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낀 점
김두식이야 교회 관련 글들을 많이 썼기에 익숙한 분이다. 그런데 그의 형이 있는데 서울대 교수라고 한다. 와. 형은 서울대 물리학과 교수 동생은 사법고시 통과 후 검사가 되어 지금은 경북대 로스쿨 교수다. 한 형제가 이렇게 공부를 잘 했다고 하니 참. 공부하면 누구에게 뒤질 것 같지 않은 두 사람이 이야기를 나눈다.
두 사람은 형제이지만 참 다른 면을 가졌다. 형 김대식은 활발하며 완전 상남자다. 동생 김두식은 그에 비하면 내성적이다. 정치적 입장도 다르다. 또, 신앙 역시도 형은 무신론자로 남았고 동생은 여전히 기독교인으로 남아 있다. 나는 이렇게 차이나는 두 사람의 의견을 정리하기 보다는 몇 가지 기억에 남는 점을 우선 기록해 보려고 한다. 대체로 김대식의 의견이 기억에 남더라.
과학자가 정치로?
우리나라에서는 교수 출신의 사람들이 정치로 가는 경우가 많다. 이번 정부가 교수 출신 비율이 높다. 학자들이 정치로 가는 건 다른 나라에선 그렇게 흔한 일이 아니라고 한다. 왜냐하면 학자들은 자기의 연구를 더 하길 원하지 다른 일들을 방해가 되어서 잘 안 하려고 한단다. 초반부에 황우석 교수 이야기를 하면서 언뜻 그런 늬앙스를 보여주었다. 김대식 교수가 황우석 교수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꼈을 때가 학장을 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다. 세계적으로 잘 나가는 학자들은 자신들의 연구를 더 하길 원하지 교내 정치같은 일들은 하기 싫어한다는 것이다. 그런 걸 하려고 욕심내는 사람은 보통 과학자로서 미래가 보이질 않을 때 종종 학장이나 정치 같은 다른 길로 나간다고 했다. 그걸로 실패한게 덮인다(81). 이후 교수들이 왜 정치세계로 나아가려고 하는지 김대식 교수의 자세한 분석이 이어진다.
그는 이런 원인을 선비문화를 지적한다. 선비문화가 그대로 대학문화로 이어졌다.
조선시대에 관직에 진출하기 위해서는 장원급제도 해야 하지만 좋은 서원 출신일 필요가 있었잖아요. 이게 지금 우리나라의 학벌로 연결되는 거죠. 어느 대학 출신, 미국 박사라는 것 자체가 나쁜 건 아니에요. 공부로 끝장을 보면 문제가 없죠. 그런데 공부가 항상 더 높은 자리로 올라가기 위한 수단인 게 문제예요.
... 우리나라의 선비문화와 과거제도도 어느 시점부터인가 장점보다 단점이 많아졌어요. 그 순간 일본과 우리의 운명도 크로스가 된 거예요. 일본은 강해지고 우리는 약해진 거죠. 왜 일본에 노벨상이 많고 우리는 없냐? 한마디로 설명할 수 있어요. 우리나라 교수는 선비예요. 선비들은 공부를 통해서 더 높은 관직에 올라가려고 해요. 공부에 뜻을 둔 학자들도 나이가 들면 관직을 탐해요. 이런저런 정부 위원회의 위원장, 대학총장, 국회의원, 교육부장관, 총리를 꿈꾸죠. 독일이나 일본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에요. 웬 교수 출신 장관, 정치인이 그렇게 많아요. 교수가 훨씬 더 좋은 직업인데 왜 장관을 꿈꾸는지, 독일이나 일본에서는 이해를 못 해요. 그런데 우리나라는 그게 전통이에요. 선비문화가 그런 거니까요. (174-175)
우리가 공부를 이렇게 열심히 하는 것은 과거제도와 같은 신분 상승이 되기 때문이다. 이 분석을 사회학자 송호근의 <그들은 소리 내 울지 않는다>를 읽고 알게 된 사실이기도 했다. 중국, 일본, 한국 중에 유일하게 시험을 통해서 신분이 상승할 수 있는 나라가 한국이었다. 다른 나라는 이미 태생부터 정해진 집단이지만 한국은 아니었다. 김대식의 말처럼 처음에는 장점이 있었지만 이게 시간을 지나면서 단점이 더 많아진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제도가 못 따라오는 현상이다.
다른 문제도 있다. 이번 조국 전 장관이 청와대와 장관직을 마치고 본인이 속한 서울대로 다시 돌아갔다. 이 책은 2014년에 나온 책이지만 이런 행태를 비판한다.
문제는 정치를 하거나 장관을 하면서 사직을 안 하는 거예요. 자리를 내놓지 않고 휴직을 하거든요. 서울대는 휴직하는 분들이 점점 늘고 휴직기간도 길어지고 있어요. 심지어 10년 휴직하는 분도 곧 생길 겁니다. 그분에게는 좋은 일이죠. 장관급 자리도 챙기고 서울대 교수도 유지할 수 있으니까요. 그러나 그런 사람 때문에 공부할 의욕에 넘치는 젊은 학자 하나가 자리를 못 잡아요. 휴직하고 일하지 않아요 자리 하나를 잡아 먹고 있는 거니까요.
그뿐인가요? 그런 사람을 용인함으로써 대학교수 사회가 정치화하는 문제가 생겨요. 과학자 하다가 장관이나 정치하러 떠난 사람 하나가 있으면, 그 사람처럼 되고 싶은 사람이 그뒤로 열명이 붙어요. (177)
물론, 여기에 대한 반론을 김대식이 한다. 나도 정치를 하는 모든 교수가 그런 사람들로 보진 않는다. 김대식이 말한 것처럼 사회과학을 전공한 사람들은 행정과 정치가 도움이 많이 될 것이다. 본인들의 전문 지식을 실제로 적용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김대식은 법학을 예로들어 설명했는데 이론으로 알고 있던 내용을 현장에서 실현하다보면 현실이 어떤지 깨닫는 계기가 될 것이다. 그럼에도 김대식이 했던 이야기도 새겨들어야 한다. 뛰어난 이론가가 뛰어난 현장가일 필요는 없으니깐. 우리쪽 용어로 설명하자면 뛰어난 성경학자 교수, 조직신학 교수, 역사학자 교수, 실천신학 교수가 뛰어난 담임 목사가 될 필요는 없다. 그런 교수들이 대형교회 담임 목사가 되려는 그 순간부터 그 사람은 이미 학자로서는 끝난 것이다.
우리 나라는 왜 노벨상을 받지 못할까?
저자는 일본의 경우를 예로 든다. 일본은 해외 유학파가 아니라 일본에서만 공부한 사람들이 노벨상을 받는 경우가 많다. 우리나라야 모든 분야 가리지 않고 유학파가 먹어준다. 그에 비해 일본은 20세기 초반에 유학파가 없어져 갔다. 그때부터 자생적으로 힘을 길렀다. 물론, 세계대전 때문에 유학을 못 가는 상황에서 전통적인 장인 시스템이 작동했다. 그래서 노벨상을 받은 15명 중에 13명이 일본에서 박사학위를 따는 성과를 올린다. 2020년인 지금은 몇 명 더 추가된다. 그는 일본의 교수 시스템에 대해서 알려준다.
일본은 자기 연구실 출신 박사 중에 제일 잘하는 사람을 교수로 뽑아요. 그후에 정교수가 되기 위한 치열한 경쟁이 시작되죠. 일반적으로 일본 학문에서 이루어지는 인브리딩의 핵심은 교수 임용 씨스템이에요. 일본은 독일의 교수 임용 씨스템을 그대로 받아들였어요. 일단 전임강사나 조교수가 되면 이변이 없는 한 모두 정교수가 되는 우리나라와 달리 일본과 독일은 아주 소수의 사람들만 정교수가 돼요. 어떤 학과에 정교수가 다섯명이라면 영원히 정교수가 되지 못하고 부교수로 끝난 교수가 열명도 되고, 그 밑에는 정교수가 되기 위해서 열심히 살고 있는 조교수가 몇십명 있어요. 정교수가 되기 위해서 목숨 걸고 50대까지 연구를 하지만 80퍼센트는 실패해요. 이와 같은 피라미드 구조에서 살아남은 소수의 정교수들이 일본만의 DNA를 가지고 학문을 이끌어 가는 거예요. 미국과도 다르고, 이런 씨스템을 전수한 독일과도 다른, 일본만의 학문이 만들어지는 거죠. (131)
이런 시스템은 정말 엄격해 보인다. 그러나 이렇게 엄격하니까 연구 결과가 좋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자신들의 학문이 만들어지는 것이기도 하다. 이런 실정에 딴 짓을 할 수 있을까? 정치 쪽으로 나갈 생각을 할 수 있을까? 연구에 전념하기도 벅차다. 정말 열심히 해도 될까 말까인데 다른 곳에 한눈을 판다니? 만약 한 눈을 팔아도 유지되는 학계라면 이미 망가질대로 망가진 곳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나는 김대식의 이 지적이 참 마음에 든다.
한국 '사람'이 노벨상을 받는 게 중요한 게 아니에요. 한국 '박사'가 노벨상을 받아야 해요. 그때부터 비로소 게임이 시작되는 거예요. (133)
설령 다른 외국인이여도 한국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사람이 노벨상을 타는 게 더 중요하다. 한국의 학계가 중요한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한국 '박사'가 교수가 되는 일이 많아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서울대 물리학과 교수가 40여명 정도 되는데 국내 박사는 여섯명밖에 안 되는 실정이다. 상황이 이런데 참 안 좋은 한국 시스템이 있다.
동종교배도 세종류로 나눌 수 있어요. 제일 나쁜 것은 미국에서 박사학위 받은 사람끼리 한국에 들어와서 서로 인브리딩을 하는 거야. 자기가 배출한 국내 박사는 교수로 뽑지 못하면서 미국에서 자기에게 학위 준 스승의 제자들을 데리고 와서 끼리끼리 해먹어요. 일종의 노예감독관이에요. 미국에 있는 지도교수가 진짜 주인이고, 자기는 한국에 파견 와서 노예들을 관리하는 거지. 그렇게 해먹는 게 제일 질이 나빠요. 동생이 이야기하는 경우, 즉 자기 제자인 국내 박사를 억지로 교수 만들려다 생기는 아수라장은 그래도 그것보다는 나은 단계의 동종교배예요. (139-140)
이런 상황이 있는지도 참 몰랐다. 이러면 정말 해외 대학의 분점인가? 이런 대학 교수 사회를 조금이라도 알게 되는 책이다.
장원급제 DNA
김대식 교수가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알려주었다. 이건 위에 선비문화와 연관된다. 이공계 교수인데도 사람들이 너무 호기심이 없다는 것이다. 과학자가 호기심이 없다는 이야기에 살짝 충격을 받았다. '평생토록 전과목에서 100점만 맞은 사람인데 어쩌면 저렇게 호기심이 없을 수 있나?' 그런 생각을 하게 만드는 사람들이란다(201).
호기심은 일상에서 나와요. 예를 들면 (테이블 위의 컵을 가리키며) 중력이 아래에서 잡아당기는데 왜 이 컵은 테이블 속을 파고 들어가지 않을까요? 물리에서는 항력 때문이라고 설명하는데 사실은 테이블의 원자와 컵의 원자가 키스하고 있는 거예요. 나노미터까지 가보면 이 컵은 테이블 속으로 파고들어갔다고도 볼 수 있죠. 이런 얘기를 꺼내면 평생 수석, 1등을 계속한 분들의 공허한 눈빛과 마주치게 됩니다. '이 사람은 왜 이런 이상한 이야기를 할까? 시험에도 안 나오는 문제를 놓고 왜 고민하는 거지? 하는 눈빛입니다. 과학자라는 사람들이 이래요. 뭔가 많이 잘못된 거죠. 그런데 그 공허한 눈빛은 어떤 의미에서는 우리 상황에서 최적화된 결과물이에요. 여러 시험을 통과해서 최종적으로 영의정에 올라야 하는데 그런 식의 질문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거든요. 그런 불필요한 질문에 쓸 에너지가 없는 거죠. 그런 불필요한 에너지를 아끼면서 사는 게 어쩌면 장원급제 DNA의 핵심일 수도 있고요. 그렇게 최적화된 사람들이 장인들의 몫까지 뺏어 가고 있는 겁니다. 과학자는 그래서는 안 되는데 말이죠. (203)
과학자 하면 생각나는 이미지와 영 딴 판이다. 과학자라고 하면 왠지 엉뚱한 생각을 많이 할 거 같고 호기심에 뭐든 알아보려고 하는 독특한 사람이 떠오른다. 하기사 그런 사람들이 과학자의 자질은 있지만 대한민국 교육 시스템에서 과학자가 될 수 있을까 싶다. 김대식의 말처럼 그런 호기심은 시험과는 전혀 상관없기에 불필요하니 말이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이 과학자나 다른 분야 학자가 되었다고 생각하니깐 참 끔찍하다. 그렇게 똑똑한 사람들이 노벨상을 못 받는 이유가 하나 더 추가된다. 머리가 좋고 나쁘고의 문제가 아니였다. 시스템, 개인 모든 것이 작동되지 않아서다.
나가면서
이 책은 공부 자체에 대해서 알려주는 책은 아니다. 그러니까 서울대 교수, 검사 출신 로스쿨 교수의 공부방법이 아니다. 이 두 사람이 어떻게 공부했는지 알려주는 책이 아니다. 그런 책인줄 알고 사려 한다면 추천하지 않는다. 대학 교수 사회의 단면을 말해주며 대한민국 교육에 대해서 성토하기도 한다. 목차를 보고 자신이 기대한 책인지 아닌지 확인해서 책을 구입하길 바란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참 많은 것을 배웠다. 추천한다.
메모
자기들이 원조이기 때문에 유럽에서는 물리학에서 무슨 연구를 하면 그게 그냥 물리학 분야가 돼요. 그만큼 물리학의 범위가 넓어요. 미국과 유럽은 물리학의 역사와 범위가 그만큼 달라요. 우리나라에 미국박사들밖에 없다보니 미국식이 무슨 절대적 진리인 줄 아는 게 문제예요. 새로운 분야를 하려고 하면 "그건 물리가 아니다" 이러면서 제동을 걸어요. 왜 물리가 아니냐고 하면 "미국에서 아니니까 아닌 거다" 이러고 있어요. 사실은 이런 싸움을 하는 것 자체가 웃긴 거죠. 순수든 응요이든 우리나라에서 시작한 게 하나도 없는데 왜 그걸 가지고 싸워요? 자기 것이 없으니 이런 소모적인 논쟁이나 하고 있는 거예요. (161-162)
- 신학은 어떨까? 노예 아닌가?
6장에서 메모 198쪽에
- 하나같이 흥미로운 주제다. 간만에 너무 재미있는 책을 읽는다.
책 맛보기
생물학적 자식들은 미국에 맡겨서 살리고, 방학 때마다 한국의 학문적 자식들은 방치해서 다 죽이는 거잖아! (154)
서울대 수석 입학한 학생이 교수가 돼야 의대 교수들한테 큰소리를 칠 수가 있는 거야. '우린 수석 한 사람만 교수를 하는 학과야! 너네랑 달라!' 순전히 그 자부심으로 살아온 사람들에게는 연구보다 어쩌면 그런 게 더 중요한 거예요. 그런 거 나도 이해해! 나도 예전에 그렇게 살아왔기 때문이지. 겨우 그걸 극복했기 때문에 이런 말을 하는 거예요. 냉정하게 연구로 승부를 보겠다고 결심한 순간부터 수석이니 뭐니 하는 건 아무 의미가 없어요. (216)
문과라서 객관적인 기준이 없다? 객관적인 기준을 찾을 수 없어서 과거에 수석 했던 애를 그냥 뽑는다? 그건 그냥 게으른 거예요. (219)
목차
프롤로그
1장 형제 격돌, 엘리트주의에 칼을 대다
"그래서 동생네 편이 진 거예요"
자기 생각 없는 편 가르기
강남좌파와 강남우파
"보수보다 열배나 우아한 진보"
획일화된 세상은 어디든 독재국가
2장 괴짜 과학자 형과 삐딱한 법률가 동생
과학자는 중소기업 사장님
<사이언스> 논문 전쟁
아인슈타인이 아프리카에서 태어났다면
황우석 같은 과학자도 필요하다?
3장 악동 출신의 31세 서울대 교수
"반에서 20등이 꿈이었습니다"
악동의 피로감
극단으로 밀어붙이는 힘
문과와 이과, 유학생활 이렇게 다르다
4장 대한민국이 노벨상을 받지 못하는 이유
유학파가 장악한 한국 대학
일본의 노벨상 비결은 국내 박사의 동종교배
나쁜 교수, 더 나쁜 교수, 굉장히 나쁜 교수
"교수도 못 시킬 거면서 박사과정 학생은 왜 뽑나?"
방학이면 사라지는 기러기 교수
5장 하버드대 한국 분교 교수들
주인집 자식 위해 목숨 바치는 노예
도산서원 대신 하버드 학벌
입신양명 공부는 이제 그만
철밥그릇을 내려놓아야 할 때
특권을 누리는 사람들에게 엄격한 잣대를
6장 장원급제 DNA, 장인 DNA
평생 수석의 공허한 눈빛
10대 청소년이 아니라, 30대 교수를 쥐어짜라
이공계 위기는 없었다
물리학을 망친 천재들
7장 경기고, 뺑뺑이, 특목고
뺑뺑이 세대의 마지막 발악
한명의 천재가 만명을 먹여 살린다는 착각
대한민국을 움지이는 네트워크
15세에 인생을 결정하는 사회
8장 새로운 공부를 제안한다
대학의 위기, 어디까지 진실인가
소수의 엘리트가 과학을 이끈다는 신화를 깨라
모든 문제의 출발은 고등학교 성적 기득권
에필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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