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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리뷰/신학

[책리뷰] 월터 브루그만 - 월터 브루그만의 복음의 공공선[두란노 I 나만을 위한 신앙에서 이웃과 공동체를 위한 신앙으로 I 공적 신앙 I 공공선 I 공공 신학 I 복음]

by 카리안zz 2022. 10.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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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해 1-2월 교회 전체로 신앙성숙반 강의를 듣는다. 각자 사역자가 주제를 정하고 강의를 했는데 이번에는 담임 목사님께서 전체 강의를 맡으셨다. 교재는 월터 브루그만의 <복음의 공공선>으로 정했다. 책 두께도 얇고, 대선을 앞두고 있어서 이 책으로 정했다. 신앙성숙반 시간에 나는 중고등부 모임을 해야 했기에 책만 구입했고, 어제 다 읽었다.

 

사실 이 책을 집중해서 읽지는 못해서 잡설을 많이 했다. 읽는 동안 월터 브루그만스러운 이야기를 한다는 생각이 자주 들었다. 제국의 이데올로기 vs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의 대비를 잘 보여주었다. 바로의 제국에서 출애굽 이야기를, 바벨론 제국에서 이사야와 예레미야를 잘 정리해준다. 특히 1, 2장 마지막 부분에 신약과 연결시키는게 참 좋았다. 특히 2장이 그랬다.

 

바로의 시스템이 오랫동안 지켜온 것은 , , 세상지식이었다(104).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을 탈출하여 하나님이 부르신 곳으로 갔다. 고전 1:26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는 말씀이 애굽에서 불러내신 하나님과 연결시킨다. 제국의 이데올로기로부터 탈출이다. 예레미야는 이 이데올로기가 아닌 다른 길인 사랑, 정의, 공의를 말한다(112). 그리고 마지막으로 예수님의 말씀으로 마무리를 한다.

 

6:24-25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예수님은 걱정이 많은 제자들이 세상을 너무 닮았다고 말씀하신다. 그래서 세상과 다르게 행동하고, 탐욕스러운 자들이 아닌 믿음 있는 피조물(백합과 새들)처럼 행하라고 촉구하셨다. 예수님은 백합과 새들이 그분을 쉽게 믿고 매일 그분께 반응하는 것을 보시며 놀라운 말씀을 하신다.”(122)

 

6:29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그 옛날 바로와 같이 옛 확실성을 추구하지 말라”(122)

 

6:32-33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헤세드’, ‘미쉬파트’, ‘체다콰’의 운율은 계속해서 들리고 있다. 이것은 사회 체제를 뒤엎는 대안의 소수의 목소리이다. 이 목소리가 우리에게 맡겨졌다.”(123)

 

바로의 이데올로기와 출애굽기의 네러티브가 점점 확장되어서 예수님에게 와서 그 이야기가 절정에 달했다. 브루그만은 이제 그 목소리가 우리에게 맡겨졌다고 말한다. 선거철 오히려 신앙의 공공성이 과잉되는 이야기가 보인다. 2010년대는 개인의 사사로운 신앙을 벗고 이웃과 공동체를 바라보는 계기가 되었던 10년이었던 것같다. 요즘은 그 반작용이 있는 것 아닌가 싶지만 그럼에도 무엇이 되었든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것이 개인신앙이든 공적신앙이든 보다 앞서지 않을까. 그렇다면 우리는 개인도 공공도 함께할 수 있지 않을까. 내가 브루그만을 제대로 읽었는지 모르겠다.

 

월터 브루그만의 <예언자적 상상력>이란 책이 있다. 아마 내 설교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책이다. 2012년 하나님 나라에 신앙적 전환과 함께 박근혜 정부 시기를 겪으며 그때만큼 하나님 나라에 대한 강력한 소망을 느껴본 적이 있을까. 교육전도사였지만 새벽 설교를 방학 때마다 맡아서 했는데 그때 설교를 보면 그 흔적들이 조금씩 보인다. 극우(2011)에서 양비론(2012년 대선) 입장이었던 내 정치관이 2014년 세월호 사건을 겪으면서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졌다(대신 탄핵과 정권교체 그 강렬한 소망이 사라졌는데 지금은 내 하나님 나라는 민주당 정도의 상상력밖에 되지 않았나 하는 자괴감이 있다.)

 

사실 설교자들끼리는 설교를 비평하기가 조금 부담스러운 면이 있어서 자기 스스로 철저히 비평하지 않으면 주화입마에 빠지기 쉬울 것이다. 설교를 하고 나서 내 스스로 만족한 경우는 딱 한 번 뿐인데(성서유니온 설교문 입상작ㅋㅋ 유튜브에 있음) 모두 부족한 점들이 많이 있었다. 이상하게 설교를 할 때 그 부족한 부분이 눈에 보인다. 그때 눈이 터진 것처럼 갑자기 의문이 떠오를 때가 제법 있다. 조잡한 문장은 물론이요(책 리뷰 글들도 한 번에 주룩 쓰는 거여서 다시 읽어보면 엄청 비문이 많다. 개판이다. 물론, 설교문은 몇 번을 읽어보기에 덜하지만 하다) 탐구가 덜 된 부분들. 그러나 제일 문제는 내 설교는 상황을 본문에 구겨넣는 경우다. 오늘 우리 시대의 상황을 본문에 구겨넣는 것이 아닐까 스스로 그런 비판을 많이 해본다. 본문을 깊이 우려서 오늘 상황과 접목하는 경우라기보다는 현 상황에서 비슷해 보이는 본문을 가져다 대는 것 아닌가 싶을 때가 있다. 이런 비판을 월터 브루그만도 받던데 나도 <예언자적 상상력>의 영향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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