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이범신은 <피해자>라는 작품에서 신앙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구두 속의 돌멩이>라고 표현했습니다. 꼭 구두가 아니더라도 신발이나 운동화에 작은 돌멩이가 들어간 경험들을 다들 해보셨을 겁니다. 그럴 때면 꼭 고민을 하게 됩니다. 이걸 빼야하는지 그냥 그대로 가야 하는지 하는 고민입니다. 신발을 벗고 빼기에는 좀 그렇고 그러자니 계속 걷기에는 먼가 찜찜한 기분이 듭니다. 바로 소설가 이범신은 이런 점을 들어 신앙이 <구두 속의 돌멩이> 같다라고 한 것 같습니다. 특히나 모태신앙인 저는 그 표현을 처음 봤었을 때 많은 공감을 했었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다가 보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때가 참 많은 거 같습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신앙인들이 아니라 명확하게 비교가 되는 길을 선택한 두 사람이 나옵니다. 본문 1절부터 등장하는데 한 사람은 “하나님의 사람”이며 다른 한 사람은 “여로보암”입니다. 이 두 사람은 벧엘의 제단에서 만났습니다. 그곳에서 하나님의 사람은 여로보암은 심판에 선언을 합니다. 여로보암이 지은 죄가 많은 사람입니다. 자신의 정치적 유익을 위해 예루살렘으로 제사 드리러 가지 못하게 하였을뿐만 아니라, 금송아지를 만들어 단과 벧엘에 두고 이것이 자신들을 애굽에서 이끌어낸 신이라고 하면서 우상숭배의 죄를 범하게 만들었습니다. 또, 레위인 아닌 사람을 제사장으로 세우고 절기도 마음대로 만들면서 율법을 어겼습니다. 이렇게 점점 하나님과 멀어지는 길을 가는 여로보암에게 전혀 다른 길을 가는 사람이 등장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길을 가는 하나님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제단을 향하여 여호와의 말씀을 전달합니다.
그것은 오늘 본문 2절에 있는 것처럼 다윗 가문에 요시야라는 후손이 태어날 것이고, 그가 제단 위에서 산당의 제사장들을 제물로 바칠 것이며, 사람의 뼈가 제단 위에서 태워질 것이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산당의 제사장들을 제물로 바친다는 것은 그들이 제단 위에서 죽임을 당할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산당의 제사장들은 벧엘에서 제사를 드리는 자들을 말하는데 여호와께서 벧엘과 단을 이방신을 섬기는 산당의 일종으로 여기고 계신 겁니다. 제단 위에서 사람의 피를 흘리고 뼈를 불태우는 행동은 부정한 피와 재로 제단을 더럽히고 더 이상 제사 지낼 수 없는 부정한 곳으로 만든다는 뜻입니다. 이 예언이 확실히 이루어질 것이라는 징조를 주시는데 제단이 갈라지고 그 위에 있던 재들이 쏟아질 것이라고 합니다. 이런 징조는 하나님께서 여로보암이 만든 제사 장소와 제사 제도를 모두 거절하시겠다는 의미입니다. 징조를 주신 이유는 지금 제단을 향하여 저주를 퍼붓고 있는 사람이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사실을 말해주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제단을 향해 외친 소리를 듣고 여로보암은 하나님의 사람을 잡으라고 소리를 칩니다. 아마 여로보암은 하나님의 사람을 잡아서 저주를 못하게 하거나 처벌을 하려고 했던거 같습니다. 아직까지 여로보암은 그가 하나님의 사람인줄 모르고 그저 자신이 만들어 놓은 종교적 체계를 비판하고, 자신의 권력을 혼들려는 세력이라 여기고 입막음을 시도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사람을 잡기 위해 여로보암이 뻗었던 손은 말라버렸고, 손을 거둘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로보암의 팔을 굳게 하신 이유가 있으셨습니다. 여로보암이 하나님의 사람을 해치지 못하게 하려는 게 첫째 이유고, 둘째는 이런 이적을 통해 지금 말하고 있는 사람이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것을 여로보암에게 알리기 위해서입니다. 셋째는 하나님께서 크신 능력을 가진 무서운 분이심을 알리기 위해서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사람을 보내신 이유가 이제 조금 명확해 져 보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로보암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크신 능력을 보면서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기 위해서 였습니다. 하지만 여로보암과 이스라엘은 이런 기회를 놓쳤고 하나님의 심판을 면할 수 없었습니다.
손이 굳어버린 여로보암이 자신 앞에서 말한 사람이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고 그에게 자신의 손이 다시 회복될 수 있게 기도해달라고 간절히 요청합니다. 매우 겸손한 표현으로 ‘제발’이란 표현을 사용하며 자신의 병 낫기를 간절히 구합니다. 여기서 여로보암은 하나님에 대해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라고 말하는데 이것은 여로보암이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 여호와’로 부르지 못할 만큼 하나님과 거리가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런 여로보암의 간절한 요청에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께 간청했고 왕의 손은 다시 이전처럼 돌아왔습니다. 이렇게 회개의 길을 하나님께서는 열어두셨는데 여로보암은 감사도 회개도 하지 않았습니다. 손이 아플 때는 간절하게 요청하였다가 회복되자 하나님을 찾지 않은 것입니다. 다만 자신의 손을 회복시켜준 하나님의 사람을 집으로 초대하고 선물을 주려고 합니다. 그는 하나님의 사람 뒤에 계신 하나님께로 나가는 것에 실패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이런 여로보암의 제안을 거절랍니다. 그는 왕의 집의 절반을 선물로 준다고 해도 자신은 왕과 함께 가지 않는다고 합니다. 더군다나 이곳에서는 떡도 먹지 않고 물도 마시지 않겠다고 매우 강하게 거절합니다. 9절에서는 그 이유를 설명하는데 하나님께서 떡도 먹지 말고 물도 마시지 말고 왔던 길로 되돌아가지 말라고 명령하셨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거절한 선지자는 정말 아무런 대접도 받지 않고 하나님의 명령대로 벧엘로 온 길과 다른 길로 돌아갔습니다. 음식을 먹는 것은 서로 교제를 나누고 친분을 쌓는 일인데 하나님의 사람에게 그걸 거절하게 하신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른 제사를 드리는 여로보암을 기뻐하지 않으시며 그와 교제를 나누고 싶어 하지 않으신다는 의미입니다. 여로보암의 제사에 대한 전적인 부정입니다. 아무리 여로보암이 단과 벧엘에서 여호와를 위해 수많은 제사를 드려도 하나님께서는 그 제사를 일절 받지 않으신 겁니다. 여로보암의 제사는 하나님을 위한 제사가 아니라 자신의 권력을 강화하기 위한 종교적 행동에 불과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이렇게 여로보암과 하나님의 사람의 극명한 대조를 보입니다. 오늘 큐티본문에서 <내게 주시는 교훈은 무엇입니까?>에서 8~10절 부분을 한 번 다 읽고 설교를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시려고 왕의 제안을 단호히 거절합니다. 왕의 집 절반을 준다 해도 함께하지 않겠다고, 심지어 물과 떡도 먹지 않겠다고 합니다. 여로보암은 왕위를 위해 하나님을 버렸지만, 하나님의 사람은 부정한 안락함을 거부하고 순종을 선택합니다. 시련의 시공간은 버티고 인내해야 하지만, 유혹의 장소는 속히 피해야 합니다. 사명을 흔드는 유혹 앞에서 ‘하나님의 사람’처럼 단호히 마하고 과감히 끊어내십시오.
오늘 설교 서두에서 신앙은 “구두 속에 돌멩이”같을 때가 있다고 했습니다. 우리의 신앙의 양심을 감출까, 드러낼까 고민 속에서 사는 것 같기도 합니다. 오늘 본문 그런 삶 가운데 명확한 두 길을 보여줍니다. 그 외에 다른 길은 없습니다. 여로보암의 길을 가시겠습니까? 하나님의 사람의 길을 가시겠습니까? 답은 이미 정해져 있습니다. 오늘 그 정해진 답을 온전히 걸을 수 있도록 하나님께 기도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우리의 힘으로 걸을 수 없는 그 하나님의 길을 걸을 수 있도록 성령님께 간구하는 우리 성도 여러분이 되시길 소망합니다.
기도 드리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오늘 하나님 앞에서 두 길을 걷는 사람을 보았습니다. 오늘 하나님께서는 명확한 두 길을 보여주셨는데 우리의 삶에서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우리 자신을 볼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그 두 길을 선택해야 할 때가 있는 줄 압니다. 주님, 우리의 힘으로는 온전히 그 길을 선택할 수 없음을 고백합니다. 우리가 걸을 수 없기에 예수님꼐서 온전히 걸으셨음을 우리는 압니다. 성령님, 우리와 함께 걸어주시옵소서. 성령님과 함께할 때 우리가 하나님의 사람처럼 하나님의 길을 갈 수 있음을 고백합니다. 이것을 잊지 않게 하시며 오늘 역시도 우리와 함께 하여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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