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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새벽설교

[설교문] 스바냐 1장 1-18절(습 1:1-18)

by 카리안zz 2020. 2.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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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스바냐서의 배경은 근동의 지배자였던 앗수르가 쇠퇴해 가던 때였습니다. 그렇다고 바벨론이 근동의 지배자로 등극하기에는 조금 이른 시기였습니다. 그러니깐 앗수르에서 바벨론으로 넘어가는 공백기에 유다는 조금 해방감을 누리던 시기였습니다. 요시야 왕의 시대였습니다.

그러나 아직 요시야 왕의 종교개혁이 일어나지 않아 유다라는 나라 그 자체가 타락한 때였습니다. 얼마나 타락했는지 2절에서 6절에서 그 표현이 살벌합니다. 가령 2, 3절은 과거 노아시대 때 하나님의 심판이 떠오르는 그런 표현입니다.

 

그러면 당시 유다 사람들은 무엇을 잘못했을까요. 그 힌트를 4절에서 6절을 보면 찾을 수 있습니다. 먼저 그들은 우상숭배를 했습니다. 하나님과 이방의 신들을 같이 섬기는 그런 큰 죄악을 저질렀습니다. 이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능력보다는 눈에 보이는 앗수르의 옛 영광들이 더욱 빛나 보였습니다. 그래서인지 그들은 입으로는 하나님께 맹세한다지만 속으로는 하나님을 찾지도 구하지도 아니하였습니다.

 

이제 7절부터는 그 심판의 대상들이 더욱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먼저 방백들, 곧 당시 정치사회를 다스리는 지도자들이었습니다. 둘째는 왕자들입니다. 왜 왕자들이냐면 당시 요시야 왕은 나이가 아주 어렸기에 그 주변에 왕자들이 실세를 행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셋째는 이방인의 옷을 입은 사람들, 곧 당시 그래도 패권국가였던 앗수르의 어리어리한 문화력에 감탄해서 하나님의 말씀은 저버린 사람들을 뜻합니다.

9절에는 또 두 부류의 사람들이 포함되는데 첫째, 문지방을 건너뛰는 사람들입니다. 이게 왜 심판 받을 짓이냐면 당시 블레셋 법에 보면 문지방에는 신들이 깃들어 있는 곳이기 때문에 함부로 밟으면 안 된다는 법이 있었습니다. 그러니깐 문지방을 건너뛰는 사람들은 이방인들의 법을 믿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둘째는 주인의 집을 가득채운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폭력과 속임수를 써서 가난한 사람들을 착취한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이 10절에 보면 3곳에서 곡소리가 난다고 했습니다. 한번 다 같이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10절입니다. ~!

 

10: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날에 어문에서는 부르짖는 소리가, 제 이 구역에서는 울음 소리가, 작은 산들에서는 무너지는 소리가 일어나리라

 

어문, 2 구역, 작은 산들 모두 장사와 관련이 있습니다. 물고기 문은 고기를 잡아 많은 부를 올렸고 제 2 구역은 당시 상류층들의 거주지였습니다. 그리고 11절에서는 더 나아가서 자세히 말씀해주시는데 막데스 주민들과 가나안 사람들, 은을 거래하는 사람들이 슬피운다고 했습니다. 막데스는 당시 무역상인들의 거주중심지였고 가나안 사람들은 은을 거래하는 사람들과 같은 뜻입니다. 그러니깐 돈을 거래하는 자들의 돈줄들이 모두 끊어진다는 뜻입니다.

 

이로서 오늘 본문에서 우상숭배의 진정한 정체가 드러납니다. 바로, ‘입니다. 그들의 믿음의 실체가 바로 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오늘 그 우상의 정체를 정확히 찝으셔서 심판하십니다. 오늘 본문 13절입니다. 다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13절입니다. ~!

 

13: 그들의 재물이 노략되며 그들의 집이 황폐할 것이라 그들이 집을 건축하나 거기에 살지 못하며 포도원을 가꾸나 그 포도주를 마시지 못하리라

 

재물, , 포도원이 나옵니다. 이는 지금으로 말하자면 은행잔고, 부동산, 사업 또는 직장입니다. 이렇게 바꾸어 말하니깐 조금 더 섬득해지는 것 같습니다. 내가 어떻게 모은 돈들과 재산인데, 내가 어떻게 들어간 직장인데 모두 없어진다니. 정말 엄청난 심판임에 틀림없습니다. 이후 하나님께서는 그 심판의 날에 대한 묘사가 아주 뼛속까지 시릴 정도로 말씀하십니다.

 

오늘 말씀을 볼 때 생각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무신론자들입니다. 대표적으로 니체, 프로이드, 마르크스같은 무신론자와 오늘날에 들어와서는 리처드 도킨스, 크리스토퍼 히친스, 대니얼 대닛, 샘 해리스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오늘 나오는 무신론자들은 이런 이들과는 좀 달라보입니다. 그래도 입으로는 하나님이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니까요, 그래서 이런 사람들을 실천적 무신론자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있다고 말은 하지만 실상 행동은 없는 사람처럼 행동을 하기에 실천적이라는 말이 붙었습니다.

 

오늘 나오는 사람들은 하나님 말고 다른 우상을 믿었습니다. 부유해 보이고 있어 보이는 앗수르의 문화와 장사를 해서 부해진 그들의 돈이 우상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을 보면 오늘날 사회가 절묘히 연결되는 것 같습니다. 아니, 어쩌면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돈으로 더욱더 많은 것들을 할 수 있는 시대인거 같습니다. 돈으로 못하는 걸 찾기가 막상 떠올리기가 쉽지 않습니다.

 

특히나 우리 사회는 IMF를 겪은 뒤라서 그런지 이 물질에 대한 욕망이 더욱더 강해졌습니다. 실제 돈이 없어서 맛본 절망감을 너무나 생생하게 겪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절망감을 다시 느끼지 않으려고 돈을 모으는 걸 수도 있습니다.

저도 공감을 하는게 저희 집도 IMF로 부도가 나버렸습니다. 그래서 집은 빨간 딱지, 파란 딱지 해서 압류딱지가 3개나 붙었던 기억이 납니다. 딱지가 한 개 붙었으면 친구들이 오면 좀 가릴 수 있겠는데 3개씩이나 붙으니 이건 가릴 수도 없고 참 멋쩍었습니다. 돈에 힘을 맛보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가난한 것은 비참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 비참함 속에서 하나님을 구하고 찾았기에 참 역설적입니다. 그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었으면 저는 이 자리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 은혜가 아니었으면 돈의 화신이 되어서 저도 실천적 무신론자의 길을 걷고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이 은혜 속에서도 이 돈의 유혹은 아주 아주 황홀한 냄새를 뿜기에 우리는 언제나 유혹에 빠지지 않게 조심해야 합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오늘 하나님의 말씀은 그 경고의 말씀입니다. 그 어느 때보다 돈의 유혹이 강렬한 이 때에 살아계신 하나님을 찾아야 하고 기도해야 합니다. 오늘 18절 말씀에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의 은과 금이 여호와의 분노의 날에 능히 그들을 건지지 못할 것이다아멘

이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오늘 하루 어떠한 유혹 가운데에서 주님을 찾으며 기도하시는 우리 성도 여러분이 되길 깊이 소망합니다.

 

기도 드리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오늘 우상의 실체를 보았습니다. 아담 때부터 우리를 유혹해온 눈에 보기 좋은 것들이 우릴 유혹했고 유혹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 가장 반짝이는 우상인 돈이 있습니다. 이 시대는 마치 돈으로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것처럼 우리를 유혹합니다. 이 유혹은 너무나 강력하기에 주님의 은혜가 아니고는 버텨낼 수가 없습니다. 주님, 우리를 악에 빠지지 않게 도와 주시옵소서. 우릴 불쌍히 여겨 주시옵서서.

오늘도 주님을 찾습니다. 주님께 말을 겁니다. 늘 함께 해주시옵소서.

오늘 또 헌금 드린 손길이 있습니다. 이 손길 위에 하늘의 복을 더하여 주시옵시고 이 마음 또한 귀하게 여겨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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