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리뷰/성경신학

[책리뷰] 제임스 D. G. 던 - 부활(왜 예수의 부활을 믿는가?)

by 카리안zz 2020. 3. 22.
반응형

 


느낀 점

 가볍게 읽어봄직한 책이다. 던이라서 너무 쫄지 않아도 된다. 뒤에 해설이 참 좋았다. 

 던은 복음서의 부활에 관한 차이점들을이나 복음서와 바울과의 차이점들을 말하지만 다 정리하지는 않는다. 그게 좀 찝찝하지만 그걸 다 설명하려면 간단한 책이 되지 않았을 듯 싶다. 
 어쨌든 그는 텅 빈 무덤을 설명하는 것은 부활이 가장 적합하다고 말한다. 부활을 제외하면 이런 설명들이 제기되는데 첫째, 예수님의 시신이 다른 곳으로 옮겨졌거나 도난당했을 가능성, 둘째, 여인들이 무덤의 장소를 착각하고 빈 무덤을 방문했을 가능성, 셋째, 예수님께서 실제로 죽지 않으시고 무덤에서 스스로 나올 만큼 충분히 건강을 회복했을 가능성이다. 던은 이 가능성들을 다 뭉개고 부활의 가능성이 가장 높지 않냐고 말한다. 

 이처럼 빈무덤이랄까 부활하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는 일은 오히려 부활했다라는 것을 증명하기보다 훨씬 복잡하다. 왜냐하면 해결해야 할 대답들이 너무 많아지기 때문이다. 유일신을 믿고 있던 사람들이 왜 예수를 예배했냐는 문제에서부터 그걸 인정하지 않기에 연대를 뒤로 미루는 작업부터 증명해야 할 게 너무 많아진다. 오히려 부활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믿음이 부활하셨을거라는 믿음보다 더 크게 힘을 쏟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물론 1세기에 관심있는 사람들이라면 말이다. 자칭 메시아들이 그렇게 많았지만 왜 예수의 이름은 온세상에 퍼졌을까 등등등!

 그래도 한 챕터 정도는 간단히 살펴보도록 하자.

 

증언들의 차이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부활에 관한 증언들이 갈린다. 일단 부활을 증언한 목격자들 중에서 어떤 곳에서는 여자가 있고 어떤 곳은 여자가 없다. 이러한 차이부터 예수님께서 어느 곳에 나타나셨는가까지 다양한 증언의 차이가 있다. 이러한 차이가 있다면 왜 이런 차이가 생기는 것일까? 거짓이 생겼기에 성경은 거짓으로 봐야할까? 

 하지만 이전에 우리는 왜 초대교회가 이 이야기들을 하나의 이야기로 만들지 않았을까에 의문을 가져봐야 한다. 하지만 "증언이 명료하지 않다거나 혼란스럽다고 해서 증언의 진실성 자체가 깨지지는 않았다"(62). 그러니 사실 그때 사람들은 이러한 차이에 별로 관심이 없었다고 본다. 던은 이렇게 서술한다.

 

지금까지 살펴본 이야기들을 요약하면 초기 그리스도교 전승을 형성하고 전달했던 이들은 놀랍게도 후대 사람들이 일관성이 없다고 여기거나 의구심을 가질 수도 있는 중요한 증언들을 억지로 짜 맞추는 데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62)

 

 그리고, 계시와 환상들에 익숙한 바울이었습니다(2고린 12:1~7). 그래서 그의 부활에 관한 증언은 사실 환상일 뿐이라고 일축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못했던 이유는 바울의 삶이 완전히 뒤바뀌었기 때문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처음 믿었던 사람들은 자신들의 증언이 순전히 환상일 뿐이라고 일축될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럼에도 부활하신 예수님을 목격한 사람들의 명단이 담긴 바울로의 편지를 널리 전파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목격한 사건으로 인해 자신들의 삶이 변화되었다고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65)

 

 그렇다. 삶이 변화되었기에 그 목격의 증언이 확실하다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다. 바울만 해도 박해자였다. 그것도 사도행전의 기록대로라면 스데반을 죽이는데 앞장 섰던 사람이다. 그런 그가 예수를 따르는 사람들에게로 간다. 그리고 예수님을 만났다고 한다.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의심하지 않았을까? 우리는 이미 바울이 어떤 인물인지 알기에 그 상황을 상상하기가 와닿지 않을 수 있다. 나중에 바울을 생각하지 말고 당시의 바울을 생각해 보자. 어떻겠는가? 두렵고, 무서웠고, 의심하지 않았을까? 그래서 아나니아가 참 위대한 사람이다. 그를 받아주었다. 아나니아를 기독교 교회의 잊혀진 영웅들 중 하나’라고 부르기도 한다. 

 여튼, 그렇기에 그의 부활에 대한 증언이 힘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기억해야 될 것

 던은 부활을 이해하는 것이 머리로 이해하기 힘들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부활을 믿는다는 것은 엄청난 도전이라고 한다. 이 도전과 마주해 기억해야 할 것으로 던은 이렇게 뽑는다(97). 

 

 첫째, 지독하게 최초의 그리스도교인들을 박해하던 이가 그리스도교를 가장 효과적으로 전하는 설교자이자 선교사로 변화한 사건을 기억해야 합니다. 

 둘째, 모든 희망을 잃은 듯했던 제자들이 완전히 변화하여, 유대 민족의 지도자들이 고문하고 사형시킨 이를 주님으로 전하는 선교사들이 되었습니다. 

 셋째, 예수님의 무덤은 빈 채로 발견되었습니다. 무덤이 비었음을 전하는 초기 그리스도교에 적개심을 가진 이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의 죽음과 관련해 어느 누구도, 심지어 그리스도교를 반대할 목적으로 결정적인 사례를 찾아 헤맸을 이들도 예수님의 다른 무덤이나 매장지를 제안한 적이 없습니다.

 넷째, 부활 신앙은 결국 죽음으로 끝날 삶의 회복이 아니라 죽음을 초월한 삶으로의 부활에 대한 믿음입니다. (97-97)

 

나가면서

부활은 믿음의 차원이긴 하지만 1세기로 돌아가보는 것도 좋은 시도인거 같다. 부활에 대한 형이상학적인 논의도 좋지만 역사적인 바탕에서 접근해 보는 것도 의미가 있다. 이 책은 세부적으로 정리한 책은 아니여서 조금 답을 기다리는 사람들은 아쉬울 수도 있다. 나도 읽으면서 조금 그랬다. 하지만 알짜배기 내용은 들어가 있었기에 부활에 대해서 도움 받고 싶은 사람들은 꼭 읽어보길 추천한다!

 


책 맛보기

 

루가는 바울로의 회심을 묘사하면서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자신의 사역을 바울로에게 위임했음을 전합니다. (19)


부활하신 예수님과의 만남은 초대 그리스도교 운동을 가장 열정적으로 반대하던 한 사람을 완전하게 변화시켜 유대인뿐 아니라 이방인에게도 그리스도의 복음을 가장 효과적으로 전하는 이로 만들었습니다. (21)


그가 세운 교회들이 복잡하고 어려운 상황에 처했을 때 얼마나 최선을 다해 응답하려 했는지를 살핀다면, 다마스쿠스를 향한 길에서 예수님께서 자신에게 사역을 위임했다는 증언 역시 신뢰할 수 있습니다. (22)


여기서 우리는 그리스도교 초기에 '사도'라는 단어가 넓은 의미로 쓰였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사도는 특정한 사역을 위임받거나, 어떤 책임을 지기 위해 역할을 부여받은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바울로는 이 단어를 열두 제자뿐만 아니라 더 많은 사람을 가리킬 때도 쓰고 있습니다. 그가 말하는 '사도'에는 안드로니고와 유니아(로마 16:7), 아폴로(아볼로, 1고린 4:9), 바르나바(바나바, 1고린 2:8~9), 실바노(실루아노, 1데살 2:6~7)가 포함됩니다. 이때 '사도'란 초기 그리스도교 선교사들, 선교의 책임을 맡고 있던 이들을 가리킵니다. 우리는 사도라는 말을 들으면 한 가지 모습만을 떠올리고는 하지만, 당시 이 말은 예수님의 사역을 위임받아 일하는 모든 사람, 다양한 양상을 표현했습니다. (30-31)


당시 사람들은 세부 사항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여겼을 수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혼란을 일으키고 심지어 일치하지 않는 세부 사항이 기억되고 나아가 기록된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지만, 달리 생각하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와중에도 무덤이 비어있었다는 핵심적인 사실에 대해서는 모든 기록이 일치합니다. (72)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어떠한 계기로든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다는 믿음이 첫 번째 제자들 사이에 빠른 속도로 자리 잡았고, 그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복음을 선포할 때 부활을 가장 중요하고 확실한 근거로 삼았다는 것입니다. (93)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