면 나는 그분들을 어떻게 대했을까? 여태 대하듯 같이 대했을까?
욕망을 비춘 이후에 늘 내가 발현한 욕망을 본다. 그렇게 맛있는 냄새를 풍기는 음식이 시간이 오래 지나 썩은 내가 나는 느낌이랄까? 당시 내 욕망을 보일 때는 그렇게 좋았는데!!
르네 지라르의 희생양 이론(모방욕망)
욕망해도 괜찮다니. 물론, 여기 나오는 욕망은 제임스 스미스가 말하는 욕망과는 다르다. 그는 르네 지라르의 욕망이론을 말한다. 나 역시 지라르의 욕망이론에 많이 끌린다. 내가 언제부터 르네 지라르에게 관심이 갔는지는 기억이 잘 안 난다. 레비나스, 폴 리쾨르를 한 번 공부해보고 싶었고 르네 지라르를 소개 받은 뒤로는 일순위기 지라르가 되었다. 그의 희생양 이론이 참 매력적었다. 그러다 티슬턴의 책을 읽다가 가다머를 또 공부해 보고 싶어지고 그랬다. 지라르는 정일권 박사가 쓴 소개서들이 제법 있지만 그보단 오지훈의 <희생되는 진리>가 더 잘 소개했다고 본다. 이 책을 리뷰하는 날 지라르에 대한 이야기를 더 자세히 해보도록 하겠다.
일단 이 책에서도 김두식은 지라르 이론을 소개한다.
모방욕망
"자연적인 욕구가 충족된 후에도 인간은 늘 뭔가를 강렬하게 욕망하는데 그 욕망은 자기 고유의 것이 아닙니다. 우리 욕망은 다른 사람(모델)의 욕망을 흉내낸 것입니다."(49) 김두식은 이 사례를 자신의 경험에 빗대어 이야기한다.
진로상담을 하다보면 학생들이 지닌 목표 또는 욕망의 상당부분은 부모에게서 빌려온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나도 서울대에 가고도 남을 실력이 있었다. 그런데 집안형편이 너무 어려웠다. 그래서 목표를 이룰 수가 없었다. 너는 할 수 있다. 공부를 위해서라면 너에게 무슨 지원이든 아끼지 않겠다." 많은 학생들이 이런 장탄식을 듣고 자라면서 은연중에 부모의 욕망을 그대로 모방합니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부모의 욕망도 오롯이 부모 자신의 것은 아닙니다. ...
이같은 모방욕방은 인간을 다른 동물과 구분짓는 결정적인 요인입니다. 인간의 욕망이 모방적이지 않고 어린아이들이 주변사람을 모델로 선택하지 않는다면, 언어도 문화도 없을 테니까요. 본질적으로 모방욕망은 자유와 발전을 만들어내는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를 동물보다 못한 존재로 만드는 원인이기도 합니다. 욕망과 현실의 불일치가 경쟁과 폭력을 낳는 까닭입니다. (50)
우리의 욕망이 다른 사람의 욕망을 우리가 흉내낸 것이라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기에 모방은 경쟁을 낳고 경쟁은 모방을 강화한다. 무제한의 야망과 과도한 경쟁은 사회를 파괴한다(51).
희생양 이론(희생양 메커니즘)
문제는 이제 여기에서 시작한다.
사회 파괴는 고대사회에서 흔히 기아, 홍수, 가뭄 같은 재앙으로 연결됩니다. 때로는 정체 모를 전염병이 발생하기도 합니다. 그런 자연재해조차 실은 사회적 불안이 극대화되어 무질서가 창궐하는 상황을 고대인의 부족한 언어로 묘사한 것일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가뭄을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오랜 기간 비가 오지 않아 땅은 마르고 먹을 것은 부족합니다. 공포, 분노, 적대감에 빠진 사람들은 누군가 책임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입니다. 가뭄이라는 눈앞의 현상은 모방욕망과 상관없어 보이지만, 가뭄으로 증폭된 갈등과 분노는 끝없는 모방경쟁의 결과입니다. ... 그러나 모방욕망과 과도한 경쟁이 낳은 폭력성의 증대는 협동을 통한 정상적인 농사를 불가능하게 만듭니다. ... 갈등과 불안이 계속 고조되지만 어디에서도 해결책을 찾을 수 없습니다.
그 위기가 절정에 달해 모두가 견딜 수 없는 상황이 되었을 때 만장일치의 폭력이 시작됩니다. 평소에는 읜견이 달랐던 살마들도 누군가를 죽여 위기를 해소해야 한다는 데 쉽게 합의합니다. 마녀사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경우입니다. 고대사회에서는 가뭄이 극심한 상황에서 기우제를 지내며 왕의 목을 치기도 합니다.
이같은 만장일치적 폭력에는 희생자의 제자나 신하까지 배신을 통해 묵시적으로 가담합니다. 예수를 죽이는 현장에서 예수를 세번 부인한 베드로가 그런 예입니다. 예수를 죽일 때 대제사장인 가야바가 했던 유명한 말은 만장일치적 폭력의 본질을 정확히 드러냅니다.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어서 온 민족이 망하지 않게 되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하다." ... 만장일치적 폭력이 시작되면 공격자들은 희생자를 향해 미친 듯이 달려듭니다. 분노와 두려움이 낳은 놀라운 폭력성으로 희생자를 문자 그대로 찢어 죽이고 때로는 그 시체를 잘근잘근 씹어먹습니다. 그네 지라르는 이같은 엽기적인 폭력을 묘사하기 위해 '린치'(lynch)라는 영어 표현을 빌려옵니다.
이런 폭발적인 폭력과 희생을 통해 사회는 질서와 평화를 되찾습니다. ... 희생양이 죽으면서 페스트는 치유되고, 자연재해는 물러가며, 혼란은 가라앉고, 막혔던 것은 통하고, 모든 것이 일상으로 돌악옵니다. 희생양이 진짜로 페스트를 치유하거나 자연재해를 물리치지는 못하지만, 개인 사이에 극대화되었던 불화를 정리함으로써 위기를 멈추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조금 시간이 흐르면 억울하게 죽은 희생자에 대해 신성한 종교적 의미를 부여하는 작업이 시작됩니다. 한 개인을 의심하여 살해하고 추방한 살마들이 이제 그 억울한 개인에 대해 과도한 숭배를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느 이제 신화화의 과정을 거쳐서 신적인 존재로 부활합니다. 이게 바로 서양의 여러 신화에서 시작되어 예수의 죽음으로 이어지는 '희생양 메커니즘'입니다. (51-53)
김두식의 설명을 그냥 다 옮겨오는 것이 희생양 메커니즘을 설명하는데 더 나을 것같다. 나는 이 이론을 접하고 난 뒤 학교에 왕따가 여러명의 다수가 아니라 왜 한 명씩일까 하는 의문이 풀렸다. 희생양이 아닐까. 지라르의 이 주장은 그리스 신화의 인물들은 바로 희생당한 소수자들이라고 말하며 여태까지의 그리스 신화의 해석을 뒤흔들었다. 정일권은 이 이론을 바탕으로 불교를 이야기하는데 불교의 보살같은 존재들도 그 사회의 희생양인 소수자들이었다고 말한다. 이때의 소수자들은 장애인, 몸파는 여자들과 같은 하층민들을 말한다. 물론, 정일권은 요즘 이상한 헛소리를 많이 해서 그의 학문적인 주장까지 나는 신뢰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든다.
어찌되었던 그의 커다란 주장은 과연 인류가 전체에도 통용될 것인가? 물론, 그것은 학자들의 영역이겠지만 그의 이론들은 상당한 매력을 준다.
저자는 이 주장을 바탕으로 우리 사회의 모방 욕망의 중심이 학벌이라고 말하며 이 사회가 거대한 정신병동으로 변했다고 강하게 말하기도 한다. 학벌을 바탕으로 과도한 경쟁이 일어났고 거기에 대한 해소로 신정아 사건을 든다. 그는 신정아가 희생양이였다고 흥미로운 주장을 펼친다. 보고싶은 분들은 이 책의 p. 54 ~ p. 68를 참고하라.
나가면서
이 책은 중년의 욕망이야기라고 봐도 괜찮을 듯 하다. 또, 근본주의 세계에서 자란 저자의 말들이기에 공감되는 부분도 참 많았다. 또, 아직은 나의 “계”에서 조금이라도 나가고 싶지 않으려는 게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말들이 내 안에 있는 욕망을 드러내주었다. 나를 직면하게 된 좋은 독서의 시간이었다.
여튼, 저자의 여러 경험들을 아우르는 이야기들을 듣노라면 편안하고 신뢰할 만한 아저씨가 아닐까 싶다. 그의 글이 참 좋았고, 내용도 좋았다. 그래도 <법률가들>은 너무 굵어서 언제 읽을진 모르겠다...ㅜ
메모
밤 10시가 다 된 시간에만 신정아씨를 불러내 큰일을 하게 도와주겠다며 슬쩍슬쩍 어깨를 치거나 팔을 건드린 분은 (만약 그게 사실이었다면) 이런 답답한 남성의 전형입니다. 그런 사람은 어딜 가나 넘쳐나서 만약 여성들이 다 함께 폭로하기로 작정하면 수없는 남성 지도자들이 가을 낙엽처럼 우수수 떨어지게 될 겁니다. (79)
- 이거 미투운동ㅋㅋ(이 책이 2012년에 출간되었는데 상당한 선견을 보여준다.ㅋㅋ)
즉 관계를 잘 유지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그 관계를 끝장낼 수 있는 용기'라는 얘기입니다. (115)
이런 상담을 자주 하면서 연애든 결혼이든, 실제로 헤어지느냐 계속 사귀느냐는 그렇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오히려 관계에서 중요한 것은 '헤어질 수 있는 용기' 그 자체였습니다. (119)
- (최근에 좋은 노래 제목을 봤다. <너의 과거가 될 용기>. 헤르쯔 아날로그의 노래인데 정말 좋은 문장이다. 언제나 관계를 끝장낼 수 있는 용기. 그건 너의 과거가 될 용기다. 노래가 그렇게 땡기는 건 아닌데 제목이 참 좋다. 이 용기가 있었더라면 내 연애는 조금 달라졌을까 싶다.)
책 맛보기
진보 지지자들은 욕망을 드러내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으니까요. 욕망을 감추고 살다보니, 남의 숨겨진 욕망이 자꾸 눈에 밟혀서 상대방의 욕망을 들춰내고 난도질하는 데 귀신같은 능력을 보여줍니다. (42)
이번 글쓰기는 어떻게든 욕망을 정직하게 받아들이고 인정하겠다는 제 결심의 첫걸음입니다. (43)
르네 지라르는 이런 희생양 메커니즘을 폭로한 사람이 바로 예수라고 설명합니다. 폭로의 댓가로 예수 자신도 희생제물이 되고 맙니다. 그는 자신의 죽음을 통해 희생양 제의의 종식을 촉구하고, 모방욕망과 폭력의 악순환을 멈출 수 있는 새로운 모델을 제시합니다. (100-101)
나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의 말 한마디에 흔들리지 않기로 결심한다고 해서 세상의 모든 욕망과 두려움에서 완전히 자유로워질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마음속 한 귀퉁이에 약간의 여유공간을 마련할 수는 있습니다. 모방욕망과 무한경쟁 속에서 매일 조금씩 죽어가는 게 우리 영혼입니다. 그 영혼이 잠깐 산소를 맛볼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세상에서 나를 정말로 사랑하는 사람들은 열심히 꼽아봐야 열 손가락을 채우기도 어렵습니다. 그 차가운 진실을 받아들이면 마음이 한결 편해집니다. 이같은 차가운 진실의 인정은 욕망의 인정만큼이나 소중한 정신승리의 출발점입니다. (108)
여기까지 살펴봐도 도저히 원인을 알 수 없는 경우가 있는데, 그때는 궁합이 안 맞는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내 잘못도 그의 잘못도 아닌, 그냥 안 맞는 관계인 거죠. 저는 대체로 폭력적인 술자리를 만들어 밤새 술을 퍼마시며 우정을 쌓는 남자들과 궁합이 안 맞습니다. 상대방들도 거의 예외없이 저를 불편해합니다. 그런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싸우지 않고 조용히 손을 터는 것도 지혜이자 용기입니다. 자신과 안 맞는 사람에게 에너지를 쓰기에는 우리 인생이 너무 짧습니다. (114)
더 규범적인 모범생이 되는 것 말고는 딱히 '출세'의 길을 찾기 어려웠으니까요. 친구들도 저도 그런 환경에 의해 '만들어진' 사람이었습니다. 성급한 일반화는 곤란하겠지만, 친구 부모님들을 소득수준에 따라 한 줄로 세워본다면 그 자녀인 우리 세대의 순위도 거기서 크게 변화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 저와 친구들이 태어난 공간적 위치가 우리 삶에 끼친 영향을 결코 무시할 수 없는거죠. (193)
경기고 출신들의 폐쇄성이 나라를 망쳤다는 제 생각의 상당부분은 경기고 출신 교수들에게 둘러싸여 평생을 보낸 형의 경험에 빚을 지고 있습니다. 형은 이렇게 말합니다(카리안 주 - 김두식의 형은 서울대 물리학과 교수이며 권위있는 학술지에 논문을 게재하기도 한 실력자이다)"... 창의성이란 학교에서 배울 수 있는 기술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남과 다를 수 있는 용기'야. ..."(209)
큰 사건이 터질 때마다 게임, 만화, 비디오, 학생인권조례 등 아무거나 붙잡아 청소년문제의 주범으로 몰아붙이지만, 입시지옥이라는 거대한 죽음의 씨스템을 빼놓고는 우리 청소년문제를 설명할 수 없죠. (267)
진로선택도 비슷합니다. 거품을 걷어내면 생각보다 쉽게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한번은 평소 공익벼호사가 되겠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던 사법연수원생이 어색한 표정으로 저를 찾아왔습니다. 공익변호사를 꿈꾸었지만 막상 성적을 잘 받으니 판검사를 할지 변호사를 할지 고민된다는 얘기를 털어놓더군요. 자기 마음을 자기도 알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 친구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습니다. "'판검사 할 성적이 됐는데도 변호사를 선택했다'는 소리를 죽을 때까지 안 하고 살 자신이 있느냐? 그럴 자신이 있으면 판검사 포기하고 변호사를 해도 된다. 그런데 입을 열 때마다 '나는 판검사 할 성적이 됐는데도 변호사를 선택했다'는 소리를 하며 남은 평생을 보낼 것 같으면 그냥 판검사로 가라. 주변사람들이 평생 그런 얘기를 듣고 사는 것도 정말 피곤한 일이다. 괜한 민폐를 끼치지 않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2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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