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설교/사도행전

[설교문] 사도행전 18장 1-17절(행 18:1-17, 행 18:1~17)

by 카리안zz 2020. 2. 10.
반응형

 

사도행전 181-17

 

바울은 이제 아덴을 떠나 고린도 도시에 도착합니다. 고린도 도시는 아테네에서 조금 밑으로 가면 있는 도시입니다. 이 도시의 동쪽과 서쪽이 모두 바다로 이어져 있었습니다. 폭이 가장 좁은 지역을 보면 동쪽 바다와 서쪽 바다가 9km채 안 되게 위치해 있습니다. 그렇기에 지중해 지역의 동쪽과 서쪽 무역에서 아주 유리한 입지를 보입니다. 그런데 그뿐 아니라 그리스 북부와 남부의 연결점이기도 합니다. 그러니깐 고린도는 동서와 남북이 교차하는 명실상부한 상업과 무역의 핵심 도시였습니다. 바울이 사역할 무렵 고린도는 매우 번창해 가는 국제적 무역도시였습니다. 그리스하면 유명한 아테네는 오히려 화려했던 과거의 추억만 되씹고 있는 무기력한 대학도시에 불과했습니다.

고린도는 늘 여행객으로 붐볐습니다. 고대 올림픽 경기에 버금갈 정도였고 고대 그리스의 3대 스포츠 축제가 열리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이때 참가자 및 관람객뿐 아니라 로마와 시리아 지방 사이 제국 전역에서 몰려들었습니다. 주후 49년도에 이 경기가 열렸는데 바울이 고린도 도시에 도착했을 쯤과 맞물립니다. 바울은 아마 축제 때 사용되었던 점포와 가판대 등을 보았을 겁니다. 그리고 바울이 한창 사역을 하고 있던 51년도 경에 새로운 축제가 열려 이들 점포가 한창 분주하게 돌아가고 있었을 겁니다.

이렇게 무역을 통해 돈을 벌고 스포츠를 통해 돈을 번 도시이기에 성공을 꿈꾸며 고린도 도시로 가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잘만하면 노예도 도시의 요직에 오를 수 있는 도시가 고린도였습니다. 성공을 향한 야망이 그토록 크니 당연히 경쟁 역시도 치열했었습니다. 그 흔적이 고린도서에서는 잘 나타나기도 합니다. 여튼, 그 도시로 바울은 들어갑니다.

바울은 고린도에 와서 오랫동안 정착을 합니다. 11절에 나왔듯이 16개월 동안 머물러 있었습니다. 시리아 안디옥 이후 처음입니다. 그곳에서 하는 일이 같은 아굴라와 브리스길라도 만났기에 함께 일을 하며 지냈습니다. 당시 로마인들은 육체 노동을 경멸하는 경향이 있었지만 유대인 랍비들과 서기관들은 일을 하며 생계를 유지해갔습니다. 그들은 가르침의 댓가로 사례비를 받는 것을 적절하지 않게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 때문에 바울 역시도 직업기술자로서 충분히 훈련받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5절에 실라와 디모데가 고린도에 온 이후로는 좀 더 적극적으로 복음을 전하는 일에 집중을 합니다. 고린도후서 119절에 보면 그 이유가 조금 나타납니다. 그곳을 보면 “...마게도냐에서 온 형제들이 나의 부족한 것을 보충하였음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가 마게도냐에서 내려온 실라와 디모데가 가지고 온 지원금으로 인해 바울은 복음 전하는 일에 집중을 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여러 비방들과 방해가 있었지만 바울은 주님의 환상을 보고 힘을 얻습니다. 이 말씀을 해주시고 바로 다음 일을 통해 이 도시에서 유대인들이 어떤 취급을 받고 있었는지 잘 나타나는 일이 벌어집니다. 갈리오에게서 재판을 받았을 때의 일입니다. 이 재판에서 이후 나타날 좋은 모습도 있지만 지금 유대인들이 어떤 취급을 받고 있는지 역시 잘 나타납니다.

갈리오가 아가야의 총독이 되었을 때 유대인들이 바울을 고발합니다. 학자들은 이 기록으로 인해 바울의 연대를 잘 측정할 수 있는 구절이라고 봅니다. 왜냐하면 역사의 기록에서도 기원 후 51년에 고린도에 취임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후 52년 초쯤에 건강이상으로 이집트로 요양을 갑니다. 그러니 바울의 연대가 쉽게 추측될 수 있습니다. 갈리오는 그 유명한 시저 황제의 철학 선생인 세네카의 동생이었습니다. 그렇기에 로마에서 갈리오의 위치가 적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어쩌면 그의 판결은 황제와 연이 닿는 명성으로 인해 로마세계에서 하나의 선례가 생길 수도 있습니다. 이 판결에서 만약에 복음이 반역이다, 범죄다 라고 확정된다면 상당히 어려워질 수도 있는 상황입니다.

그러나 다행히 유대교 안의 논쟁이기에 로마와는 상관이 없다는 판결이 선언됩니다. 이 말은 유대교는 로마법에 보호를 받고 있는데 바울이 전하는 복음 역시도 그 보호를 받을 수 있다는 말이 됩니다. 적어도 이후 12년 동안은 복음을 전하는 것 자체로 바로 감옥에 가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 판결 이후 사람들의 반응이 심상치 않습니다. 회당장 소스데네를 잡아서 모든 사람이 때리는데 갈리오는 이를 방치합니다. 당시 고린도에서 얼마나 반유대적인 정서가 심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바울 역시도 유대인인기에 그런 분위기에 노출되어 있었고 그리스도인이기에 유대인에게도 역시 폭력적인 위협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하나님께서 해주셨던 말씀이 바로 오늘 본문 9-10절입니다. 우리 다같이 9-10절 말씀을 읽겠습니다.

 

9: 밤에 주께서 환상 가운데 바울에게 말씀하시되 두려워하지 말며 침묵하지 말고 말하라

10: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어떤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 이는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 하시더라

 

오늘 우리가 복음을 전하는 것에 두렵진 않지만 부끄러워 합니다. 어제도 교회 안 다니는 제 친구를 만났는데 대번에 그 전 모목사님을 말하며 어떤 사람이냐고 묻습니다. 지인 중에도 교회 안 다니는 사람들이 전 모목사님 이야기하며 교회를 이상하게 본다는 겁니다. 꼭 전도해야 하는 사람인데 이런 일들이 터지니 복음 전하는게 힘들다고 합니다. 바울은 두려워 침묵하려 했다면 우리는 부끄러워 침묵하려 합니다. 그래도 저는 오늘 주님께서 바울에게 하셨던 말씀을 그대로 받고 싶습니다.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대한민국에 그래도 아직 내 백성이 많다고 말입니다. 주변에 아무리 해서는 안 되는 말들이 난무하더라도 교회는, 우리는 부끄러워 하지 않고, 위축되지 않고 해야할 말을 전해야 합니다. 그런 OO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기도 드리겠습니다.

첫 번째로, 교회를 위해서 기도하겠습니다. 대형교회와 몇몇 목회자들이 이상한 말들과 해서는 안 될 말들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에 부끄러움을 느끼고 위축되려 하지만 복음까지 부끄러워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아니 오히려 주님께서 고린도 도시에 백성들이 많음을 전해주셨듯이 우리 교회에서도 함께 하나님의 복음을 전할 사람들이 많아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 달라고 기도합시다.

 

두 번째로, 이번 주 예배를 위해서 기도하겠습니다. 예배 가운데서 부끄러움에 위축되고 침묵하는 교회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선포되는 시간이 될 수 있도록 또 그 말씀을 온전히 받을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세 번째로,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기도하겠습니다. “고린도후서 5:19을 통해 주님은 교회에게 화목케 하라는 소명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에베소서 2:14을 통해서는 모든 원수된 것들을 무너뜨리고 화평케 하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처럼 주께서 한반도에 평화를 정착시켜주시고, 화해가 꽃피게 해주시기를 기도합시다. 또한, 그 일에 한국 교회가 쓰임받도록 기도합시다

마지막으로 가지고 나오신 기도제목을 위해 주여 외치고 기도드리겠습니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