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낀 점
양희송. 내가 좋아하는 작가이다. 그래서 대구에서 강의하러 내려왔을 때 참석을 했고, 그가 세계관 관련 책을 냈을 때도 역시 강의에 참석했다. 하지만 작년 충격과도 같은 소식을 들었다.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이 책의 리뷰를 하고자 한다. 그가 명백한 잘못을 저질렀지만 그의 문제제기가 잘못된 것은 아니다. 이제 그가 스피커과 작가로서의 모습은 기대할 수 없겠지만 (나는 그 점이 몹시 아쉽다) 그가 제기한 문제의식을 한 번 숙고해 볼만하다는 것은 이론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나는 참 많이 울었다
이 책의 1장을 읽고 참 많이 울었다. 사실 그 충격때문이랄까 이 책을 다시 손에 잡기에 많은 시간이 걸리기도 했다. 나는 왜 그렇게 많이 울었던 것일까.
일단 이 책 1부는 가나안 현상에 대해서 살핀다. 가나안 성도는 썬데이 크리스천(일요일만 그리스도인), 교회 쇼핑몰족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설문조사를 해보니 그런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오히려 교회 출석 이력이 10년이 넘고, 교사를 비롯해 각종 봉사 직분을 두루 거친 경우가 많았으며, 교회 경험과 교회에 대한 참여도가 상당히 깊은 경우들이 다수를 차지했다. ... 교회에 정착하지 못한 주변인들이 아니라, 한때 교회의 중심부에 깊이 참여하고 있던 핵심층들이다"(37).
양희송은 한 가나안 성도와 인터뷰를 했다. 나의 그 인터뷰가 참 아팠다. 그가 겪었던 현실을 조금 옮겨 보겠다.
교회도 사회적 조직이니 문제는 생길 수 있다고 봅니다. 다만, 그런 문제가 참을 만한 수준이냐 아니냐에 따라 평가를 하게 될 텐데, 지금 한국 교회는어떤 사람이 들어가서 성장하는 곳이 아니라, 그 사람을 퇴행시키는 곳이 되어버렸어요. '교회교' 아니면 '목사교' 아니냐 싶은 거죠. 교회가 이런 상황을 스스로 개선할 수 있느냐 아니냐를 자문해보았는데, 저는 '아니다'쪽으로 판단이 기울었어요. 한국 교회 내에서 터져 나오는 목회자 문제들을 보세요. 교단 총회나 교계의 핵심부가 전혀 처리를 못하고 이들을 다시 승인합니다. ... 그 말은 교회가 성경적 가치가 아닌 다른 어떤 것에 의해서 운영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잖아요. 그런 사람들이 이끄는 조직은 개혁의 대상이 아니라, 배척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교회를 다닐수록 하나님나라와 상관없는 가치에 끌려다니는 것인데, 그렇다면 내 신앙을 위해서라도 과감하게 이탈하거나 반대를 선언해야 하지 않느냐는 거지요. (26)
마지막으로 다닌 교회는 정말 참기 어려웠습니다. 1년간 참았는데, 그 목회자는 부동산 개발업자이지, 도저히 목사라고 보기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단순히 그 목사와의 의견 차이이거나 그 교회 하나만의 문제였다면 다른 곳을 찾아가면 그만이지만, 이것이 그렇게 풀 문제가 아니라고 보게 되었지요. 다른 '교회'를 찾을 게 아니라, 다른 '대안'을 찾아야 하는 게 아니냐 싶었습니다. (27)
나는 교회를 많이 옮겨 다녔다. 10대 때만 근 5~6번 옮겼을 거다. 이후에도 다른 지역으로 이동을 하면서 한 곳에 오래 정착하지를 못했다. 그리고 또 교단을 옮기면서 교회를 또 옮겼고 그후에는 사역을 하면서 옮겨(?) 다니고 있다. 내가 신학을 하지 않았고, 사역자가 아니었으면 분명히 가나안 성도가 되었을 것이다. 내가 겪었던 교회 역시도 실망을 많이 했었다. 내가 작은 교회가 올바르다는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 것도 어렸을 때 개척교회들을 전전했던 경험때문이다. 대형교회가 되고 싶은 교회들이 작은 교회들이었다. 물론,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교회란 무엇이고, 어떤 모습을 보여야 하는지 물음을 주었던 사람들이 있었는지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내가 많이 울었던 이유는 과거의 기억이 나서다. '아, 나랑 같은 경험을 하는 사람들이 참 많구나.' 어떻게 해야 할까? 이제 나는 사역자다. 그들이 대면해야 할 사역자다. 몇 년 전 강의 이후 양희송에게 질문을 한 적이 있었다. 가나안 현상 이후의 교회는 어떤 지형도가 될 것 같냐는 질문이었다. 나는 몇 몇 대형교회만 살아 남고 그 이하 교회들은 모조리 사라지지 않을까 말했다. 그러니 그도 거기에 동의를 하더라. 그래서 교회는 하나의 섹터(?), 소수집단(?)이 되지 않을까 하는 점에 같은 의견을 보였다. 물론, 그 대화 이후 좀 지나서 종교인구 조사에서 기독교 인구가 늘었다는 것에서 의외의 지점이 되었다.
가나안 성도는 어떤 사람들일까?
가나안 성도는 어떤 성도들일까? 먼저 조성돈·정재영 교수팀이 수행한 조사에서 그 모습을 얼핏 볼 수 있다. 2013년 300여 명의 가나안 성도에 대한 설문조사를 했는데 그 내용은 이렇다.
1. 이들은 교회를 떠나기 전 평균 14.2년 정도 교회를 다녔다.
2. 이들은 습관적으로 교회를 옮겨 다니던 사람이 아니었다(옮긴 적이 없는 사람이 45.7%, 한 번 옮긴 사람이 25%였다).
3. 이들은 가나안 성도가 되기 전 평균 6개월 이상을 고민했으나, 이 기간 중 목회자나 주변 신자들은 그들의 의논 상대가 되지 못했다.
4. 이들은 교회를 옮긴 가장 큰 이유로 '자유로운 신앙생활'(30.3%), '목회자에 대한 불만'(24.3%), '교인들에 대한 불만'(19.1%), '신앙에 대한 회의'(13.7%) 등을 꼽았다. (36-37)
여기에서 나는 하나를 더하고 싶다. 1년 정도 대형교회를 다닌 적이 있었다. 예배드릴 때 본당은 참 가득찼다. 그리고 대예배가 마치고 대학부 예배를 갔다. 근데 사람들이 많이 없었다. 본당을 가득채울 정도로 가득했던 그 청년들은 어디로 갔을까? 대예배는 대학·청년부 중심으로 했다. 그러니 나는 당연히 사람이 참 많을 걸로 생각했다. 내 예상은 완전히 무너졌다. 그중에 그냥 예배만 드리고 가는 사람들도 많았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양희송에게 이들도 가나안 성도가 아니냐고 물었다. 그는 역시 그 말에 동의를 했다. 맞다. 그러면 가나안 성도는 정말 많을 것이라고 본다. 지금 사역하는 사람들은 가나안 성도라는 문제에 반드시 직면하고 계속 직면을 할 것이다. 그렇다면 사역자들은 어떻게 해야할까?
그들이 저항하는 것은?
우리가 무엇을 하기 전에 가나안 성도들이 무엇에 저항하는지 알아야 한다.
첫째로, 제도화된 종교에 대한 반발, 혹은 더 나아가 환멸을 두드러진 특징으로 내보이는 그룹이 있다.
둘째로, 설교의 실패(설교문 표절, 성경 해석의 피상성, 적용의 부적절성 등), 교회 갈등의 격화(세습, 재정, 섹스 스캔들 등) 등을 비롯하여, '성직주의', '성장주의', '승리주의'에 대한 반대를 주로 표명하는 이들이 있다. 가나안 성도 현상은 현재의 한국 교회가 앓고 있는 질병으로 인해 생겨나는 대표적 증상의 하나일 수도 있고, 혹은 이런 질병에 대항하며 항체를 형성해나가는 대표적 사례로 간주될 수도 있다.
셋째로, 현실 교회에 대한 질문에서 출발한 물음이 기독교 신앙 자체를 다시 묻는 데까지 나아간 경우가 있다. ... 다만 교회가 그런 질문을 듣지 않거나 대답해주지 못하기에 더 이상 교회와 제도권 기독교에서 적절한 대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지 않는 것이다. (50-52)
전부 귀담아 들어야 한다. 우리의 제도에 대한 신학적 설명이 사역자들에 필요하다. 나도 참 이 부분이 약하다. 우리의 장로교 체계의 신학적 설명을 나는 할 수 있는가? 그리고 사역자의 성실성이 필요하다. 설교부분이 특히 그렇다. 설교를 준비를 하는가 아닌가는 확실히 티가 난다. 그리고 세습, 재정, 성 문제에는 사역자들의 윤리 문제가 대두된다. 마지막 세 번째는 이 질문을 목회자 역시도 해야 된다. 세 번째 저항에서 어쩌면 희망이 느껴진다. 나는 모든 사람들이 이런 문제에 진지하게 질문했으면 좋겠다. 기독교 - 성경 - 교회 - 신앙. 목회자는 목회자대로 준비를 해야 하며 다른 직분자들은 거기에 맞게 저항이든 질문이든 하자.
나가면서
이 책은 정리해서 읽으면 참 좋을 듯하다. 살짝 살펴 보았지만 주제가 명확하기에 읽기가 쉽다. 그리고 정리하기도 쉬울 것이다. 그리고 목회자들은 필독을 해야 할 것이다. 우리가 사랑해야 할 사람들의 현실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사랑한다면 알고 싶어진다. 사랑한다면 읽자.
책 맛보기
교회가 사람들의 고민에 대한 해답이 아니라, 고민을 유발하는 문제가 되어 있는 시대이다. (11)
"당신들은 왜 아직 남아 있습니까?" 제가 떠난 것이 이상한 것이 아니라, 이런 상황에서 사람들이 ㄱ기에 여전히 남아 있는 이유가 정말 궁금합니다. 교회를 개혁하기 위해서 남아 있는 건가요, 아니면 그냥 관성으로 남아 있는 건가요? (34)
나는 가나안 성도 현상이 현재의 한국 개신교에 던져줄 수 있는 긍정적 자극과 기여가 적지 않다고 본다. 우리는 작동하지 않는 전통과 정통을 붙잡고 '공동체'를 말하면서, 사실상은 '집단주의'를 조장하는 경우가 많다. (52)
교회 쇼핑족은 한편으로는 신앙생활마저도 편의와 효용으로 따지는 자본주의적 세태가 고스란히 반영된 부정적 현상이지만, 동시에 교회가 백화점을 지향하는 경향이 심화되어 성도를 소비자의 자리에 앉혀놓게 되면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현상이기도 하다. (58)
이들은 교회를 떠난 것이 아니라 사실상 내쫓겼다. (61)
가나안 성도 현상은 그런 면에서는 아마도 교회론의 심화·확장을 가장 선두에서 이끌어내는 현상일 것이다. ... 만약 예수를 따르는 제자의 삶을 더욱 잘 살도록 재촉하는 것이라면 마다할 일은 아닐 것이 분명하며, 그것은 분명 전통적인 교회론에도 순기능으로 기여하게 될 것이다. 교회에 대한 더 넓은 이해는 가나안 성도를 교회 바깥으로 배척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통해서 더 풍성하고 깊어진 교회를 발견하도록 우리를 이끌 것이다. (70)
가나안 성도들이 대거 등장한 것은 단순히 교회 교육의 실패를 드러내는 징표가 아니라, 오히려 성공적인 훈련 패러다임이라고 여겨오던 것마저도 사실상 더 깊은 성장을 가로막고 체제 순응적 인간형을 양산하는 데 머물고 있더라는 뒤늦은 깨달음을 반영한다. 다시 한 번 우리는 묻는다. "항상 배우나 진리에 이르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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