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강의는 문화적인 측면에서 성경을 보는 작업을 할 계획입니다. 문화를 뭐라고 말하기는 참 어렵지만 동양문화권, 서양문화권이라는 것처럼 생활에서 차이가 있는게 있습니다. 서양은 잘라서 분류하는 것에 익숙하다면 동양은 합쳐서 통합하려는 것에 익숙합니다. 그것처럼 동양에 속하는 한국 사람들의 문화도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한”이라던가 “정”이라던가 그걸 영어로 번역하기에는 상당히 어렵습니다. 단어를 그대로 번역해도 그 뉘앙스를 알기에는 한국인이 되던가 한국 문화를 설명해주던가 해야 합니다. 그 당시 살았던 사람들의 맥락이라는 게 있습니다. 예전에 오바마 대통령이 ‘정’이란 단어를 그대로 사용한 적이 있었죠. 그리고 제가 읽었던 소설책 중에 <제노사이드>라는 책이 있습니다. 다카노 가즈아키라는 일본 작가가 쓴 책입니다. 제목이 학살인 만큼 예전에 관동대지진 때 일본인들의 학살을 언급하며 반성하기도 했습니다. 작중에 한국인이 등장하기도 합니다. 이때 일본인에게 ‘정’이라는 단어를 설명해주려고 하는데 상당히 애를 먹습니다. 일본의 한자어인 ‘정’이랑도 다르고 박애랑도 다르며 아름다운 것이라고 하기에도 그렇게 맞지 않습니다. 한국에 살면서 한국인이 되면 가장 확실하게 알 수 있겠죠. 그래도 한국문화를 공부하면 최대한 근접하게 알 수 있을 겁니다. 고추장도 마찬가지입니다. 서양 사람들에게 고추장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직접 보여주고 맛보여주면 제일 쉽습니다. 그게 아닐 때는 설명을 해주어야 합니다. 사진을 보여주거나 그것조차 안 되면 무엇에 빗대어서 비슷하다고 말을 해주어야 되겠죠.
성경도 그러한 부분이 있습니다. 우리가 중동사람이 된다면 성경에 대해서 조금은 더 잘 알 수 있을까 하는 부분을 탐구해 나갈 겁니다. 그렇다고 중동의 문화적인 지식만을 알아야지 성경을 알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성경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이런 문화적인 배경이 없어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성경을 사랑하고 다양한 성경의 맛을 알려면 이런 배움도 참 좋습니다. 오늘은 첫 시간이니 간단하게 맛을 보며 끝내겠습니다.
4. 오늘 볼 본문은 창세기 2장 7절입니다. 제가 한 번 읽겠습니다.
“여호와께서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중동의 문화권을 메소포타미아 문명이라고도 합니다. 은화한테 들으니 교과서에서는 초승달 문명인가 그렇게 적혀 있다고 합니다. 이곳에서는 신과 왕의 형상이 가득했습니다. 그림으로, 조각으로, 동사응로 가능한 모든 것을 모양으로 만들었습니다. 이런 세상에서 하나님께서 사람을 흙으로 지으셨고, 코에 생기를 불어넣으시고 자신의 형상대로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다는 말씀은 어떻게 다가왔을까요?
고대 메소포타미아는 여러 신들을 섬기던 다신교 사회였습니다. 지위가 낮은 신들은 노동을 하고, 높은 신들은 편안히 쉬었습니다. 저 밑에 있는 신들은 강이 넘치면 진흙을 퍼는 고된 일들을 했습니다. 농사 역시도 하위 신들이 했는데 역시 고된 일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지혜의 신이라고 불리는 엔키는 진흙에 신의 피와 정액을 섞어 인간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신들을 대신해서 인간들에게 노동을 대신 시켰습니다. 그러니 인간은 신들도 하기 힘든 노동을 대신해줄 존재에 불과했습니다. 뭐 그 이상의 의미는 인간에게 없었습니다.
이런 세계에서 왕은 절대적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신의 대리인이자 화신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세계는 철저히 인간은 날 때부터 신의 지배를 받아야 했고, 신적 존재인 왕의 가르침과 다스림이 필요한 그저 노동력일 뿐이었습니다. 물론, 자칫 잘못하면 반역을 꿈꿀 수도 있는 그런 존재가 당시 왕의 백성들이었습니다.
그래서 고대 메소포타미아 사람들과 이집트 사람들은 평생 죽어라 일만 해야 하는 운명적 존재였습니다. 자신들의 고된 노동으로 인해 왕과 귀족이 편하게 쉬는 것도, 좋은 것을 먹고 마시게 해주는 것도 당연하게 생각했습니다. 이런 세상에서 여성은 어떨까요? 노동이 중요한데 여성은 남성들보다 힘이 쎄지를 못합니다. 그러니 더욱 가치가 없겠죠. 그래서 그런지 메소포타미아에서는 여성의 창조기사가 분명히 드러나는 곳이 없답니다. 여성은 그저 근원도 없는 존재이며 어쩌다 생긴 존재로 여겨졌습니다.
그런데 이런 와중에 성경은 하나님께서 남자와 여자를 동등한 존재로 창조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창세기 1장 27절을 제가 읽어보겠습니다.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이게 바로 당시 문화와의 대조를 통해서 하나님과 사람을 더욱 잘 알 수 있는 부분입니다. 창세기는 마치 이렇게 선언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땅을 일구며 평생 죽어라 일만 하는 운명의 존재가 아니다. 인간이 노동의 운명을 타고난 존재라고 말하는 신화와 이념은 거짓이다. 인간은 하나님과 같은 형상이며, 왕이자 제사장이고 안식을 마음껏 누려야 할 존재다”(김동문, <중근동의 눈으로 본 성경>(선율), 23)
좀더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단어에 집중해 보려고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어졌다는 말씀입니다. 사실 이 하나님의 형상이란 말은 당시 문화에서도 써졌던 말입니다. 성경학자들은 이 형상이라는 단어를 그러니깐 히브리어 원어로 성경 안에서 많이 나오질 않으니깐 성경 외부 문헌들을 찾아서 그 쓰임새를 살펴 보았습니다. 그런데 성경학자들이 문헌들을 살펴보다가 하나의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이 형상이라는 표현은 당시 왕들이나 고위직에게만 쓰여졌던 말이었습니다. 이집트로 따지자면 바로와 같은 그런 왕들에게만 써졌던 말이었습니다. 이 말들이 밑바닥에서 노동을 하던 사람들에게나 벽돌공들에게는 적용되지 않았던 말입니다. 이렇게 차별된 인간은 신들의 종일뿐입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이 없는 세상은 피조물을 숭배하고 피조물에 굴복하는 세상이고 사람의 존귀함은 쓰레기통에 처박아 버리는 세상입니다(김근주, <구약의 숲>(대장간), 65-67). 그런데 오늘 본문 말씀에서는 그것을 정확하게 뒤집습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왕과 특정 고위층만이 아니라 모든 인간은 왕족이라는 것입니다(빅터 해밀턴, <창세기Ⅰ>(부흥과 개혁사), 143).
오늘은 이렇게 맛보기를 했습니다. 다음 주에는 광야의 아브라함과 소돔과 고모라, 요셉과 보디발의 아내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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