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리뷰/인문

[책리뷰] 김승섭 - 아픔이 길이 되려면(정의로운 건강을 찾아 질병의 사회적 책임을 묻다)

by 카리안zz 2020. 3. 5.
반응형

느낀 점

 2017년 한결같이 모두가 올해의 책으로 이 책을 선정했다. 어떤 책이길래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추천한 것일까? 궁금증이 일었고 기대도 크게 가졌다. 읽고 나니 왜 이 책이 올해의 책으로 뽑혔는지 알만했다. 내 취향저격의 책이기도 했다. 역학자로서 저자의 사회를 보는 시각이 참 좋았다. 

 올해 코로나19 때문에 역학이라는 말이 참 많이 나온다. "역학(Epidemiology)은 질병의 원인을 찾는 학문"(5)이라고 가장 첫 문장에서 설명을 한다. 저자는 사회역학(Social Epidemiology)이다. "홉연과 벤젠 노출처럼, 차별과 사회적 고립과 고용불안이 인간의 몸을 해칠 수 있다는 연구가설을 탐구"(5)하고, "사회역학은 질병의 사회적 원인을 찾고, 부조리한 사회구조를 바꿔 사람들이 더 건강하게 살 수 있는 길을 찾는 학문"(5-6)이라고 소개한다. 인간의 건강은 의료기술이 발전하면 더 건강해진다고 볼 수 있지만 그것만으론 충분하지 않다는 게 저자의 견해다. 의료기술만으로는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들이 많기 때문이다. "실업과 재취업 정책에 돈을 투자하지 않는 나라에서는 해고로 고통받다 자살하는 노동자가 계속 늘어날 것이고, 경제위기 때 복지 예산을 축소하는 사회에서는 치료가 어렵지  않은 전염병으로 죽어가는 사람들이 더 많이 생겨날 것"(6-7)으로 저자는 본다.

 이 책은 그러한 사람들의 사회적 불안에 노출된 사람들의 건강을 추적해 나가는 책이다. 

 

불평등한 여름, 국가의 역할을 묻다(23-30)

 코로나19로 인해 대한민국은 국가 재난에 준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내 개인적인 판단으로는 정부의 핵심 역할을 하고 있는 질병관리본부(질본)가 참 잘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시국에 질본의 위의 본부인 보건복지부를 누군가 고발을 했고 검찰이 조사에 착수했다는 뉴스를 본다. 이게 지금 무슨 일인가 싶다. 어느 사건에서는 누군가 고발을 했지만 수사 착수하기까지 참 시간이 많이 걸리던데 지금 핵심 역할을 하고 있는 곳을 수사착수를 한다? 이게 무슨 일인지 해서는 안 될 짓을 하고 해야할 짓은 안 하는 검찰의 행태가 나를 너무 화나가 한다. 여튼, 화나는 건 여기까지 하고 책 이야기로 가자면 저자는 폭염의 예를 들면서 사회역학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 설명해 준다. 

 

 폭염에 대한 가장 유명한 연구는 1995년 7월 미국 시카고에서 진행되었다. 마거릿 오티즈라는 사람은 아이들을 차에 태운 뒤 영화를 보러 갔고 아이들을 차에다 재웠다는 사실을 영화를 다 본 후에 알게 된다. 결국 폭염으로 인해 차는 뜨거웠고 아이들은 죽게 되었다. 이 사건은 역사상 가장 무더웠던 1995년 여름 폭염의 상징적인 이야기가 되었다. 1995년 7월 시카고에서는 700명의 사람이 폭염으로 사망했다. 미국에선 매년 400여명이 열사병으로 사망했는데 1995년 7월 한달간만 700명이 죽었다는 것은 숨겨져 있는 재앙이 있다는 뜻이다. 

 누가 죽었을까요? 미국질병관리본부는 조사를 하는데 질병으로 인해 침대에 누워 있어야 했던 사람들, 에어컨 없이 지냈던 사람들이 일반인에 비해 폭염으로 인해 사망할 위험이 3배 이상 높았다고 한다. 또 다른 원인으로는 사회적 고립이 있다. 혼자 사는 사람들, 폭염에도 집을 떠나지 않은 사람들 등 사회생활을 하지 않는 사람들이 더 많이 죽었다. 

 미국 질본의 연구자들이 발견한 것은 "사망한 개개인이 에어컨 시설이 있는 곳으로 갈 수 있었는가, 혹은 외부 사회활동을 활발하게 했었는가와 같은 개인적인 수준의 위험 요인"(27)이었다. 여기에서 더 한 발 나아가서 "왜 누군가는 에어컨이 있는 시설로 갈 수 없었는지, 왜 누군가는 사회활동을 활발히 하지 못했는지에 대해서"(27) 조사한 에릭 크리넨버그 사회학 교수가 있다. "어떠한 정치 · 경제적인 힘들이 특정 개인을 폭염에 취약하게 만드는지, 그러한 사회구조는 어떻게 역사적으로 형성되었는지, 그 과정에서 공동체와 국가의 역할은 무엇이었는지에 대해 질문을 할 때만 얻을 수 있는 답"(27)이라고 한다. 

 에릭 크리넨버그 교수는 시카고 서부에 있는 두 지역을 비교했다. 론데일 북부(North Lawndale)와 론데일 남부(South Lawndale) 지역이었다. 두 지역은 여러모로(인종, 연령, 빈곤율, 독거 가정 비율) 비슷한 지역이었는데 폭염으로 인한 사망자는 차이가 컸다. 론데일 북부는 10만 명당 40명이, 론데일 남부는 10만 명당 4명으로 10배 이상의 차이가 났다. 두 지역에는 무슨 차이가 있는 것일까? 

 에릭 크리넨버그 교수가 분석한 결과 이랬다.

폐허로 남은 도시공간, 그 골목마다 마약을 파는 사람들, 그리고 높은 범죄율 때문이라고요. 물론 론데일 북부에서 범죄자나 마약판매상 숫자가 많아서 폭염으로 인한 사망이 증가한 것은 아닙니다. 그로 인한 공동체의 와해가 큰 문제였던 것이지요. 사람들은 불안한 치안으로 인해 외출을 꺼렸고, 다른 주민을 믿지 못하다 보니 집 밖에서 발생하는 위급한 상황에도 개입하지 않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폭염으로 인해 건강이 악화된 론데일 북부 사람들이 타인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 없었고 또 좀 더 시원한 곳을 찾아 거리로 나갈 수도 없었던 이유입니다. (28-29)

 4년 뒤 비슷한 재앙이 시카고에 찾아왔다. 그러나 폭염 기간 사람들이 어떤 이유로 사망하는지 알기에 대응 역시도 적절하게 할 수 있었다. "1999년 7월 폭염이 찾아오자, 시카고 시장은 비상 기후대응 전략을 작동시키고, 곧바로 폭염중앙통제센터를 열었"(29)고, "시카고에서 폭염을 피할 수 있도록 에어컨이 작동하는 쿨링센터 34곳을 열고, 누구든지 그 센터까지 갈 수 있도록 무료로 버스를 제공했"(29)다. "쿨링센터의 수가 부족하다고 판단되자, 하루 만에 학교 31곳을 새로운 쿨링센터로 신속히 지정하기도"(29) 했다. 결과적으로 1995년 700명보다 훨씬 적은 1999년 110명에 그치게 되었다. 그저 자연재해로 본 것이 아니라 사회적인 원인을 찾고 거기에 맞는 전략을 세웠던 행정기관과 적극적으로 협조한 시민들이 거둔 성과였다. 

 우리 나라도 마찬가지다. 신종 플루, 메르스를 지나갔기에 우리의 방역체제는 누구보다도 뛰어나다. 신천지라는 특수한 사건이 발생했지만 그럼에도 총동원해서 방역에 나서고 있다. 오늘부터 확진자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이제 변곡점이 오는 것 같다. 어느 국가가 신천지라는 변수를 두고 저렇게 대응할 수 있을까? 심지어 신천지라는 특수한 일이 없었던 일본과 이탈리아는 어떤가? 미국도 심각하다. 외신들이 우리나라를 칭찬한다. 하루에 검사량만 봐도 엄청나다. 일본, 이탈리아, 미국은 검사를 우리나라처럼 하지 못하기에 확진자도 없다. 그간의 경험치가 쌓였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우리도 극복할 수 있다. 화이팅!

 

나가면서

 저는 이외에도 사회의 약자와 재난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한다. 그 연구 결과들이 가슴에 새겨진다. 해고노동자, 낙태, 가난한 사람의 몸, 세월호 생존자들, 동성애자, 소수자, 가습기 피해자 등 많은 사람들을 이야기한다. 낮은 자들이다. 낮은 자들과 함께한다곤 하지만 이러한 사실들을 알지 못했다. 물론, 나 역시 낮은 곳에 있는 사람들이다. 옆에 있는 보지 못했는데 이 책을 통해 옆에 있는 이웃들을 돌아보게 된다. 나는 이 책의 제목이 너무 좋다. 언젠가 제목을 살짝 바꿔 이런 제목으로 설교를 해보고 싶다. "아픔이 길이 되기까지" 내 삶에서 아픔은 길이 되었다. 부디 모두에게도 그렇게 되길 바란다. 

 



책 맛보기

 

사회적 폭력으로 인해 상처를 받은 사람들은 종종 자신의 경험을 말하지 못합니다. 그 상처를 이해하는 일은 아프면서 동시에 혼란스럽습니다. ··· 물고기 비늘에 바다가 스미는 것처럼 인간의 몸에는 자신이 살아가는 사회의 시간이 새겨집니다. (22)


우리가 살아가는 공동체의 사회적 환경은 주어진 고정물이 아니라 역사 속에서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토대 위에서 형성된 것인데도, 왜 질병의 원인을 항상 개인 차원의 고정된 요인으로만 가정하는지 질문한 것입니다. ···우리는 그 그물망을 역어낸 역사와 권력과 정치에 대해 물어야 하고, 좀 더 간결하게 말하자면 '질병의 사회적, 정치적 원인'을 탐구해야 한다고 크리거 교수는 말합니다. (57-58)


위험한 작업장에서 일하는 노동자가 금연에 실패할 경우, 그 원인은 개인의 금연 의지 부족일까요, 아니면 금연 의지를 좌절시키는 위험한 작업환경일까요? 물론 둘 다 중요한 원인이고 함께 바뀌어야 합니다. 하지만 전자는 개인의 역할이고 후자는 작업장과 회사와 국가의 책임이지요. 한국사회는 전자만을 이야기하고 있지는 않은지 질문해봅니다. (63)


많은 이들이 주목했던 자살에 대한 문항은 결국묻지 못했습니다. 고동민 실장이 그 질문만은 하지 말아달라고 부탁했기 때문입니다. 자살에 대해 생각한 적이 있는지, 자살을 시도한 적이 있는지 답하는 과정 자체가 너무 괴로울 것이라고요. 지난 6년 동안 13번의 자살을 지켜본 이들에게 그 질문은 잔혹한 게 맞았습니다. (100)


대기업들은 그 부담을 하청업체에 넘기고, 하청업체는 노동자 개인에게 그 부담을 넘기면 되니까요. 기업들은 버티지 못한 병든 노동자를 해고하고 새로운 비정규직 노동자를 채용합니다. 한국사회는 노동시장에서 가장 약한 사람에게 부담을 떠넘기는 잔인한 논리로 운영되고 있는 것이지요. (124)


세월호 참사를 우회하고는 우리의 다음 세대가 살아가야 할 안전한 대한민국은 불가능합니다. (165)


그리고 아름다운 사회는 나와 직접적으로 관계가 없는 타인의 고통에 대해 예민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사회, 그래서 열심히 정직하게 살아온 사람들이 자신의 자존을 지킬 수 없을 때 그 좌절에 함께 분노하고 행동할 수 있는 사회라고 생각해요. (303)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