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메이져리그>라는 게 있습니다. 전 세계 야구 스포츠를 하는 리그 중에는 세계 최고의 리그입니다. <메이져리그>의 야구 시즌이 끝나면 상위권 성적을 거둔 팀들끼리 토너먼트를 치러 결승전까지 갑니다. 이를 <월드시리즈>라고 합니다. <월드시리즈>라는 말을 처음에는 전 세계 최고의 야구팀을 가리는 것인지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 미국을 반으로 가른다면 동부쪽 지구 최고팀과 서부쪽 최고 팀의 최강자 결정전입니다. 곧, 동부 세계와 서부세계의 대결인거죠.
또 세계와 세계의 대결 중 우리에게 흥미를 불러 일으키는 게 있습니다. 대한민국 예능 프로 중에 <우리 동네 예체능>이라고 있습니다. 이 프로그램은 스포츠 중에 한 종목을 골라 배운 후에 연예인들이 성과를 내는 프로그램입니다. 여태까지 한 스포츠로는 탁구, 농구, 축구, 족구 등등 다양한 스포츠를 했습니다. 지금 하고 있는 스포츠가 유도인데 참 흥미를 불러 일으킵니다. 왜냐하면 <우리 동네 예체능> 대표 엠씨가 강호동 씨인데 천하장사까지 지낸 강호동 씨가 과연 비슷한 운동인 유도에서는 어떤 모습을 보여줄까 하는 기대감입니다. 이 기대감때문인지 조금은 주목을 받고 있고 또 강호동씨가 그 기대에 부합하는 모습으로 유도를 몇 년한 상대도 바로 한판승을 따버리는 장면을 보여 주었습니다.
이종격투기라는 스포츠가 인기를 끈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인거 같습니다. 권투 선수와 태권도 선수가 붙으면 어떨까 하는 기대감, 그러니깐 세계와 세계의 만남은 우리에게 강한 흥미를 끕니다.
그런데 하나 강하게 흥미를 끄는 세계관의 대결들이 있습니다. 기독교 세계관을 지닌 바울이 그리스, 로마의 세계관을 지닌 장소로 선교를 떠난 것입니다. 기독교와 그리스 철학이 만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예수의 제자들과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의 후손들과 만난다면 어떤 충동일 발생할까요? 바울 서신은 어쩌면 이러한 충돌의 결과물로 보일 수 있습니다. 오늘 골로새에 보낸 바울의 편지에는 어떤 충돌이 있었는지 한 번 살펴 보겠습니다.
먼저 골로새 지역에 대한 고고학적 발견이 그렇게 많은게 아니라 무언가 외적 증거들은 없지만 그럼에도 골로새서 안에 적힌 내용을 중심으로 어떤 문제들이 있었는지 보겠습니다.
첫 번째는 가장 큰 문제는 유대교와 이교도의 혼합주의였습니다. 오늘 본문 8절이 가장 잘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는 사로잡을까 주의하라”를 보면 철학과 사로잡을까를 주목해 봅니다. 헬라적 유대교를 당시는 필로나 요세푸스라는 사람의 기록에서 볼 수 있듯이 철학이라고 표현을 했습니다. 그리고 “사로잡을까”라 말은 상당히 드물게 쓰이는 헬라어였는데 원문을 보면 유대교 회당과 비슷한 단어였습니다. 그러니깐 언어유희로 회당을 강하게 비판한 것이지요. 그리고 전통은 유대교의 전통을 의미합니다. 초등학문은 원어를 해석하기까 까다로운데 기초적 원리로 해석할 수도 있고 각 지역을 다스리는 신들을 의미할 수도 있습니다. 각 지역에 신들로 번역하면 뒤에 이어질 10절에 통치자와 권세를 대조적인 의미로 쓰일 수 있습니다.
어찌되었든 바울은 그리스 세계에서 말하는 신들이 만물에 충만한게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모든 것이 충만하다고 말합니다.
두 번째는 유대교를 아직 못 벗어난 자들이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 11-16절을 본다면 할례, 율법, 절기, 초하루, 안식일은 유대인들이 지키는 전형적인 일들로 이것은 유대인과 이방인들을 구분하는 것들이었습니다. 또, 21절 역시 유대의 율법의 내용이기도 합니다. 갈라디아서에서도 문제가 들어났듯이 당시에는 유대 기독교인들 중에 아직 옛 것들을 버리지 못한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오늘 본문에도 그러한 사람들이 골로새서에도 나타납니다.
또, 18절에 보면 유대 신비주의자들이 나옵니다. 이들은 꾸며낸 겸손 그러니깐 금욕주의자들로 수행을 하여 환상을 보았던 자들입니다. 또 이런 자들 중에서는 천사들과 소통을 할 수 있다는 사람들이 종종 있기도 했습니다.
바울은 특정한 형태의 경건과 헌신으로 유혹하는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에게 일편단심의 헌신을 보내라고 말합니다.
이렇듯 오늘 우리가 가장 기억해야 할 것이 본문 12절 말씀입니다. 다 같이 12절 말씀을 읽겠습니다.
12절: 너희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되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
바로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일으킴을 받는다는 겁니다. 어떠한 경건한 행위와 뛰어난 겸손이 아니고 또, 헬라의 철학처럼 그들의 가르침이 아닌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이 우리의 기준이요, 가르침이요, 삶의 고백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 날 우리는 골로새 당시의 교인들처럼 유대교로 개종하라는 압박은 더 이상 없습니다. 오늘 날 기독교 세계관을 가진 우리는 어떤 세계관과 충돌을 하고 있습니까? 그 세계관을 찾는 게 우리가 해야 할 신앙생활의 고민이기도 합니다.
설교를 마무리 하도록 하겠습니다. 이제 우리에게 주어진 세상은 다른 세상이 되었습니다. 골로새 교회 당시는 이교도와 유대교의 혼합된 것들로 혼란을 겪고 있었습니다. 당시에 팽배했던 분위기가 그러했기에 바울은 편지를 쓸 수밖에 없었습니다. 오늘 날 거대한 세계관 중 하나를 따지자면 황금만능주의가 아닐까 싶습니다. 맘몬이라는 이 우상은 삶의 속속까지 우리를 유혹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럴 때일수록 우리는 더욱 고백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이 그 모든 것에서 승리하였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도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고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살아난다는 그 고백을 기억하십시오.
오늘 하루 그 고백이 가득 넘치는 하루가 되길 소망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기도 드리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오늘 날 우리는 다양한 사회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가지 우리를 강하게 공격하는 것이 있습니다. 물질과 돈으로 모든 것이 해결가능하다는 우상이 우리를 강하게 유혹합니다. 마치 물질과 돈의 정점을 가진 사람들이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것 같고 모든 것을 해나가는 것 같이 보입니다. 우리는 그것에 눌리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오늘 바울이 고백하듯이 세상의 권력자들과 통치자들이 이 역사의 주인이 아니라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역사의 주인이 되신다고 했습니다. 주님, 우리는 그 고백을 믿고 따릅니다.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으로 승리했듯이 우리 역시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한다고 고백합니다. 이처럼 주님께선 그때도 승리하셨고 여전히 지금도 승리하심을 믿습니다. 저 세상의 권력자들과 통치자들이 승리하는 것처럼 보일 때 우리의 고백을 생각나게 하소서.
오늘 또 헌금 드린 손길이 있습니다. 주님, 이 손길을 기억해 주시고 하늘의 복을 내려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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