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로운 사람을 만드는 교회
정의란 무엇일까? 교회는 정의로울까? 요즘 교회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니?
교회에 대한 안 좋은 인식이 있다. 그 인식은 일부 안티가 만든 이미지일까? 당장에 내 친구들은 목사를 부자로 안다. 내가 목사한다고 하면 ‘우와 부자되겠네’라는 반응이다. 왜냐하면 교회를 한 번도 다녀보지 않은 놈들에게 목사의 이미지는 바로 대형교회의 담임 목사님들의 이미지와 연결이 되기 때문이다. 곧 목사는 전부다 대형교회처럼 부자와 권력을 가진 사람으로 아는 것이다. 실제로는 전혀 아닌데...
대형 교회를 비롯해서 교회의 안 좋은 모습들이 우리 사회에서 송곳처럼 튀어나올 때가 있다. 그것이 신앙이라는 모습으로 타종교를 배려하지 않는 모습이기도 하고(땅 밟기, 단군상 절단), 초대형교회들이 마치 기업 같은 모습으로 사업체 같은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교회는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는 집단이 아니라 마치 돈을 벌기 위해서 사람들에게 전도를 해서 교인들에게 헌금을 내게 하려는 집단으로 비춰진다. 그래서 얻은 별명이 개독이다.
기독교에 대한 이미지는 어떠한가? 친구들이 생각하는 교회는 어떤 이미지인가? 이야기를 나눠본 적 있는가?
대한민국 100년의 역사 동안 기독교는 살아남았고 어쨌든 지금은 불교, 천주교, 개신교 중에 가장 많은 종교인구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긴 역사 동안 밝은 면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흔히 흑역사가 있었다. 인정할 건 인정해야 한다. 그래야 우리가 그러한 잘못된 절차를 밟지 않는다. 친일을 한 적이 있었고, 독재를 하던 자들에게 비위를 맞춰주기도 했다. 힘쎈 사람들에 편을 섰다.
하지만 우리 100년의 역사 동안 다 그랬던 것은 아니다. 저항하던 신앙의 선배들이 있다. 3.1운동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려고 한다. 대한민국 헌법에 보면 우리는 3.1운동에서 일어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잇는다고 되어 있다. 3.1운동은 우리 대한민국 역사에서 중요한 사건이었다.
이 3.1운동에서 가장 많이 체포된 사람이 바로 기독교인들이다. 여성들 중에선 471명 중에 309명이 기독교인이었다. 민족대표 33인은 천도교 15명, 기독교 16명, 불교 2명이었다. 남강 이승훈 선생님(장로님이시기도 하다)이 기독교의 대표로 잘 융합을 시켜 민족대표로 참여하게 되었다. 처음에 모인 대표들 간에 세 가지 논쟁이 있었다. 선언을 할 것인가 vs 청원을 할 것인가의 논쟁이었다. 두 번째, 천도교인과 함께하는게 과연 맞는가? 세 번째, 날짜는 언제로 하는가? 이다.
첫 번째 문제의 해결은 천도교측이 선언을 하자는 입장이 확고했다. 그러나 기독교 인사들 쪽에서 그 갈등이 있었다. 그러다가 이승훈 선생님이 천도교측의 사람을 만나 결국 선언을 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두 번째 문제는 신석구 목사님의 예화를 들겠다. 보수적이기에 종교가 다른 천도교의 사람들과 어떻게 함께할 수 있는가 고민을 하던 차였다. 그렇게 기도를 하고 있던 차에 2월 27일 극적인 체험을 하게 된다. “사천 년 전해 내려오던 강토를 네 대(너의 대)에 와서 잃어버린 것이 죄인데 찾을 기회에 찾으려고 힘쓰지 아니하면 더욱 죄가 아니냐”라는 응답이 온 것이다. 그렇게 다들 민족을 살리는 것에 신앙의 뜻이 있음을 발견하고 독립 운동에 나선다.
세 번째 문제는 날짜의 문제다. 3월 3일에 하자는 의견이 있었다. 그러나 고종황제의 장례식이 거행되는 날이라 예의에 어긋났다. 다음은 3월 4일에 하자니깐 고종황제의 장례식 다음 날이기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불확실해서 안 됐다. 그러면 3월 2일에 하자고 했다. 그러나 그날은 일요일이었다. 기독교 지도자가 큰 축을 담당하고 있었기에 난감했다. 결국 기독교측의 입장을 헤아려 날짜는 3월 1일 토요일에 거행되기로 했다.
그런데 아쉬운 일이 일어났다. 이 민족지도자 33인은 대단히 신중한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폭동’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원래 선언을 하려던 파고다공원에서 갑자기 일방적으로 태화관으로 변경을 해버린 것이다. 그리고 일방적으로 자신들만의 독립 선언식을 치르고 일제에 자진 체포되러 갔다. 그래서 이 부분에서 비판을 많이 받는다. 시작은 이분들이 하셨지만 3.1운동을 지도하기까지 나아갔다라고 말하기 힘든 부분이다.
파고다 공원에서 선언을 하는 것으로 알고 있던 사람들이기에 많은 사람들이 공원으로 몰려오고 있었다. 그런데 민족대표들이 나타나지 않는 것이다. 그렇게 있다가 오후 2시가 되어서 누군가가 단상에 올라 [독립선언서]를 낭독했다. 낭독이 끝나고 잠시 침묵이 이어지더니 하늘을 찌르는 만세소리가 그칠 줄 모르고 계속되었다. 그렇게 군중들은 공원 밖으로 나가서 시가행진을 벌였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의문이 든다. 3.1운동은 당시 경성 그러니깐 지금의 서울에서만 일어난 일이 아니라 어떻게 동시다발적으로 8개도시(원산, 해주, 평양, 진남포, 안주, 선천, 의주)에서 일어났을까? 그리고 전국적으로 확대되어 갔을까? 대구에도 옛날 계명대학 동산의료원에 가면 거기에 3.1운동 길이 있다. 당시에 SNS는커녕 휴대폰도 없었을 것인데 어떻게 전국적으로 퍼져나갈 수 있었을까?
그것은 바로 교회 네트워크 때문이다.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날 수 있었던 것은 당시 기독교 지도자들의 인적 네트워크 때문이다. 원산에서는 남촌동감리교회에서 일어났는데 이때 두 전도사가 시위를 준비헀고 선사되었다. 그리고 나머지 도시들도 교회나 미션 스쿨에서 독립선언이 일어났다. 평양에서는 남강 이승훈 선생님께서 큰 역할을 해주셨다. 장대현교회 등이 시위를 주도했다.
그리고 왜 두 달 동안 3.1운동이 지속될 수 있었을까? 지금 지도부들은 다 감옥에 있는데 말이다. 3월 중순이 되자 전국적으로 시위를 하게 되었다. 물론, 경성(지금의 서울)이나 평양 등에서 만세운동을 경험한 이들이 자신들의 도시로 가서 전파했을 것이다. 또, 철도의 영향으로 운동이 확대되었을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흥미로운 지점을 보게 되는데 시위가 가장 먼저 시작된 지점은 바로 ‘미션스테이션’이란 곳이다. 당시 미국이나 캐나다에서 온 선교사님들이 선교 전략을 짰다. 바로 ‘선교-의료-교육’이었다. 그러니깐 교회-병원-학교를 도시에서 짓고 선교를 한 것이 미션스테이션이다.
지금 교회를 생각하면 서로 경쟁을 엄청 하기에 의문이 들기도 하다. 편의점보다 교회가 더 많다고 하는데 서로 경쟁을 많이 한다. 하지만 이때는 달랐다. 불필요한 마찰이나 재정낭비를 줄이고자 서로 지역을 나눠서 선교를 했다. 전국각지에서 3.1운동이 시작된 최초의 지역을 보면 미션스테이션이 있는 곳에서 그 일이 가장 먼저 일어난 사실을 우리는 증거로 볼 수 있다(저항하는 그리스도인 p. 31 참고). 그리고 효율적일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미션스테이션은 5일마다 시장이 열리는 곳에 만들어졌기에 더욱 효과적이었다. 5일마다 사람들이 자주 모이기에 운동이 시작되기에는 가장 적합하다.
그리고 지금으로 말하자면 여전도사님들의 활략이 있었다. 여자 전도사님들이 [독립선언서]를 배포하는 역할을 맡았다. 그분들은 목숨걸고 [독립선언서]를 각지에 전달하고 다녔다. 유관순도 고문후유증으로 죽었다. 그때 유관순과 같은 감옥에 있었던 사람들이 어윤회와 노경순 여전도사님들이었다. 그분들도 유관순처럼 고문을 받았다.
함석헌 선생님은 기독교 신앙없이 3.1운동은 없었다고 까지 하셨다. 하지만 어느 정도 맞는 말이지만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들의 역할도 무시할 수 없었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기독교가 3.1운동에 지대한 영향력을 미쳤다는 것은 사실이다.
어쨌든 이렇게 신앙을 가졌기에 시대의 불의와 저항을 벌였다. 그분들은 목숨을 걸었다. 다행히 우리는 지금 그러한 시대를 살고 있지 않다. 예수님 믿는다고 죽이지도, 사회를 살아가면서 불이익도 없다. 그렇지만 불의는 여전히 있다. 우리에게는 지금 어떤 불의가 있을까? 거기에 저항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토의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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