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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리뷰/성경신학

[책리뷰] 웨인 믹스, 리처드 헤이스 - 왜 신약성서를 연구하는가, 믿음의 눈으로 성경읽기[알맹e I 성경 I 신학 I 성경읽기 I 믿음 I 신약신학 I 성경신학]

by 카리안zz 2023. 3.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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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두 논문을 학문을 위한 신학과 교회를 위한 신학에 대한 이야기로 읽었다. 첫 번째 논문은 <왜 신약성경을 연구하는가> 2004SNTS 회장 취임 연설이다. 두 번째 논문은 2006년 듀크대학교 신학대학원에서 개최되었던 컨퍼런스에서 발표되었던 논문이다. 웨인 믹스는 <1세기 기독교와 도시 문화>라는 대작을 쓰신 분이다. 톰 라이트는 지난 40년 바울 신학계에서 세 개의 랜드마크로 E. P. 샌더스, 루이스 마틴, 웨인 믹스를 뽑았다고 한다. , 존 바클레이도 자신의 주 저서 중 하나를 믹스에게 헌사했다고 정은찬 박사님의 글에서 봤다. 그만큼 연구가 신약학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음을 알 수 있다.

 

리처드 헤이스가 학계에서는 어떻게 평가받는지는 모르겠다. 학계에 속한 사람도 아니고 위의 믹스처럼 어떤 정보글을 본 적이 없어서. 나야 어디까지나 그의 성경 읽기가 나에게 많은 도움을 주기 때문에 좋아할 뿐이다. 감은사에서 나온 <복음서에 나타난 구약의 반향>의 추천사를 보면 로완 윌리엄스, 다니엘 보야린, 외르크 프라이, 앨런 제이콥스가(톰 라이트, 사이먼 개더콜은 같은 편으로 보이니 제외ㅋㅋ) 높게 평가한다. 이분들이 주례사평을 하지는 않겠지. 대가로 보이는 이 두분의 글에서 얻는 것이 많다.

 

웨인 믹스는 2004년도의 신약학의 상황을 말한다(그 당시 상황을 요약하는 건 안 하겠다. 직접 읽어보시길). 나는 19년 지난 지금의 상황은 어떨까가 더욱 궁금하다. 여전히 서구에선 신학과는 없어지지 않은 것 같은데. 몇 년 전 읽은 마사 누스바움의 <학교는 시장이 아니다>라는 책에선 인문학(당연히 신학도 포함)의 위기를 말하던데 신학 자체의 생존보단 인문학 자체의 생존을 요즘 걱정해야 하지 않을까 싶기도. 그래도 살아남아 있다. 대한민국에서 그 위기가 더욱 짙게 보이는 것 같다. 대학에서 국문과가 축소되는데 신학은 말해 뭐하겠나.

 

웨인 믹스의 책에서 역사비평은 발전했다는 것을 배웠다.

 

역사비평이 몰락했다는 평가는 대단히 과장되었습니다. ...정반대입니다. 과거를 더 정확하고 정직하게 재구성하는 작업에는 결코 끝이 없습니다. 늘 새롭게 발견된 것들을 소화하고, 간과했던 요소들을 검토하며, 참신하게 작업한 비교 연구를 평가해야 합니다. ... 모든 역사 기술은 미완적이며 잠정적 성격을 갖고 있습니다. 우리가 겸손해야 할 또 다른 이유입니다.

 

역사란 무엇인가? 그리고 역사의 효용은 무엇인가? 포스트모던 시대의 도전 앞에서 우리는 다시 물어야 합니다. 역사는 예술인가 과학인가? 분명 둘 다입니다... 모든 역사가 만들어진 것이라는 사실을 인정합니다. 하지만 과거에 관해 만들어진 이야기가 다 역사는 아닙니다. 과거에 대한 이야기인데 교정 가능한 것, 그것이 역사입니다. 해석이 가미되지 않은 사실이란 없다는 말은 옳습니다. 그럼에도 사실이란 것은 존재합니다.

 

또한, 읽어나가다보면 한스 부어스마같은 조직신학자들이 생각하는 방식으로 성서학자들이 생각하지 않음을 여기서도 알 수 있다.

 

우리가 담대하게 주장했던 객관성은 어디에 있습니까? 중립적인 과학적 탐구와 분석을 통해 얻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 확신은 어디에 있습니까? ... 이러한 거대 서사들이 설득력을 잃으면서 그에 바탕을 둔 연구에 의심의 눈초리가 쏟아졌습니다.

 

여러모로 신학적 읽기를 내려놓으라는 말들이 나온다. 아무래도 웨인 믹스처럼 메인학계에 속한 사람이랑 한스 부어스마가 한판 붙었으면 정말 재미는 있었을 거같다.

 

믿음의 눈으로 성경을 읽는 방식으로 대학이란 곳에서 신학을 계속 살아남을 수 있을까? 라고 김선용 박사는 말한다. “교회만을 위한 신약학 연구자가 대학이라는 연구 기관에서 월급을 받으며 공부와 집필을 하고 전통 교리의 정당성을 입증하려는 신약학 논문에 박사를 부여하는 것이 정당한가?”라고. 일견 일리있는 말이다. 반대로 나는 왜 대학에 신약학이라는 분과가 있어야할까? 그냥 역사학과 안에 1세기 팔레스타인 역사를 가르치는 과목으로 적당할 듯싶은데 말이다. 서양은 기독교로 형성된 곳이니 그렇다쳐도 대한민국에서는 역사학자로 의식을 가지고 있으신 분들이 굳이 신학과가 의미가 있을까? 연세대 신학과와 신학대학원이 의미가 있을까?

 

리처드 헤이스의 교회를 위한 성경읽기는 참으로 도움이 많이 된다. 오늘 수요예배 설교를 리처드 헤이스에게 빚졌다. 4일 연속 심방이 예정되어있을 때 그의 글을 나에게 빛이었다(반농담).

 

여러 복잡한 문제들이 얽혀있지만 그 얽힘을 살펴볼 수 있는 그 자체로 이 두 논문은 의미가 있다. 신학을 전공하신 분들께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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