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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리뷰/성경신학

[책리뷰] 그레고리 K. 비일 - 성전 신학[새물결플러스 I 하나님의 임재와 교회의 선교적 사명 I 성전 I 성막 I 지성소 I 구약]

by 카리안zz 2023. 3.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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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전을 통해 성경을 본다면 많은 것을 얻을 것이다. 그런데 다른 큰 주제인 하나님 나라언약보단 조금 난이도가 있다. 왜냐하면 성전(성막)을 알아야 하는데 이게 직관적인 영역이 아니기 때문이다. 성전(성막)의 형태나 성소, 지성소, 그리고 그 안에 있을 물품들까지 아, 위치까지도 알고 있어야 한다. 그러니 당연히 몇 천 년 후를 살아가는 우리에겐 너무나 거리가 먼 개념일 수밖에 없다. 바울은 딤후 316절에 이렇게 말한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지금의 성경 형성은 몇 세기 뒤의 일이기에 바울이 저 편지를 썼을 당시 성경은 지금의 성경을 언급하는지는 의문이 든다. 확실한 건 구약은 포함된다는 것. WBC주석에선 예수님에 관한 구술까지 포함한다고 얼핏 본 기억이 난다. 여튼, 중요한 건 구약 성경을 유대인뿐만이 아니라 이방인인 우리 같은 사람들 역시도 구약을 공부해야 한다. 더하여 우리는 몇 천 년의 간격이기에 당시의 세계들을 이해할 수 있는 배경 역시도 공부해 두면 좋을 것이다. 물론, 의무는 아니고 성경에 열의가 있으신 분들은 배우시면 더욱 성경을 깊게 알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신앙을 깊게 할지는 모르겠지만.

 

그런면에서 성전에 대한 공부는 딱 구약과 성경 당시 사람들의 세계관을 알기에 유익한 도구다. 성전이 정치, 사회, 문화 모든 것의 중심지이기에 우리에겐 낯설 이야기다. 오늘 읽은 페린의 책 서론에선 마치 이것은 지금의 주식 시장 보고서를 매일 읽고 지속적으로 매번 조사하는 것과 비슷하단다.

 

성전(성막)은 우주의 축소된 상징이다. 하나님께서 임재하고 계시는 거룩한 곳, 곧 하나님의 집인 성전이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상 속에 에덴 역시도 하나님이 임재하여 계셨기에 성전의 의미를 이어간다. 왜 계시록의 완전한 하나님의 성전이 에덴의 모습으로 말하고 있겠는가.

에덴의 아담은 제사장과 왕의 역할을 해야한다. 그는 하나님의 형상이기에 그 형상은 왕이 그 지역을 다스리고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1:28)

 

그들은 쾌적한 에덴의 태곳적 언덕 위에 있었고, 에덴 바깥에는 황량한 땅이 가로놓여 있었다. 그들은 살기에 알맞은 동산의 작은 땅을 넓혀야 했다. 바깥의 무질서한 지역을 쾌적한 공감으로 바꿈으로써 말이다.(110)

 

아담은 인간이 살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고, 하나님의 형상인 인간으로 번성함으로 하나님께서 온 땅을 거주가능한 공간으로 만들 목적을 가지셨다. 온 땅을 하나님의 영광으로 가득채우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궁극적인 창조 목적이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하나님이 계신 곳이 부정해졌다. 성소가 부정해지는 것처럼 에덴 역시도 오염되는 일이 발생한다. 부정(사탄)이 에덴을 침범한 것이다. 아담은 자신의 역할에 실패했다. 그러니 왕의 역할도 끝나게 되었다. 땅에서 추방당한다. 그 역할을 이제 아브라함의 후손에게 이어진다. 하나님의 약속을 받을 때 그들은 제사를 드린 것에서 비일은 초기 성소의 모습을 발견한다. 그러나 이스라엘 역시도 마찬가지로 실패한다. 그들도 제사장과 왕의 역할에 실패하고 땅에서 추방된다(포로기).

 

그렇게 예언자들은 다시 하나님께서 온 땅을 가득채우실 것(임재)을 예언한다. 그것은 곧 창세기 128의 성취에 대한 이야기이며 새로운 성전에 대한 예언을 한다.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는 곳이 바로 성전이니깐.

 

“너는 장막 터를 넓혀라 장막의 휘장을 아끼지 말고 펴라. 너의 장막 줄을 길게 늘이고 말뚝을 단단히 박아라... 황폐한 성읍들마다 주민들이 가득할 것이다.”(사 54:2-3)

 

성전()과 약속이 이 본문에 들어있다. 그런데 이번 성전은 이전의 성전과 다른 모습이다.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하늘은 나의 보좌요 땅은 나의 발판이니 너희가 나를 위하여 무슨 집을 지으랴 내가 안식할 처소가 어디랴”(사 66:2)

 

이번의 성전은 사람의 손으로 지은 성전이 아니다. 사람의 손을 대지 않는 돌(2:45; 20:25)이 성전의 주춧돌이 될 것이다.

 

이상의 신약에서 왜 예수님이 돌로 비유되는지, 임마누엘인지, 거하시는 곧 성막이라고 표현되는지 구약의 맥락을 신약에 어떻게 나타나는지 니콜라스 페린의 책에서 이야기를 이어가지 싶다. 유익한 책이다! 강추!

 

물론, 이런 큰 주제로 읽는 책이 약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 전략은, 관련된 모든 타당한 자료를 같이 묶어서 고찰한다면 설득력이 약해 보이는 것이 자체만으로 볼 때보다 더 중요해진다는 것이다. 따라서 어떤 한 가지 관점을 선호하는 설명이 그것만 보았을 때는 유효하지 않다는 점이 자주 드러나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의 목적, 즉 약해 보이는 지점이 다른 연관된 분석 자료에 비추어볼 때 더 강한 설득력을 가지게 한다는 목적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설령 이런 점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우리의 전반적인 계획은, 누적된 논의들의 전체적인 무게가 이 논의의 주요 개념의 개연성 또는 가능성을 지시한다는 것이다.(501)

 

비일의 말에선 큰 주제의 약점에 대한 반론인데 적절한 대답이었다고 본다. 내가 학자라면 이런 작업을 선호하지 않겠지만 성경교사인 목회자이기에 비일의 이런 작업은 나에겐 참 유익하다. 대표적으로 이런 작업이 교회를 위한 작업이라고 본다.

 

대강 생각나는 점들을 요약했지만 두꺼운 책인 만큼 성전의 맥을 이어가면서 다양한 이야기들을 담아 내고 있다. 성도들에게 나눠줄 수 있는 깊은 우물과도 같은 책이다. 이 책이 조금 그렇다면 요약판으로 보이는 <성전으로 읽는 성경 이야기>를 추천한다. 일반인과 일부 목회자들에겐 고대 근동에 대한 이야기나 제2성전 이야기 없이 그냥 구약과 신약만 이야기해도 괜찮지 싶다. 물론, 저 책이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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