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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리뷰/신앙서적

[책리뷰] 케네스 베일리 - 십자가와 탕자

by 카리안zz 2020. 2.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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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낀 점

 

1.  예배가 시작하기 전 아이들이 오기 시작하면 두 팔을 벌려 맞아주고 안아준다. 내가 주일학교 사역하면서 가장 많이 한 행동일 것이다.  하지만 작년 한 해는 내가 가장 많이 한 행동을 줄여 갔다. 아이들을 맞이하며 안아주는 게 너무 좋았지만 말이다. 한계를 많이 느껴서다. 내가 다 안아줄 수 없었다. 언제나 오는 아이들만 반갑게 환대했다면 소극적이었던 아이들에겐 내가 다가가긴 했지만 소외되는 아이들은 늘 보였다. 그리고 오히려 선생님들이 아이들을 안아줄 때를 내가 놓치게 하고 있는 건 아닌가 싶었다. 그래서 나는 내가 너무 좋아하던 걸 내려놓고 작은 방에 앉아 예배를 기다렸다. 내가 다 품을 수 있으면 좋으련만 어쩔 수 없는 소외되는 걸 보곤 내 사랑엔 한계가 있다는 걸 그때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2. 탕자의 이야기를 읽는다. 탕자는 재산을 요구한다. 사람들은 알거다. 이 요구가 아버지가 죽어벼렸으면 좋겠다는 말인 걸. 왜냐면 이땐 아버지가 죽을 때쯔음이나 죽었을 때 재산을 상속했으니깐 말이다. 물론, 율법을 어긴 것은 아니다. 율법에 그런 말은 없으니깐. 하지만 탕자는 아버지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탕자는 자신의 요구로 인해 가문 자체가 큰 어려움에 빠진 것을 생각하지 않았다. 끝까지 그는 자신만 생각했다. 생각해보라 가문의 재산이 1/3이 하루 아침에 없어졌는데  지금처럼 은행이니 채권이니 그런게 없었으니 말이다. 그가 떠날 때 마을 사람들이 보낸 모멸과 환멸을 생각한다면 탕자는 다시 돌아오는 걸 생각하지 않았을 거다. 만약 그가 다시 돌아온다면 케자자 의식 그러니깐 마을 사람 모두가 보는 앞에서 수치와 모욕을 당하며 모두와의 관계가 단절되었다는 의식을 해야하니. 그 뒤에 삶을 생각한다며 탕자는 두 번 다시 마을로 갈 생각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생각한 대로 일이 흐르진 않았다. 재산을 다 잃어버렸다. 그렇지만 마을로 돌아갈 생각을 바로 하지는 않았다. 다시 마을로 돌아갔을 때 수치와 모욕, 그 뒤에 삶을 감당하지 못할 테니깐. 
 그러나 흉년은 계속 되었다. 극심한 흉년은 계속되었다. 탕자는 그제서야 집으로 돌아갈 생각을 한다. 마을에서 당할 수치와 모욕보다 당장에 배가 굶주렸으니깐. 여기서도 탕자는 한 가지 꾀를 낸다. 아버지에게 품꾼으로 써달라는 요구를 해야겠다고.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돈을 다 모은다면 그가 마을에서도 위신일 설 거로 생각한다. 아직까지도 탕자는 자신이 무얼 잘못했는지 모른다. 그가 잘못한 것은 재산을 잃어버린 게 아니라 아버지를 아프게 한 거였다. 

3. 어쨌든 그렇게 탕자는 마을로 들어왔다. 마을 입구로 들어서자 사람들은 서서히 탕자에게로 몰렸을 것이다. 거지꼴을 한 탕자를 보며 사람들은 그가 재산을 탕진한 것을 짐작했을 것이다. 아버지의 집으로 가는 길에 점점 다가갈 수록 사람들은 모여든다. 그리고 그를 향한 시선은 모멸과 수치를 주기에 넘쳐났다. 그가 재산을 탕진한 것이 확실시 되면 케자자 의식을 해야한다. 
 아들이 돌아왔다는 소식이 아버지에게 들렸다. 아버지는 기다리지 않았다. 밖으로 나갔다. 그 뒤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난다. 

아버지가 달린다. 

성인이 되어서 단 한 버도 달린적이 없었을 어른이 달린다. 이것이 얼마나 수치와 모욕적인 행동인지 마을 사람들은 다 알 것이다.  그것도 그냥 조깅하듯이 뛰는 것도 아니고 전속력을 내며 뛴다. 그러려면 다리를 내놓아야 한다. 마을에 권위있는 어른이 다리를 내놓으면서 뛴다니?! 얼마나 수치스럽고 모욕적인 행동인가. 라이트는 이 모습을 보고 지금으로 말하자면 총리가 수영복을 입고 기자회견을 하는 꼴이랬다. 보수적인 영국사회에서 아니 우리나라 역시도 총리가 그런 행동을 한다면 어찌될지 싶게 짐작이 된다. 
 아버지가 그런 행동을 한 것이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다가간다. 아들에게 향한 수치와 모욕의 시선이 아버지에게로 옮겨간다.  아버지가 대신하여 수치와 모욕을 당하셨다. 그리고 안아주신다.  그제야 탕자는 아버지의 사랑을 깨닫는다. 그는 품꾼을 요구하지 않으며 그저 자신은 아버지의  아들로 자격 없음을 말한다. 아버지의 사랑에 그는 깨달은 것이다. 
'아, 내가 아버지를 아프게 했구나...'

4. 탕자의 이야기를 두고 이슬람에서는 탕자가 구원자 없이 고난이나 이런 것 없이 구원받았다고 한단다. 아니다. 아버지가 아들이 받아야 했던 수치와 모욕을 대신 당하셨다. 우리는 그 절정이 어디인지 안다.
예수 역시 십자가에서 우리를 대신하여 수치와 모욕을 당하셨다. 탕자의 아버지가 두 팔을 벌려 아들을 안아주었듯이 그분 역시 두 팔을 벌려 십자가에 계신다. 

5. 우리의 사랑에는 한계가 있다. 하지만 우리 아버지의 사랑에는 한계가 없다.  '나'는 다 못 안아주지만 '아버지'는 다 안아주신다.

 

그분은 십자가 위에서 두 팔 벌려 계셨다.
그분의 사랑에 한계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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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전에 <십자가와 탕자>를 읽고 느낀 점을 옮긴 것이다. 성경이 쓰여졌을 때 문화는 수치와 명예의 문화이다. 이 수치스러움은 우리 동양인의 문화이기도 하다. 탕자의 이야기를 당시 수치와 명예 문화에 맞춰 읽는다면 이 이야기가 우리에게 새롭게 다가온다. 당시 예수님의 이야기를 들었던 대중들이 느꼈을 법한 마음을 우리도 한 번 느껴 보자!

 


메모

 

 

- 100중 1에서 10 개중 1, 이제 둘 중 하나 


 

책 맛보기

 

 

중동에서 다른 사람과 같이 먹는다는 것은, 매우 깊은 수준에서 서로를 받아들임을 의미하는 신성한 행위입니다. 제가 중동에서 살던 수십 년간 저는 이런 사실 때문에, 비록 제가 음식을 먹기를 원하거나 필요하지도 않고 그럴 시간적 여유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주 마을에서 식사를 함께하기 위해 머무르곤 했습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과 같이 먹음으로써 저는 그 사람을 기본적이자 근본적 수준에서 받아들이게 되었던 것입니다. (39)

 


 

목 차

 

 

추천사

역자서문

2판 서론

서문

 

1부: 누가복음 15장에 대한 주석

제1장 나와 함께 기뻐하라: 누가복음 15:1-10

제2장 죽기를 바람: 누가복음 15:11-12

제3장 체면세우기 계획: 누가복음 15:13-19

제4장 충격적인 대면: 누가복음 15:20-24

제5장 사라진 클라이맥스: 누가복음 15:25-32

2부: "나에겐 두 아들이 있지 않다"

서론

제1장 아침식탁

제2장 돼지 떼

제3장 예복

제4장 연회

 

연출메모

샬룩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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