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낀 점
권재원 씨는 페이스북을 하다가 알게 되었다. 교육 쪽 관련해서 괜찮은 글들을 쓰는 것 같아서 눈여겨 봐뒀다. 그리고 책들도 많이 내더라. 하지만 작년인가 재작년인가부턴 내 생각과는 동의할 수 없는 글들을 많이 썼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에 대해서 함부로 말했던 것과 4차산업이라는 말을 쓰는 사람은 없다라고 했나? 그리고, 정치에 관해서 영 동의할 수 없는 글들을 써서 이젠 글을 보지 않는다.(권재원은 엄기호에 대해서 대단히 비난을 하던데 그 이유는 모르겠다;; <교사도 학교가 두렵다>의 톤과 이 책의 톤이 그렇게 틀린 이야기를 하는가 싶어서.)
그래도 그의 글 중에 가장 동의하는 것은 주류 시장과 출판 시장을 비교해서 한 이야기다. 차이가 엄청 심하다. 술 먹는 돈으로 책 사보는 날이 된다면 대한민국은 달라질 거라는 그의 말에는 동의한다. 심히! 술시장의 절반만이라도 출판시장으로 간다면 얼마나 좋을까. 책에서도 비슷한 이야기를 한다.
비유하자면 우리나라는 상류층이나 저소득층이나 1년에 몇 번 가지도 않는 공연장에선 곯아떨어지고 책이라고는 자기계발서 외엔 거의 읽지 않는다는 점에서, 시간과 돈의 여유가 생기면 하는 놀이가 음주가무라는 점에서는 전혀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굳이 차이가 있다면 술이 양주냐 소주냐, 노래가 생음악이냐 노래방이냐 정도일 것이다. (91)
그래도 중학교 교사인 저자는 사회학도 전공하기에 학교에 대해선 남다른 시선을 보여주는 것 같다. 특히, 현장 교사라는 점에서 들어 볼 만하다. 이 책은 저자가 2008년부터 2014년까지 6년간 블로그 및 각종 매체에 게재했던 글들을 다듬어서 엮은(420) 책이다. 이 중 몇몇 인상에 남았던 부분을 옮겨 보겠다.
교육보단 행정업무가 우선인 학교
교육보다는 행정을 잘 하는 사람들이 교감, 교장으로 더 잘 진급한다. 교사라는 세계가 어떤지 잘 몰랐지만 엄기호의 책에서도 그랬고, 이 책에서도 같은 말은 하는데 교사들의 세계는 교육보다는 행정과 같은 일들이 더 많다고 한다. 아는 누나가 초등학교 교사여서 예전에 물어본적이 있었다. 업무량이 그렇게 많냐고 물어보니깐 정말 많단다. 그리고 지금 교회에 초등학교 교사분들이 몇 분 계신데 물어보니 정말 많단다. 저자도 이를 말한다.
교무실의 교사 자리 배치도 수십 년째 그대로다. 교감을 중심으로 교육이 아니라 행정업무 위주로 편성된 각 부서 부장교사들이 배치되어 있고, 교사들은 그 부장교사 밑의 말단 직원처럼 배치되어 있다. 교실에서 제아무리 세상을 바꾸기 위해 열변을 토하는 고귀한 지식인이라도 일반 교무실에 돌아오면 교사는 시덥지 않은 행정업무의 한 조각을 담당하는 말단 공무원으로 전락한다. ... 교감은 모든 교사들을 둘러볼 수 있는데, 교사들은 자기 업무용 컴퓨터만 볼 수 있다. ... 문제는 이 공간이 이렇게 감시받는 구조로 되어 있다 보니 학생들의 민감한 사연이나 신상문제를 다루어야 하는 생활지도나 상담 등이 불가능하다는것이다. 교실에서는 다른 학생들이 지켜보고, 교무실에서는 교감과 부장들이 등 뒤에서 지켜본다. ...
... 가장 이상적인 학교란 학생들이 교사를 리더로 하는 배움의 공동체를 이루는 학교다. 그러나 교사가 근무하는 초등학교와 달리 중·고등학교에서는 이런 관계를 맺는 것이 매우 어렵다. 교사들이 학생들이 있는 교실이 아니라 교사들끼리 대거 모여 있는 교무실에서 시간을 보내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
... 그런데 이율배반적으로 교무실이란, 단어의 사전적 의미에서는 가르치는 업무를 처리하는 방이다. 평가, 학생기록의 작성, 학생 상담과 생활지도, 수업 준비를 위한 연구 등이다. ... 교무실에서 할 수 있는 일이란 집중력이나 심사숙고할 필요 없이 처리해도 되는 각종 행정 잡무, 그리고 교감이나 부장에 의한 교사동태 파악뿐이다. 그러니 교무실은 잡무실 혹은 감시실이라 불러야 마땅한 그런 공간이다.
... 학교의 업무를 교무/행정이라고 부르는 것과 교육/교무라고 부르는 것은 천지차이다. 전자의 경우 일반행정 업무가 아닌 것은 모두 교무가 되고, 후자일 경우 교육이 잘 이루어지도록 각종 지원을 하는 것이 교무가 되며 여기에 행정사무 및 기타사무가 포함되기 때문이다. 결국 법에도 없는 교무실이란 용어가 관행적으로 사용되면서 행정이 교육을 휘두르는 학교 구조가 고착화된 샘이다 (161-164)
이런 현실에서 참 가슴아픈 사례를 저자는 말해주었다. 한 선생님의 이야기다. 이 선생님은 34년 평교사로 학생을 가르치는 일에만 최선을 다했던 분이시다. 그래서 학교에서는 따로 예산을 마련해 성대하게 퇴임식을 치뤘다. 그런데 퇴임식때 행사장 한 가운데 현수막에 이런 글귀가 쓰여져 있었다. '축 OOO 교감님 퇴임'이다. 학교측에서는 아마도 공무원 명예퇴임 규정에 따라서 퇴임일 당일에는 1계급 승진한 것으로 해서 교감이라고 쓴 것같다. 하루라도 교감이라고 불러주는 것이 퇴임하는 선생님에 대한 예우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이는 당사자의 마음을 온전히 생각해준 것일까?
그날 명예퇴임하는 선생님은 '선생님'이라는 직분 외에 그무엇도 생각한 적 없고, 행정직 따위에는 한눈 한번 팔아보지 않고 30여 년을 봉직한 분이다. 그랬던 그 선생님을 퇴임식 날 '교감'이라고 애써 부르면서 그것을 예우라고 생각한다면, 이는 그 선생님의 고결한 30여 년을 송두리째 부정하고 심지어는 조롱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선생님은 선생님으로 끝나는 것이 가장 아름답고, 그 아름다움을 선택한 선생님을 선생님이라고 불러 드리면서 보내는 것이 진정한 예우다. (215)
참 안타깝다. 저자의 말처럼 "학생들이 사랑하며 잘 따르는 백발의 노교사가, 교사는 가르치는 직업이라 생각하여 가르치는 일 외에는 한눈 팔지 않았던 것이 후회되며, 교육보다는 행정에 더 열중했던 사람들이 교감이 되고 교장이 되어 자신을 깔보고 마구 대할 때 무력하기만 한 자신의 모습에 인생의 회의가 느껴진다고 하는 판이다."(125)는 말이 딱 이 경우가 아닐까? 참 슬프다. 이는 교육계 만의 문제가 아니다. 저자가 지적한 것처럼 이는 사회풍토이다. 우리 사회 전 영역에 퍼져있는 가치관이다.
교사도 승진 따위보다 평생 아이들 가르치는 일에 집중하다 퇴임하는게 가장 아름답고, 교수도 정치권, 관직에 기웃거리지 않고 학문에 진득히 집중하는 것이 가장 아름답다라고 어느 교사와 어느 교수가 말한다면 모두 칭찬을 할 것이다(215).
그러나 그것은 역시 말로만 아름답다. 현실은 그렇지 않다. 평 교사의 말보다는 교장의 말이 신뢰를 받는다. 교감, 교장이 되지 못한 노교사는 루저 취급받는다고 저자는 말한다. 검사는 어떤가? 정치검사는 경멸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정치 검사들이 더욱 화려하게 출세한다(216). 언론인 역시 그렇다. 무엇인 아름다운 것을 알지만 사회의 높은 위치에 가게 된다면 사람들의 시선은 달라진다. 그렇다면 우리가 진정 믿는 바는 무엇일까? 높은 자리에 올라가서 하는 말에 신뢰와 찬사를 보낸다.(물론, 권위의 문제는 다른 문제다. 일개 신학생의 말과 신학 교수의 말에는 권위의 무게가 달라야 하며, 감염에 있어서 일반 의사와 방역 전문가의 말의 무게 역시도 다르다. 그러나 지금은 그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 이전에 그 사람의 행적을 따지지 않고 그냥 자리에 떠받쳐 진다.
목사의 세계도 마찬가지다. 교사들이 교감, 교장을 위한 코스로 가려 하는 사람이 있듯이 목회자들도 담임 목사가 되기 위한 코스를 밟는 사람들이 있다. 그래서 대형교회를 사역했다는 스펙이 생기고, 대학원 석사를 했다는 스펙이 담임이 되기 위한 좋은 스펙이 된다. 무엇이 옳은가 이전에 담임이 된 사람의 말보다 아니 된 목사들은 이미 말의 권위가 떨어진다. 그들의 어떤 말들도 열등감으로 비췰 뿐이다. '그런 말을 하려면 담임이 되고 말해라'가 된다. '학벌 개혁에 대해서 말하려면 서울대나 수도권 대학을 나오고 말하라'가 기본정서인 것과 마찬가지다.
나는 예수가 그런 멸시의 시선을 받았듯이 나 역시도 그런 멸시의 시선 속으로 가려고 한다. 그래서 나는 스펙을 위한 목회는 하지 않겠다고 다짐을 했다. 담임이 되기 위해 대형 교회를 가지 않을 것이고, 석사 역시도 마찬가지다. 이 다짐이 흔들릴 때도 있겠고 무너질 때도 있을 것이다. 당장에 생존이 걸린다면. 하지만 아직까지는 저항하고 싶다.
여튼, 이야기가 샛지만 어떤 한 교사의 이야기가 너무 슬프고 내 미래를 보는 것 같아서 참 그렇다. 저자의 말처럼 학교라는 곳이 "노교사는 존경의 대상으로, 교장, 교감은 힘든 일 떠맡아 주는 고마움의 대상으로 여기"(217)는 곳이 되었으면 좋겠다.
학교폭력 어떻게?
학교 폭력 도대체 어떻게 하면 막을 수 있을까? 저자는 교실 안의 분위기를 바꾸라고 말하는 듯하다. 저자는 학교에서 일어나는 폭력은 "관용이 부족하고, 위계서열을 중요시하는 문화가 팽배해서가 아닐까 조심스레 진단"(191) 한다. 여기에 대한 내용는 다음책인 <이 선생의 학교폭력 평정기 특수전>에서도 언급될 내용이다. 일단, 저자의 말을 들어보자.
살미발리는 학교폭력은 가해자-피해자 간 문제가 아니라 학급, 학교, 경우에 따라 지역사회까지 함께 움직이는 복잡한 집단 현상이라고 지적하면서 이런 단순한 견해를 반박했다. 모든 학생들은 학교 폭력에서 나름의 역할을 수행한다. 가해자를 도와서 함께 가담하는 조력자, 선동적인 청중 노릇을 하는 강화자, 그리고 모른 척하는 방관자, 피해자를 돕는 방어자가 그들이다. 방어자를 제외하면 누구나 크건 작건 학교폭력에 대한 책임이 있는 것이다.
학교폭력의 가해자들은 대체로 동조자와 방관자들이 많아서 자신이 다수의 지지를 받고 있다고 여겨지면 폭력의 강도와 지속기간을 늘리는 경향이 있다. 애초에 학교폭력 가해 자체가 권력 과시를 위해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똘마니와 응원부대의 존재가 중요한 것이다.
...
반면 피해자를 도와서 가해를 막거나 피해자를 사후에라도 도와주는 방어자의 수가 동조자보다 많아지면 가해자가 집단의 압력을 받아 가해행위를 쉽게 하지 못한다. 이른바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총인 눈총"의 위력이 발휘되는 것이다. 따라서 학교폭력 예방의 열쇠는 가해자를 적발해내거나 제압하는 것에 있지 않고, 가해자의 편을 줄이고 피해자의 편을 늘리는 데 있다. 이때 가장 중요한 대상이 방관자다. 어떻게 방관자를 방어자로 돌려세우는가가 학교폭력 예방의 열쇠인 것이다. 이때 방관자들을 피해자에게 돌려세우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 타인의 상태·정서를 마치 자신의 것처럼 느낄 수 있는 공감 능력이다. (193)
동양은 수치와 명예의 문화라고 한다. 위에서도 나왔지만 남의 눈총을 보는 것이 바로 수치와 명예 문화의 특징이다. 신약 성경 시대의 역사 역시도 수치와 명예문화의 무대였다. 이 이야기는 케네스 베일리의 <탕자와 십자가>에서 한 듯하다. 여튼, 저자 역시도 그런 문화를 이용하자고 한다. 사실 일진들이 폭력을 보이는 것은 사실 권력 과시다. '내가 선생에게까지 폭력적인 모습을 보여!', '내가 이정도야!' 하며 학급 아이들이 자신을 우러러보게 만들고 싶어한다. 이를 끊어야 한다. 너의 그 폭력적인 행위는 '정말 찌질한 놈들이 하는 행동이야!'라고 시선을 바꿔줘야 한다. 우리의 사회는 사람들의 눈총이 근육보다 더 쎄다. 이를 위해서는 공감 능력이 중요하다. 이 공감 능력에 대해서는 마사 누스바움의 <학교는 시장이 아니다>에서 어떤 것인지 말해준다. 이 책을 리뷰할 때 자세히 얘기하는 기회가 있을 듯하다.
이 책에 나오는 이 이야기는 성경의 <수치와 명예> 이야기를 할 때 예화로 썼다. 우리의 문화가 수치와 명예 문화의 바탕이었던 십자가를 더 이해하기 쉽다.
나가면서
학교에 대해서 이 책을 읽으니깐 더욱 잘 알게 되었다. 그리고 교육에 대해서도. 나야 교회 강도사(준목사라고 하면 될까나?)이기에 우리 교회당의 현실과 많이 겹쳐서 보인 부분이 있다. 중고등부 사역을 하고 있거나 학교에 대해서 어떤 스케치가 필요하다면 이 책이 괜찮지 않나 싶다.
메모
교사가 하루에 4~5시간 수업을 한다면 그건 나머지 3~4시간에 다른 일을 하라는 것이 아니라 그 수업을 준비하고 평가하라는 것이다. 만약 교사에게 이 나머지 시간에 소위 행정업무 등 다른 이를 시킨다면 당연히 준비와 평가 없는 수업을 하게 되어 수업의 질이 떨어진다. 베테랑 교사들은 그동안 누적된 노하우만 믿고 준비 없이 교실에 들어가고, 젊은 교사들은 부족한 준비시간 확보를 위해 퇴근시간이 훨씬 넘어서까지 일하다가 시들어 간다. (211-212)
- 설교도 마찬가지... (설교가 너무 많다보니 설교의 퀄리티는 떨어지고 번아웃이 된 된 목회자는 누적된 노하우만 믿고 준비 없이 설교하고. 했던 설교를 반복하는 경우도 있다. 업데이트가 아니라 그대로 하는 경우. 물론, 청자가 달라진다면 모르겠지만 어떤 담임 목사님은 몇 년 동안 설교를 반복하고 예화를 짜집기...ㅜ)
교사의 업무는 교육이다(p. 218)
- 목회자의 주업무는 무엇일까?
'교사의 업무는 교육이다'편 p. 227
- 한교의 현실과 교회의 현실의 오버랩 어쩌면 대한민국의 현실인듯.
책 맛보기
우리는 은연 중에 학생들을 단일한 척도로 측정하여 비교하는 데 익숙해져 왔다. ...
배움은 삶을 공유하는 것이며, 경험을 확장하는 것이다. 훌륭한 교사란 자신이 알고 있고, 할 수 있는 것을 효과적으로 잘 전달해 주는 존재가 아니라 삶의 공유와 경험의 확장 과정에 함께 동참하여 학생과 더불어 성장해 나가는 존재다. 이것은 태도의 문제이지 기능과 능력의 문제가 아니다. (19)
공교육은 직업인을 길러 내기 위한 교육이 아니다. 학교는 학생들이 변호사, 의사, 교사, 혹은 그 밖의 현재 존재하는 어떤 특정한 직업인이 되기 의한 준비과정이 되어서는 안 된다. 학교는 학생들이 현재 자신의 가능성과 역량을 확장시킴으로써 스스로의 미래를 개척하고 창조하는 곳이 되어야 한다. (32)
이렇게 자신을 싸움터로 내모는 부모 아래에서 겨우 말이나 배웠을 나이부터 치열한 경쟁에 시달린 아이들이 사춘기 연령에 도달했을 때 우리는 그들에게서 어떤 인성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36)
교사들이 모였을 때 연예가 소식이나 자식 이야기나 하지 말고 지성인다운, 문화다운 대화를 나누고, 교무실의 풍토가 지적이고 문화적으로 충만하게 하는 것, 그리하여 저소득층 자녀들에게 무궁한 지적, 도덕적, 문화적 통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 그것이 교육혁신, 그리고 진보교육의 출발점이다. 교원업무 정상화가 가지고 있는 진보적인 의미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사교육 받느라고 바쁜 상류층 자녀들은 맘대로 하라고 두자. 그걸 부러워하거나 그것 때문에 경쟁에서 뒤처진다고 조바심 내지 말자. 따지고 보면 그렇게 됐을 때 참교육을 저소득층이 더 많이 받게 되는 것 아닌가? 이런 점에서 서울시교육청이 적극 지원하고 있는 교사학습동아리, 경기도에서 자생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각종 교사 학습모임의 활성화는 희망의 씨앗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저소득층 자녀들이 많이 다니는 학교의 교사들부터 이렇게 바뀌어 나가게 하는 것이 바로 교육 평등이다. (67)
어떤 학생이 밤을 새울 정도로 푹 빠져 있다 할지라도 그 속에서 도전과 성취에 따르는 재미를 즐기고 있다면 그는마니아이지 중독자가 아니다. 만약 이들을 굳이 중독이라고 부르겠다면, 새벽 두 시 넘도록 공부하는 학생들도 공부 중독이다. 몸과 마음이 망가지는 것을 알면서도 시험에 대한 불안 때문에 멈추지 못한다는 점에서 공부 역시 얼마든지 중독 대상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실제로 대치동 학원가에 심리상담사들도 성업을 이루고 있는 것을 보면, 게임 중독보다는 공부 중독 환자가 많으면 많았지 결코 더 적지 않을 것이다. (70-71)
따라서 교사란 많은 답을 가지고 있는 존재가 아니라 많은 물음을 가지고 있는 존재였다. (111)
정작 비참한 것은 교사를 선호하는 이유가 갈수록 원초적이 되어 간다는 것이다. ... 하지만 이제는 오직 정년이 보장된다는 이유뿐이다. 청소년들이 바라보는 어른들이 얼마나 해고의 공포에 질려 있었으면 청소년들의 진로관이 잘리느냐 안 잘리느냐로 단순화되었을까? (119)
만약 어른들이 돈을 적게 벌어도 얼마든지 행복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면 청소년들 역시 보다 고차적인 행복이라는 가치를 생각했을 것이다. ... 결국 돈 많이 벌고 안정된 일자리 가진 사람이 행복하고, 돈 못 벌고 일자리 불안한 사람이 불행하다는 이야기이다. (120-121)
그러나 비웃기라도 하듯 교사의 잡무는 해가 갈수록 늘어만 가고 있다. 그 까닭은 기본적으로 이 '잡무'가 많아서 문제가 아니라 교사가 해서는 안 되는 일, 교육에 쏟을 시간을 빼앗아 가는 일이라는 근본적인 문제의식이 없었기 때문이다. (219)
따라서 이런 교사들은 학생들과 함께하는 소소한 일상, 즉 수업이 아닌 다른 무엇으로 뭔가를 보여 주어야 한다. 이들이 국어교사라면 학생들과 함께 시를 읽으며 기쁨을 나누는 일상적인 수업보다는 거창한 '시 쓰기 대회'를 개최하거나 '학생 1명당 1년에 시집 한권 쓰기 프로젝트'같은 프로그램을 펼치는 것을 선호한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천박한 교육관료 집단은 학생들과 조용히 시를 음미하는 교사가 아니라 이런 프로그램을 펼치는 교사에게 스포트라이트를 집중한다. 이렇게 교실에서 탈출하고자 하는, 교사가 아니기를 열망하는 교사들의 경쟁으로 인해 학교는 수업 이외의 온갖 사업과 프로젝트로 몸살을 앓는다. 그리고 정착 이런 사업과 프로젝트의 자잘한 실무는 교실에서 행복을 느끼고자 했던 교사들에게 분담된다. (225)
교장이 되기 위한 과정이 정말 지난하고 길고 험했단 뜻이리라. 학교를 책임지는 수장이 쉽게 되는 것도 문제겠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그 지난하고 험한 길이 학생들의 교육과는 무관하다는 것이다. (248-249)
교육에 관철되는 시장원리는 게다가 교육적이기까지 하다. 시장원리가 관철된 학교에서 학생들은 어릴 때부터 승자독식 경쟁의 당연함, 시장의 편재성을 몸으로 느끼면서 자라게 된다. 이들은 이후 어른이 되어서 어떤 불평등도 감수할 것이며, 오히려 퍼 주기 복지에 반대하며 보수정당에 표를 주는 흥미로운 유권자로 성장할 것이다. 어쩌면 이것이 교육 시장화의 가장 큰 효과일지도 모른다. (283-2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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