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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새벽설교

[설교문] 마태복음 20장 1-34절(마 20:1-34), (마 20:1~34)

by 카리안zz 2020. 2.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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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의 시작은 유명한 포도원 품꾼 비유로 시작됩니다. 그런데 오늘 비유는 앞장 베드로의 질문에 이어지는 비유입니다. 27절에 베드로는 이렇게 질문했습니다. 제가 한 번 읽어보겠습니다.

 

1927: 이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사온대 그런즉 우리가 무엇을 얻으리이까

 

이렇게 질문을 했을 때 예수님은 제자들의 희생에 보답을 받을 것을 말씀해 주십니다. 부자 청년같이 먼저 된 자가 나중 되고 제자들같이 나중 된 자 먼저 될 자가 많다고 말씀해 주십니다.

 

그리고는 바로 포도원 품꾼 비유로 다시 한 번 더 대답을 해주십니다. 내용은 이렇습니다. 어느 한 포도원 주인이 있는데 일꾼들을 고용하려고 아침부터 부지런히 움직였습니다. 오전 6, 9, 12시에 장터 나가서 일꾼들을 고용합니다. 이 일꾼들에게는 각각 하루 일당을 주기로 약속했습니다. 그런데 이 주인이 오후 3시에도 일꾼들을 고용하고 심지어 오후 5시에도 일꾼을 고용하러 갔습니다. 당시 사람들이 하루 일하는 시간은 오후 6시까지였는데 그러니깐 지금 일꾼을 뽑아도 끽해야 1시간밖에 일 못하는 사람들까지 고용해 오는 겁니다.

그런데 이제 문제는 일당을 줄 때 생겼습니다. 오후 5시에 일한 사람들에게 맨 먼저 일당을 줬는데 이 사람들에게도 역시 하루 일당을 주는 겁니다. 그걸 보고 맨 처음 온 사람들이 순간 기분이 좋아집니다. 자신들은 좀더 일을 했기 때문에 돈을 더 줄지 알았던 겁니다. 그런데 막상 일당을 받을 때는 1시간 일한 사람과 같은 돈을 받은 겁니다. 자본주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가장 불합리한 장면이 아닐 수 없습니다. 당연히 따져야 합니다. 요즘 말로 이런 갑질의 횡포가 어디 있습니까. 그런데 이 주인의 대답이 가관입니다. “당신들은 나에게서 하루 일당을 받길 약속했고 또 내가 주고 싶다는데 당신들이 먼 상관이냐이런 대답을 합니다. 지금 같았으면 노동청에 고발을 해서 소송을 걸었을 겁니다. 아니면 언론플레이를 해서 악덕 기업주로 낙인을 찍을 수도 있겠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가만히 누가 갑질을 하고 있는지 한 번 살펴봐야 겠습니다. 가만 생각해보면 이 고용주는 참 이상한 고용주입니다. 이 시대에는 의지할 만한 경찰도 없고 노동조합도 없고 고용주가 그러니깐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시대였습니다. 이런 시대에 일꾼으로 뽑아주는 것도 감사한거고 거기에다가 하루 일당을 챙겨준 것도 감사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아주 비효율적으로 많은 일꾼들을 뽑았습니다. 이는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긴 주인의 아주 자비로운 행동이었습니다. 거기에다가 주인이 고용한 자들은 어떤 자들입니까? 하루 일과가 다 끝나는 오후 5시에 되어서도 일을 하려고 했지만 외면당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아마 당시 죄인으로 여겨졌던 사람들이었던 같습니다.

 

이렇게 사랑이 넘치고 자비로운 포도밭 주인에게 대드는 것은 은혜를 잊어버린 것은 두말할 것도 없고 외면 받는 사람들을 더욱더 벼랑끝으로 모는 아주 극악한 말과 행동입니다.

! 이 이야기의 하나님 나라는 결코 일당에 매이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계약이 아닙니다. 계약은 더 나은 거래를 위해 협상을 할 수 있는 것이지만 하나님은 우리에게 약속을 맺으시고 그 대신 우리로부터 모든 것을 요구하시는 언약을 맺은 것입니다. 하나님이 약속을 지키는 것은 우리가 노력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분의 자비로운 성품이 그대로 흘러나오는 것입니다.

 

그리고 비유를 말씀하신 뒤 예수님은 자신이 수난을 당할 거라고 말합니다. 이번이 벌써 세 번째인데 이번에는 노골적으로 십자가에서 죽는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이때 앞서 첫 번째, 두 번째 수난을 당하실거라고 말했을 때와는 많이 다른 반응을 제자들은 보입니다. 첫 번 째, 두 번째는 예수님이 죽는다는 말을 하니깐 제자들이 말리고 근심했는데 오늘 세 번째 반응은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가 예수님께 와서 하나님 나라의 자리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깐 예수님이 세울 나라가 로마 제국과도 같은 왕국을 생각했던 겁니다. 이 말을 하고 나니깐 제자들의 반응이 더 가관입니다. 나머지 제자들이 분개했습니다. 왜냐면 내심 자기들이 그 자리에 들어가야 하는데 야고보와 요한이 먼저 선수를 쳐버려서 그렇습니다. 이로서 예수님이 포도원 품꾼 비유를 했던 이유가 분명해졌습니다. 포도원 품꾼 비유는 제자들에게 에둘러서 했던 경고였습니다. 너희는 지금 먼저된 사람처럼 그래서는 안 된다! 그게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포도원 품꾼 이야기를 했던 이유였습니다. 한 번 다같이 오늘 본문 25절에서 27절까지을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25절에서 27절까지입니다.

 

25: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이르시되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그들을 임의로 주관하고 그 고관들이 그들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26: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아야 하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27: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그리고 이야기 전환되어서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맹인이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이때에도 맹인들은 주업무가 구걸로 돈을 버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아마 이들은 평생을 그렇게 살았을 것입니다. 그들이 예수님이 지나가신다는 소리를 듣고 예수님에게 간 것도 어쩌면 돈이 목적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다윗의 자손이시여그러니깐 왕이시여라고 부르면 기분이 더 좋아져서 평생 구걸하지 않을 만큼 돈을 줄 수도 있지않을까 해서 주변에서 시끄럽다고 하는데도 크게 크게 소리 질렀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순간 정적으로 소리가 멈추고 예수님이 다가오는 소리가 들리는 겁니다. 그리고 평생 사람들이 하지 않았던 말, 아니 사람들이 이 맹인들에게 말은 걸었을까요? 불쌍함과 연민이 가득한 눈빛은 보냈을지언정 혼잣말로 아이고 불쌍해라고 말했을지는 몰라도. 그런데 예수님은 평생 들어보지도 못했던 말을 합니다.

내가 너희를 위해서 무엇을 해주길 원하느냐?”

그들은 이 짧은 시간 엄청난 고민을 했을 겁니다. 무슨 뜻이지? 예수님이 해주신다했지만 못해주면? 차라리 안전하게 평생 해오던 말인 돈 달라는 말을 할까? 이런 고민을 했을 겁니다.

그런데 그 맹인들의 대답은 마음속 평생을 짊어졌던 응어리. 자신들 평생의 고통의 문제를 말합니다. 다같이 오늘 본문 33절을 읽겠습니다. 33절입니다.

 

33: 이르되 주여 우리의 눈 뜨기를 원하나이다

 

그들의 평생 갈망, 평생을 매여왔던 것, 평생의 고통! 그들 평생의 죄악으로 인해 씨름하였왔던 바로 눈을 뜨는 것이었습니다. “주여! 눈 뜨기 원합니다.” 앞에 이야기들과 관련없을 것 같았던 이 두 맹인 이야기는 사실 제자들과의 대조였습니다. 마치 오후 5시에도 장터에 일꾼을 뽑으러 갔던 그 포도원 주인의 모습과 예수님께서 두 맹인의 외침에 걸음을 멈춘 것이 연결됩니다. , 예수님은 똑같은 질문을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에게 했습니다. 이 어머니의 대답과 제자들의 반응은 마치 포도원의 먼저 온 자들을 연상케 합니다.

 

그러나 이 두 맹인의 대답은 달랐습니다. 우리에게는 갈망하는 것이 있습니다. 돈으로 채울 수 있을 것같은 갈망. 명예로 채울 수 있을 것같은 갈망. 연인과의 사랑, 부모와의 사랑, 친구와의 우정! 이것으로 채울 수 있을 것같은 갈망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모든 사람에게는 하나님이 아니고서는 채울 수 없는 깊은 갈망이 있습니다. 오늘 두 맹인은 그것을 하나님께 구했습니다.

오늘 우리도 두 맹인처럼 그렇게 기도했으면 합니다. 깊은 우리의 갈망을 하나님께 기도했으면 합니다. 이 악의 근원과 고통의 깊은 문제 속에서 다시 한번 눈을 뜨길 원한다고 하나님께 갈구하는 시간이 되고 그런 하루가 되길 소망합니다.

 

기도 드리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주님, 우리는 갈망합니다. 오늘 두 맹인이 주님께 간구했던 마음 깊숙한 그 갈망을 주님께 아뢰었듯이 우리도 마음속 깊은 곳에 있는 가려져 있는 우리의 갈망을 이 새벽에 간구합니다.

때론 우리가 제자들같이 권력을 먼저 구할 때가 있습니다. 물질을 먼저 구할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으로 우리의 마음을 먼저 채우려고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이 돌이켜 다시 주님을 올바로 따랐듯이 우리 역시도 만일 그렇다면 돌이켜 다시 주님을 따르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늘 사랑과 자비가 넘치는 하나님을 봤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정의로움에 갇혀서 하나님을 제단하는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게 해주시며 외면받는 이웃들이 실은 나 자신일 수도 있으며 나의 동생, 나의 형, 나의 언니, 나의 가족일 수도 있다는 것을 우리로 깨닫게 하여 주십옵소서. 우리로 하나님 마음을 늘 깨닫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늘 헌금드린 손길이 있습니다. 이 손길을 귀하여 여겨주시며 주님께서 하늘의 복을 내려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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