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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설교문] 5분 설교 - 갈라디아서 3장 26절, 갈 3:26[믿음 I 신경의 형성 I 세례 I 니케아 신경 I 영지주의 I 증언 I 고백]

by 카리안zz 2023. 5.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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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읽기: 갈라디아서 326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

믿음은 그리스도교에서 참 중요합니다. 그리스도교 초기부터 정통과 이단에 대한 논의가 많이 있었습니다. 올바른 믿음이 있으면 정통이고, 이것을 벗어나면 이단으로 간주했습니다. 이런 것은 다른 종교에는 없기에 그리스도교의 아주 독특한 흔적이기도 합니다. 바울이 서신을 쓰고, 복음서가 써지고 신약성경이 기록된 이후 2세기 초 이그나티우스라는 교부가 있었습니다. 사도들의 제자였던 이그나티우스의 기록을 보면 예수님께서 진정으로 인간으로 태어나셨고 죽었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이 점을 여러 편지들을 쓰면서 강조를 한 점인데 편지를 쓰면서 왜 이런 점을 강조했을까요? 이유는 예수님은 참된 하나님이시고, 영적인 그리스도이시지만 인간으로 변장했을 뿐이라서 탄생도 죽음도 실제로 일어나지 않았다는 주장들이 퍼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흔히 가현설이라는 주장에 대한 반박이 육신이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부활하셨다는 점을 강조했던 것입니다.

시간은 흘러 3세기쯤에 와서 초기 교회는 교리교육했고, 세례를 주며 믿음에 대한 고백을 받았습니다. 초기 교회에서는 세례 후보자에게 세례를 줄 때 세 가지 질문을 던졌다고 합니다.

 

첫째, 당신은 전능하신 성부 하나님을 믿습니까?

둘째,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성령으로 동정녀 마리아에게 잉태되어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 치하에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묻히셨으며 사흘 만에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셔서 하늘에 올라 하나님 오른편에 앉아 계시다가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실 분을 믿습니까?

셋째, 당신은 성령과 거룩한 교회와 몸의 부활을 믿습니까?

 

이렇게 세 가지 질문을 던지면 세례 후보자는 대답할 때 나는 믿습니다라고 답했습니다. 이그나타우스의 흔적들이 이 질문들에도 잘 담겨져 있습니다. 질문들을 들으시면 비슷한 내용이 떠오르실 겁니다. 바로 사도신경과 니케아신경의 틀이 바로 여기에서 형성되어지고 있었습니다.

 

앞서 가현설, 그러니깐 예수님은 진짜 몸으로 오시지 않았고, 다 가짜이기에 실제로 일어나지 않은 일이라는 사상은 일찍이 영지주의라는 것에서 기원을 합니다. 초기 기독교는 이 영지주의와 격렬한 투쟁을 했었습니다. 영지주의는 그 시대 정신의 흐름이었습니다. 이 영지주의란 신체 그러니깐, 몸을 무덤으로 생각했었습니다. ‘더 높은 지식을 통해 몸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사상을 말합니다. 당시 사람들에겐 이러한 욕구가 굉장히 높았었습니다.

영지주의는 정의하기에 상당히 어렵다고 합니다. 폭이 상당히 넓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해보자면 영지주의는 이 세상, 그러니깐 물질 세계 자체를 죄의 결과로 보았습니다. 물질은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가려진 비밀 지식을 알게 되면 이러한 물질 세계에서 해방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집니다. 영적인 지식을 추구하는 자들이죠. 당장에 이러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은 성찬식에서 문제가 일어납니다. 성찬은 지상의 물질들을 가지고 물질세계와 피조물의 선함을 확인하는 시간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피와 살을 포도주와 빵으로 보는 것이 이들에게는 말이 안 되었죠. 더 나아가 예수님이 실제로 이 땅에 몸으로 오셨고, 죽으시고, 몸으로 부활하셨다는 것을 인정할 수가 없었습니다. 물질은 악인데 그 물질로 다시 사셨다는 것은 그들에겐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더구나 영지주의는 당시 철학과 고대 신화를 혼합한 사상이기도 했습니다. 몸을 감옥으로 보고 벗어나야 겠다는 사상을 플라톤 철학에서, 궁극적인 신은 헤아릴 수 없이 많다는 사상은 당시 다신교 신화에서 나타났습니다. 궁극적인 무한자의 유출을 통해 영적인 세계가 생성된다고 보았습니다. 남신, 여신 짝을 맞춰서 설명하기도 했고요. 이레네우스라는 교부는 당시 영지주의와 맞서싸워서 하나님은 신성이 분열되지 않기에 한 분 하나님이라고 강조했었습니다.

, 영지주의자들은 만물이 신적 근원에서 유출되었다고 주장했었습니다. 이렇게 되면 자연이라는 필연성에 신적 존재가 종속된다는 인상을 줍니다. 이러한 주장에 반박을 하며 이레네우스는 하나님의 주권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시다는 것을 말입니다. 무로부터의 창조는 이러한 영지주의에 반박을 하면서 생겨났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이 무로부터의 창조는 고대 세계의 다른 모든 철학과 그리스도교를 구별할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당시 사회의 대세적인 흐름을 거부하고 나온 고백이지요.

이밖에도 당시 다신론의 영향으로 자연을 숭배하던 사상은 흔했었습니다. 자연에 신적 속성을 부여하던 시대에 그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이 세상, 하늘과 땅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을 창조하셨다는 고백을 했었습니다. 이러한 사상에는 자연을 우리의 도구로 볼 수 있게 됩니다. 과학이 서양세계에서 나타난 것은 기독교와 무관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론 하나님의 창조세계이기에 우리는 이 세상을 잘 가꿔가야 할 의무가 있기도 합니다. 이러한 균형이 우리의 신앙 고백에는 잘 스며들어 있습니다.

니케아 신조의 첫 시작은 이렇습니다.

우리는 한 분이신 하나님 전능하신 아버지를 믿나이다.

그는 하늘과 땅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만물의 창조주이나이다.”

 

만약 그리스도교가 당시 세상의 흐름을 담고 있는 영지주의에 잠식당했더라면 지금의 그리스도교는 없어졌을 겁니다. 그리스도교는 신비주의, 도피주의로 전락했을 것이고, 이 세계가 아닌 다른 세계에만 골몰하며 현실과 무관한 소종파들로 분열되었을 겁니다. 당연히 그리스도교 세계도, 그리스도교 문명도 없습니다.

니케아 신경의 처음 시작은 그리스도교가 존속 가능한 이유를 보여줍니다. 교회 안과 밖에서의 치열한 투쟁으로 인해 이 구절이 이제 공식 문구로 채택된 이 구절로 말입니다. 이 신조들로 인해 우리는 믿음이 무엇인지 고백하며 이 믿음으로 인해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가족이라고 말할 수 있게 됩니다. 이것은 그리스도교만의 아주 독특한 것입니다. 유대교는 민족종교이기에 할례, 자기들끼리의 결혼, 율법준수로 구성원을 구별합니다. 이렇게 유대교를 대표적으로 보면 알듯이 다른 집단들 역시도 비슷합니다. 그들만의 의례, 규율을 통해 경계를 만들어나갑니다. 하지만 그리스도교는 민족, 인종, 행동, 다른 요소들로 다른 집단들과 구별짓지 않습니다. 그리스도교는 믿음의 문제를 가지고 경계와 표지를 설정합니다.

 

믿음의 고백은 세상을 바꿔놨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현대 사회의 모습도 초기 기독교의 믿음을 통해 한 가족 구성원이 된 것과 그리 무관하지는 않습니다. 어떻게 시간으로는 2000년이란 시간이, 공간으로는 엄청난 거리에 있던 믿음의 고백이 우리에게 영향을 주며 우리는 지금 그 신조들을 고백하고 있을까요? 성경이 열어젖힌 세계를 보노라면 새삼 신비감이 휩싸일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감각을 넘어서 우리의 고백이 세상의 흐름과 대비됨을 여전히 증언해야 합니다. 이제 자연을 우상숭배하지 않지만 인간 자체를 우상숭배합니다. 이제 물질을 우상숭배합니다. 누구는 경제와 시장을 신으로 섬기고 있고, 누구는 과학을 신으로 섬기고 있습니다. 말은 하지 않지만 마음은 거기로 기울어져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세계에만 몰입하는 이 세상입니다. 내 먹거리에만 손을 대지 않는다면 화를 내지 않습니다. 세상에 어떠한 부조리와 불의가 난무해도 화를 내지 않습니다. 내가 손해보고 있다는 그것이 불의가 된 세상입니다.

세상을 하나님께서 다스리고 있다는 고백, 눈에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을 창조하신 분이 하나님이라는 우리의 신앙고백은 이 시대에도 계속 증언되어야 합니다. 이 시대에도 증언하시는 우리 성도 여러분들이 되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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