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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사도행전

[설교문] 사도행전 19:21-41(행 19:21-41, 행 19:21~41)

by 카리안zz 2020. 2.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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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번역 성경

 

사도행전 19장 21-41절

 

21: 이 일이 있은 후에 바울이 마게도냐와 아가야를 거쳐 예루살렘에 가기로 작정하여 이르되 내가 거기 갔다가 후에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 하고

22: 자기를 돕는 사람 중에서 디모데와 에라스도 두 사람을 마게도냐로 보내고 자기는 아시아에 얼마 동안 더 있으니라

23: 그 때쯤 되어 이 도로 말미암아 적지 않은 소동이 있었으니

24: 즉 데메드리오라 하는 어떤 은장색이 은으로 아데미의 신상 모형을 만들어 직공들에게 적지 않은 벌이를 하게 하더니

25: 그가 그 직공들과 그러한 영업하는 자들을 모아 이르되 여러분도 알거니와 우리의 풍족한 생활이 이 생업에 있는데

26: 이 바울이 에베소뿐 아니라 거의 전 아시아를 통하여 수많은 사람을 권유하여 말하되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들은 신이 아니라 하니 이는 그대들도 보고 들은 것이라

27: 우리의 이 영업이 천하여질 위험이 있을 뿐아니라 큰 여신 아데미의 신전도 무시 당하게 되고 온 아시아와 천하가 위하는 그의 위엄도 떨어질까 하노라 하더라

28: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분노가 가득하여 외쳐 이르되 크다 에베소 사람의 아데미여 하니

29: 온 시내가 요란하여 바울과 같이 다니는 마게도냐 사람 가이오와 아리스다고를 붙들어 일제히 연극장으로 달려 들어가는지라

30: 바울이 백성 가운데로 들어가고자 하나 제자들이 말리고

31: 또 아시아 관리 중에 바울의 친구된 어떤 이들이 그에게 통지하여 연극장에 들어가지 말라 권하더라

32: 사람들이 외쳐 어떤 이는 이런 말을, 어떤 이는 저런 말을 하니 모인 무리가 분란하여 태반이나 어찌하여 모였는지 알지 못하더라

33: 유대인들이 무리 가운데서 알렉산더를 권하여 앞으로 밀어내니 알렉산더가 손짓하며 백성들에게 변명하려 하나

34: 그들은 그가 유대인인 줄 알고 다 한 소리로 외쳐 이르되 크다 에베소 사람의 아데미여 하기를 두 시간이나 하더니

35: 서기장이 무리를 진정시키고 이르되 에베소 사람들아 에베소 시가 큰 아데미와 제우스에게서 내려온 우상의 신전지기가 된 줄을 누가 알지 못하겠느냐

36: 이 일이 그렇지 않다 할 수 없으니 너희가 가만히 있어서 무엇이든지 경솔히 아니하여야 하리라

37: 신전의 물건을 도둑질하지도 아니하였고 우리 여신을 비방하지도 아니한 이 사람들을 너희가 붙잡아 왔으니

38: 만일 데메드리오와 그와 함께 있는 직공들이 누구에게 고발할 것이 있으면 재판 날돟 있고 총독들도 있으니 피차 고소할 것이요

39: 만일 그 외에 무엇을 원하면 정식으로 민회에서 결정할지라

40: 오늘 아무 까닭도 없는 이 일에 우리가 소요사건으로 책망 받을 위험이 있고 우리는 이 불법 집회에 관하여 보고할 자료가 없다 하고

41: 이에 그 모임을 흩어지게 하니라

 


 

 

 남기업 소장님이란 분이 계십니다. 토지자유소 소장님이신데 토지, 그리니깐 땅-부동산 같은 정책에 대해서 연구하시는 분이십니다. 이 분이 한날은 주변 지인이 동네 아파트 동대표로 같이 나가자고 합니다. 지인은 밖에서 그렇게 개혁적인 말들을 하는데 아파트 안에서도 한 번 정의를 실현시켜 보라고 설득을 했습니다. 토지 개혁도 따지고 보면 동 차원에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해 동대표 후보로 지인과 같이 나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지인은 떨어지고 본인이 덜컥 붙어버렸습니다. 그리고 내친김에 동대표 회장으로까지 나가라고 지인이 설득하였습니다. 한달에 한 번 회의하고 결재만 2번 하면 된다는 말에 회장후보로 나갔습니다. 결과는 쟁쟁한 경쟁자를 물리치고 회장에 당선되었습니다. 지인의 말처럼 이제 간단하게 일들을 처리하면 되는줄로만 알았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그런게 아니었습니다. 

 동대표가 15명인데 이중에 본인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11명이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이 자꾸 본인에게 시비조로 공격을 하였습니다. 사사로운 것에서부터 공격은 시작되었습니다. 공격은 더 거칠어 지는데 해임투표까지 가게 되었습니다. 해임투표도 막혀버리고 결국에는 회의를 열어 못 살게 구는 방법을 택했습니다. 유언비어를 퍼트리며 회의때는 심한 욕설을 퍼부었습니다. 욕설에 삿대질에 멱살까지 잡았습니다. 음담패설을 일삼고 말을 하려고 하면 핸드마이크 사이렌을 울리는 지경까지 이르렀습니다. 남기업 소장님은 이 시간을 '짐승의 시간'이었다고 했습니다.

 회의를 하면 3~4시간 동안 모욕을 하고 10번 이상 검찰에 고발까지했는데 왜 이 아파트 동대표들은 회장을 이렇게까지 못살게 굴었을까요? 바로 돈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아파트를 살아보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아파트 동대표들이 하는 일이 업체선정이 있다고 합니다. 아파트에서 알뜰시장을 하는데 낙찰가가 원래는 8천만원인데 본인이 회장이 된 후로 2600만원때로 떨어져 버렸습니다. 오천만원이 줄어든 금액이죠. 그럼 여태까지 5000만원은 어디로 갔을까요? 아파트 아스팔트 공사도 마찬가지였습니다. 3억원이면 되는 공사를 훨씬 높은 금액을 부른 특정 업체를 선정하려 했었습니다. 결국 관리소장은 문서위조까지 해서 불법을 저질렀고 전과자가 되는 신세까지 이르렀습니다. 여기에서 나오는 차액을 동대표들이 나눠먹었던 것입니다. 그 큰 돈을 새로운 회장이 오고 나니 비정상적인 모습을 하면서 내쫓으려고 했던 것이었습니다. 

 

 에베소에서 우상을 만들던 자들이 바울을 내쫓으려 했던 이유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들의 신앙심 때문에 화가 난게 아니라 그들의 돈 벌이 수단을 바울이 방해한다고 생각해서 온 도시를 선동합니다. 에베소라는 도시에는 세계 7대 불가사의 건물이 있습니다. 이집트의 피라미드와 같은 불가사의 건물이 있는데 에베소의 아르테미스 신전입니다. 크게가 아테네에 있는 신전보다 엄청 크다고 합니다. 이 도시에 아르테미스, 성경에는 아데미 신을 섬기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을지 짐작이 갑니다. 이 많은 사람들이 제사를 드리러 신전에 가면 은으로 만든 아데미 신상 모형을 바쳐야 했습니다. 엄청난게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모형을 사가는데 오늘 25절의 표현대로 상당한 돈을 많이 벌었습니다. 에베소에서 많은 수의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기 시작했기에 이들로서는 상당한 위기감을 느꼈을 겁니다.

 분위기는 심상치 않게 돌아갑니다. 조합장인 데메드리오가 지금의 사정을 말하고 흥분한 사람들이 온 시내를 깨웁니다. 온 시내가 시끄러웠기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연극장으로 모여들었습니다. 이 연극장은 2만 5천명이나 수용이 가능한 곳입니다. 전좌석이 다 찼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꽤 많은 사람들이 연극장 안에 모였을 겁니다. 바울은 많은 사람이 모였기에 그 안으로 들어가려고 합니다. 지금 복음을 전하며 많은 사람들이 회심할 수 있기 때문일 겁니다. 하지만 지금 남의 말을 들을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잘못하면 죽을 수도 있었습니다. 아데미 신전에 제사를 두고 공격하는 사람은 당시에사형을 당했었습니다. 지금 사람들이 흥분했는데 그때 바울이 들어가서 데메드리오가 모함이라도 한다면 죽을 수도 있습니다. 그 상황을 잘 아는 제자들과 아시아의 관리들 중 바울과 친분이 있는 자들이 이를 말립니다. 

 32절을 보면 지금 연극장에 모여있는 사람들은 뭐 때문에 모여있는지도 모르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바울은 유대인이었기에 반 유대적인 분위기가 있었을 텐데 유대인들이 나서서 변명해야 했습니다. 바울이 전하는 종교와 우리는 전혀 상관이 없다고 말입니다. 하지만 흥분한 군중은 그말을 들어주지도 않았고 "크다 에베소 사람의 아데미여"라는 말을 두 시간 동안 외쳤습니다. 

 서기장은 무리를 진정시킬 의무가 있었습니다. 로마와 지방 행정부를 연결시켜 주던 일을 서기장이 했었기 때문입니다. 만약 지금 이 소요사태가 로마에 보고라도 된다면 서기장은 책임을 져야했습니다. 도시도 마찬가지로 막대한 벌금을 물어야 했습니다. 서기장은 바울이 잘못을 저질렀으면 법으로 해결하라고 말합니다. 오히려 바울은 잘못한 것이 전혀 없다고 서기장은 말합니다. 누가는 아마도 이 편지를 읽고 있는 사람에게 우리의 복음은 로마에서 합법이며 저들이 지금 불법을 저지르고 있다는 인상을 주고 싶었습니다. 이러한 태도는 사도행전에서 계속 보여지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말씀을 보면서 우리를 되돌아 봐야합니다. 오늘 우리의 교회는 데메드리오입니까, 바울입니까? 오늘 우리의 교회들은 자본의 논리와 대치상태에 있습니다. 어디는 잠식되었을 곳도 있고요. 교회가 어떤 곳인지 질문하지 않고 교회가 성장만 되면 모든 것이 답이 되는 현실입니다. 옳고 그름을 이야기해도 그것은 큰 교회에 대한 열등감이 될 뿐입니다. 그러기에 조금이라도 교인을 뺏어가거나(?) 데려가면 칼부림이 일어납니다.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나진 않지만 서로간 가장 민감한 곳을 건드린 것처럼 반응을 합니다. 데미드리오처럼 돈줄을 건드려서 그런 걸까요? 

 오늘 본문에 나온 바울이였다면 오늘 자본주의가 판 치는 세상에서 뭐라고 외쳤을까요.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베드로와 요한이 외쳤던 예수의 이름을 바울도 역시 선교가는 내내 외쳤습니다. 교회가 줄 수 있는 것은 은과 금이 아니라 예수의 이름입니다. 예수의 이름을 계속 전하는 교회 성도여러분이 되시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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