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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리뷰/설교와 목회자

[책리뷰] 월터 브루그만 - 텍스트가 설교하게 하라

by 카리안zz 2020. 2.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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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낀 점

 

 이 책은 신대원 역사서 수업 시간 과제때문에 읽었다. '역사서 어떻게 설교할 것인가'를 주제로 과제를 작성해야 했다. 과제에는 여러 책들이 있었는데 교수님 본인의 책과 교수님이 추천한 책들 중 2권인가 책을 참조했어야 했다. 정확한 기억은 아니지만 그랬던 기억이 난다. 아무튼 나는 이 책을 과제에 인용하기로 결정하고 이 책을 다 읽은 것이다. 

 원래 읽어야 할 책인데 신대원 과제때 읽어야 할 책과 겹칠 때가 있었다. 그럴 때 참 기분이 좋았다. 내가 읽어야 할 책이 좋은 책들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그래도 괜찮은 책들을 추천받고 구입한 책들이 많다. 신대원 때 과제로 내주는 책들은 왜인지 모르겠지만 업데이트가 되어 있지 않다. 이런 책을 왜 읽히지 싶을 때가 참 많았다. 추측하기로는 정치적 맥락에서 이겠고 연구를 안 해서 그럴지도 모른다. 괜히 새로운 책 읽혔다가 너무나 보수적인 이곳에서 공격당하기 쉽상이니 말이다. 그럴 바에야 그냥 무난한 책으로 하면 제일 좋지 싶다. 

 이 책을 추천한 교수님은 그런 것에 게의치 않았다. 이 책에서도 저자가 어느 정도의 비평을 수용하는데 그 부분을 읽은 학생이 있다면 제대로 멘붕했을 가능성 있다. 그럼에도 간만에 읽은 이 책이 나에겐 참 유용했다. 그의 책 <예언자적 상상력> 이후 몇 년만에 읽은 책이여서 나의 파토스를 다시 깨우는 책이기도 했다. 

 

 이 책은 내러티브가 있는 책은 아니다. 저자의 논문들을 한데 모아서 출판한 책이다. 그래서 순차적으로 읽을 필요없이 목차를 보고 본인이 관심있는 주제를 보면 된다. <예언자적 상상력>을 읽은 분들이라면 그가 대략 어떤 이야기를 할지 짐작이 될 것이다. 이 책은 거기에서 논문이었기에 조금 깊이 있게 들어가는 책이다. 

 

 오늘 시대의 우상 비판

 월터 브루그만은 오늘날의 우상을 비판한다. 미국 사회에 만연해 있는 우상들을 비판한다. <예언자적 상상력>에서 그는 미국의 '소비주의'를 비판했다. 월터 브루그만답다는 것은 그가 어떤 우상을 드러내 보이는지가 아닐까. 구약의 깊은 우물에서 현대의 모습을 대조한다. 이 점을 나는 설교자들이 반드시 익혀야 할 점이라고 생각한다. 그럼 그가 미국의 어떤 우상을 드러내 보였는지 옮겨 보겠다. 

 

이같은 하나님의 임재가 온통 구두적인(혹은 설교적인) 면에 그치지 않도록 가시적인(물질적인, 물리적인) 면에 주의를 기울이는 일은 온전히 성경적입니다. 나는 전통적인 프로테스탄티즘이 왜 이런 사상과 관행을 회피했는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런 저항은 16세기 성례주의의 파괴적인 권력을 깨뜨리기 위해선 꼭 필요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현재 우리가 처한 '포로 상태'의 위기는 16세기처럼 '교황의 성례주의'로 채색되어 있지 않습니다. 우리는 오히려 소비주의와 상품화의 의례로 가득찬, 공허한 테크놀로지에게 위협을 받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이슈는 이 강력한 이데올로기에 대처할 수 있을 만큼 하나님의 임재를 수용하고 상상하며 연습할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278)

 

그런 여론이 깊고 넓게 퍼져 있었던 고대 세계에서는 무신론자가 되기란 거의 불가능했습니다. 무신론이란 사상 자체가 지적인 신빙성이 없었을 뿐 아니라, 정서나 문화적으로 그런 관념을 수용할 만한 상황도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21세기에 이르러서는, 여러 복잡한 이유로, 17세기의 지적, 정서적, 문화적 상황이 완전히 역전된 것처럼 보입니다. 지금은 무신론이 신빙성이 얻었을 뿐 아니라 인생에서 중요한 문제를 푸는 데 필요한 지배적인 대안으로 자리 잡은 것 같습니다. (291-292)

 

서양 계몽주의식 소비주의와 미국의 민주적 자본주의에 뿌리박고 있는 이런 나이키류의 현실관은 오랜 역사를 갖고 있습니다. 구약성경에서는 그 옛날 애굽이 강요했던 벽돌 할당에서부터 바벨론 제국의 강압 정치에 이르기까지 그런 현실관의 다양한 모습을 보여 줍니다. 신약성경에서는 율법에 근거한 유대인의 엄격한 요구 사항이나 로마인이 강요했던 황제 숭배 모습을 띱니다. 그것은 루터가 말했던 '선행'일 수도 있고, 우리 시대에는 '우리가 알고 있는 복지의 종말'을 뜻하거나, 출세를 위해 최고의 사립 유치원에 가라고 자녀에게 강요하는 못브으로 나타날 수 있습니다. (300)

 

현재 서양은 기독교 신앙에 대해 무척 적대적이거나 무관심하기 때문입니다. 바벨론에서도 그랬습니다. 유대인의 인생관은 그 제국의 문젯거리로 간주되거나, 적어도 성가시게 취급되었습니다. 오늘날 소비를 지향하는 자본주의가 판치는 서양에서도 교회는 문화적인 문젯거리로 혹은 적어도 성가신 존재로 취급받고 있습니다. 바벨론 사람들도 이런 식으로 생각했고 많은 유대인들이 거기에 동조했다는 증거도 있습니다. 많은 유대인들은 유별난 정체성을 유지하면 좋은 직업을 얻을 수 없고 자녀도 좋은 학교에 보낼 수 없기에 그 일이 너무도 값비싼 대가를 치르는 일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유별남을 포기하고 차라리 제국이 제공하는 복지 혜택을 누리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310)

 

 설교자는 이런 흐름을 파악하고 전복적인 의도를 가져야 한다는 게 월터 브루그만의 주된 입장이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대한민국의 우상은 무엇이 있을까? 과연 불상이나 이런 것들인가? 아니다. 나는 주로 학벌사회(서열구조), 전 영역에 시장화가 아닐까? 교회는 서열화보다 시장의 논리를 따르는 교회가 될 수 있다. 이는 수요일마다 소예언서편을 강의하고 있는데 호세아 시대 '바알 종교와의 혼합'을 대한민국 시대의 '자본주의와의 혼합'으로 대비해서 설명하고 있다. 우리의 우상을 보여주는 자료는 어디에서 얻을까? 나는 드라마나 사회관련 책에서 주로 얻는다. 드라마는 <SKY캐슬>이 잘 드러내 보여주었고, 책으로는 김덕영의 <에리식톤 콤플렉스>, 마사 누스바움의 <학교는 시장이 아니다> 등이 있다. 

 

 

 주의점도 있다. 월터 브루그만은 텍스트를 설교하라고 하지만 어쩌면 지금 미국 시대의 이데올로기를 반대하기 위해 본문을 가지고 오는 경우일 수 있다. 이 지점은 상당히 애매한 지점이다. 본인만이 알 수 있는 지점이다. 나는 과연 내가 생각하는 가치에 맞게 본문을 취사선택을 한 것이 아닌가? 요즘 들어 부쩍 하는 생각이다. 그래서 뭔가 내 설교는 하나인 것 같다는 느낌을 갖는다. 결론도 비슷하게 나오고 거기에 예화나 다른 것들을 바꾸어서 넣고 그렇다. 그래서 텍스트 읽기가 먼저 선행되어야 한다고 본다. 월터 브루그만이야 성경학자이며 성경에 통달한 사람이겠지만 대부분 설교자는 그렇지 않다. 나 역시 텍스트 안에서 텍스트의 영향을 받으며 먼저 수신자가 되어야 한다. 이 점을 잊지말자고 나 스스로에게 다짐해 본다. 

 

 아참, 월터 브루그만은 하우어워스 책들과 같이 읽으면 좋을 듯하다. <하나님의 나그네 된 백성>과 <예언자적 상상력>을 추천한다. 

 

 


 

 

메모

 

오히려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제국의 진리와 상충되는 진리를 제공합니다. 설교자들은 오늘날 서구가 기독교가 지배하던 과거와는 전혀 다른 상황이라는 사실을 알면 오히려 해방감을 느낄 것입니다. 우리는 특권적인 지위를 잃어버렸지만 그 때문에 오히려 자유로운 편입니다. 더 이상 과거 권력 구조에 묶여 제국을 위해 물을 길을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258)

- 한국 사회는?

 


 

 

책 맛보기

 

여호와의 재등장에 관한 소식은 그동안 그토록 크게 보였던 제국의 모습이 하나의 망상임을 보여 주기 시작합니다... 풍부한 상상력을 가진 시인은, 복음 전파자가 기쁨에 충만하여 근동의 사막을 가로지르며, 과거에 패배했던 그 하나님이 다시 세력을 얻어 돌아왔다는 소식을 전하는 시나리오를 만들 수 있습니다. (30)

중요한 것은 텍스트가 발하는 목소리이며, 이는 우리는 자주 발언하지 못하는 말입니다... 보수주의자들은... 텍스트를 신학 체계 속에 잠기게 하여 그 위험한 목소리를 잃게 하고 그 위험성과 동떨어진 어떤 지적인 설명의 시녀로 만들어 버립니다. (87-88)

 

 


 

목차

 

추천사

머리말

프롤로그

 

1. 설교는 현실의 이미지를 바꾸는 행위

2. 설교자, 텍스트, 그리고 사람들

3. 고대의 말씀과 현대의 청취

4. 양자택일을 촉구하는 설교

5. 세계를 다시 묘사하는 설교

6. 성경 텍스트의 사회적 성격과 설교

7. 상처받은 자의 부르짖는 소리

8. 삶이냐 죽음이냐: 특권적 지위를 잃은 설교

9. 포로들에게 행하는 설교

10. 현실을 달리 행하는 설교

11. 진실을 말하는 설교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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