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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새벽설교

[설교문] 누가복음 13장 1-35절(눅 13:1-35, 눅 13:1~35)

by 카리안zz 2020. 2.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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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전 유시민씨의 강의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 강의에서 유시민씨는 아주 합리적인 지적을 했는데 그 지적이 머냐면 본디오 빌라도가 왜 나쁜 사람인지 모르겠다는 지적이었습니다. 본인은 왜 빌라도가 사도행전에 이름이 적힐 정도로 나쁜 행동을 했는지 모르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교회를 다니는 사람이 아니고 또, 신학을 전공하지 않은 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합리적인 질문이지요. 그러나 유시민씨가 정치평론가답게 조금만 사려 깊게 1세기 팔레스타인 정치판을 봤다면 이야기는 달라질 것입니다.

 

사실 빌라도가 탐욕스럽고, 완고하며, 잔인하고, 약탈과 강압에 의지하는 인물로 보는 건 성경책에서가 아니라 성경책 외에 당시 기록에서 볼 수 있는 내용입니다. 빌라도는 부임하는 초기부터 이스라엘 사람들을 마구 죽였습니다. 그렇게 폭압적으로 이스라엘 사람들을 죽이고 잔인하게 굴었는데 예수님 재판할 때는 약간 그런 느낌이 나지가 않습니다. 그것도 이유가 있습니다. 로마의 황제 밑에서 빌라도의 뒤를 봐주던 사람이 있었는데 이 사람이 그만 숙청을 당해버린 겁니다. 세자누스라는 사람인데 이 사람과 친분이 두터운 빌라도였기에 몸을 사려야 했고 자신이 황제의 편에 있다는 것을 확실히 보여줘야 했습니다. 그런데 과도한 충성심이 되려 해가 되었는데 이유인즉 빌라도가 황제를 기쁘게 하려고 황제의 이름이 새겨진 방패를 예루살렘에 들여다 논적이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우상이 새겨진 게 예루살렘 한복판에 있으니 굉장히 화가 났었고 특히나 명절날이었기에 더 했습니다. 여러 차례 빌라도에게 치워 줄 것을 이야기 했지만 빌라도는 거절했습니다.

그런데 당시 황제였던 디베료 황제는 유대인에게 관대한 정책을 펼쳤던 사람이었습니다. 헤롯의 아들들에게 이 사실을 편지로 듣자마자 굉장히 화를 냈고 이 소식을 들은 빌라도는 이때부터 몸을 조심하기 시작했습니다. , 예수님의 판결때 그가 자신의 입장을 끝까지 못 밀어붙인 건 또 한번더 황제의 귀에 분란의 소식이 들린다면 자신의 목이 날아가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렇게 보듯이 오늘 본문 시작에 빌라도의 만행부터 시작합니다. 갈릴리 사람 몇이 제사를 드리고 있는데 빌라도가 죽여버린 것입니다. 이 소식을 몇 사람이 와서 예수님께 알려주었습니다. 그런데 이 소식은 단순히 정보 전달이 아니었습니다. 두 가지 의문이 담긴 정보였습니다. 첫째는 예수님도 갈릴리 사람이고 많은 추종자들이 있었기에 죽을 수도 있다는 암시와 두 번 째로 이 사건이 무슨 의미가 있는 건지를 묻는 정보였습니다. 특별히 빌라도에게 죽은 사람들이 더 죄인이기에 죽은 거냐라는 의문이 들어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첫 번째 의문에 대해서는 대답을 하시지 않고 두 번째 의문에 대해서만 대답을 해주십니다. 예수님의 대답은 특별히 그들이 악해서가 아니라 모두가 망할 상황에 처해있다는 현실을 일깨워 주십니다. 그러면서 포도원 비유를 통해 이스라엘 사람들이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 자세히 알려 주십니다. 3년이나 열매를 맺지 못하는 무화과나무는 당연히 베여야 하는데 포도원 지기가 한번만 더 기회를 달라고 주인에게 부탁을 하는 겁니다. ! 무화과나무는 이스라엘이고 포도원 지기는 예수님을 뜻합니다. 심판받기 직전의 상황임을 예수님께서 비유로 말씀해 주십니다.

 

그리고 무대는 안식일 날 회당으로 바뀝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그곳에서 18년동안이나 귀신이 들렸으며 허리가 꼬부라진 여인을 고쳐주십니다. 그러자 그걸 본 회당장이 예수님께 딴지를 겁니다. 아니, 다른 날들도 많은데 왜 안식일날에 고쳐주냐고 따졌습니다. 그걸 들은 예수님께서 이 위선자들아!라고 강하게 말씀하십니다. 자기들은 안식일에 소나 나귀가 물을 마시게 하려고 외양간에서 풀어주는데 사탄에게서 18년 동안 매인 이 아브라함의 딸을 풀어주는 것에는 왜 딴지를 거냐?라고 강하게 되 물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여기서 예수님께서 아브라함의 딸이라고 말씀하신 것에 주목해야 합니다. 단순히 이 여인의 치유는 아픈 사람이 나은 그런 수준의 사건이 아니었습니다. 아브라함의 딸! 그러니깐 이스라엘 전체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 여인이 사탄에게 사로잡혔던 것처럼 이스라엘 역시도 사탄의 체제에 사로 잡혀있다는 것입니다. ! 앞서 이스라엘 사람들이 모두 망하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그녀를 이 사탄의 체제에서 풀어주십니다. 곧 이스라엘도 풀린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시길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겨자씨와 같고 누룩과도 같다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 나라의 시작은 이렇게 작은 것에서 시작된다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이 이 여인을 치유해준 이 작은 행동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한 여인에게 일어난 한 번의 치유가 곧 사탄의 굴레를 깨뜨릴 하나님 나라의 시작이 될지 그 누가 생각이라도 했겠습니까? 그렇지만 아주 작은 겨자씨가 나무가 되듯이 보잘 것 없는 작은 누룩이 반죽 전체를 부풀어 오르게 하듯이 하나님 나라의 시작이 그렇게 들려옵니다.

그리고 이후에 좁은 문에 대해서 이야기 하시며 민족 전체에 마지막 기회에 대해서 한번 더 강조하십니다.

그러던 차에 어떤 바리새인들이 와서 예수님께 하나 정보를 줍니다. 헤롯이 예수님을 죽이려고 한다는 정보입니다. 그 정보를 들은 예수님은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오늘과 내일 귀신을 내쫓고 사흘째 되는 날 이 일을 끝낸다는 대답을 전하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33절 말씀에 예루살렘에서 죽겠다는 말씀을 하십니다. 모두 다 같이 33절 말씀을 한 번 읽어봤으면 합니다. 33절입니다.

 

33: 그러나 오늘과 내일과 모레는 내가 갈 길을 가야 하리니 선지자가 예루살렘 밖에서는 죽는 법이 없느니라

 

우리는 앞서 오늘 본문 1절에서 어떤 사람들이 예수님께 드렸던 정보에 대해서 들었습니다. 그 정보에는 두 가지 질문이 담겨있다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첫 번째 질문에는 대답을 하시지 않으시고 두 번째 질문에 대답만 하셨습니다. 바로 오늘 33절 본문이 첫 번째 질문에 대한 대답입니다. 예수님! 예루살렘에 가면 죽을 수도 있는데 가시렵니까? 이 첫 번째 질문에 예수님은 내가 갈 길은 죽으러 가는 길이다라고 대답하십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끊임없이 회개를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회개, 곧 너희가 가는 그 길에서 돌이켜 내가 걷는 이 길로 오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바로 예수님이 걸을 그 길이 사탄의 체제에 지배당하는 이스라엘을 해방시키는 길임을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그 힌트랄까요? 여인을 치유해주시면서 친히 보여주셨습니다.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이 걸었던 길들이 어떤 게 있을까요? 어떤 사람들은 진정한 이스라엘의 해방은 로마를 무찌르는 것이라며 칼을 들고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려던 사람들도 있었고, 이스라엘의 해방에는 관심이 없고 오로지 사탄의 체제 아래에서 꼭두각시가 되어 종이 되었던 사람도 있었고, 정반대로 세상을 외면하고 아에 자기들끼리 광야에 나 앉아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걸었던 길은 달랐습니다. 세상의 한 복판에서 자신을 내어주신 것! 죽으러 가셨다는 것! 하지만 그 길이 정말로 사탄의 체제를 굴복시키고 하나님 나라의 승리가 도래했다는 것을 우리는 모두 알고 있습니다.

 

오늘날에도 우리에게 보이는 수많은 길들이 있습니다. 각자 주어진 삶이 다르기에 그 길들은 아주 다양한 형태로 우리에게 보일 것입니다. 이 수많은 길들이 우리를 유혹하지만 예수님이 걸었던 우리가 지금 걷고 있는 이 길을 포기하지 맙시다. 오늘 말씀은 나를 깨우는 하나님의 메가폰으로 생각합시다. 우리가 어디를 걷고 있는지 예수님은 어디를 걷고 계시는지. 오늘 하루 예수님이 어디에 계신지 깊이 묵상하는 하루가 되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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