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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리뷰/신앙서적

[책리뷰] 로완 윌리엄스 - 복음을 읽다[로완 윌리엄스의 마르코복음서 읽기, 마가복음](김병준 옮김, 비아)

by 카리안zz 2021. 3.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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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낀 점


 두께가 그렇게 두껍지 않고 과연 로완 윌리엄스는 마가복음을 어떻게 스케치했을까 호기심에 읽었다. 역시는 역시. 특히 마지막 3장이 기억에 남았다. 로완 윌리엄스는 뭔가 조직신학이니 성경신학이니 한계를 넘어서 걍 소드마스터같은 느낌이 난다. 보통 조직신학자가 성경에 대해서 뭔가 쓰면 약간 무시하지만 로완 윌리엄스가 썼다고 하면 달라보인다. 그래서 <바울을 읽다>도 구입했다. 조만간 복음서를 읽고나면 사도행전을 읽을 텐데 그때 바울을 한 번 읽어볼 예정이다. 일단, 로완 윌리엄스는 기본으로 톰 라이트, 바클레이, 티슬턴 등 간단하게 정리한 책들을 한 번 읽어볼 예정이다! 그리고 서신서를 들어갈 땐 좀더 스탠리 포터나 롱네커&토드 스틸이 쓴 <바울>을 읽으면 어떨까 구상 중이다. 계획은 늘 거창하나... 이제 약간의 안정을 취했으니 열공만 남았다! 파이팅!

 

 마가복음을 쓴 이유

필레몬 신부에 관해서, 포르피리오스 신부에 관해서 또는 나사렛 예수에 관해서 이야기하는 것은 저 멀리 있는, 우리와는 별 관계 없는 어떤 제3자에 관하여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내 삶에 극적인 변화를 가져온 이들과의 어떤 관계를 증언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여러분의 삶에 가져온 변화, 여러분 자신, 여러분의 삶, 그리고 지금 여러분이 하는 말과 행동까지도 그들이 빚어낸 차이에 기대고 있음을 증언하는 것입니다. (40)


  그렇다. 우리에게 일어난 변화. 개인들의 변화. 그 변화된 이들이 이룬 공동체. 그 변화는 복음이 시작이었다. 복음은 변화를 이뤄낸다. 계속해서 로완은 이렇게 말한다. 

마르코가 복음서의 이야기를 통해 가장 먼저 그려내고자 하는 것, 자신의 이야기를 접하는 독자, 바로 우리가 알아차리기를 바라는 것은 다른 무엇이 아니라 바로 관계입니다. 기도로 열차를 멈춰세우는 이야기마저 신뢰할 수 있고 받아들일 수 있게 하는 관계, 복음서 이야기는 멀리 떨어져서 판결을 내리는 심판석이 아니라 바로 저 관계 안으로 우리를 초대합니다. ... 또한 그 놀라운 이야기들이 이야기를 전하는 사람과 접하는 사람 모두의 삶을 변화시키는 가운데 신뢰할 수 있는 이야기가 되는 것을 목도하는 것입니다. (42)

 이 대목을 읽으니 영화 <나니아 연대기>가 생각났다. 네 명의 아이들 중 막내 아이였던가 그 아이가 옷장 속 세계를 보고 나서 그걸 나머지 사람들에게 증언하는 거였다. 그런데 오빠들과 언니는 그 말을 믿지 않는다. 아이를 돌보는 교수 역시 그 증언을 듣는데 그 교수는 대강 이렇게 말했던 기억난다. 요즘 아이들은 학교에서 뭘 배우는거지? 증언을... (뒤에는 생각이 안 나서 책을 직접 찾아봤다.) 

"논리! 왜 요즘 학교에서는 논리학을 가르치지 않을까? 이 일에는 세 가지 가능성이 있어. 루시가 거짓말을 하고 있거나, 미쳤거나, 아니면 사실을 얘기하고 있거나. 너희는 그 애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사실과 분명히 미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 그럼, 다른 증거가 없는 한 우리는 그 애의 말이 진실이라는 가정을 해야 한다."
...
"요즘 학교에서는 도대체 뭘 가르치는지 모르겠군." (175-176)

 당시 루이스가 근대 교육을 무너트리는 기분이어서 참 통쾌했다. 아마도 마가와 초기 교회 공동체의 증언이 루시와 동일할 것이다. 거짓말이나 미친 게 아니라면 진실이다. 마가는 루시와 같이 증언을 하고 있는 것이다. 

 마가는 마가복음을 듣는 사람들에게 두 가지 도전을 준다.

①복음서 중심에 있는 인물이 이 텍스트를 읽는(당시는 듣기 위주여서 듣는 사람들도 포함해야 하겠다- 카리안 주) 나에게 말을 건네게끔 해야 한다는 것.

②자신의 이야기가 증언하는 새로운 세상의 질서, 새로운 체제가 도래했음을 우리에게 이해하고 동참하라고 요구하는 것.

 

나가면서

 
 켈버의 책에선 제자들과의 알력다툼을 마가복음의 배경으로 삼지만 로완 윌리엄스는 마가복음 배후에는 베드로가 있음을 강조한다. 앞서 켈버의 책 리뷰에서 나도 베드로의 모습은 실패한 자신의 모습을 반성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로완도 나처럼 그렇게 본다. 

마르코가 전하는 베드로는 언제나 정답을 말하는 수제자, 사도 중의 사도가 아닙니다. 오히려 그는 예수의 말을 듣는 이들의 전형적인 모습, 예수께서 일으키시는 일을 목격하는 이들의 전형적인 못브을 보여주는 인물입니다. 그리고 마르코에게 전형적인 목격자란 자신이 목격한 바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거듭 놓치는 이, 빈번이 그 의미를 오독하고 오해하는 이, 그럼에도 여전히, 자신을 향해 물음을 던지는 예수의 시선에 머무르는 이입니다. 베드로가 예수를 부인하는 장면은 잘못 이해하는 이의 본보기로서 베드로를 극명하게, 추하게 드러냅니다 .대사제의 심문에 "나다"라고 응답하는 예수 안에서 하느님께서 당신 스스로를 드러내시는 바로 그 순간, 베드로는 몇 발짝 떨어진 곳에서 누군가의 질문에 응답하며 말합니다. "나는 아니다" 베드로의 부정에 담긴 공허함은 거절당하고 모든 가망을 잃은 예수 안에서 드러나는 충만한 진리의 빛의 그늘로서 대비를 이룹니다. (129)

 목차를 보면 알겠지만 복음의 시작과 비밀에 대해서 차근 차근 다가간다. 이 가리워진 비밀 탐구에 로완 윌리엄스는 탁월한 항해사다! 믿고 그의 글을 통해 마가복음으로 다가가길 바란다. 그리스도와 더욱 가까워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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