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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설교문] 5분 설교 - 로마서 12장 1-2절, 롬 12:1-2, 롬 12:1~2[왜 잘 사는 집 아이들이 공부를 더 잘 하나? I 계층하강 I 공부하는 이유 I 아비투스 I 한국 교육이 만들어 내는 몸 I 교회가 만들어 내는 ..

by 카리안zz 2023. 5.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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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읽기: 로마서 122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최근 재미있는 책을 읽었습니다. <왜 잘 사는 집 아이들이 공부를 더 잘하나?>라는 책입니다. 이 책은 2011년에 나왔는데 저자의 서울대 박사학위 논문을 책으로 출판한 것입니다. 자신이 왜 잘 사는 집 아이들이 공부를 더 잘하는지를 연구 주제로 삼고 눈문을 쓴다고 하니깐 어떤 교수님이 왜 당연한 걸 연구하냐면서 비아냥 거렸다고 합니다.

어찌보면 참 당연한 주제이기도 합니다. 당연히 돈이 많으니깐 돈 없는 부모에 비하면 교육을 많이 시키니깐요. 하지만 저자의 분석으로는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저자는 두 그룹으로 나눠서 연구를 진행했습니다. A그룹은 고학력 중산층 /B그룹은 저학력 노동자 및 저소득층입니다. 각각 그 가정의 학생들을 심층 면접을 하면서 왜 그들의 학업에 차이가 있는지 분석해 냅니다.

여러 차이점들이 있긴 했습니다. 개인의 성격에 따라 다른 경우도 있었습니다. 지기 싫어하는 성격이기에 남을 이기기 위해 공부를 열심히 하고 결국 명문대에 진학한 케이스도 있었습니다. 두 집단 모두에 그런 케이스가 있었습니다. , 공부를 잘해서 부모님에게든 선생님에게든 칭찬을 받는 게 좋아서 공부를 잘한 케이스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자가 찾아낸 중요한 지점은 부모들의 교육열망이란 것이 학생의 성적을 좌우한다는 것입니다. 이때 교육열망이란 자녀가 더욱 우월한 가치의 학력 및 학벌을 획득하기를 기대하는 가치관과 이를 위한 구체적 지원 행위 등’(20)을 말한다. 쉽게 SKY대학이나 명문대의 진학에 대한 열망으로 보면 될 듯하다. 고학력 중산층의 이 교육열망이 얼마나 자녀에게로 잘 전환되는지가 명문대로 가는 지름길이다. 부모님이 공부를 해야하는 이유를 자녀도 깨닫게 하는게 참 중요한 것입니다. 공부하는 이유를 깨달으면 스스로 공부를 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제가 한 부분을 읽어보겠습니다.

 

이처럼 학습활동의 중요성과 집중을 강조하는 부모들의 가치관이 일상생활 속에서, 그리고 성적 확인과 독려라는 반복적인 이벤트를 통해서 자녀들에게 주입되면, 자녀 자신들의 생각은 점차 부모들의 높은 교육 열망을 닮아간다....공부를 잘했을 때의 성취감과 만족감을 맛보면서 학습동기의 내면화를 경험하게 된다. 부모로부터 인정받고 부모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서 공부를 하다보면 성적이 향상되고 성적 순위가 높아지면 집안에서의 대우나 주위에서 바라보는 눈이 달라지니 공부를 잘하고 볼 것이라는 깨달음이 생기기도 하는 것이다. 특히 중산층 부모들은 자녀의 학업에 일찍이 개입하고, 적어도 고등학교 이전에 성적이 상위권을 유지해야 한다는 믿음이 있어서 일찍부터 학업성적을 끌어올리는 일에 적극적이다.. 교육열망을 학습하다보니 외적 요인뿐 아니라 내적 요인중요성에 대한 자극 등-에 의해서도 공부를 하고 학습활동의 가치를 내면화하게 된다.”(154)

 

이런 교육 열망을 자극하기 위해서 부모님들이 쓰는 방법들이 있었습니다. 그건 바로 계층하강의 공포조성입니다. 좀 극단적인 사례로 보이지만 한 학생의 부모님은 티비를 평소에는 못보게 하다가 몸 노동하는 사람들이 나오면 방에 있는 자신을 불러서 공부 못하면 저런 일한다면서 메시지를 주입했다고 합니다. 공부를 못하면 평생 고생한다는 메시지를 설교하면서 한편으로는 고학력을 획득한 가정에서 누리는 것이 무엇인지 보여주면서 마음을 다지게 하는 교육을 펼칩니다. 이렇게 공부하는 습관을 가진 몸이 형성되며 성향, 사고, 인지, 판단, 및 행동 체계, , 아비투스(30)가 형성됩니다. 그리고 스스로 공부하는 몸을 만든 다음에 엄마의 정보력이 중요해 집니다. 부모님이 아이의 성적표를 분석할 줄 알아야 한답니다. 몇 점 맞은게 중요한게 아니라 어느 부분을 잘 틀리는지 알아내야 합니다. 국어의 비문학을 많이 틀리는지 문학을 많이 틀리는지, 수학에서 지수로그를 많이 틀리는지 수열을 틀리는지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각 영역에서 잘 가르치는 과외선생이나 학원에 대한 정보를 알아내서 자녀를 그곳으로 보내는 것이죠. 그렇게 되면 4달 공부할 거 1달 공부하게 됩니다. 시간 단축으로 효율적인 성적관리가 되는 것이죠.

반면 저학력 노동자 및 저소득층의 부모님들의 교육열망은 상당히 낮았습니다. 왜냐하면 의외로 자신의 직업 현장에서는 학업으로 인해 차별받는 경우가 적었기 때문입니다. , 설령 교육을 시켜야 한다는 마음이 들어도 어떻게 교육을 시켜야 하는지 방법도 모르고 시간도 없고 그러니 상대적으로 차이가 더욱 벌어지게 됩니다.

이 연구는 질적 연구이기에 일반화 시킬 수는 없지만 저자는 하나의 경향성을 파악할 수는 있다고 합니다. 계층하강의 공포를 느끼며 공부하던 그 사람들은 과연 세상을 바라볼 때 어떤 태도로 바라볼까요? 한 가지 더 드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이 책의 연구는 2009년이었습니다. 그러니깐 지금의 제 또래를 대상으로 했던 연구입니다. 제 부모님은 베이비 부머 세대인데 이때 고등학교 나온 경우가 그렇게 많진 않았습니다. 당시는 상고를 나왔다고 하면 상당한 엘리트라고 생각한답니다. 저희 부모님도 아버지는 초졸, 어머니는 고졸이었습니다. 당시 고학력이었던 분들은 그렇게 많지 않았을 겁니다. 하지만 2010년대는 고학력자들이 점점 많아집니다. 다수가 대학을 나왔기에 고학력이지만 저소득층도 많습니다. 어쩌면 이 교육열망은 이제 고학력층 중산층만이 아니라 고학력 중산층 이하에게까지도 확대되어 보입니다. 그 사이 금융위기가 여파가 지속되었고, 입시제도도 바뀌었기에 더욱 경쟁이 강력해지는 시기입니다.

실제로 이 계층 하강의 위기에서 나온 이야기들을 저는 작년 중고등부 사역할 때 직접 보았습니다. 어떤 학생이 저에게 공부 안 하면 몸일 하고 힘든 일해야 한다고 공부해야 한다길래 제가 깜짝놀라서 그런 소리하면 안 된다고 혼을 냈더니 집에서 그렇게 말한다고 하더군요. 공부도 지독하게 시키면서 공부 안 하면 어떻게 된다는 메시지를 엄청 강조 받더라구요. 이제 고학력 중산층만의 문제가 아니라 고학력 중산층 이하로까지 확대된 것을 보게 되는 순간입니다. 이런 배경 속에서 20대 현상을 생각해보니 여러 퍼즐이 맞춰지는 것 같았습니다. 넓게는 재앙적인 출산율 문제 속에도 이 실타리는 분명 있어 보입니다. 얼마 전 시사인에서 나온 출산율 관련 조사에서 결혼을 안 하고 아이를 안 낳는 이유 중 하나가 더 이상 경쟁에 지쳐서라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분명 상관관계가 아에 없다고는 보이지 않습니다.

 

세상이 점점 이기적으로 변하는 것같고, 자신과는 다른 대상, 그것이 성별이든 세대든 지역이든 서로 알아가려고 하는 모습조차 없어진 것에서 우리는 그동안 우리가 만들어왔던 이 공부하는 몸을 주목해 보고 싶습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대한민국 교육 시스템과 그 공모자인 가정에서 가르치는 몸이야말로 우리가 이 세대를 본받지 말아야할 것입니다. 우리는 그 속에서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해야하는 사명을 가집니다. 이 사회에서 채우는 마음을 경계하십시오. 우리는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하여 변화를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기독교 2000년의 가르침 속에서 교회의 몸 역시도 공부하는 몸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책으로 기록되어 있기에 우리 역시도 공부하는 몸은 포기하지 못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공부해야하는 이유가 달라야 합니다. 교회의 몸도 공부하는 몸이지만 그 이유를 달리해야 합니다. 계층하강의 위기가 아니라, 남보다 더욱 많은 것을 누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계층이 하강되더라도, 나보다 남을 더욱 누리게 하기 위한 공부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죽으심의 이유가 무엇입니까? 우리의 죄를 위해, 남을 위한 사랑의 행위였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몸으로 우리는 확대해 나가야 합니다. 그것이 다니엘 기도를 통해 몸으로 나타나기도 하며, 지금처럼 삼일예배를 통해서든, 금요기도회를 통해서든, 그 몸을 만들어야 합니다. 공부하는 몸, 기도하는 몸, 말씀듣는 몸입니다. 그것이 교회가 형성해야 하는 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으십시오! 그리고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십시오!

우리는 그리스도인입니다. 이 시대, 이 세상 속에서 이 정체성을 놓지 않는 성도님들이 되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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