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사도들은 풀려나게 되고 동료들에게 돌아가게 됩니다. 돌아가서는 제사장들과 장로들의 말을 다 알립니다. 이 말을 들은 동료들은 한 가지 의아한 반응을 보게 됩니다. 지금이야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주변에도 보이고 많기 때문에 그다지 기죽지 않아도 됩니다. 요즘은 넘 많아서 다른 의미로 기죽을 수가 있지만 오늘 본문에 나오는 공동체는 이제 막 시작한 기독교 공동체였습니다. 굉장히 소수 공동체입니다. 그렇다면 당국자들의 핍박이 이어진다면 상식적으로 어떤 마음을 들까요?
지금 상황은 로마와 유대의 지배계층들이 자신들을 주목하고 없애버리려고 합니다. 이럴 때일수록 조금 지혜롭게 타협을 하면 좋지 않을까요? 좋은 게 좋은 거니깐 조금 숨죽이고 있는 겁니다. 하지만 지금 교회 공동체는 심상치 않는 반응을 보입니다. 기죽는 게 아니라 오히려 한마음이 되어서 소리를 높입니다. 다같이 2절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2절: 그들이 듣고 한마음으로 하나님께 소리를 높여 이르되 대주재여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물을 지은 이시요
처음 시작된 교회 공동체의 반응은 차가워 진 게 아니라 뜨거워 졌습니다. 기숙은 게 아니라 오히려 한마음이 되어 하나님께 소리를 높였습니다. 그러나 막연한 감정적인 반응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말씀에 주목했습니다. 시편 2편의 말씀에 주목했습니다. 시편 2편은 왜 민족들이 그토록 소란을 피우고, 통치자들이 왜 책략과 음모를 꾸미는지 하나님 앞에서 질문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이 질문은 이 세상에 임할 하나님 나라의 표지이자 하나님이 선택한 백성을 왜 전쟁과 폭력이 있는 나라들 한 가운데 놓으셨냐는 유대교 안에서의 오래된 질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주권적 통치로 인해서 이 세상에는 평화와 정의가 임할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 일을 하시는 방법은 기름부음을 받은 왕이자 ‘하나님의 아들’로 칭송받을 자를 통해서 일하실 겁니다. 하나님은 이 ‘하나님의 아들’에게 약속한 땅만 유산으로 주시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 모든 나라를 주실 것이라고 시편은 선언합니다.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이 시편 72편이나 시편 89편에서처럼 확장되어 이제는 온 세상을 포괄하기에 이릅니다.
사도들과 동료들이 확신에 차고 뜨거워 졌던 이유는 온 세상과 맞서고 있다는 시편의 말씀과 자신들의 상황이 유사한 것이 전부는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메시아가 온 세상을 통치하기로 약속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시편 2편에서 생생하고 강력하게 말해주기 때문에 인용하였고 뜨거워져 기도했던 겁니다. 하나님은 부활을 통해 예수님이 진정으로 자신의 아들이고 다윗의 자손에서 나온 메시아임을 보여 주셨습니다. 이제 예수님은 모든 사람에게 충성을 요구하는 온 세상의 주시라고 선언이 된 겁니다.
세상의 도전 속에서 교회는 휘둘리고 어찌해야 할지 몰랐던 것이 아니라 성경에 집중했습니다. 오늘날에도 여전이 세상의 도전이 있습니다. 그 도전은 초대 교회와는 모습이 달라졌습니다. 지금은 예수님을 믿는다고 죽지도 손해 보는 것도 없는 시대입니다. 하지만 더 교묘해 졌습니다. 그 교묘한 모습은 C. S. 루이스의 『스크루테이프의 편지』에서 잘 나타난다고 봅니다. 교회 필독서인데 한 번 꼭 추천합니다.
어쨌든, 교회를 향한 이 도전은 그때나 지금이나 방식을 달라졌지만 늘 있습니다. 이 싸움은 실제입니다. 물론, 모든 게 다 어둠의 세력 간의 싸움이거나 그런 것은 아니지만 그것을 무시하면 안 됩니다. 특히나 우리가 본질에 집중할 때, 예수님에 대해, 십자가에 대해, 그분의 부활에 대해, 또 사슬을 끊어 사람들에게 새 생명에 대해 교회가 말하려고 할 때 우리가 하는 일을 막으려고 최선을 다하려고 하는 세력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의 교회가 누군가의 회복을 위해서 최선의 손짓과 한 마음이 되었을 때 방해하는 일이 없었습니까? 그것이 잘못된 일이기 때문에 방해되어진 것이 아니라 반대로 그것이 올바르고 해야 할 일이기 때문에 방해가 있는 것입니다.
그 방해에 멈춰서는 안 됩니다. 그렇기에 오늘 본문 29절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다 같이 29절 말씀을 읽겠습니다.
29절: 주여 이제도 그들의 위협함을 굽어보시옵고 또 종들로 하여금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하여 주시오며
오늘 본문에서 교회는 우리를 방해하는 세력들을 다 죽여달라고 기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박해가 멈춰 달라고 기도하지도 않았습니다. 권력자들을 회심시켜 달라고 기도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그들의 위협을 지켜보시고, 우리가 계속해서 담대히 말하게 해주시고, 주님은 계속해서 강력하게 일해 주십시오”라고 기도한 겁니다.
OO교회는 반대 세력의 저항이 만만치 않을 겁니다. 그러나 그 때 그 반대에 교회가 멈춰서는 안 됩니다. 오늘 말씀처럼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말하려 사람을 살리는 일에 힘을 쏟아야 합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하나님께서 일하는 모습을 볼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30절, 31절 말씀을 읽겠습니다.
30절: 손을 내밀어 병을 낫게 하시옵고, 표적과 기사가 거룩한 종 예수의 이름으로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하더라
31절: 빌기를 다하매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라
오늘 말씀처럼 모두 다 한 마음이 되어서 방해에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힘을 내어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OO교회 성도 여러분들이 되길 소망합니다.
이제 다같이 기도하겠습니다.
본질에 집중할수록, 하나님 나라의 회복에 집중할수록 생명을 잉태하는 일에 집중할수록 반대의 힘은 강하게 일어납니다. 그러나 그 반대의 손길에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것이 진리라는 사실을 알았으면 합니다. 한 마음이 되어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회복되는 일에 계속해서 힘을 쏟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4월 28일에 있을 세미나를 위해서도 기도하겠습니다. 그날을 하나님의 일하심이 강력이 임하도록 주여 외치며 다 같이 기도하겠습니다.
'설교 > 사도행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설교문] 사도행전 8장 26-40절(행 8:26-40, 행 8:26~40) (0) | 2020.02.10 |
---|---|
[설교문] 사도행전 7장 1-16절(행 7:1-16, 행 7:1~16) (0) | 2020.02.10 |
[설교문] 사도행전 5장 17-32절(행 5:17-32, 행 5:17~32) (0) | 2020.02.09 |
[설교문] 사도행전 3장 1-10절(행 3:1-10, 행 3:1~10) (0) | 2020.02.09 |
[설교문] 사도행전 19:21-41(행 19:21-41, 행 19:21~41) (0) | 2020.02.07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