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낀 점
예전 김기현 목사님이 동양식 글쓰기를 보라며 SNS에서 이 책을 추천한 기억이 난다. 그래서 바로 구입하여 읽었다. 물론 2018년이지만. 읽어보니 이 책은 정약용의 편지를 모아둔 책이다. 아들과 둘째 형 그리고 재자들을 대상으로 했다. 지금 정약용이 태어났더라면 정말 원없이 책을 읽었을 텐데 아쉬운 생각이 든다.
정약용이 추천하는 독서법
그는 일단 책을 넓게 보라고 추천한다. 아마도 내가 이해하기로는 맵핑(mapping)을 하라는 의미인 것 같다. 사상의 지도를 만들어 놔야 하는 건 정말 중요하다. 그래서 나는 개론서들을 꼭 읽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개론에는 역사적으로 논쟁이 된 이야기들을 수록해 놨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 내 생각이 어느 쪽에 있고 지금 이 사고들은 역사적인 맥락에서 이렇게 이어진다고 말할 수 있다. 물론, 나는 이 맵핑을 정말 오래하고 있는데 막 감이 잡히고 그렇지는 않다. 특히 조직신학이 그렇다.
하여튼, 정약용은 이렇게 말했다.
요즈음 한두 젊은이들이 원, 명, 때의 경조부박하고 망령된 사람들이 가난과 괴로움을 극한적으로 표현한 말들을 모방해 절구나 단율을 만들어 당대의 문장인 것처럼 자부하여 거만하게 남의 글이나 욕하고 고전적인 글들을 깎아내리는 것은 내가 보기에 불쌍하기 짝이 없다. 반드시 처음에는 경학공부를 하여 밑바탕을 다진 후에 옛날의 역사책을 섭렵하여 옛 정치의 득실을 잘 다스려진 이유와 어지러웠던 이유 등의 근원을 캐보아야 한다. (41)
최근 수십년 이래로 한가지 괴이한 논의가 있어 우리 문학을 아주 배척하고 있다. 여러가지 우리나라의 옛 문헌이나 문집에는 눈도 주지 않으려 하니 이야말로 병통이 아니고 무엇이겠느냐? 사대부 자제들이 우리나라의 옛일을 알지 못하고 선배들이 의논했던 것을 읽지 않는다면 비록 그 학문이 고금을 꿰뚫고 있다 해도 그저 엉터리가 될 뿐이다. 다만 시집 같은 것이야 서둘러 읽을 필요는 없겠지만 신하가 임금께 올린 상소문, 비문, 옛 사람들끼리 주고받은 서간문 등은 모름지기 읽어 안목을 넓혀애 한다. 또 <아주잡록>, <반지만록>, <청야만집> 등의 책은 반드시 널리 찾아서 두루두루 보아야 할 것이다. (42)
물론, 정약용은 단순히 개론 읽기에 그치만 안 된다고 생각할 것이다. 긴 역사를 지나 살아남은 책들을 읽어야 한다고 말할 것이다. 어거스틴, 루터, 칼뱅, 바르트 등 긴 역사 속에서 살아남은 작품들을 직접 읽는다면 확실히 학문의 퀄리티가 높아진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것이 쉽진 않겠지만.
정약용이 독서에 대해 한 말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대목은 다른 부분에 있다. 이 부분은 성서를 읽을 때 도움이 될 것이라고 본다. 정약용의 말을 옮겨 보겠다.
무릇 독서하는 도중에 의미를 모르는 글자를 만나면 그때마다 널리 고찰하고 세밀하게 연구하여 그 근본 뿌리를 파헤쳐 글 전체를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날마다 이런 식으로 책을 읽는다면 수백가지의 책을 함께 보는 것과 같다. 이렇게 읽어야 책의 의리를 훤히 꿰뚫어 알 수 있게 되는 것이니 이 점 깊이 명심해라. (97)
성서를 읽을 때 확실히 이렇게 읽어야 할 것이다. 모르는 단어와 맥락이 있다면 주석을 참고해야 한다. 성경을 읽을 때 의문이 생각난다는 것부터 반은 먹고들어가는 것이라 본다. 어설프게 성경을 읽으면 질문은 사라지고 평소의 생각이 그저 강화가 될 뿐이다. 그래서 정용섭의 문장이 참 좋다. "신앙의 강화냐, 신앙의 심화냐"(정용섭, 설교란 무엇인가, 178)
정약용은 친절하게 그렇게 읽는 방법의 예를 보여 준다. 한 번 옮겨 보겠다.
예컨대 <자객전>을 읽을 때 기조취도라는 구절을 만나 "조라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라고 물으면, 선생은 "이별할 때 지내는 제사다"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렇다면 그러한 제사에다 꼭 조라는 글자를 쓰는 뜻은 무엇입니까?"라고 다시 묻고 선생이 "잘 모르겠다"라고 대답하면, 집에 돌아와 자서에서 '조'라는 글자의 본뜻을 찾아보고 자서에 있는 것을 근거로 다른 책을 들추어 그 글자를 어떻게 해석했는가를 고찰해 보아라. 그 근본 뜻뿐만 아니라 지엽적인 뜻도 뽑아두고서, <통전>이나 <통지> <통고> 등의 책에서 조제의 예를 모아 책을 만들면 없어지지 않을 책이 될 것이다. 이렇게 하면 전에는 한가지도 모르고 지냈던 네가 이때부터는 그 내력까지 완전히 알게 될 것이고, 비록 홍유라도 조제에 대해서는 너와 경쟁하지 못할 것이 아니겠느냐? 이러한데 우리가 어찌 주자의 격물공부를 크게 즐기지 않겠느냐? 오늘 한가지 물건에 대하여 이치를 캐고 내일 또 한가지 물건에 대하여 이치를 캐는 사람들도 이렇게 착수했다. 격이라는 뜻은 맨 밑까지 완전히 다 알아낸다는 뜻이니 밑바닥까지 알아내지 못한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 초서하는 방법은 반드시 먼저 자기 뜻을 정해 만들 책의 규모와 편목을 세운 뒤에 남의 책에서 간추려내야 맥락에 묘미가 있게 된다. (98)
이 방법은 확실히 성경을 읽을 때 도움이 되는 것이다. 우리는 헬라어 원어나 히브리어 원어를 읽을 때 특히 저렇게 하면 좋지 않을까 싶다.
나가면서
읽으면서 조금 불편했던 점이 있긴 했다. 지금으로 말하면 꼰대같다고 할까? 훈계조가 조금 지나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자신의 자식들과 제자들에게 편지를 쓴 것이기에 그럴 것이다. 아마도 나는 읽으면서 감정이입을 조금 했나 보다. 그래도 유익한 점은 많았다. 위에 언급한 것처럼 책을 특히 성경을 어떻게 읽을까 나름에 도움 되는 점을 발견했다.
메모
만약 나태하고 경박하며 약삭빠르고 시시껄렁한 농담까지 곁들인다면, 비록 그가 말한 내용이 이치에 깊이 들어맞는다 해도 일반인들은 믿으려 하지 않는다. (165)
- 태도의 문제!(반대로 이치의 맞는 말을 하지 않지만 그의 태도가 좋다면 사람들은 믿을 것이다.)
예서에 대한 연구는 지난 가을 이래 많은 질병에 시달리느라 초고를 끝마친 것이 극히 적습니다. 초본 5편을 부칩니다만 모두가 절단되고 뒤섞여 문리가 통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중에는 또 처음의 견해를 바꾸어 정본으로 삼고서도 초본에는 고치지 않은 것이 있는데 우선 심심풀이로 봐주십시오. 중간의 초본은 이미 집으로 보내어 아이에게 탈고하게 하였으니, 돌아와야만 질문할 날이 있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비록 초본이기는 하지만 그중에 잘못된 해석이 있으면 조목조목 논박해서 가르쳐주시고 의당 절차탁마하여 정밀한 데로 나아가게 해주십시오. 그러다가 더러 갑이다 을이다 서로 우기며 분쟁이 오감으로써 어린시절 집안에서 다투던 버릇을 잇는 것도 절로 하나의 즐거움이 될 것입니다. (253)
- 이런 분이 오늘 시대에 태어났으면 자유롭게 학문을 했을 텐데... 아쉽다.
책 맛보기
임금을 사랑하고 나라를 근심하는 내용이 아니면 그런 시는 시가 아니고, 시대를 아파하고 세속을 분개하는 내용이 아니면 시가 될 수 없으며, 아름다운 것을 아름답다 하고 미운 것을 밉다 하며 선을 권장하고 악을 징계하는 뜻이 담기지 않은 시는 시라고 할 수 없는 것이다. (55)
참으로 술맛이란 입술을 적시는 데 있다... 술을 마시는 정취는 살짝 취하는 데 있는 것이지, 얼굴빛이 홍당무처럼 붉어지고 구토를 해대고 잠에 곯아떨어져버린다면 무슨 술 마시는 정취가 있겠느냐? (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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