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기 말부터 19세기 초까지 서아시아 지역에 고고학적 발굴이 대대적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이 때 수많은 문서들이 발견되었는데 이 발견된 문서들 중에 성경과 유사한 이야기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성경의 권위를 깎아 내리며 ‘아, 믿을 만한게 되지 않구나’ 이렇게 생각했더랬습니다.
그러나 성경과 이 문서들을 점점 더 연구해보니 유사점보다는 차이점이 훨씬 두드려졌습니다. 형식은 비슷할지 몰라도 내용면에서는 상당한 차이들이 많았습니다. 오히려 성경의 진정성이 드러났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오늘 본문에서도 다른 문화들과의 차이점이 나타납니다. 오늘 본문 2절을 본다면 “이스라엘 하나님 나 여호와가 그리로 들어왔음이라”는 말씀을 하십니다. 이 본문을 이해할 때는 고대 바벨론 종교 의식과 관행을 염두해 두어야 합니다. 오늘날 설날과 같은 큰 행사날에 대행진을 했는데 그날 그들은 신의 신상을 메고 큰 문을 열어 두어 들어오게 했던 것입니다. 바벨론의 신은 이렇게 어딜가든 메여서 운반되어야 하는 존재이지만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성소에 들어가거나 성소를 떠나기 위해 허가나 도움이 필요 없으신 분입니다.
그리고 시편 24편 9절에서 10절의 이미지가 떠오릅니다. 제가 한 번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9절: 문들아 너희 머리를 들지어다 영원한 문들아 들릴지어다 영광의 왕이 들어가시리로다
10절: 영광의 왕이 누구시냐 만군의 여호와께서 곧 영광의 왕이시로다
성전에 들어오신 하나님은 문을 잠그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이제 다시 돌아와 영원히 다스리신다는 말씀입니다.
이후 에스겔은 계속해서 예언을 하는데 4절에서 31절까지입니다. 제사 봉사자들과 그들의 역할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성전에 들어가기에는 굉장히 삼엄한 경계와 복잡한 절차가 있습니다. 어떤 성경학자는 이것을 두고 원자력 발전소를 예를 들어 설명했습니다.
당시에는 성전에 들어가는 것을 원자력 발전소에 들어가는 것처럼 위험하게 생각을 했습니다. 원자력 발전소에서도 방사능의 위험 때문에 엄격한 제한이 있었습니다. 방사능을 부주의하게 다루면 재앙과 같은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떤 구역은 접근을 엄격히 제한하고, 특별한 절차를 위하여 특별한 옷을 입고 발전소를 작동시키는 사람들과 방사성 물질 사이에 치명적인 접촉을 막으며, 방사능이 외부로 유출되지 않도록 해야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제사장들은 그들의 의복과 행위에 특별한 주의를 기우려 자신들에게 돌아갈 위험을 피하고 위험한 수준의 거룩함이 일반 사람들과 접촉되지 않도록 막아야 했던 것입니다.
이러한 경계심은 다른 곳보다 에스겔의 환상에서 더 분명히 나타났니다. 이것은 예루살렘 성전이 이방인들에게 더렵혀진 후에 그 성전이 하나님의 거룩한 진로로 멸망당했던 것을 직접 경험한 에스겔이기에 경계심은 더 삼엄했습니다. 마치 체르노빌 원전 사고를 겪었던 사람들일 수록 더욱 삼엄하게 경계를 했던 것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구분은 레위기와 신명기를 기초로 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하나 눈여겨봐야 할 것이있는데 바로 본문 23절입니다. 다같이 한번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본문 23절입니다. 시~작!
23절: 내 백성에게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의 구별을 가르치며 부정한 것과 정한 것을 분별하게 할 것이며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을 구별하는 것은 그저 제사 때에만 필요했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것은 일상 생활에서 여호와 및 그분과 밀접하게 관련된 모든 것이 거룩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과 나머지 이방 사람들 간의 구분을 뜻했습니다. 바로 정체성과 삶의 행동에 거룩함을 요구하는 것이었습니다. 그저 교회만 왔다 갔다 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모든 곳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라는 요구였습니다.
본문 28~30절 역시 대단히 다른 문화와 구별되는 말씀입니다. 28~30절에는 제사장들에게는 땅이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신명기 18장에도 나오는 말씀인데 당시 이스라엘 주변사회들과는 놀랄 만큼 달랐습니다. 예를 들어, 애굽에서는 신전과 제사장들이 땅의 대지주들이었습니다. 사실 이는 당연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신과 더욱 가까이 있는 사람들일 수록 특별했고 그렇기에 경제적인 힘을 누릴 수 있는 권한이 당연히 생겼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권한으로 남을 지배하고 억압을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머라고 말씀하십니까? 다같이 본문 28절을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28절입니다. 시~작!
28절: 그들에게는 기업이 있으리니 내가 곧 그 기업이라 너희는 이스라엘 가운데에서 그들에게 산업을 주지 말라 내가 그 산업이 됨이라
이는 제사장 지파들을 굶기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게 만듭니다. 이스라엘이 신실하신 하나님을 의존하여도 풍족함을 누릴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남들과 다르게 산다는 것이 너무나 두려운 일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기에 우상의 문제는 그렇게 쉽게 볼 문제가 아닙니다. 우상을 섬기는 그들의 말은 굉장히 설득력이 있습니다. 당시 가나안 주변 토박이들이 이제 막 정착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을 겁니다.
“이봐, 이 땅에서 잘살려면 바알한테 절해야지 여호와는 무슨... 그 옛날 자네들이 광야에서 헤맬 때나 필요했던 신이지 언제 여호와가 농사 한번 지어 봤대? 가뜩이나 비가 안 와서 큰일인데 부정 타는 짓거리들 말고, 당장 내일 바알한테 절하러 와! 안 오면 확 쫓아버릴꺼야!” 아마 그들이 이렇게 말했다면 이스라엘 사람들은 할 말이 없었을 겁니다. 당시 비가 안 오는 것은 당장에 가족의 생사가 달린 절박한 문제였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구별된다는 것! 무엇을 섬긴다는 것은 확연하게 표가 납니다. 이것이냐 저것이냐의 문제입니다.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이런 거대한 유혹들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돈, 여자, 권력, 명예 등등이 있습니다. 또, 세상의 가치관들이 어느새 우리 모르게 머릿속에 스며들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일이라는 생각에 앞서 이것이 돈이 되냐 안 되냐가 먼저 떠오를 때가 많이 있습니다. 더군다나 경제 상황이 더욱이 나빠진 현실에 돈은 우리에게 굉장한 유혹이 됩니다. 돈으로 모든 것을 할 수 있겠다는 우상이 심겨지기도 또, 돈이 없으면 죽을 것이라는 우상이 심겨지기도 합니다. 오늘날의 자기 계발서들 그러니깐 성공을 부치기는 이런 메시지들이 부흥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봅니다.
이러한 우상의 메시지들 속에서 예수님의 말씀은 어둠을 밝히는 빛이 됩니다.
31절: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32절: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 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33절: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아멘
오늘도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나를 따르라! 매 시간 유혹들 속에서 지치고 곤하여지지만 계속 넘어져 있지만은 맙시다.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이 말씀들을 붙잡고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오늘 하루 세상의 유혹들 속에서 멋지게 이겨내는 하루를 보내시길 소망합니다.
기도 드리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오늘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하나님은 세상과 구별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이 유혹들 속에서 우리의 힘으로 그것들을 이길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너무나 나약해서 넘어지고 지칠 때가 많습니다. 주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와 늘 함께하소서. 우리에게 새 힘을 주시옵소서! 그리고 우리를 시험에서 건져내 주시고 악에서 우리를 구하옵소서!
하나님! 하나님은 우리와 항상 함께 걸어주신다고 약속 하셨습니다. 그 약속 믿고 굳게 서겠습니다! 그 약속을 보이는, 그 믿음을 보이는 한 해가 되길 소망합니다. 성령님 우리와 늘 함께하소서.
주님, 오늘 헌금 드린 손길이 있습니다. 주님께서 긍휼이 여겨주시고 하늘의 복을 내려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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