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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새벽설교

[설교문] 출애굽기 37장 1-29절(출 37:1-29, 출 37:1~29)

by 카리안zz 2020. 2.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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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송아지 사건을 통해 멸망 직접까지 갔던 이스라엘 백성들이었습니다. 그러나 모세의 중보기도로 인해 즉각적인 멸망은 모면하고 심지어 다시 하나님과의 관계가 금송아지 전 단계까지 회복하게 됩니다. 그 관계의 회복이 바로 성막을 짓는 것이었습니다. 모세가 전에는 시내산에 오르락 내리락 했는데 이제는 더 이상 그럴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성막에 하나님께서 거하시기 때문에 이제는 성막을 들락날락 거릴 것입니다. 전에는 수직으로 움직였다면 이제는 수평으로 움직입니다. 계시의 장소가 변한 것입니다. 이제 다시 성막이 지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한 가지 알아두면 좋은 배경들이 있습니다. 교리적 차원에서 성경을 읽는 방법과 그리스도 중심적 성경 읽기, 성경을 하나의 큰 줄기를 정하고 성경을 읽는 방법 등이 있습니다. 성경의 하나의 큰 줄기를 잡고 보는 방법은 성경신학자들이 종종 쓰는 방법들입니다. 물론 하나의 중심을 잡고 성경읽는 방법에 대해 비판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아무래도 하나의 중심 주제를 잡다보니깐 성경의 다른 풍성한 이야기들이 소외되는 경향이 있기에 조금은 주의하기도 해야하지만 그럼에도 이 성경읽기는 대단히 우리에게 유익합니다. 먼저, 성경을 하나의 큰 줄기를 잡고 보는 방법 중에 하나는 요즘 유행하는 하나남 나라관점에서 성경을 읽는 방법입니다. 흔히 우리가 아는 창타구 즉, 창조-타락-구속이 있습니다. 이 방법론은 네덜란드 그러니깐 화란에서 시작된 기독교 세계관으로 성경읽기입니다. 이 기독교 세계관으로 성경 읽기를 성경학자인 톰 라이트가 그대로 이어받아서 하나의 명저를 남깁니다. 그 책이 바로 <마침내 드러난 하나님 나라>입니다.톰 라이트가 브라이언 왈시랑 친분관계를 맺고 있고 그에게 영향을 받았기 때문에 넓게 보면 톰 라이트도 신칼빈주의의 진영에 있기도 합니다.

물론, 톰 라이트가 대단히 매혹적인 이유는 여태까지 세계관 읽기는 창조-타락-구속 이렇게 어떻게 보면 성경적 근거들이 조금은 빈약했는데 톰 라이트는 성경학자이다 보니깐 치밀하게 그 빈틈들을 다 성경적으로 매꾸어 버립니다. 그래서 그의 성경읽기 방법을 크레이그와 마이클 고힌이 좀더 쉽게 대중에게 소개하는 책을 냈는데 이게 <성경은 드라마다>란 책입니다. 여기서 크레이그와 고힌은 조금 세밀하게 기존의 창조-타락-구속을 창조-타락-구속의 시작-신구약중간기-구속의 성취-교회와 선교-구속의 완성으로 읽습니다. 나중에 이 하나님 나라 관점에 대해서 좀더 이야기할 시간이 있으면 좋겠지만 오늘은 그 관점이 아닌 다른 관점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오늘 본문과도 연관이 있습니다.

이번의 하나의 거대한 줄기는 바로 성전입니다. 그레고리 빌의 <성전신학>이 대표적입니다.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처소라는 주제로 성경 전체를 보는 관점입니다. 창세기의 에덴동산에서 요한계시록 21장 마지막 환상까지 성경이 그려내는 구속사의 흐름을 성전이라는 주제로 읽어나가는 방법입니다. 우주 자체를 하나님의 성전 건축으로 보는 것이지요. 그러면 에덴동산은 하나님의 최초의 성소로 보는 것으로 시작해서 창조 기사와 성막 사이에서 유사점들을 찾아내기도 합니다. 신약에서는 요한복음 114절 말씀에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신다는 선언이 있는데 이 거한다라는 단어가 헬라어로는 장막을 치다라는 동사입니다. 그러니깐 이 본문도 성전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서는 하나님의 영은 모세의 성막과 솔로몬의 성전을 가득 채운 영광이었으며 에스겔의 회복된 성전을 가득 채운 영광이었습니다. 마침내 그 하나님의 영광은 그리스도 예수의 육신의 장막에 임한 영광이었으며 종말론적으로는 새 하늘과 새 땅에 서게 될 하나님의 장막을 가득 채울 영광입니다. 이렇게 영이신 하나님이 물리적이고 육체적인 인간의 거주 공간에 오셔서 함께 살아주시겠다는 이 약속은 우리는 성전을 중심으로 살펴 볼 수 있는 겁니다.

그렇다면 오늘 본문에서 나오는 성막의 의미에 대해서 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언약궤, 식탁, 등대, 분향단, 관유, 향에 대해서 나옵니다. 그런데 이 성막의 재료들은 출애굽기 25장과 30장에 지침을 충실하게 따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25장에 나오는 성막에 대한 의미를 좀더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지성소의 가장 중요한 구성물인 증거궤의 제작이 나옵니다. 이 본문에서 가장 중요한 본문은 5절에 궤를 양쪽에 고리에 궤어 궤를 메게하라는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이는 성막의 이동을 극명하게 상징하기 때문입니다. 성막은 한 곳에 고정되어 있도록 만들어 진게 아니라 이스라엘이 가는 곳마다 그들과 함께 가기 위해 만들어진 겁니다. 이런 점에서 성막은 하나님의 함께 하심의 열망을 가장 잘 보여주는 상징물입니다. 그러니깐, 하나님의 임재는 동행하시는 임재라는 것입니다. 고정형인 솔로몬의 성소와 성막과의 차이점이 많기는 하지만 솔로몬의 성전이 성막의 정신을 이어받은 게 있는데 바로 이 언약궤입니다. 이 언약궤는 오늘 본문처럼 솔로몬의 성전에서 그대로 운반용 채로 남겨둡니다.

그런데 이러한 이러한 이동성은 이스라엘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과 더 이상 함께 하실 수 없는 상황이 되면 하나님은 그들을 떠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에스겔은 여호와의 영광이 떠나시는 장면을 환상으로 보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본다면 성막의 이동성은 하나님의 이율배반적인 두 가지 의지로 볼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거룩한 백성으로 있을 때에는 하나님은 언제나 함께해주시지만 거룩성을 상실할 때에는 하나님께서 떠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진설병 상과 등잔대, 분향단은 다 순금으로 만들어지는데 이는 이것들이 얼마나 거룩하고 귀한 것인지를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것입니다. 나머지 분향단과 관유와 향품도 거룩과 관련이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나오는 등잔대의 일곱 등잔은 G. K. 빌의 설명에 따르면 눈으로 볼 수 있는 일곱 개의 광원 그러니깐, 해와 달과 다섯 개의 행성과 관련 있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창세기 1장에 광명체라는 히브리어의 독특한 단어를 모세 오경의 나머지 부분에서는 이 등잔대 위의 불빛을 지시한 경우에만 사용되었기 때문입니다. 빌의 온 우주 자체가 성전으로 건축되었다는 근거 중 하나가 이것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오늘 본문을 살펴보면서 성전의 의미를 살펴 보았습니다. 이 성전은 신약시대에 예수님과 교회로까지 이어집니다. 그렇다면 역시 교회됨을 이루는 오늘 우리에게까지 이어지는 말씀입니다. 곧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말씀입니다. 그것을 알기에 오늘을 시작하는 새벽부터 이 자리에 나아온 것은 아닌가 싶습니다. 하나님이 동행하신다는 사실을 기억했으면 합니다. 오늘도 역시 부딪히게 될 삶의 터전에서도 역시 이 사실을 기억하였으면 합니다. 조금 뒤 곧 몇 시간 뒤에 우리가 서 있을 장소에도 앉아 있을 장소에도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사실을 마음에 새겼으면 합니다. 그 은혜를 깊이 느끼는 하루가 되길 바랍니다. 기도드리겠습니다.

 

기도 드리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오늘 우리는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들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이 시대 가운데 우리는 우리의 힘으로는 온전히 걸을 수 없음을 고백합니다. 우리의 힘으로 걸을 때마다 어긋나는 길들을 발견합니다. 어긋날 때마다 혼자 주저앉을 때도 많습니다. 때로는 혼자라는 생각이 갑자기 들어 두려워 질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주님 오늘 말씀처럼 우리를 깨워주십시오. , 우리가 넘어지고 쓰러져 있다면 손잡아 일으켜 주시옵소서. 그리고 함께 동행하여 주시옵소서. 주님, 늘 함께 걷길 원합니다. 우리의 어떤 상황 가운데도 낮이나 밤이나 낙망할 때나 넘어질 때나 잘 되고 자신감이 넘칠 때도 우리와 함께하여 주시옵소서.

오늘 헌금 드린 손길이 있습니다. 이 손길을 받아주시고 하늘의 복을 내려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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