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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적/공부흔적

<오감으로 성경 읽기> 세 번째 시간 강의안

by 카리안zz 2020. 2.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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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오감으로 성경 읽기 세 번째 시간입니다. 잠깐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에 몇 가지 문제 아닌 문제를 내겠습니다. 문학가들이 성경을 읽을 때 나오는 표현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성경구절을 읽어볼 텐데 마태복음 20:1-16입니다. 새번역 성경으로 읽겠습니다. 

 

1절: "하늘 나라는 자기 포도원에서 일할 일꾼을 고용하려고 이른 아침에 집을 나선 어떤 포도원 주인과 같다

2절: 그는 품삯을 하루에 한 데나리온으로 일꾼들과 합의하고, 그들을 자기 포도원으로 보냈다.

3절: 그리고서 아홉 시쯤에 나가서 보니, 사람들이 장터에 빈둥거리며 서 있었다.

4절: 그는 그들에게 말하기를 '여러분도 포도원에 가서 일을 하시오. 적당한 품삯을 주겠소' 하였다.

5절: 그래서 그들이 일을 하러 떠났다. 주인 다시 열두 시와 오후 세 시쯤에 나가서 그렇게 하였다.

6절: 오후 다섯 시쯤에 주인이 또 나가보니, 아직도 빈둥거리고 있는 사람들이 있어서, 그들에게 '왜 당신들은 온종일 이렇게 하는 일 없이 빈둥거리고 있소?' 하고 물었다.

7절: 그들이 그에게 대답하기를 '아무도 우리에게 일을 시켜주지 않아서, 이러고 있습니다' 하였다. 그래서 그는 '당신들도 포도원에 가서 일을 하시오' 하고 말하였다. 

8절: 저녁이 되니, 포도원 주인이 자기 관리인에게 말하기를 '일꾼들을 불러, 맨 나중에 온 살마들부터 시작하여, 맨 먼저 온 살마들에게까지, 품삯을 치르시오' 하였다.

9절: 오후 다섯 시쯤부터 일을 한 일꾼들이 와서, 한 데나리온씩 받았다.

10절: 그런데 맨 처음에 와서 일을 한 사람들은, 은근히 좀 더 받으려니 하고 생각하였는데, 그들도 한 데나리온씩 받았다. 

11절: 그들은 받고 나서, 주인에게 투덜거리며 말하였다.

12절: '마지막에 온 이 사람들은 한 시간 밖에 일하지 않았는데도, 찌는 더위 속에서 온종일 수고한 우리들과 똑같이 대우하였습니다.'

13절: 그러자 주인이 그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말하기를 '이보시오, 나는 당신을 부당하게 대한 것이 아니오. 당신은 나와 한 데나리온으로 합의하지 않았고?

14절: 당신의 품삯이나 받아 가지고 돌아가시오. 당신에게 주는 것과 꼭 같이 이 마지막 사람에게 주는 것이 내 뜻이오.

15절: 내 것을 가지고 내 뜻대로 할 수 없다는 말이오? 내가 후하기 때문에, 그것이 당신 눈에 거슬리오? 하였다.

16절: 이와 같이 꼴찌들이 첫째가 되고, 첫째들이 꼴찌가 될 것이다."

 

 유명한 포도농장에서 일한 일꾼에 관한 비유였습니다. 1시간 일한 사람이나 하루종일 일한 사람이랑 똑같은 돈을 줘서 논란이 되었는데요. 이 본문을 문학가가 멋지게 표현을 했습니다. 이어령 선생님께서 멋지게 표현하셨습니다. "인간은 시간으로 재고 하나님은 마음으로 재신다" 지성에서 영성으로 챕터 하나가 여기에 관한 내용이지요. 끝까지 일자리를 찾지 못한 남자는 집안에 가장일 수도 있고 하루살이 인생일 수도 있습니다. 만약에 가장이라면 어깨의 부담이 누구보다도 훨씬 심하겠죠. 아마도 일거리를 계속 찾으러 다닌 것으로 보아 한 가정의 가장으로 볼 수 있습니다. 자기가 굶는 건 괜찮지만 자기의 자녀가 굶으면 어떤 마음일까요? 하나님께서는 그 마음을 재셨다. 아걸 참 멋지게 표현해 주셨습니다. 

 

 자, 다음은 요한복음 19장 26-27절입니다. 

 

26절: "예수께서는 자기 어머니와 그 곁에 서 있는 사랑하는 제자를 보시고, 어머니에게 "어머니,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하고 말씀하시고

27절: 그 다음에 제자에게는 "자,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하고 말씀하셨다. 그 때부터 그 제자는 그를 자기 집으로 모셨다. 

 

신경숙 작가가 떠오릅니다. 네, 정답은 "엄마를 부탁해"입니다. 제가 이걸 다시 확인하려고 <엄마를 부탁해>를 훑어보는데 그게 없는 겁니다. 분명히 봤는데 하고 검색을 해보는데 찾았습니다. 양화진 문화원이라고 제가 예전에 한참 강의를 많이 듣고 그랬었는데 여기에 신경숙 작가님이 강의하신 적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찾아보니깐 다시보기로는 없고 강의했던 기사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아무튼 이렇게 강의에서 위에 성경구절을 언급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엄마를 부탁하시는 장면이라고 말입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시작해 보겠습니다. 일단 먼저, 유대 사회에 상류층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자 여기 지도가 보이십니까? 이스라엘 지역을 이렇게 나눴습니다. 이 지역을 원래 헤롯대왕이라는 사람이 다스렸었습니다. 그런데 헤롯 대왕이 사망하자 그 자식들에게로 관할이 나눠져서 통치하게 되었습니다. 먼저 이 헤롯 집안은 유대인들이 아닙니다. 여기 보시면 이두매 사람들이죠. 이방인들이 유대를 다스리고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이 보기에는 굉장히 열받겠죠? 근데 왜 이두매 사람들이 여기 이스라엘을 다스릴까요? 헤롯이 외교를 굉장히 잘했습니다. 로마에게 잘 보였고 혈맹까지 맺게 되었죠. 분봉왕이 되어 팔레스타인의 주인이 되어 버립니다. 

 헤롯이 죽은 뒤 그의 가문이 나눠서 다스리고 있는데 여기보면 아켈라오가 다스리던 사마리아, 유대, 이두매가 로마 총독이 직접 관할하는 곳으로 바뀐다. 왜일까요? 먼저 당시에 권력 투쟁이 있었습니다. 여기 페레아와 갈릴리를 헤롯 안디바가 다스리고 있다고 되어 있는데 원래는 아켈라오의 땅까지 다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켈라오가 군대를 일으켜서 왕이 되려고 했었습니다. 또 유월절때 바리새인 2천명을 죽이기도 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니 유대인들은 헤롯가문을 엄청나게 증오했겠지요? 더욱이 유대인들도 아니고 이두매인들이기도 했으니깐 말이죠. 그러니깐 사절단을 꾸려서 헤롯 가문의 폭정을 말하면서 로마 권력층들에게 어필하려고 했었습니다. 독립권과 헤롯가문의 지배권을 없애려고 말입니다. 헤롯이 왕이 된다는 허락을 받으러 먼저 로마에 갔고 그 뒤에 유대인들이 사절단을 보냈던 것입니다. 근데 로마 황제는 헤롯의 손을 들어줍니다. 그가 왕이 되어서 돌아오죠. 물론, 조건은 있었습니다. 일정 기간 통치 결과를 보고 잘 하면 진짜 왕이 될 것이라는 조건이었습니다. 왕이 되어 돌아왔는데 아켈라오의 악행은 계속 되었습니다. 자신을 반대한 사람들을 다 죽이고 그랬었습니다. 그러니 반로마 정서는 날로 날로 강해졌습니다. 도저히 안 되서 유대인들은 다시 한 번더 사절단을 보냅니다. 간절하게 호소를 하는데 이게 받아드려집니다. 아켈라오가 해임되고 그 지역을 총독이 다스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성경에 총독 빌라도가 나온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사건이 예수님의 비유에도 등장합니다. 예수님의 시사비유가 있었습니다. 누가복음 19장 12-15, 27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12절: 그래서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귀족 출신의 어떤 사람이 왕위를 받아 가지고 돌아오려고, 먼 나라로 길을 떠날 때에,

13절: 자기 종 열 사람을 불러다가 열 므나를 주고서는 '내가 올 때까지 이것으로 장사를 하여라' 하고 말하였다.

14절: 그런데 그의 시민들은 그를 미워하므로, 그 나라로 사절을 뒤따라 보내서 '우리는 이 사람이 우리의 왕이 되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하고 말하게 하였다.

15절: 그러나 그 귀족은 왕위를 받아 가지고 돌아와서, 은화를 맡긴 종들을 불러오게 하여, 각각 얼마나 벌었는지를 알아보고자 하였다. 

27절: 그라고 내가 자기들의 왕이 되는 것을 원하지 않은 나의 이 원수들을 이리로 끌어다가, 내 앞에서 죽여라"

 

 여기 보면 왕이 어느 나라에 갔다는 것은 아켈라오가 로마에서 왕이 되려고 간 거랑 똑같고 뒤에 사절단을 보냈다는 것은 유대인들이 사절단을 보냈다는 것과 같습니다. 그리고 왕으로 다시 돌아와서 자기를 반대했던 사람들을 다 죽이는 것도 아켈라오가 했던 짓이었죠. 예수님의 시사 비유였습니다. 

 예수님의 동네인 갈릴리는 헤롯 안디바가 다스리고 있죠. 그래서 예수님 처형을 할 때 빌라도가 헤롯에서 보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갈릴리 사람이니깐 자신의 관할이 아니죠. 골치아픈 예수님을 헤롯으로 보낼 수 있는 좋은 핑계거리가 되었습니다. 

 

자, 이제 성전을 향해서 조금 다가가 보겠습니다. 한때 하스모니아 가문이 유대 주류였는데 이제 보에투스 가문이 부상을 합니다. 이 사람들이 사두개파의 핵심 세력이 되죠. 야들은 헤롯가문과 밀접한 연관이 되기도 했습니다. 헤롯가문이 대제사장을 임명할 권한이 있었는데 자기 입맛대로 대제사장을 골랐습니다. 자기 말 잘 듣는 사두개파 사람들을 성전 관리들로 꽂아 넣게 됩니다. 헤롯 가문이 로마귀족들에게 줄을 많이 댓는데 정략 결혼도 많이 했습니다. 그 유명한 살로메는 로마 황제의 부인과 돈독한 관계였고 헤롯 가문의 딸이 유대 총독과 결혼까지 하기도 했습니다. 자연히 사두개인들도 로마 귀족들과 연줄을 많이 대였습니다. 

 

 이제 세금으로 조금 다가가 보겠습니다. 당시에 로마의 지배를 받고 있었기 때문에 로마에 세금과 유대인으로서 이스라엘에 또 세금을 내었어야 합니다. 정확한 건 아니지만 추정으로는 210만원을 번다면 60만원이 로마의 세금으로 내야 했습니다. 30~40%정도가 세금입니다. 그리고 여기에서 더해서 십일조, 성전세, 첫 열매 제물 등등 또 종교세를 왕창 내야했습니다. 적어도 자기 수입의 절반 이상은 뜯겨갑니다. 위에 210만원에서 60만원이 세금이라고 했는데 이걸 인구를 300만명으로 잡고 계산을 한 것인데 어떤 학자는 100만명을 주장하는 학자도 있습니다. 100만명이 되면 세금 수치가 확 올라가겠죠. 세금+종교세까지 합치면 한 70%까지 될까 싶습니다. 그러니 사두개인, 바리새인, 열심당, 쿰란공동체 이렇게 저마다 뜻이 또렷하게 나뉘었던 것입니다. 

 

  예수님 예전에 성전을 뒤엎으신 적이 있으십니다. 여기 사진으로 웃긴 짤빵이 돌아다니기도 하죠. 예수님은 여기서 장사하는 사람들을 내쫓으셨습니다. 유대인들은 제사를 드리려면 동물을 바쳐야 했습니다. 흠없는 동물을 바쳐야 하는데 먼 곳에서 오는 사람들은 그게 불가능했습니다. 가까운 곳에서도 상처없이 데려오기가 어려운데 먼 곳은 오죽했을까요? 그래서 성전에서 동물을 파는 일들을 했었습니다. 굉장히 융통성있는 일이죠. 그런데 문제는 싸게 팔았을까요, 비싸게 팔았을까요? 독점입니다. 반드시 사야 했습니다. 그러면 기존의 가격보다 몇 배는 뻥튀기 시켜서 팔아버리면 어떨까요. 엄청나게 남는 장사가 될 겁니다. 여기에서 하나 더! 돈을 바꿔야 했습니다. 성전에서는 당시 돈을 만들 수 있는 권리가 있었습니다. 문제는 이제 여기서 있습니다. 성전에서 바꿔주는 이 동전이 이방신이 세겨진 동전입니다.[사진] 여기 사진을 보시면 알겠지만 두로의 이방신입니다. 이 이방신이 또렷이 새겨져 있는 동전을 나눠줬던 것입니다. 십계명 1, 2계명을 정면으로 위반한 겁니다. 그것도 종교지도자라는 사람들이 말이죠. 단지 계산하기 편하고 써왔던 것이라는 미명하에 이방신이 있는 동전을 사용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강도의 소굴이라고 했던 이유는 거래를 하고 있고 돈을 바꿔주고 있어서 그런 게 아니었습니다. 상거래는 일어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상거래 뒤에 대제사장들과 헤롯의 돈벌이로 전락했기 때문에 강도의 소굴이라고 비판했던 것입니다. 얼마나 돈을 많이 쌓아뒀던지 호시탐탐 강도들이 금고를 노리고 있기도 했었습니다. 

 마치 구약에서 바알도 섬기고 하나님도 섬기고 했던 모습이 그대로 겹쳐 보입니다. 바알도 번영을 약속한 신이었고, 로마 역시도 대제사장과 헤롯가문들은 자신들을 부유하게 해줬던 존재였죠. 부유함을 섬겼습니다. 주류가 되고 힘이 쌓이면 이런 유혹에 많이 노출이 됩니다. 

 지금의 한국교회가 딱 그러한 실정입니다. 자본의 논리가 교회 안에 딱 자리잡았습니다. 사용자 프랜들리라고 하나요? 교인 프랜들리가 중심을 자리잡고 있습니다. 예배가 대표적입니다. 간소화 되어지고 있죠. 사용자 프랜들리처럼 교인 프랜들리입니다. 교인이 원하는 대로 예배가 입맛대로 편집되고 있습니다. 어느 교회는 토요일에 예배드리고 주일은 교회 봉사하는 날로 하자고 어이없는 운동을 하기까지 합니다. 교회를 세습할 수 있는 기저에는 장사이자 기업이라는 생각이 깊숙이 자리잡고 있는 거죠. 더 커져야 하고 더 부유해져야 하고 그것이 교회의 목표로 치닿고 있는 건 아닌가 돌아보고 있습니다. 비판할 점이 너무 많지만 그냥 여기까지 하도록 하겠습니다. 오늘도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참고자료. 


김동문, <오감으로 성경 읽기>(포이에마)

차정식, <신약의 뒷골목 풍경>(예책)

에케하르트 슈테게만, 볼프강 슈테게만, <초기 그리스도교의 사회사>(동연)

부흥과개혁사 ESV 성경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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