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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새벽설교

[설교문] 미가서 2장 1-13절(미 2:1-13)

by 카리안zz 2020. 2.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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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곳곳에 보면 특이한 점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가난한 자들과 약한 자들을 특별히 대한다는 점입니다. 누구는 그래서 하나님을 편애하시는 분이라고까지 말하기도 합니다. , 약한 쪽 편드는 하나님이라고 합니다. 오늘 본문은 그 부분이 잘 들어나는 부분 중이기도 합니다. 특히 1절에서 3절까지의 본문은 하나님의 마음을 잘 보여준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다 함께 1절에서 3절을 한 번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1절에서 3절입니다. ~!

 

1: 그들이 침상에서 죄를 꾀하며 악을 꾸미고 날이 밝으면 그 손에 힘이 있으므로 그것을 행하는 자는 화 있을진저

2: 밭들을 탐하여 빼앗고 집들을 탐하여 차지하니 그들이 남자와 그의 집과 사람과 그의 산업을 강탈하는도다

3: 그러므로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이 족속에게 재앙을 계획하나니 너희의 목이 이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요 또한 교만하게 다니지 못할 것이라 이는 재앙의 때임이라 하셨느니라

 

여기서 보면 1절에 화 있을진저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이 표현은 당시 장례식장에서 들리는 탄식의 소리였습니다. 그러니깐 가난한 자들을 착취하고 약한 자들을 괴롭히면 죽는다는 소리입니다.

그럼 먼저 도대체 미가 시대에 어떤 상황에 있길래 이런 말까지 하나 의문이 듭니다. 미가는 이사야 선지자와 동시대를 살았던 사람인데 당시 남유다는 군사 관료 체제가 크게 발달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압제적이었으며 많은 땅들을 착취하였고 갈수록 법과 경제를 강제적으로 만들었다고 합니다. , 뇌물, 부정직한 행동, 행정지 밖에 있던 일반인들에게 과도한 세금과 징집, 지나치게 높은 이율 및 다른 압제적인 조치를 취했습니다. 하나님이 오늘 2절에 말씀을 왜 말씀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그리고 이후에는 그렇게 계속 살면 어떻게 되는지 절절하게 말씀해주십니다. 대표적으로 4절을 들 수 있는데 가난한 자들을 짓밟고 약한 자들을 괴롭히는 자들이 어떻게 되는지 그 최후가 어떻게 되는지 다 같이 한 번 읽어봅시다. 4절입니다. 시작!

 

4: 그때에 너희를 조롱하는 시를 지으며 슬픈 노래를 불러 이르기를 우리가 온전히 망하게 되었도다 그가 내 백성의 산업을 옮겨 내게서 떠나게 하시며 우리 밭을 나누어 패역자에게 주시는도다 하리니

 

그들의 최후는 온전히 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12-13절에 회복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13절에 보듯이 길을 여는 자가 그들 앞에 올라가고 그들은 길을 열어 성문에 이르러서는 그리로 나갈 것이며 그들의 왕이 앞서 가며 여호와께서는 선두로 가시리라 다른 표현으로는 성문을 부수고 바깥으로 나간다고 되어있습니다.

 

이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신 분이 계십니다. 그분은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의 삶이 진정 그랬습니다. 예수님 당시에 상황도 가난한 자들을 짓밟고 약한 자들을 괴롭히는 그런 사회였습니다. 당장 세금문제만 봐도 로마에게 생산한 물품에 30-60%세금을 내고 여기에다가 성전세로 십일조를 내었습니다. 그러다가 농사가 망하면 돈을 빌려야 하는데 당시 성전이 돈을 빌려주는 은행 역할을 했습니다.

당시 성전은 큰 교회가 아니라 예루살렘 경제 권력의 중심지였으면 도시의 지도층에게는 가장 큰 사업장이었습니다. 여기에 이제 돈을 빌려서 만약 갚지를 못하면 땅은 넘어가고 소작농이 되어 계속 가난하게 살아야 했습니다.

그래서 마가복음 634절에 큰 무리들을 목자없는 양과 같으므로 그들을 불쌍히 여기셨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 상황에서 가난한 자들과 약한 자들과 사람 취급 못받는 자들에 대한 예수님의 태도는 굉장히 혁명적이었습니다.

당시 인간 대접 받지 못한 사람들 중에 여자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여자들의 인권이 신장된 건 근래의 일입니다. 예수님 시대에 역시 여성에 대한 차별이 극심했던 시기였습니다. 그런데 당시 여자가 남자들과 가르치는 사람 앞에서 함께 앉아 있는 것도 놀라운데 앞자리에 앉아 있는 건 정말 상상도 못할 행동입니다. 그런데 그 행동을 마리아가 했습니다. 말도 안되는 행동을 했는데 예수님은 혼내기는 커녕 칭찬을 해주셨습니다.

, 당시 죄인인 여인 그러니깐 창녀가 바리새인 집에서 식사를 하시던 예수님 앞에 나아와서 입맞추고 향유를 부은 사건입니다. 창녀가 바리새인 집에 간 것도 놀라운데 아무도 예수님 앞에 나아가는데 막지를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아닌 다른 사람이었으면 분명 앞에 다가가기도 전에 쫓겨났을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 창녀가 예수님 앞에 다가갈 수 있었겠습니까? 거기 있는 모두가 예수님이라면!” “예수님이라면 괜찮을거야!”

이 모습이 신약성서에서 끝이 났다면 복음에는 생명력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나라 초대 교회사에서도 이와 같은 일이 일어납니다. 방성춘이라는 백정이 있었습니다. 이 백정이 죽을 위기에 처해있는데 선교사가 그를 구해줍니다. 그 선교사의 이름은 에비슨이었고 고종의 주치의였습니다. 한 나라의 왕을 진료하던 그 의사가 인간도 아닌 인간 취급도 받지 못하던 백정을 치료해 주었습니다. 여기에 충격을 받은 박성춘이 예수를 믿게 되었고 나중에는 양반까지 썩여있는 교회에 초대 장로로 뽑히게 됩니다. 백정이었던 그는 사람들에게 외쳤습니다. “사람 대접 받지 못했던 우리를 사람 대접해주는 종교가 왔다!”

 

유대인들은 아침과 저녁이면 큰 소리로 유대인 신경을 암송했다고 합니다. 바로 신명기 6:4-9절 말씀입니다. 주 내용이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내용입니다. 이 유대인의 신경은 당연히 예수님 시대에도 역시 암송되어진 내용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여기서 한가지 더 레위기 19:18말씀을 붙여 버립니다. 이를 예수 신경이라고 불리기도 하는데 그 내용이 이렇습니다.

 

첫째는 이것이니 이스라엘아 들으라 주 곧 우리 하나님은 유일한 주시라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요 둘째는 이것이니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라 이보다 더 큰 계명이 없느니라. 아멘

 

우리 조국의 교회들은 하나님을 사랑하는데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살아왔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두 번째 계명인 이웃 사랑에서는 부족한 부분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이제는 우리 이웃들의 아픈 소리를 듣길 원합니다.

 

말씀을 맺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말씀에서처럼 아픔과 고통이 가득한 이 땅에서 해방시킬 한 분이 오실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분은 예수님이셨습니다. 그분은 진정 하나님을 사랑하셨고 이웃을 사랑하셨습니다. 특히, 사람 대접 받지 못했던 사람들과 어울렸고 사람 대접을 해주셨습니다. 우리나라 초대 교회에서도 역시 이 모습을 이어나갔습니다.

우리도 예수님과 우리 신앙의 선배님들을 본받아 가난한 자들의 눈물을 닦아주며 아픈 자들을 안아주며 고통 당하는 자들과 함께했으면 합니다. 돈으로 차별하는 이 세상에서 다시 한번 옛 백정 장로님의 외침, 사람 대접해주는 종교가 있다는 그 외침이 들리길 원합니다. 오늘 하루 네 이웃을 사랑하는, 이 믿음을 보이는 하루가 되시길 소망합니다.

 

기도 드리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오늘 말씀에서 미가 시대의 상황을 봤습니다. 가난한 자들이 고통 받고 힘없는 자들이 괴롭힘을 당하는 그런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 오늘 우리의 상황에서도 그런 모습들이 많이 보이고 있습니다. 권력을 가진 자들이 횡포를 부리며 가난한 자들이 가난해지며 고통받는 자들이 더욱 고통받는 그런 모습들이 보입니다.

주님, 이러한 때에 예수님의 모습을 본받습니다. 예수님의 길을 따라갑니다. 주님이 보이신 그 길은 가난한 자들에게 손내밀어 주셨으며 아픈 자들 눈물을 닦아주셨으며 사람 취급 받지 못하던 자들과 함께하셨습니다. ! 주님 우리도 주님을 따르겠습니다. 우리의 눈물을 닦아주셨던 주님, 우리 이웃의 고통의 소리에 침묵하지 않겠습니다. 우리의 이웃을 사랑하겠습니다. 주님, 우리와 함께하여주시옵소서.

오늘 또 헌금드린 손길이 있습니다. 이 손길 위에 하늘의 복을 더하여 주시옵시고 헌금드린 이 마음을 귀하여 여겨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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