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낀 점
김두식의 책 중에 제일 읽고 싶은건 <욕망해도 괜찮아>인데 이 책은 구입조차 안 했다. 근데 학교 서점에서 자꾸 이 책이 눈에 들어와서 가볍게 한 장을 읽었는데 흡입력이 있더라.
읽는 내내 어찌나 나랑 생각이 비슷한게 많은지. 최근 나랑 같은 컬러의 색깔을 내는 사람들의 글을 조금 경계하긴 했는데 김두식의 글은 쏘옥 내 시선 빼앗았다. 신학을 전공하지 않았지만 뒤에 미주를 보니 제법 탄탄한 책들을 인용했다. 질책하진 않지만 제법 부드럽게 말하긴 했지만 목회자의 문제점을 그는 이 책을 통해 드러냈다. 사실 이 작업은 그가 해야할 작업은 아니다. 더욱 아팠던건 이 책은 8년 전에 나왔다는 거다. 이 책을 읽고 도대체 언제적 얘기를 하는거지라는 반응이 나와야 하는데 말이다.
일단 글을 너무 잘 쓴다. 흡입력이 있다. 해박한 지식을 잘 풀어낸다. 3장에서 보수와 진보의 좌우 대립을 이야기한다. 여기에서 엔도 슈사쿠가 쓴 소설 <숙적>을 이야기한다. 이 소설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측근으로 조선 침략의 선봉을 맡았던 두 명의 장군인 고니시 유키나가와 가토 기요마사의 평생에 걸친 숙명적 대결을 소재한 책이다. 특히 가톨릭 신자이기도 한 엔도 슈사쿠는 같은 가톨릭 신자인 고니시에 대한 뜨거운 애정을 표현하기도 했다(69-70). 조선을 침략했던 고니시가 독실한 가톨릭 신자이기에 복음의 깃발을 들고 조선의 침략을 한 장면이 떠오른다. 조선 땅에서 이 복음을 어떻게 받아 드려야 할까? 김두식은 이 이야기와 이라크 전쟁을 오버랩(?) 시킨다. 절묘하다. 그리고 거기에서 격돌하는 진보와 보수의 갈등을 잘 풀어나간다. 참 좋은 이야기꾼이며 어떻게 보면 설교자에게 필요한 스킬이라고 본다.
5장에서는 세상이 교회를 지배한 시절에 대해서 이야기하는데 영화 <여왕 마고>를 언급하면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게 참 일품이다. 어찌나 재미있던지 나는 영화 <여왕 마고>를 다운 받아 놨다. 이렇게 저자는 거의 모든 장에서 기독교 역사의 이야기를 언급하며 자신이 하고싶은 말을 마지막에 한다. 본인이 강조하고 싶고 하고싶어하는 말을 기독교 역사 속에서 잘 찾아냈는지 정말 배우고 싶다. 아마 그는 해박하게 독서를 제법 했을 것으로 보인다.
보수와 진보라 하면 식상하겠지만 저자는 오른쪽에서부터 왼쪽으로까지 아주 다양하게 신앙의 여정을 가고 있다. 비록 지금은 주류와 멀어진 그에게 완전한 동의를 하지 못하겠지만 한 번쯤 그의 시선을 통해서 배워봄직하지 않을까 싶다. 처음부터 끝까지 생각해볼 거리들이 가득하다. 목회자라면 꼭 한 번 읽어보길 바란다. 다른 어떤 신학자들과 목회자들이 쓴 글보다 훨씬 와닿는다. 정말 잘 썼다.
책 맛보기
세상 속에 있기는 하지만 세상과 구별되어야 하는 공동체가, 어느새 철저히 세속화하여 '교회 속에' 세상의 가치와 기준이 들어오는 역전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세상 속의 교회'가 아니라 '교회 속의 세상'이 되어 버린 세속화된 교회는 날로 그 힘을 축적하여 이제 본격적으로 정치적 발언까지 시작합니다. 물론 기독교의 모든 정치적 발언이 다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세속화된 교회들이 보여 주는 정치적 발언이나 침묵은 언제나 '가진 사람의 편'으로 귀결된다는 점에 문제가 있습니다. (16-17)
어제는 "당장 교회 주차장부터 구입하라"고 말씀하셨다던 하나님이 오늘은 "세계 선교관이 우선이니 그 헌금부터 하라"고 말씀하시도 하고, 그 반대의 경우도 생깁니다. 그분들이 믿는 하나님은 왜 그렇게 부동산 투기에 목말라 하시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23-24)
모든 고민에 대해 "기도하라, 말씀 보라"는 정답을 내놓지만 신자들은 그 정답들 앞에서 알 수 없는 공허함을 느낍니다. (24)
저는 지금과 같은 교회의 분위기라면 예수님은 당연히 가장 먼저 동성애자들과 어울리셨을 거라고 확신합니다. 최소한 동성애자 친구가 한 명도 없으면서 "동성애가 죄냐 아니냐?"고 여기저기 묻고 다니시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250)
동성애가 죄인지 아닌지 묻는 우리에게 예수님은 이렇게 반문하실 겁니다. "너에게 동성애자 친구가 한 명이라도 있니? 동성애자를 만나 본적은 있니? 동성애자들과 어울리면서 '동성애자와 어울리는 놈'이라는 비난을 받아 본 적이 있니?" 없다고 말씀드리면, 예수님은 다시 물으실 겁니다. "왜 너에게 그런 친구가 없는지부터 고민해 봐야 하는 것 아니니?" (251)
상처를 입어 본 적이 없고, 그래서 남의 고통을 이해하지 못하는 기독교인들이 늘고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끼리 모여 교회 간판을 단다고해서 다 교회가 되는 게 아닙니다. (261)
현대 교회는 예수님을 따르는 실험을 포기함으로 외형적인 평안을 얻었습니다. 자기 재산을 나누는 일도 없고 남을 신뢰하는 일도 없기 때문에, 배신당할 일도 없고, 누구와 다툴 일도 없고, 용서할 일도 없습니다. 겉으로 보면 지극히 평안해 보이지만, 이건 샬롬이 아닙니다. 그저 아무 상관없는 사람들끼리 모여 사교를 나누는 친목 단체일 뿐입니다. 영화관 관객 수준의 상호 관계를 유지하면서 교회라고 뽐내고 있는 셈입니다. '그나마 괜찮은' 교회가 매년 엄청나게 많은 예산을 가난한 이웃을 위해 쓴다 하더라도 결코 자랑할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282-283)
이성을 지닌 사람들은 교회 생활에서 기쁨을 상실했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그런 교회로 인도할 수 없기 때문에 전도의 열정도 사라졌습니다. (298)
예수님의 말씀은 그런 점에서 설교자에게 별로 매력적인 본문이 아닙니다. 어떤 말씀은 너무 단순하고 어떤 말씀은 너무 부담스럽고 어떤 말씀은 너무 과격하기 때문입니다. (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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