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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사도행전

[설교문] 사도행전 7장 1-16절(행 7:1-16, 행 7:1~16)

by 카리안zz 2020. 2.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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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개봉한 영화 중에 가장 핫한 영화가 있습니다. 다들 한 번쯤은 들어보셨을 텐데 어벤져스4: 엔드게임입니다. 영화시간이 장장 3시간이 넘지만 많은 사람들이 영화를 보았습니다. 아직 영화가 내려가지 않았는데 1300만 명의 인원이 영화를 봤습니다. 영화가 3시간도 넘는데 사람들이 참 많이 보았습니다. 저도 결말 듣는 걸 대단히 싫어하기에 개봉하고 바로 다음 날 봤습니다. 어벤져스4라고 되어있기에 이 영화가 시리지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시리지만 본다고 영화를 다 이해할 수 없습니다. 크게는 캡틴 아메리가 시리즈, 아이언맨 시리즈, 토르 시리즈, 스파이더맨 시리즈 등 제가 대충 세아려 봤는데 최소 10개 이상의 영화를 봐야지 어벤져스 4: 엔드게임을 대충이라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엔드게임이 여태까지 모든 이야기들의 정리판이기에 영화가 3시간이 넘었던 거였습니다. 감독판이 나올 예정인데 사람들이 예상으론 아마 4시 정도 되지 않을까 예측을 합니다. 이 이야기들을 모른다면 영화가 아주 지루합니다. 앞의 줄거리들을 아는 누군가에겐 한 장면 장면이 감동인데 모르는 사람들은 모르니깐 잡니다.

이 영화를 가지고 사람들이 결말에 대해서 제각기 해석을 합니다. ‘영화에서 이 장면은 이거랑 연결된다.’, ‘이 대사는 예전에 그 대사와 같은 말이기에 더욱 의미가 있다등등 약간 성경해석할 때처럼 사람들이 해석을 하더라구요. 아무튼, 어벤져스라는 그 긴 이야기의 많은 해석들이 있지만 틀린 해석들도 정말 많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한, 두 명의 사람은 긴 이야기의 의미를 잘 살려주고 문맥에 맞고, 정합성도 맞고, 특징들도 잘 잡아주는 이야기를 해주는 사람들이 있기는 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긴 이야기를 정리해주는 사람이 나옵니다. 그의 이름은 스데반입니다. 이 스데반의 정리를 보고 혹평을 했던 사람들이 몇 명이 있습니다. 후대에 대표적으로 버나드 쇼는 좀처럼 참아주기 힘든 풋내기 설교자이며 서툴고 자만에 빠진 따분한 사람이라고 평했습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그의 설교는 흥미롭지도 않을 뿐 아니라 요점도 없었다고 평했습니다. 대표적으로 디벨리우스는 그의 설교는 대부분 부족절하다고 썼습니다. 과연, 스데반의 구약의 이야기들을 정리한 것이 부적절했을까요? 스데반의 의도는 무엇이었을까요?

먼저, 스데반은 바울처럼 성경의 이야기를 전도하기 위해서 말했던 것은 아닙니다. 바로 앞장에도 나오지만 고발을 당했기 때문입니다. 고발을 당했는데 어떤 부분이 문제가 되었나 보니 성전과 율법을 건드렸다고 했습니다. 성전과 율법을 건드렸는데 잘못하면 사형입니다. 과연 스데반은 자신을 어떻게 변호할까요? 이상하지만 스데반은 자신을 변호하지 않습니다. 거짓 증인들의 고발이며 자신은 율법도 성전도 거스리지 않았다는 말만 하면 되었습니다. 하지만 스데반은 자신을 변호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믿고 있던 신앙이 어떤 것인지 변호를 했습니다. , 성경의 이야기에서 자신들이 믿는 신앙의 의미가 있다라는 것을 보였습니다. 과연 너희들이 생각하고 있는 신앙이 성경과 맞는 것인가? 그 중에서도 하나님이 정말로 성전 안에 갇혀 계신 분이신가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말합니다.

스데반은 네 명의 주인공들이 지배했던 이스라엘 역사 중에서 네 번의 중요한 시대를 골랐습니다. 첫째로, 아브라함과 족장 시대를 강조하였습니다. 둘째는 요셉과 애굽에서 타향살이를 했던 시대를, 셋째로 모세와 출애굽과 광야에서 방랑했던 것을 시기를, 마지막으로 다윗과 솔로몬의 왕국 설립을 강조했습니다. 이 네 시기를 연결하는 특징은 그 시기 중 어느 때에도 하나님의 임재가 특정한 장소에 제한된 적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와 반대로 구약의 하나님은 살아 계신 하나님, 항상 움직이며 활동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항상 자기 백성이 새로운 모험을 하도록 불러내시고, 항상 그들이 가는 길에 동행하시고, 그 길을 인도하시는 분이십니다.

 

오늘 본문은 아브라함에서 타향살이까지였습니다. 스데반은 아브라함을 말하며 그가 메소포타미아에 있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보여주신 곳은 약속의 땅에서 멀리 떨어진 곳이였음을 스데반은 강조했던 것입니다. 자신의 고향을 떠난다는 것은 무척이나 어려운 일입니다. 오늘날처럼 이사를 자주가고 온 세계가 연결되어 있는 시대에는 피부로 와닿지 않을 수 있습니다. 다른 지역에 간다는 것은 자신의 모든 삶의 터전과 인적 네트워크를 포기한단는 것입니다. 부족사회인 그곳에서 다른 곳으로 간다는 것은 어찌보면 죽으러 가는 것일 수 있습니다. 불확실한 것이 너무나 많기 때문입니다. 아니, 확실한 것은 자신이 생존하기 어렵다는 사실은 명확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아브라함이 떠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영광의 하나님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영광 중에 너무나도 강력하셨기에 떠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곳이라면 떠났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메소포타미아였다면 요셉때는 애굽입니다. 이번에는 야곱과 그 가족들이 자신들의 고향과도 같은 곳을 떠나 애굽으로 갑니다. 야곱 역시도 애굽을 내려가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창세기 26장에 보면 야곱의 아버지인 이삭의 때에 기근이 들었지만 애굽으로 가지말라는 하나님의 엄명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두려워하던 야곱에게 하나님께서 친히 찾아가 주셔서 함께해주신다고 말씀하셨기에 야곱을 비로소 애굽으로 갈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어딘가에 정착하여 계시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움직이십니다. 행동하십니다. 일하고 계십니다. 오늘 우리가 믿어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 일하시고 움직이시고 세상을 변화시키시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믿음이 흔들릴 때가 있습니다. 스마트폰이 세상을 바꿨다는 것에 이의를 달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유튜브도 세상을 바꾸고 있습니다. 세상의 과학 기술로 인해 우리도 변하고 사회도 변하고 세상 전체가 변하고 있습니다. 이런 와중에 종종 이런 생각이 떠오릅니다. “복음은 세상을 변화시키고 있는가?” 과거에는 복음이 세상을 여러 번 변화시켰지만 오늘날 이 시대 역시도 마찬가지일까? 이 믿음이 흔들릴 때 성경의 말씀을 읽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보십시오. 하나님은 일하고 계셨고 지금도 여전히 일하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지금도 여전히 일하고 계시다면 우리의 생각은 달라져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일하고 계신 곳에 내가 있고 싶다.’, ‘하나님께서 하시고 계신 일을 내가 내 눈 앞에서 보고싶다.’ 수요 성경공부에서 요한복음을 공부를 하고 있는데 계속해서 본다는 말들이 많이 나옵니다. 제 기도제목이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제 눈으로 보고 싶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깊은 샘물을 맛보고 싶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회복을 내 눈으로 직접보고 우리들의 눈으로 직접 보고 싶습니다. 우리들이 직접 볼 때 하나님의 공동체요 백성인 교인들.OO교회가 될 줄로 믿습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의 일하심에 부름 받았고 일하기 위해 이 교회에 있다는 것을 기억합시다. 이미 본 것 같지만 아직 완전히 보진 않은 것 같습니다.
일하시는 하나님을 직접 보기 원하며 더 나아가 하나님과 계속해서 함께 일하는 OO교회 성도님들이 되시길 소망합니다.

 

 

기도 드리겠습니다.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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