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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리뷰/신앙서적

[책리뷰] 로버트 뱅크스 - 1세기 그리스도인의 선교 이야기[로마 제국 어느 회심자의 선교적 일상](신현기 옮김, Ivp), "예배와 일상과 선

by 카리안zz 2021. 3.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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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낀 점


 드디어 1세기 시리즈의 마지막이 나왔다. 마지막 이 책은 우리 나라에서 기획되고 나온 걸로 알고 있다. '선교'가 들어 있어서 사실 안 읽으려고 했지만 목자모임 때 이 책을 읽고 나누기로 해서 어쩔 수 없이 구입하여 읽었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얇다는 것. 긴 시간 안 들이고 임팩트 있게 읽었다. 마음에 들었던 점을 서술해 보겠다. 

 

 이번에도 역시 푸블리우스가 주인공이다. 그가 회심하기부터 선교로 이어지기까지의 이야기가 시리즈에는 담겨 있다. 신앙이 점점 깊어지는 것을 보인다.
 아, 그 전에 먼저 '선교'에 대해 명시해 둬야 한다. 이 책 마지막에도 잘 알려 주듯이 '선교'라고 할 때 선교사님을 보내 복음을 전파하는 걸 말하지 않는다. (이 논의는 내가 리뷰한 <하나님의 선교>를 보시는 편이 빠를 것이다. 검색창에 한 번 쳐 보시길 바란다.) 오히려 이런 이미지가 떠오른다면 알렌 락스버러는 그 단어를 과감히 버리라고 말했다. 몇 년 전 그가 한국에 와서 강의를 했는데 그 대목이 가장 기억에 남았다. 선교적 교회의 주창자가 그렇게 말하다니. 여튼, 미션얼처치, 선교적 교회의 의미에서 '선교'다. 하나님이 일하심. 나는 하나님의 열정이 더 와닿는다. 복음을 전한다는 것에는 의미가 닿기도 한다.
 그럼 푸블리우스는 복음을 어떻게 전할까? 신앙이 점점 깊어지는 그가 어떻게 복음을 전할까? 


사업


 푸블리우스는 부유한 사람이다. 은행가이다. 그는 은행업을 하면서 어떻게 복음을 전할 수 있을까? 

 또 하나의 가능성인 파산에 대해 언급해 보겠다. 파산은 예측 불가한 경제에서 아주 흔히 발생한다. 파산에 대한 우리의 법률은 과거보다는 공정하지만 여전히 매우 가혹하다. 누구든 파산 상태에 있는 사람이라면 일을 해준 사람과 채권자에게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갚아야 한다는 건 당연하다. 그러나 돈을 갚는 과정에서 채무자를 비참하게 하는 일이 너무도 자주 발생한다. 우리 사회에서 채무자는 계속 실패자로 취급된다. 그들의 실패가 과도한 투기나 탐욕보다는 불운이나 전문성 부족 탓이라면, 그들은 긍휼히 여김을 받아야 마땅하다. 그들에게는 잘못을 만회할 수 있도록 도움이 제공되어야 한다. 그들의 명예는 물론 재정 상태를 회복할 수 있는 방법도 제공되어야 한다. 이렇게 한다고 내게 실질적 보상이 주어지지는 않겠지만, 이는 "누가 너더러 억지로 오 리를 가자고 하거든, 십 리를 같이 가 주어라"라는 예수님의 분명한 권고에 담긴 정신을 존중하는 것이다.
 나의 일에 이러한 기준을 적용한다는 사실을 소개함으로써 내가 경쟁자들과 다르게 행동하는 이유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대화할 수 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를 통해 이런 발상이 어디서 왔는지 그들과 토론할 수 있을 것이다. (20-21)

 빚을 져본적 있는가? 빚은 정말이지 사람을 망가트린다. IMF이후 우리집은 늘 빚을 지고 살았다. 아버지는 끝내 이 빚을 눈덩이로 만들어놓고 돌아가셨다. 빚이 눈덩이처럼 된 건 여러 복잡한 사정이 있지만 죄의 원어가 빚이라던데 나는 그 의미가 너무도 와닿는다. 빚은 사람을 점점 구덩이로 몰아가고 피폐하게 만든다. 이 빚을 끊어줄 사람이 있다면 나에겐 구세주일 것이다. 죄가 창궐하는 것은 빚으로 파산되어가는 경제를 생각하면 와닿지 않을까? 한 군데가 파산을 해 수금이 안 된다. 자금이 돌지 않기에 결국 다 같이 파멸이다. 죄가 딱 그렇다. 우리의 힘으로 이 빚(죄)를 끊어낼 수 없다. 누군가 끊어줘여 한다. 

 푸블리우스는 이렇게까지 나아가진 않지만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자세를 말해준다. 그 노력에는 탕감도 있을 것이다. 사람들과 다르게 생각하는 이건 어디에서 나왔을까? 사람들은 그 모습에 물어올 것이다. 바로 그때 푸블리우스는 복음을 말한다! 오늘 가장 적실한 그리스도인의 모습이 아닐까? 


사회생활


 그리스도인으로서 사회생활은 여간 어렵다. 근본주의자들은 세상과 완전히 벽을 친다. 세상과 교회를 분리시킨다. 그래서 분리주의라고 하기도 한다. 과연 그 모습이 올바를까? 세상과 교회의 구분은 해야겠지만 담을 쌓는다면 복음이 제대로 전달될 수 있을까? 그냥 확성기를 들고 소리만 치면 될까? 복음을 소음으로 만들겠다고? 복음을 소음으로 만들지 말라!

 푸플리우스는 들어간다. 삶 한 복판으로. 

서로 우스갯소리를 주고받다 보면 어느 틈에 교회에 대한 대화에도 마음이 열린다. 교회는 사람들이 편히 웃고 함께 즐거워할 수 있다고 느끼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내가 처음으로 교회에 동참하는 문제에 대해 고려할 때 교회의 그런 점이 퍽 인상적이었다. 이는 내가 성장하면서 봐 온 매우 형식적인 종교의식들과는 영 딴판이었다. (45)

 사람들이 가장 잘 드나드는 목욕탕에서, 혹 때로는 선술집에서 사람들과 어울린다. 물론, 어느 정도 부작용이 없는 것은 아니다. 나 역시 김진홍 전도사에 깊은 감흥을 받았기에 민중 한 복판에서 그렇게 살고 싶었지만 사람의 시선이 다 같은 것은 아니다. 누군가는 그 행동에 실망하기도 할 것이다. 적절히 그 행동에 균형을 맞춰야 한다. 그게 어렵지. 그게 목회다. 교인과 너무 가까워서도 안 되며 그렇다고 너무 멀어져서도 안 된다. 내 마음과는 달리 오해할 수 있기도 하고, 내 마음과는 달리 나를 우러러 볼 수도 있다. 가까워지면 오해, 멀어지면 우러름을 받을 것이다. 잘못된다는 가정에서다. 

 그럼에도 한 복판으로 가자. 의도는 챙기지 말자. 그저 함께 웃고 기대감으로 사람들을 대하자. 그게 사랑이다. 어느 글을 보니 자신에게 잘해주면 교회에 데려가려고 그런다는 우스게 글을 봤다. 마치 상품을 판매하는 사람이 된 듯 우리를 그렇게 본다. 극단적일 수 있겠지만 교회가자라는 말을 그냥 입에서 버리자. 결정적일 때 한 번이면 된다. 아니, 상대방이 교회가도 될까? 말이 나오기까지 인내하고 그저 사랑하자. 이 책에서도 그걸 가르쳐 준다. 

 

섞이지만 달라야 하는

 

그들과 함께 살아야 하지만 달라야하는 부분이 있다. 이 부분이 나는 핵심이라고 본다. 푸블리우스의 말이다. 

로마인들은 대개 가문간 유대 강화나 재정적 지위 향상 혹은 사회 정치적 지렛대 강화를 위해 결혼한다. 아내가 상류층 출신이 아닌 경우에는 남편의 견해와 이해가 지배적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 사람이 다른 사람들을 자기 집으로 초대한다는 건 주로 자신의 부와 지위를 과시하기 위함이다. 과거에는 우리 역시 그러곤 했지만, 이제는 달리 행동하려고 노력한다. 우리 자신에 대해 자랑하기보다는 손님들에게 더 관심을 보이고, 서로 동등하게 대하면서 서로의 세계에 관심을 보이고, 서로 존중하고 친절히 대하려고 한다. 우리의 정체성이 더 이상 다른 사람의 생각에 달려 있지 않는 만큼, 더 이상 비싼 옷을 입거나 최고급 식기류를 늘어놓거나, 사치스런 음식과 포도주를 내어놓지 않는다. 이 모든 행위들이 사람들에게 꽤 깊은 인상을 주지만, 나중에 그것에 대해 뒷말을 듣는 경우도 종종 있다. (49) 


 앞서 사업터에서도, 사회생활에서도 그들과 함께하지만 다르다는 것을 보인다. 이 위의 글이 그 알맹이를 보여준다. 핵심이다. 우리의 사랑은 다른 사랑과 다르다. 보이는 것은 비슷해 보일 수 있지만 우리에게 나오는 사랑의 그리스도가 순종한 사랑이다.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예수님께서 순종하셨다. 보이신 것이다. 이 제 성령님께서 우리를 인도하실 것이다. 삼위 하나님의 사랑의 사귐이 우리를 위와 같은 그리스도인으로 형성시켜 나갈 것이다. 

 

나가면서

 공적신앙, 바울과 베드로의 성경구절을 적절히 잘 배치한 것들도 이 책의 포인다. 얇지만 압축적으로 잘 보여준다. 이 책은 1세기 그리스도인을 보여주지만 사실은 21세기 그리스도인의 자세를 비춘다. 21세기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해야할까? 21세기 그리스도인의 선교 이야기는 어떻게 채워져야 할까? 이제 푸블리우스는 대답을 다하였다. 이제 우리 차례다. 너 서목사. 이제 너의 예배를, 하루를, 선교를 고백해 보라! 우리는 또 다른 푸블리우스가 되어야 한다. 

 

(원래 엄청 열심히 썼는데 내용이 다 사라졌다. 아... 정말 잘 썼는데... 왜 내용이 없어졌을까...ㅠ 다시 작성해 봤다...ㅠ)

 

 


메모

 

그리스도인들을 탓할 만한 온갖 해괴망측한 소문이 파다하게 돌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살을 먹고 피를 마시고, 집단 성행위를 하고, 체제를 뒤덮는 새로운 미신을 조장하는 무신론자라는 말까지 나돌다니! (47-48)

- 가짜뉴스! 

 


책 맛보기

 

"그건 우리 자신의 선교(a mission)가 아니라 하나님의 선교(the mission)죠! 당신은 실제로 예수님의 선교에 참여하고 있는 셈이죠." (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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