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감으로 성경 읽기』
성경 읽기에는 여러 가지 방법들이 있습니다. 일전에 담임 목사님께서 설명을 해주신 적이 있었는데 먼저 언어학적 읽기입니다. 헬라어 단어들의 의미를 찾고 문맥들에 맞게 해석을 하는 것입니다. 언어학을 중심으로 본문을 읽어나가는 방법이 있는데 담임 목사님 전공이기도 합니다. 인지언어학이라는 방법으로 성경을 보는 것입니다. 저는 학부때 배웠기에 아직도 기억에 많이 남고 지금도 써먹는 것이 많습니다. 그때 중요한게 관사나 단어같은게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기억을 불러 일으키기 때문입니다. 단적인 예로 우리가 ‘광주’라는 도시를 듣는다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지 않습니까? 바로 성경의 지명에도 그렇게 바로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다는 것입니다. ‘갈릴리’라던가 ‘예루살렘’이 그렇습니다.
그 다음이 바로 역사적 탐구 방법입니다. 성경의 각 저작들의 연대에 맞게 고고학적 발견과 비교해서 읽는 것입니다. 짤막하게 세겨진 무덤 글귀나 뭐 그런 것들이 있습니다. 물론 가장 많이 보는 것이 당시 같은 시대에 쓰여진 문헌들을 비교해서 읽는 것이 대표해서 그렇습니다. 예로 바울이 도시를 중심으로 선교를 떠낫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그 도시들의 대한 정보가 고고학이라던가 문헌에 남아 있습니다. 그러한 증거들을 읽으며 성경을 대비해서 읽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문화적으로 읽는 방법이 있습니다. 고대 근동 문화에 맞춰서 성경을 읽는 것입니다. 얼마 전까지 유행하던 제목이 바로 <중동의 눈으로 본 예수>, <중동의 눈으로 본 구약, 신약> 등 “중동의 눈으로 보”는 제목들이 많이 출간되었습니다. 저도 예전에 탕자의 이야기를 중동의 관점에서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오늘 이 책은 문화적으로 읽는 방법의 연장선에 있습니다. 저자도 중동에서 오랫동안 사셨던 분이기에 좀처럼 우리에게 생동감 있게 성경을 전달해주려고 합니다. 이분의 방법은 상상해서 성경을 읽는 것입니다. 당시에 정말 거기에 있는 것처럼 문학적 상상력이랄까요? 상상해서 성경을 읽어나가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경에 대한 배경정보가 있어야 합니다. 이 책은 그 배경 정보를 알려주는 책입니다. 그래서 나오는 것이 오감입니다. 보고, 듣고, 맡고, 맛보고, 만져보는 감각을 상상을 통해 성경 속으로 들어가게 합니다. 마치 내가 그 자리에 들어가 있는 것처럼 말이죠. 그렇다면 어떻게 저자가 이야기를 했는지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성경의 장소가 어떠한 시각이 있었을까요? 대표적으로 에돔 산지와 바란 광야를 들 수 있습니다. 에돔이라는 단어가 붉다는 뜻인데 정말 땅이 붉습니다. 한 번 사진으로 확인하면 더 잘 알 수 있습니다. 정말 붉습니다.
반면 갈릴리 지방은 녹지입니다. 한국의 전원 풍경을 연상합니다. 갈릴리 지방의 대표적인 곳이 바로 이스르엘 골짜기인데 정말 녹지입니다.
헬몬산은 온통 흰색으로 넘쳐납니다. 4월까지도 설경이 있습니다. 그만큼 흰색을 떠올리기도 합니다. 만년 산이기에 늘 하얗습니다. 신명기의 무대인 요르단에서도 눈이 내리고 일부 지역은 하룻밤 사이에 수십 센티미터, 심지어 1미터가 쌓이는 곳도 있습니다.
다음으로는 성경 구절을 하나 봅니다. 이사야 1장 18절 말씀에 “양털같이 희게 되리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 구절만 본다면 그림과 같은 하얀 양을 떠올리기 쉽습니다. 양을 거의 보지 못하고 사는 저희들은 사진과 같은 양을 떠올리기 쉬운데 문제는 중동에는 흰 털을 가진 양을 찾아보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보시는 것처럼 누렇습니다. 하지만 딱 새하얀 양이 있긴 있습니다. “양털같이 희게 되리라”는 구절을 본다면 필시 그들은 이 양을 생각했을 겁니다. 바로 새끼 양입니다. 새끼 양은 정말 하얗습니다. 지금처럼 하얀색이 거의 없었을 때 정말 하얀 색을 본다면 어떨까요? 아마도 하얗다는 것이 머리에 딱 박혔을 겁니다. “너희의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희게 되리라”는 말씀이 더욱 와닿을 것입니다.
겨울철에는 전쟁도 하지 않았습니다. 사무엘하 10장에 보면 이스라엘 군대 장군 요압이 암몬 군인들을 다 이겼고 그들 성 바로 앞까지 도착을 합니다. 그런데 성을 바로 앞에 두고 의외의 행동을 하는데 바로 싸우기를 그만두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다고 합니다. 바로 앞이 성인데 왜 돌아왔을까요? 그건 바로 겨울이기 때문입니다. 그 실마리가 11장 1절에 나오는데 “그 다음 해 봄”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그러니깐 겨울을 지나 이제 봄이 되었다는 것이지요. 겨울에 전쟁을 하지 않았습니다. 더군다나 암몬 성은 고도가 대단히 높은 곳이었습니다. 해발 1000미터였습니다. 팔공산에 해발 1100미터이니 팔공산 쯤 되는 곳이 바로 성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곳에 눈도 대단히 많이 오는데 물자보급이 당연히 안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군대가 예루살렘으로 다시 돌아간 것입니다.
냄새는 어떨까요? 냄새는 다음 시간 예루살렘 도시를 하면서 말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청각도 마찬가지로 예루살렘 도시를 할 때 조금 다뤄보도록 하겠습니다.
촉각에 대해서 한 번 보겠습니다.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중동에는 뜨거운 사막만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곳에서도 겨울은 있었습니다. 문제는 일교차입니다. 겨울에도 영상 20도가 되었지만 온도가 10도만 내려가도 얼어죽을 것 같다고 합니다. 마치 목욕탕에서 뜨거운 온탕에 있다가 냉탕으로 가면 엄청 차가운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중동의 날씨가 딱 그렇습니다. 건조한 사막이다 보니 영상 40도가 되는 뜨거운 낮에도 그늘에만 들어가면 에어컨 바람을 쐬는 거같다고 합니다. 영상 20도에서 영하 1도까지 떨어진다면 그 날씨는 대단히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어떤 옷을 입어야 할까요? 바로 긴 옷입니다. 햇살을 막아야 하며 그늘의 추위에서 체온을 유지시켜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머리 덮개를 씁니다. 바람이 불면 모래가 날리는데 얼굴을 보호해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문화적으로 보수적이냐 노출을 억제하느냐에 앞서 환경을 생각하면 저런 옷을 입어야 합니다.
거리를 한 번 보도록 하겠습니다. 예전에 엘리야가 이세벨의 위협을 피해 브엘세바에서 호렙 산으로 간적이 있었습니다. 그곳의 거리가 보통 300Km정도 됩니다. 책에는 150Km로 되어 있는데 여기 위에 있는 곳을 저자는 호렙산으로 본 것 같습니다. 위에 산맥이 딱 150Km거리입니다. 그런데 이정도 거리를 엘리야는 40일 밤낮으로 걸었습니다. 좀 빡세게 걸으면 10일이면 걸을 수 있는 거리를 왜이렇게 오랫동안 걸었을까요? 그건 바로 이곳의 산맥이 넘으 험하기 때문입니다. 딱 보면 아시겠죠? 길어질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질문있으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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