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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사도행전

[설교문] 사도행전 5장 17-32절(행 5:17-32, 행 5:17~32)

by 카리안zz 2020. 2.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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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에는 사도들이 바로 감옥에 갇히게 됩니다. 저번 사도행전 3장에서는 그래도 베드로의 말을 듣고 놓아주었던 거를 생각하면 점점 강하게 탄압하고 있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 저번에는 두 사도였지만 이번에는 모든 사도가 체포가 되었는데 상황은 점점 나빠져 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더 강력하게 처벌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저번 공회에서 베드로에게 명령을 했기 때문입니다. 더 이상 예수님의 이름으로 말하거나 가르치지 못하게 말입니다. 하지만 사도들은 이 말을 정면으로 위반합니다. 병든 사람과 귀신 들린 사람이 나은 것으로 보아 예수님의 이름으로 사도들은 계속 말하며 가르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권력자들과 정면으로 부딪힌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가만히 계시지 않으셨습니다. 인간들은 하나님 나라 소식을 자신들에게 가두려고 하지만 가둬지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감옥에서 풀어주십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생명의 말씀을 전하라고 하십니다. 사도들은 그 말에 바로 순종합니다. 21절에 보면 새벽부터 성전에 들어가서 가르쳤기 때문입니다. 성전에 들어가서 가르치면 당연히 사도들을 감옥에 넣었던 권력자들에게 소식이 들어갑니다. 이렇게 계속 말씀을 전하면 당연히 당국자들의 핍박과 박해를 더 심하게 받을 것인데 이 짧은 구절들 사이에서 사도들이 머뭇거렸던 흔적은 전혀 없습니다. 사도들은 지금 거침없습니다.

이제 권력자들은 사도들을 심문하려고 사람들을 시켜 데려오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황당하게도 정말로 사람들은 철통같이 지켰던 감옥에는 사도들이 없었습니다. 당황하던 그들에게 때마침 소식이 들려옵니다. 사도들은 바로 성전에서 백성들을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멀리 간 것도 아니고 바로 옆에 있었습니다.

사도들을 이제 잡으려고 했는데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습니다. 백성들이 사도들을 많이 지지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분위기를 이용했더라면 약간의 피를 보더라도 사도들이 잡혀가지 않았을 것인데 사도들은 순순히 평화롭게 잡혀갑니다.

잡혀가는 것은 순순했지만 막상 권력자들 앞에 섰을 때 사도들은 순순하지 않았습니다. 소위 하면 얻어맞을 말들을 그 앞에서 당당히 했습니다. 정면으로 권력자들에게 도전합니다. 다 같이 29절에서 32절 말씀을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29절에서 32절 말씀입니다.

 

29: 베드로와 사도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사람보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

30: 너희가 나무에 달아 죽인 예수를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살리시고

31: 이스라엘에게 회개함으로 죄 사함을 주시려고 그를 오른손으로 높이사 임금과 구주로 삼으셨느니라

32: 우리는 이 일에 증인요 하나님이 자기에게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성령도 그러하니 라 하더라

 

분명 그들은 예수님을 나무에 달아 죽이셨습니다. 이것은 신명기 말씀에도 나와 있듯이 저주였습니다. 그들이 줄 수 있는 가장 수치스러운 방법으로 죽였던 예수님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분이 다시 살아나시고 이스라엘에게 회개함과 죄 사함을 주시는 분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성전은 이제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죄용서와 사함은 그곳에서 일어나야 하는데. 성전, , 율법, 하나님의 가족 정체성을 송두리째 뽑아버리는 말이었습니다. 그들의 핵심을 완전 뭉개버린 말이었습니다. 이 말을 듣자 그들이 사도들을 죽이려고 한 이유가 한편으로 이해되기도 합니다. 사도들도 분명 알았을 것입니다. 이 말을 하면 죽는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도들은 목숨을 걸고 이 일에 증인임을 선언합니다.

 

기독교는 박해의 종교라고 알려져 왔습니다. 사도행전 이후에도 끊임없는 박해를 받아왔습니다. 끊임없이 권력자들은 기독교와 충돌을 일으켰습니다. 그중에서 중국 공산당 하에서 기독교가 어떻게 박해받았는가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붉은 하나님이란 책인데 기독교인은 아니지만 인권운동을 했던 랴오이우가 썼던 책입니다. 이 중에 몇 가지 내용을 들자면 아주 실력이 좋은 의사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병원의 관리 책임을 맡게 되었고 의과대학의 부학장까지 올랐습니다. 하지만 그는 그리스도인이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상사가 그 의사에게 다가가 이야기 한 일입니다.

 

나는 입당 원서를 쓸 수 없다고 말했어요. “선배님이 들은 이야기는 소문이 아닙니다.” 상사는 크게 놀랐고 짐짓 내 말을 못 들은 척했어요. “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나는 이렇게 말했어요. “내 마음을 이미 정했습니다. 이것이 유일한 선택입니다.”

상사는 화가 나서 노발대발했습니다. “자네는 이미 공산당 체제 안에서 공직을 맡고 있네. 공산당 체제 안에서 봉급도 받고 혜택도 누리고 있으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다니? 예수가 뭘 해줄 수 있지? 예수가 자네에게 먹을 것을 주나 옷을 주나?”

나는 그의 눈을 바라보며 작심하고 말했습니다. “지금 사직하겠습니다. 나의 영혼을 죽게 할 수는 없습니다.”

 

그 의사는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예수님의 길을 따라갑니다. 그리고 또 다르게 혁명군들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혁명군과 마을 사람들로부터 끝없이 조롱받았습니다. “당신 아버지는 나쁜 사람이다. 하나님을 믿다니. 아버지와 분명히 선을 그어라.” “하나님은 구원자가 아니다. 마오 주석과 공산당이 인민의 구원자다. 당신은 하나님을 믿는가, 아니면 마오 주석과 공산당을 믿는가?”

 

이것에 저항하던 그리스도인들은 사형당하던가 오랫동안 감옥에 갇히던가 했습니다. 그럼에도 사도행전처럼 중국 땅 안에서 하나님 나라의 소식은 가둘 수 없고 더더욱 전파되었습니다.

우리 나라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일제 시대와 독재 시대 때 그리스도인으로서 목숨 걸고 기독교 신앙을 붙잡았던 분들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그 신앙의 선배들의 모습까지 기억해야 합니다.

오늘 우리에게 복음이 전달되기까지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사도들의 이 거침없는 대답들을 기억하며 우리도 오늘 세상에서 거침없이 이 일에 증인이라고 외칠 수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되시길 소망합니다.

 

기도 드리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오늘 사도들의 거침없는 대답들을 보았습니다. 분명 자기의 목숨을 생각해서 머뭇거릴 순간이 있었을 텐데 오늘 말씀에는 그 순간들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사도들은 오히려 더욱 당당하게 해야할 말들을 했습니다. 그 말을 하면 자신들이 목숨을 잃거나 그 못지 않은 핍박이 있는지 알았지만 그럼에도 하나님 나라의 소식을 전했습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그러한 핍박이 없지만 그럼에도 하나님 나라의 소식을 스스로 말하길 꺼려하는 팽배한 분위기에 휩싸여 있습니다. 교회가 지탄받고 손가락질 받지만 그것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 말씀에서도 보였듯이 거침없이 스스로 증인이 되었던 사도들의 모습에 집중하길 원합니다. 그래서 말하지 못하는 이 팽배한 분위기 속에서 교회를 통해 하나님 나라의 소식이 계속해서 전해지길 소망합니다. 성령님 함께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오늘 교회에 몸도 마음도 아픈 모든 분들을 위해서 기도했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회복을 소망하며 우리가 회복되어 가도록 기도했으면 좋겠습니다. 주여 외치고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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