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문 9장에서 14장까지는 하나님께서 약속을 하는 내용입니다. 9장 1-8절은 여태 이스라엘의 전통적인 적이었던 아람, 두로와 시돈, 블레셋 나라를 패배시킬 것이며 9절부터는 하나님께서 왕을 약속하시며 하나님 나라가 회복될 것이라 약속하는 내용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왕을 약속하시는데 이 왕의 이미지가 우리가 생각하는 왕의 이미지랑은 많이 다릅니다. 왕이라면 으리으리한 군마나 전차를 타고 모든 것들을 제압해 버릴 수 있다는 강한 모습으로 등장할 거라 보통 생각합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에서는 나귀 그것도 어린 나귀를 타고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신다고 합니다. 그런 연약한 모습의 왕이 전쟁을 마무리하고 온 세상을 다스리신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왜 그렇게 하시는가 했더니 11절에 피로 언약을 맺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다함께 스가랴 9장 11절 말씀을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11절입니다.
11절: 또 너로 말할진대 네 언약의 피로 말미암아 내가 네 갇힌 자들을 물 없는 구덩이에서 놓았나니
이는 출애굽기 24장 8절 말씀이 떠오릅니다. 제가 한 번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출애굽기 24장 8절입니다.
출 24장 8절: 모세가 그 피를 가지고 백성에게 뿌리며 이르되 이는 여호와께서 이 모든 말씀에 대하여 너희와 세우신 언약의 피니라
그리고 또 약속하신 말씀이 떠오릅니다. 에스겔서 16장 8절입니다. 제가 한 번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겔 16장 8절: 내가 네 곁으로 지나며 보니 네 때가 사랑을 할 만한 때라 내 옷으로 너를 덮어 벌거벗은 것을 가리고 네게 맹세하고 언약하여 너를 내게 속하게 하였으니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약속하셨던 말씀들을 기억하셔서 오늘 본문 말씀에 하나님의 백성들을 구원하실 것이라 다시 한번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그 일은 너무도 잘 알듯이 예수님께서 나귀를 타시고 예루살렘에 입성을 하시면서 부분적으로 이루어집니다.
마태복음 21장 1절에서 11절까지를 보시면 정말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왕이신 예수님께서 어린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십니다. 앞서 말했듯이 이 모습은 진실로 우리가 생각했던 왕의 모습과 어울리지 않습니다.
왕이라면 화려한 백마를 타고 성에 입성하는 것이 올바른 모습아니겠습니까? 그 백마 옆에는 수많은 군인들과 전차들을 뒤에 달고 오시는 게 더 왕의 모습이 아니겠습니까? 저 적들을 단칼에 쓸어버리는 모습으로 오시는게 왕의 모습이 아니겠습니까? 웅장하고 화려한 모습이 우리가 상상하는 왕입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가 본 왕의 모습은 그런 왕의 모습이 아니라 정반대의 모습을 한 왕을 봅니다. 옷은 가난해서 거지꼴을 하였고 엄청나게 큰 말도 아닌 어린 나귀를 타고 성에 들어오고 있습니다. 이건 마치 다 큰 어른이 어린이용 자전거를 탄 꼴입니다.
그런데 이때 우리가 기억해야할 또 하나의 입성이 있습니다. 바로 로마 황제를 대표해서 예루살렘 성에 입성한 총독을 기억해야합니다. 과거에 이스라엘에선 많은 반란이 일어났습니다. 더군다나 명절날이라면 그 분위기는 엄청난 열기로 뒤덮혀 있었기 때문에 조그마한 일이라도 터질 경우 예루살렘은 소요사태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실례로 예전에 3만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깔려죽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렇기 때문에 로마의 총독은 제사장에게 의복을 넘겨준다는 핑계로 예루살렘 성에 입성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들이 성에 입성할 때 로마 군인의 창과 로마의 바퀴가 여기 살아 있으니 너희들은 그것을 잊지 말라는 표시하기 위해서 였습니다.
그들이 입성할 때를 상상해보십시오. 예수님의 입성과는 완전히 반대입니다. 그들의 갑옷! 말 위 탄 기병들! 어깨위에 두른 제국의 독수리가 행진의 선두를 이끌고 있었습니다. 권력의 상징이자 세상을 씹어먹을 위세를 지닌 그들의 입성이었습니다. 로마 황제의 대리자는 서쪽에서 입성하였습니다. 이러한 가운데 정반대편인 동쪽에서 예수님은 입성하셨습니다.
이 얼마나 상징적입니까. 서쪽에는 예루살렘 권력과 특권, 경제, 정치, 군사를 다 가진 빌라도가 입성하고 있다면 동쪽에는 권력과 특권, 경제, 정치, 군사와 거리가 가정 멀 것같은 분인 예수님이 입성하고 계셨습니다. 세상 정권과 하나님 나라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나타냅니다.
그리고 우리는 오늘 본문 스가랴 9장 10절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 다같이 본문 10절말씀을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10절: 내가 에브라임의 병거와 예루살렘의 말을 끊겠고 전쟁하는 활도 끊으리니 그가 이방 사람에게 화평을 전할 것이요 그의 통치는 바다에서 바다까지 이르고 유브라데 강에서 땅끝까지 이르리라
진정한 평화의 왕은 무력한 모습으로 오시었던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의 모습은 보잘 것 없었습니다. 한없이 낮아지신 그 모습이었습니다. 우리 조국의 교회가 잃어버린 예수님의 모습이 바로 이 모습입니다. 우리의 교회들은 너무나 웅장해졌고 우리가 가진 은과 금은 넘쳐나며 로마가 무시무시한 권력을 가졌듯이 지금은 교회들은 많은 권력을 가졌습니다. 선거철만 되면 정치인들이 교회 눈치를 보고 서울 시장이라는 권력자도 교회 눈치를 보며 자신의 입장을 돌릴 정도로 교회는 힘을 가졌습니다.
최근 정치적 스캔들이 크게 일어났는데 이를 두고 기사가 나왔습니다. 제목이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그 기사의 제목은 ‘장로 수난시대’였습니다. 이는 교회의 지도층과 권력의 지도층들이 연결되어있다는 반증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오늘 기억해야할 모습은 어린 나귀를 타고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입니다. 또, 기억을 넘어서 회복해야할 모습이기도 합니다. 오늘 하루 은과 금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구하는 하루가 되길 소망합니다.
기도 드리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진정한 통치자를 보내주신다고 약속을 하셨습니다. 우리는 가끔 유혹에 빠질 때가 있습니다. 주님이 보내주신다는 왕은 능력이 있어 보이며 화려한 모습으로 세상을 호령할 그런 왕으로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그 왕은 어린 나귀를 타고 오시는 왕이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그 모습 그대로 세상에 나타나셨습니다.
오늘 우리는 로마의 황제는 사라졌지만 예수님의 이름은 지금까지 기억되고 있다는 것을 압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유혹 속에서 예수님의 이름보다는 황제의 이름, 돈, 명예같은 것들에 끌리기도 합니다. 이 유혹들 가운데서 우리를 지켜주시며 함께 걸어주시옵소서.
오늘 헌금드린 손길들이 있습니다. 이 귀한 손길을 기억해 주시고 하늘의 복 또한 내려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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