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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리뷰/인문

[책리뷰] 김숨 - 군인이 천사가 되기를 바란 적 있는가(일본군 '위안부' 길원옥 증언집)

by 카리안zz 2020. 4.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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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낀 점

 카페를 하면서 가게 안에서 책을 파는 가게가 있다. 몇 년 전 친구가 오픈한 가게다. 거의 독립 출판이나 문학책들 위주로 판매를 한다. 일년에 한 번은 들러서 책을 사서 오곤 했다. 이 책은 서점을 둘러보고 산 책이었다. 안 사면 안 될거 같은 책이었다. 4.3 사건, 광주 민주화 운동, 세월호 그 전에 위안부의 문제가 있다. 과연 할머니는 어떤 기억을 가지고 살아가셨을까? 

 

 길원옥 할머니는 억울하게 위안부에 끌려갔다는 내용을 증언하신다.

 집에 돌아와 총알 만드는 일을 하러 다녔어······ 돈 벌려고······ 우리 집에서 멀지 않은 데 총알 만드는 부대가 있었어······ 아침마다 노인, 아이 할 것 없이 부대 앞에 길게 줄을 섰어······ 나누어 주는 띠를 허리에 두르고 부대 안으로 들어가 총알을 만들었어······.
 얼마나 다녔을까······.

 다시는 그런 데 안 간다고 하고서 또 갔어······ 그런 데······
 중국에 가면 돈 많이 번다는 말에 속아서······ 친구하고 둘이······ 중국하고 만주는 다르니까······ 만주 거기 같은 데는 아니겠지 했어······ 거기 같은 데가 세상에 또 있을까 싶었어······ 남자가 우리를 데리고 갔어······
 얼굴도 기억 안 나는데 친구 이름이 기억날 리 없지······.
 중국에 갈 적에······ 1944년이었는지······ 1945년이었는지······ 압록강을 건너갔어······ 그때도 기차타고 갔어······ 집에 편지를 했어······ 어깨너머로 히라가나 가타가나를 배워서······. (42-43)

상처입은 치유자

 이 책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할머니께서 베트남전쟁 학살 생존자, IS(이슬람국가) 성노예 피해자, 마시카(2차 콩고전쟁이 발발한 1998년 당시 아홉살과 열세 살이던 딸들과 함께 군인들에게 강간당하고 남편은 살해당했다)에게 편지를 쓴 내용이었다. <11. 답장>과 <19. 마르바 알-알리코에게>, <31. 편지>이다. 

 

19. 마르바 알-알리코에게

아프지?


너 아픈 거 내가 잘 알아······.

아파도 말해야 해. (87)

 

31. 편지

...
 혼자가 아니라는 걸 느낄 수 있도록,
 부디 저를 기억해주세요.
 계속
 존재하도록.(레베카 마사카 카추바가 2012년 4월 26일 일본군'위안부'들에게 보낸 편지의 내용 중 일부 발췌 재구성.)

 하루가 다르게 기억을 잃어가는 내게, 자신을 기억해달래.
 계속,
 기도로, (142)
 

 

 

아픔은 비교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아픔은 공감하게 된다. 모든 아픔을 겪은 사람이 다 그런 것은 아니다.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 읽었던 내용이다. 저자가 이제 수용소에서 극적으로 살아남아 자유롭게 다닐 때였다. 수용소에서 함께 견딘 한 친구와 같이 길을 걷고 있는데 농작물이 자라는 밭을 지나고 있었다. 프랭클은 그냥 밭을 지냐려고 했는데 친구가 자기 팔을 잡고 밭으로 갔다. 밭으로 가서는 친구가 마구 농작물들을 짓밟았다. 이상하게 여긴 프랭클이 그러지 말라고 하니깐 친구가 이렇게 대답한다. “그런 말 하지 말게. 그만큼 빼앗았으면 충분한 거 아니야? 내 아내와 아이는 가스실에서 죽었어. 그것으로 더 이상 할 말 없는 거 아니야? 그런데도 자네는 내가 몇 포기 밟는다고 뭐라고 하다니” 프랭클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이런 심리적 단계에서 원색적인 기질을 지닌 사람들이 수용소에서 자신을 둘러싸고 있던 야만성의 영향에서 쉽게 빠져 나오지 못하는 것을 관찰할 수 있다. 그들은 이제 자유의 몸이 되었으니 이 자유를 마치 특허를 받은 것처럼 잔인하게 사용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변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그들이 이제는 억압을 받는 쪽이 아니라 억압을 하는 쪽이 되었다는 것뿐이다. 그들은 이제 폭력과 불의의 대상이 아니라 그것을 자행하는 가해자가 된다. 그들은 자기들이 겪었던 끔찍한 경험으로 자신들의 행위를 정당화 시킨다. 이런 일은 별로 대수롭지 않은 일에서 자주 발생한다. (p.157-8)

출처: https://kuyrian.tistory.com/30 [카리안의 책 이야기]

상처를 입은 사람들은 모두가 치유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파괴자가 되는 경우도 많다. SBS스페셜 <학교의 눈물> 편을 보니 가해자의 절반 정도가 왕따 피해자였다는 사실에 참 놀랐다. 인간 사회의 가장 큰 비극적인 일들을 겪은 분들께 우리는 무어라 말할 수 있을까. 파괴적 성향을 보이는 그분들에게 우리는 또 무어라 말할 수 있을까. 상처입고 또 상처입히게 되는 이 세상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말할 수 있을까. 비극이다. 

 

 그럼에도 길원옥 할머니는 다른 길을 가신다. 그분은 부등켜 안아주신다. 진정으로 상처를 입었지만 치유하신다. 그분은 그렇게 사셨다. 

나가면서

 인간은 언제나 악해질 수 있는 존재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 그럼 희망은 있을까? 물론 나야 종교가 있는 사람이기에 신에게 소망을 둔다. 내가 믿는 신은 그야말로 초라하게 십자가에서 죽으셨으니까. 그럼에도 나는 이 세상에 신의 그림자가 있다고 믿는다. 사람들은 그 그림자가 있기에 무엇이 선하고 무엇이 악하다는 것을 안다고 믿는다. 일본이 우리나라에서 벌인 악행과 베트남에서 일어난 악한 일들이 있다. 물론, 두 일을 같은 선상에 놓는 것은 올바르지는 않다. 어쨌든, 일어난 일은 비극이었고 악했다. 그것을 잊지 말아야 하며, 지금도 악한 언행을 일삼는 악한 자들이 있다. 세월호 유가족들에 대한 막말과 광주에서 일어난 일들에 막말이 그렇다. 그것은 올바르지 않은 일이다. 나는 그런 자들이 어떤 커뮤니티에서만 들리길 원하지 공적 영역에서 나에게까지 들리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일베의 메시지가 왜 나에게 들려야 하나. 공적영역의 정상화가 정의를 위한 한걸음 내딛는 것 아닐까?

 

 쓸데없는 말이 길어졌다. 군인이 천사가 되기를 바란 적 있을까. 제목 자체가 참 아프다. 아픔을 알기 위해서라도 한 번이라도 이야기를 들어봤으면 좋겠다. 

 

 너도 너를 사랑해.

 네가 있어야 내가 있지, 내가 있어야 네가 있고.
 그것이 내가 알고 있는 황금률이야.

 내가 나를 사랑해야 용서도 할 수 있어.

 나를 사랑하는 거······ 그것이 시작이야.

 그리고 말해

 군인들이 천사가 될 때까지. (151)

희움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대구 중구 경상감영길 50)


책 맛보기

 

 일평생에 걸쳐 겪어도 숨찬 걸 열세 살에 다 겪었어. (8)

 
 말이 무서워.
 사람은 하나도 안 무서워. 사람이 뭐가 무서워.
 사람이 하는 말이 무섭지.
 말 시키지 마. (12)


 요시모토 하나코······ 그 이름은 안 잊어버렸어.
 누가 지어주었는지 기억 안 나······ 군인들이 나를 그렇게 불렀어. 뜻은 없을 거야, 아무 뜻도 없을 거야.
 뜻도 없는 이름이 안 잊히네. (20)

 피가 내 얼굴을 지웠어······.
 열네살이었을까.다섯 살이었을까.
 군인이 뱀처럼 긴 칼로 내 머리를 내리쳤어.
 정수리에 금이 가더니 피가 솟구쳤어.
 내 얼굴을 지우며 피가 흘렀어.
 그 피를 닦는 데 60년이 넘게 걸렸어. (22-23)


 결혼한 군인도 있었어. 자기 아내나 아기 사진을 부적처럼 몸에 지니고 다니던 군인도.
 어떤 군인이 여자애에게 그랬대.
 네가 예쁘고 착해서 일본에 데려가 같이 살고 싶지만 딸이 있어서 안 된다. 내 딸이 너하고 동갑이다. 
 그 군인은 살아서 고향 집에 돌아갔을까. 그랬으면 딸 얼굴을 봤을까. (37)


 "너희는 낮아질 대로 낮아졌으니 이제 높아질 일밖에 없겠구나."(2015년 4월 8일, 길원옥이 베트남전쟁 민간인 학살 피해자에게 보낸 메시지 인용, 58)


 아흐레 만에 퇴원해 집에 있는데 새벽에 배가 너무 고파서 울었어. 주인집에서 들을까봐 이불을 뒤집어 쓰고 울었어. 눈물을 쏙 빼고 나니까 배고픈 게 가셨어. (62)


 전쟁이 끝났다, 나하고 결혼해 일본에 돌아가 살자.
 군복을 벗은 군인과 부부로 위장하고 송환선을 타러 갔어. 어떤 여자가 군인에게 자신의 아기를 맡겼어. 아기가 있어서 군인으로 의심받지 않고 송환선에 오를 수 있었어.
 군인이 아기를 바다에 던졌어, 말똥말똥 눈을 뜨고 쳐다보는 아기를······.
 일본 땅에 발을 내딛자마자 군인이 나를 버리더군.
 그때 처음으로 죽으려고 했어.
 달리는 기차에서 뛰어내렸는데 안 죽었어. (102-103)


"누가 들어오네." 익숙한 그 말은 갑자기 다른 어떤 말보다 무섭고 잔인한 총칼이 되어 가슴 한가운데를 도륙한다. 할머니의 증언을 통해 획득된 정보는 노래의 형식 안에서 익숙함과 낯섦이라는 감정을 동시에 불러일으킨다. (158)


"나는 목포는 몰라도 <목포의 눈물>은 부를 줄 알아." 할머니를 몰라도 할머니의 눈물을 부를 수 있으면 된다. 그들의 고통을 몰라도 고통을 노래 부를 줄 알면 된다. (1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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