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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새벽설교

[설교문] 에베소서 5장 1-33절(엡 5:1-33, 엡 5:1~33)

by 카리안zz 2020. 2.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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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세상에 기독교의 메시지 중 가장 거부감을 가지는게 바로 인간은 죄인이라는 말일 겁니다. 물론 이 죄인이라는 말을 잔혹한 사이코패스와 같다는 말로 오해를 하는 것 같기도 하지만 그게 아니라도 죄인이라는 말에 거부감 가지고 있다는 건 사실입니다. 오히려 이 죄인이라고 말하는 기독교에 역으로 공격을 합니다. 종교가 없는 세상을 상상해 보라고 말합니다. 대표적으로 존 레논의 <Imagine>이란 노래 가사가 그렇습니다. 현대에 와서 엄청난 발전을 했고 이제는 기독교가 없이도 우리 스스로 윤리적으로 충분히 살아갈 수 있음을 선포했습니다. 서구의 68혁명 이후 많은 곳으로부터 해방이 일어났고 좋은 점도 일어났지만 부작용도 있었습니다. 대표적으로 성해방 운동이 그렇습니다. 억압된 성을 해방시킨다는 명목하에 무분별한 성관계가 일어났습니다.

 

상황이 이러한데 저는 오히려 되묻고 싶습니다. “정말 세상은 악하지 않은가?”, “정말 우리의 힘만으로 정의롭고 공의가 강같이 넘치는 그런 세상을 만들 수 있는가?” 이 질문에 아주 좋은 통찰력을 주는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랭던 길키입니다.

랭던 길키는 하버드를 수석 졸업했고 그 다음해 중국으로 건너가 영어를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차 중국과 일본의 전쟁이 일어났고 일본의 진주만 공격으로 중국 땅에 있던 적대국 사람들은 포로 수용소로 가게 되었습니다. 그 중에는 랭던 길키가 있고 또 <불의 전차>로 유명한 에릭 리델도 있었습니다. 포로 수용소의 이름은 <산둥 수용소>였고 랭던 길키가 포로 수용소의 이름으로 그곳에서 있었던 일들을 책으로 엮었습니다. 그래서 책의 이름이 <산둥 수용소>입니다. 랭던 킬키는 그곳에서 그의 뛰어난 통찰력을 발휘하여 한 가지 사실을 받아드렸습니다. 바로 인간의 원죄였습니다. 여지껏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길키 역시 서구의 합리주의를 믿고 있었던 사람입니다. 인간의 이성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 가능하다고 믿고 있었던 겁니다. 그러나 산둥 수용소에서의 생활은 이것을 완전히 뒤바꾸어 버렸습니다.

왜냐하면 합리적이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이 수용소에서는 전혀 그런 모습을 안 보였기 때문입니다. 많은 것을 가지고 있었을 때는 여유롭고 나눠주며 상냥한 이웃이었지만 제한된 음식과 물품 사이에서는 그러한 것이 전혀 없었습니다. 조금만 나눠주고 양보한다면 모두 다 좋은 상황인데 자기 걸 안 주겠다고 벽을 치고 있던 사람들은 결국 자기 것도 잃고 사람도 신망도 모두 다 잃어버리는 것이었습니다. 이게 한 두 번이지 계속해서 수용소 생활에서 목격되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랭던 길키는 서구가 버렸던 원죄를 받아 드렸습니다.

 

이렇듯, 세상이 여전히 어그러져 있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입니다. 물론 바울 당시의 성윤리와 부부간의 윤리는 정말 지금과 비교해서도 엄청난 타락한 세상이었습니다. 동성애가 만연했고 여자는 열등한 존재로 여겼고 결혼에 대한 소중함도 별로 없었기에 많이 문란하기도 했습니다. 유독 그 당시가 더 심하긴 했지만 오늘날에도 성에대한 문제는 자유롭지 않습니다. 리처드 마우의 <무례한 기독교>에 있던 내용인데 기독교 대학에서 자신의 강의를 듣던 한 여성이 있었답니다. 이 여성은 결혼을 하지 않은 채 한 남자와 동거를 하고 있었는데 동거를 하니 죄책감에서 해방되어 자유함을 얻고 있다고 말하는 거였습니다. 그런 그녀가 두 달 뒤 연락이 왔는데 자유함을 느끼던 표정은 사라지고 슬픈 표정을 짓는 거였습니다. 동거하던 남자는 또 다른 여자를 찾아 떠났고 자신은 자유한 줄 알았더니 되려 상처가 깊이 났던 거였습니다. 결국 자유라는 이름의 착취가 있었던 겁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오늘 본문은 이 악한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럼 오늘 본문 2절과 19-20절을 읽어보겠습니다. 다같이 읽겠습니다.

 

2: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희생제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

 

19: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20: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아멘

 

 

예수님처럼 살아가는 겁니다. 그리스도가 희생했듯이 우리 역시 희생하며 살아가는 겁니다. 언제나 시선을 늘 그리스도에게 두는 겁니다. 빛은 어둠을 밝힌다고 바울은 오늘 말합니다. 빛이 어둠을 이깁니다. 이 당연한 사실처럼 선이 악을 이긴다고 성경은 오늘 증언합니다.

 

설교를 마무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설교 서두에 존 레논의 노래 가사에는 종교없는 세상을 상상해보라는 내용을 소개했습니다. 저도 하나 상상해 보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없는 세상을 상상해 보라! 노예를 해방시킨 윌리엄 월버포스가 없었다면? 흑인을 해방시킨 마틴 루터 킹 목사가 없었다면? 인종차별제도를 폐지한 넬슨 만델라와 데즈몬드 투투가 없었다면? 성산 장기려와 맨발의 최춘선 할아버지 같은 분들이 없는 세상을 상상해 보십시오.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의 빛과 소금입니다. 마지막으로 오늘 본문 에베소서 514절 말씀을 제가 읽고 기도하겠습니다.

 

14: 드러나는 것은 다 빛입니다. 그러므로 잠자는 사람아, 일어나라. 죽은 사람 가운데서 일어서라. 그리스도께서 너를 환히 비추어 주실 것이다아멘

 

기도 드리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세상은 여전히 어그러져 있고 뒤틀려져 있습니다. 아직도 여전히 악은 도사리고 있습니다. 또 세상은 이 악을 은폐하고 악하지 않은 것처럼 우리를 믿게끔 합니다. 그 유혹에서 우리를 건져 내주시옵소서. 인간은 모두 전적으로 타락하였고 그 세상 역시 악합니다. 주님 우리가 이것을 인정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렇기에 주님의 은혜를 구합니다. 우리의 힘으로는 스스로 빛날 수가 없습니다. 주님, 오늘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를 비추어주시옵소서. 산 위에 마을과 언덕 위에 도시를 비춰주신 것처럼 우리를 비춰주시고 우리 교회를 주님의 빛으로 비춰 주시옵소서. 그 빛의 힘으로 예수님처럼 살아가길 원합니다. 그럴 때 길 잃어버린 영혼들이 그 빛을 보고 올 줄로 믿습니다.

오늘 헌금드린 손길이 있습니다. 이 손길 가운데에 하늘의 복을 내려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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