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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새벽설교

[설교문] 열왕기상 21장 11-29절(왕상 21:11-29, 왕상 21:11~29)

by 카리안zz 2020. 2.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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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를 지은 두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중 젊은 한 남성은 어떤 범죄를 지었나하고 보니 식당으로 몰래 들어가 라면 2개를 끓여먹고, 라면 10개를 훔쳤습니다. 생계형 절도 범죄자였습니다. 또 죄를 지은 다른 한 중년 남성은 과거에도 한 차례 회삿돈을 횡령한 혐의로 구속된 전력이 있었는데 이번에 한 번 더 횡령을 했다고 합니다. 그 금액은 무려 497억입니다. 법은 이 둘 중에 누구의 죄가 더 무겁다고 판단했을까요? 재판부는 라면을 훔친 남자에게는 징역 36개월을, 회삿돈을 횡령한 중년 남성에게는 징역 4년 형을 선고했습니다. 그런데 작년 815일 특별사면으로 회삿돈을 횡령한 남성은 27개월만에 사면을 받고 나왔습니다. 한 재벌의 총수이기도 한 그는 수감기간 중 변호사 접견을 포함해 총 1778회의 면회를 가져 황제면회논란이 일기도 했습니다.

비슷한 경우가 또 있습니다. 제작년 이른바 땅콩회항사건으로 재벌 갑질이라는 사회적 논란을 일으킨 사건입니다. 1심 실형선고를 받았던 대한항공 부사장이었지만 2심에서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고 풀려났습니다. 여기까지는 그래도 넘어갈 수 있겠는데 그런데 또 다른 특혜의혹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구치소 측에서 남다른 편의를 제공받았다는 것입니다. 어떤 혜택이었나 보니깐 외부 대학병원 의료진으로부터 진료를 받은 혜택이었습니다. 여태까지 이런 혜택은 단 한 번도 없었다고 합니다. 일반 수용자들은 병동 자체에 가는 것만도 상당히 힘든 일인걸 비교하면 참 이상하다는 생각이 당연히 듭니다.

이런 사례들이 쌓이고 쌓여서 대한민국에서는 <정의>라는 단어가 상당히 친숙한 사회가 되었습니다. 힘을 가진 자, 권력을 가진 자들의 무지막지한 권력남용에 참으로 무기력증을 느끼는 사회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렇기에 정의라는 단어에라도 그토록 강조되고 강조하는 것 아닐까 싶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는 이와 비슷하게, 아니 훨씬 더 잔혹하고 정의가 무너진 현실이 대두됩니다. 이세벨이 나봇을 죽이고 포도원을 차지한 사건을 볼 때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이세벨의 편지를 받은 고위층들은 거짓증언을 하여 나봇을 무참히 돌로 죽여 버립니다. 여기에서 이세벨의 죄가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첫째, 그녀의 죄는 권력남용입니다. 왕권은 백성을 지키고 하나님의 율법을 수호하도록 위임해주신 건데 사사로운 이익을 챙기는데 썼기 때문입니다. 둘째, 여호와의 율법을 악용하여 여호와의 율법을 무력화 한 것입니다. 이세벨은 거짓 증거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는 세 계명을 어겼습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사익을 추구하기 위해 이런 죄를 지으면서, 그녀는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는 계명을 가지고 나봇을 죽였습니다. 이스라엘 땅에서 여호와의 율법을 철저히 무력화하고, 공의를 파괴하고, 정의를 훼손한 것입니다. 여호와의 손에서 이스라엘을 빼앗아 자신의 왕국을 세우고 있는 것이지요. 이세벨은 나봇을 죽였으니 그의 포도원을 차지할 수 있게 되었다고 아합에게 알ㄹ 줍니다. 원칙적으로 나봇이 죽으면 그의 자식들이 땅을 이어받아야 하지만 왕에게 죄를 지은 자의 땅은 왕이 몰수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나봇의 죄목에 하나님과 왕을 저주하였다는 항목을 붙여진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아합보다는 이세벨이 정말 나쁜 사람처럼 보이지만 사실 가장 나쁜 사람은 아합입니다. 왜냐하면 그는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나봇의 포도원을 차지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지만 단념하지 못하고 이세벨에게 알려 뒤에서 조종한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이세벨이 그 편지를 가져다 주겠다고 했을 때 그 내용이 어떤 내용인지 분명히 알고 있었을 텐데 이세벨을 자극시키고 본인은 뒤에서 조종한 인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사건의 1차 책임자는 아합이고, 이세벨은 실행자로 볼 수 있습니다.

 

합법을 가장한 방법이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사실을 다 보고 계셨습니다. 결국 엘리야를 불러서 아합에게 심판 선언을 하시기로 결심하십니다. 여호와께서 아합에게 하신 말씀은 두 가지인데 첫째는 죄목으로 나봇을 죽이고 그의 소유를 빼앗은 것입니다. 그가 직접 죽이지 않았지만 원인 제공자이자 이세벨이 어떤 행동을 하는지 알고도 묵인하고 방조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에 대한 심판으로 개들이 나봇의 피를 핥은 곳에서 개들이 네 피 곧 네 몸의 피도 핥을 것이라고 판결하십니다. 개들이 피를 핥는다는 건 길에서 죽임을 당하여 안장되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곧 나봇이 길에서 살해당한 것처럼 아합도 길에서 살해당할 것이라는 겁니다.

 

그렇게 엘리야는 아합에게 하나님의 판결을 전하러 갔습니다. 그리고 전달을 하는데 19절의 말과는 조금 다릅니다. 19절은 여호와의 말씀 전체를 알려준 것이 아니라 앞부분을 말한 것이고 21-24절까지가 여호와의 말씀의 나머지 부분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자기 스스로 재앙을 판 아합에게 여호와께서 내리신 벌은 19절에서 언급된 아합의 비참한 죽음 이외에도 그의 가문의 모든 남자들을 쓸어버리겠다고 선언입니다. 이 선언은 여로보암 왕가의 멸망과 아히야 왕가의 멸망을 통해 분명하게 알려주십니다. 또한, 이세벨의 최후 역시 말씀하십니다. 이 일의 실행자인 이세벨은 개들이 이스르엘 성읍에서 이세벨을 먹을 것이라고 선언하십니다. 이것은 이세벨이 죽임을 당한 후에 길에 버려져 그의 시신을 개들이 먹을 것이라는 의미로 안장되지 못하는 저주를 받게 된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아합에게 속한 자들, 즉 가족과 심복들과 그의 정권을 떠받치고 있는 귀족들을 모두 한통속으로 보고 하나님께서는 이들도 이세벨과 같은 죄를 물어 동일한 심판 선언을 내리십니다. 이들도 누구하나 나봇에게 하려는 행동이 잘못되었다는 걸 말했던 사람이 없었기에 모두 공범입니다.

 

그런데 이런 심판의 말씀을 들은 아합이 조금 의외의 행동을 합니다. 하나님을 무시할줄 알았는데 그가 의외로 옷을 찢고 굵은 베로 몸을 동이고 금식하고 굵은 베에 누으며 또 풀이 죽어 다녔습니다. 아합은 심판 선언에 놀라 죄를 인정하고 용서를 구한 것입니다. 아합은 사실 알았던 것입니다. 갈멜 산에서 불이 내리고 비가 내리고 아람 왕 벤하닷을 이긴 기적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살아 계시고 하나님께 큰 권능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의 말씀이 실현될 줄 알고 굴복한 것입니다. 그런 그의 모습을 보고 하나님께서는 놀랍게도 용서하시고 그에 대한 처벌을 다음 세대로 미루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여호와께서는 엘리야에게 아합이 내 앞에서 겸비함을 네가 보느냐고 말씀하시는데, 마치 아기가 걸음마하는 것을 자랑스러워하는 아버지의 모습같습니다. 여호와께서는 은혜롭고 자비롭고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인자가 많으신 모습으로 아합을 용서하신 겁니다. 심판이 사라진 것은 아니며 하나님께서 한 번 더 아합을 참아주기로 결심하신 겁니다.

 

이처럼 오늘 말씀을 통해서 오늘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세상 속에서 우리가 어떤 모습으로 살아갈지,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 깊이 묵상하였으면 합니다. 오늘 하루 말씀을 깊이 묵상하면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시간이 되길 소망합니다.

 

기도 드리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서 자신의 사사로이 권력을 사용하는 이들의 악행을 보았습니다. 자신들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고 심지어 하나님의 말씀을 조롱하면서 자신들의 탐욕을 채웠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아니라 자신들의 나라를 만들려고 했습니다. 주님, 오늘 우리의 시대 가운데에도 그러한 자들이 있습니까? 주여, 때론 우리가 너무나 가진 것이 없기에 보잘 것 없고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때 오늘 말씀을 기억나게 하시며 하나님께서 가만히 계시지 않으실 거라는 걸 믿습니다. 악을 심판하시고 악을 돌이켜 주시옵소서. 악한 자들이 돌이키기 원합니다. 오늘날 엘리야가 외쳤던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교회의 역할이 되게 하여주시옵소서! 불의한 시대에 교회의 예언자적 사명을 기억나게 하시며 우리 교회를 사용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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