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낀 점
고린도전서 본문을 설교하려고 했는데 때마침 당시 사회적, 문화적 정황을 알 수 있는 논픽션 책이 나왔다. 벤 위더링턴 3세야 워낙 이쪽으로 전문가이니 신뢰하고 읽었다. 논픽션 책으로 유명한 건 게르트 타이센의 <갈릴래아 사람의 그림자>이다. 그외에도 브루스 롱네커의 <어느 로마귀족의 죽음>이 있다. 또, 최근에 IVP에서 출판하여 대박이 난 로버트 뱅크스의 <1세기 그리스도인의 하루 이야기>, <1세기 교회 이야기>도 있다. 웹툰으로도 있는데 김민석 작가의 <의인을 찾아서>이다. 타이센과 롱네커의 책은 읽어보질 못했지만 김민석 작가의 책과 이 책을 본 느낌으로는 설교자나 신학 전공자에게 참 좋은 작업이다. 엄청 생생하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나름으로 생생하게 그 세계로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
논픽션이다보니 성경에 나오는 인물인 에라스도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해 나간다. 일단 벤 위더링턴 3세이 성경신학 전공자이지만 나름 흥미진진하게 글을 끌고 나가는 힘이 있었다. 나름의 사건을 배치하였고 갈등과 그 일을 해결을 어떻게 할 것인가 궁금증을 자아낸다. 성경에 나오는 에라스도는 '조영관'(aedile: 로마의 공공건물 · 도로 · 공중위생 등을 관리하는 관리-옮긴이) 자리에 출마를 하게 되는데 그리스도인과 어울리지 않는 그 자리에 그는 왜 나섰을까? 그리고 같이 출마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아이밀리아누스가 있는데 그는 과연 에라스도와 어떤 식으로 경쟁을 하게 될까? 그리고 에라스도의 종이었던 니가노르의 선택까지, 이 책은 니가노르의 시점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고린도에서 기록한 로마서 16:23에서 바울은 에라스도의 문안 인사를 전하며 에라스도를 가리켜 '오이코노모스 테스 폴레오스'라고 말하는데, 그리스어로 이는 "이 도시의 조영관"이라는 뜻이다. 이 모든 상황은 에라스도 같은 고위직 그리스도인이 어떻게 이교 신전 운영도 도와야 하는 조영관 직분을 이행하면서 그와 동시에 자신의 새 신앙을 지킬 수 있었는가에 관해 흥미로운 의문을 불러일으킨다. 간단히 말해, 이 책에 기록된 이야기는 허구이기는 하지만 바울이 세운 고린도 그리스도인 공동체에 얽힌 역사적 사실에 토대를 두고 있다. (230)
알찬 정보들
디올코스(Dilokos)
이 책의 중심인 사회적, 문화적 정황을 잘 알 수 있는 게 많다. 특히 디올코스는 고린도 도시를 말할 때 꼭 나와야 하는 정보이다. 먼저 티슬턴의 설명을 잠깐 살펴보자.
디올코스는 기원전 6세기경에 생긴 포장도로이다. 이 도로는 동쪽과 서쪽의 두 항구 사이를 가벼운 배들이 롤러에 의해 움직일 수 있도록 해주었다. 선우너들과 상인들은 펠레폰네소스 남쪽에 위치한 말레아봉으로의 불안한 항해보다 고린도에 세금을 내고 디올코스를 이용하는 편을 선호했다. 말레아봉으로의 항해는 6일이 더 소모될 뿐만 아니라 보퍼트 수치(바람의 강도를 측정하는 수치) 6에 해당하는 강한 바람을 만나야만 했기 때문이다. 선원들은 "말레아로 다시 가느니 차라리 죽겠다"라고 말할 정도였다. 현대 운하는 대략 디올코스 길을 따라 만들어졌다. 고대 로마는 운하를 파려고 시도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네로는 황금 모종삽을 사용해 그런 시도를 '열었다.' 하지만 디올코스는 아직도 그 통로의 대부분을 볼 수 있는데도, 19세기에 와서야 운하가 생긴다.
- 앤서니 C. 티슬턴, <고린도전서: 해석학적 & 목회적으로 바라 본 실용적 주석>(SFC), 26.
대강의 이러한 정보를 주석에서 참고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정보를 이 책에서는 색다르게 다가올 수 있다.
책은 사진과 함께 디올코스가 어떤 곳인지 눈에 확들어오게 제시했다. 논픽션 형식으로 디올코스를 묘사하는 게 참 흥미롭다. 이 책은 이러한 장점이 있는 책이다.
'자세히 들여다보기'
이 책을 읽다보면 '자세히 들여다보기' 파트가 자주 나온다. 한 번 사진으로 보자.
이러한 정보가 엄청나게 많이 나온다. 그래서 처음에는 좋았지만 나중에는 너무 자주 나와서 글을 읽는 몰입도가 떨어졌다. 조금만 줄였으면 싶었지만 그래도 알찬 정보들이 너무 많아서 빼놓지 않고 읽어보기를 추천한다.
아쉬웠던 점
앤서니 티슬턴의 주석에서도 강조하면서 나와던 것이 도시의 소피스트들이다. 당시 소피스트들의 영향력은 상당했다. 내 설교문을 일부 보도록 하겠다.
이렇게 자기 자랑을 심하게 해야지 성공의 길로 쉽게 다가갔습니다. 이러니 자연히 각광받는 직업군이 있습니다. 소피스트들이었습니다. 이 소피스트들은 대중에게 환호받는 게 목적인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웅변가이기도 했는데 이 사람들은 경쟁에서 이기는 것을 목표로 삼았습니다. 이들은 대중의 환호를 이끌어내기 위해서 일종의 공연을 많이 하기도 했습니다. 지금으로 본다면 대중매체와 같다고 보면 됩니다. 교묘한 설득을 홍보 전략으로 삼았던 이들입니다. 이러한 소피스트들에겐 당연히 제자들이 참 많았습니다. 그런데 이 제자들이 가만히 있었겠습니까? 아닙니다. 누구의 스승이 더 뛰어난지를 두고도 막 경쟁을 하며 싸웠습니다. 그런데 이 모습이 고린도전서에서도 나옵니다. 오늘 본문은 아니지만 바로 앞 1장 12절에서 그런 분위기가 느껴집니다. 편이 딱떨어지게 싸웁니다. 로마인들은 로마의 시민권을 가진 바울의 편을 들었겠고, 그리스인들은 그리스문화권에 능통한 아볼로를 자신들의 대표로 삼았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유대인들은 당연히 베드로를 자기의 대표로 삼아 경쟁했을 겁니다. 때마침 바울은 헬라어 이름인 베드로라고 하지 않고 게바라고 사용함으로 유대인들이 대표로 삼았다는 느낌을 더욱 줍니다. 심지어 왕이신 예수님마저 서로 대결에 쓰이는 흔한 교사로 삼기 시작했던 겁니다.
티슬턴, 라이트, 베일리의 책을 인용한 글이다. 그렇기에 나는 자연스레 이 도시의 소피스트들이 어떤 형태로 나올 것인가 많이 궁금했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그러한 내용이 전혀 나오질 않아서 아쉬웠다. 물론 모든 부분을 담아낼 수 없기에 어쩔 수 없었겠지만 그래도 분위기를 말하는데는 활용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에라스도?!
이 책은 역사 속에 나오는 에라스도와 로마서에 나오는 에라스도를 동일인으로 본다. 하지만 브루스 롱네커와 토드 스틸이 쓴 <바울: 그의 생애와 서신>(복있는사람)에서는 그 둘이 동일 인물이 아니라고 한다.
고린도 명문에 들어 있는 에라스도가 로마서 16:23의 에라스도와 같은 인물일 가능성은 거의 없다. (브루스 롱네커·토드 스틸, <바울: 그의 생애와 서신>(복있는사람), 203.
그런데 F. F. 브루스 역시도 같은 의견을 말한다.
고린도의 재무관 에라스도와 동일인물일 가능성은 거의 희박하다. (F. F. 브루스, <NICNT 사도행전>(부흥과개혁사), 486.)
스탠리 포터의 책에서도 이 내용이 나오는데 그는 이렇게 쓴다.
로마서 16:23에서 "이 성의 재무관"이라고 언급되는 에라스도는 1세기 고린도의 비문에 도로포장을 책임졌다고 기록된 그 에라스도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스탠리 E. 포터, <바울 서신 연구: 사도 바울의 생애와 사상>(새물결플러스), 424.)
하지만 여기 각주를 보니 이 주장이 반박되었다고 하던데 이 주장이 무얼 말하는지 궁금하다. 각주를 표시했으니까 위의 문장의 주장이 반박된 것이겠지?
여하튼, 내가 보기엔 학자들은 고린도 명문에 새겨져 있는 에라스도와 로마서의 에라스도를 동일인으로 간주하기엔 근거가 더 필요하다는 말일 것이다. 하지만 그 증거들이 더 발견되지 전까지는 가능성을 희박하게 보는 것이 맞지 싶다.
나가면서
유익한 책이었다. 고린도전·후서를 설교할 사람이라면 꼭 읽어보길 추천한다. 성경해석의 기본이 당시의 시대로 가는 것이다. 그렇기에 지금의 관점에서 성경을 오독하는 실수를 방지할 수 있다. 이 책을 읽는다면 그 오류를 조금이라도 더 줄일 수 있을 것이다. 바람이 있다면 빌레몬, 오네시모, 바울 이야기를 논픽션으로 해도 재미있을 것같다. 빌레몬서의 강의를 들었을 때 참 역사의 빈틈이 채워질 때 참으로 와닿았기 때문이다.
메모
만약 바울이 그곳에서 후견인의 보호를 받기로 했다면 아마 너도 나도 바울의 후견인이 되려고 하는 경쟁심만 격화시켰을 것이다. ... 이는 명예와 수치의 문제였으며, 더 나아가 영적/종교적 통제권의 문제였다. 복음이 돈으로 살 수 있는 상품으로 보일까 봐, 또한 복음을 전하는 사도들이 돈으로 고용될 수 있는 사람으로 보일까 봐 바울은 이 사회적 네트워크의 지뢰밭을 조심조심 발끝으로 통과해야 했다. (55)
- 복음이 돈으로 보일까봐.
갈리오의 해산 명령이 있자마자, 회당에서 선발되어 온 사람들은 소스데네를 붙잡아 매질을 시작했다. "이런 법정 다툼이 소용이 없으리란 걸 우리는 알고 있었다. 네가 총독을 짜증나게 만들고 총독 앞에서 우리를 공개적으로 망신시켰으니, 이제 그 벌로 너도 이 길거리에서 망신 한번 당해 보거라!" (145)
- 음, 사도행전 주석들에서는 반 유대교 분위기라는 걸 말해준다고 한 것 같은데. 회당 사람들이 때린 게 아니라, 일반 고린도 사람들이 때렸다고.
책 맛보기
한 사람이 할 수 있는 정말 위험한 행동 중 하나는 자기보다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이 주는 선물을 거절하는 것이었다. (83)
"... 나는 이제부터 우리가 후견인과 피후견인 관계아 아니라, 친구, 진짜 친구가 되었으면 하네. 사실 자네가 그리스도 안에서 내 형제가 되었으면 하는 것이 내 기도이기는 하지만, 그 이야기는 훗날 또 하기로 하세." (192)
하지만 이 예수 같은 유대인을? 이는 영예와 수치에 관한 통상적 개념을, 신들이 생각하는 칭찬할 만한 행실에 관한 개념을 뒤집어엎었다. (216)
'책리뷰 > 성경신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책리뷰] 베르너 H. 켈버 - 마가가 전하는 예수 이야기(김태훈 옮김, 감은사) (2) | 2021.03.24 |
---|---|
[책리뷰] 김영화 - 마태복음 뒷조사(새물결플러스)[기독교 웹툰 에끌툰] (0) | 2020.10.25 |
[책리뷰] 마르틴 헹엘 - 십자가 처형 (0) | 2020.05.06 |
[책리뷰] 김동문 - 오감으로 성경 읽기 (0) | 2020.05.06 |
[책리뷰] 존 H. 월튼 - 창세기 1장과 고대 근동 우주론 (0) | 2020.04.24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