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과 기술의 엄청난 발전으로 인해 인류는 엄청난 풍요를 누리고 있습니다. 의료 기술 역시 엄청난 발전을 했습니다. 그래서 예전에는 각종 전염병으로 평균수명이 많이 낮았지만 지금은 평균수명이 거의 80세에 육박합니다.
대한민국 역시 너무나 가난한 시절을 보냈었습니다. 일제 시대에는 식민지였기에 많은 수탈과 참혹함을 겪어야 했습니다. 일제 시대 이후에는 전쟁을 겪었습니다. 전쟁은 우리 민족사에 엄청난 상처를 안겼습니다. 그리고 그 전쟁 이후에 극심한 가난을 겪었다는 것은 아직 20대인 저도 알만큼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러나 70년대 이후 산업화의 성공으로 우리 나라는 가난을 극복하게 됩니다. 예전에는 상상을 할 수 없었던 일들이 지금 눈 앞에서 펼쳐지고 있습니다. 50-60년대에 사셨던 분들이 지금 이 세상을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도중에 IMF를 겪었지만 그래도 예전보다는 풍요로운 세상이 이루워졌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인 호세아 예언자 시대에도 마치 그런 시대였습니다. 본문 2장 자체에서도 말하듯이 풍요로운 시대였습니다. 이스라엘 역사에서도 그렇게 풍요로운 시대는 참 드물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풍요로운 시대에 우상을 섬겼다는 데에 있습니다. 바알은 풍요의 신이었습니다. 분명히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이스라엘 사람들이 알았을텐데 그들은 왜 우상을 섬겼을까요.
사실 지금은 유일신 사상이 아주 당연하게 받아지고 자연스러워 보입니다. 하지만 지금의 눈으로 당시 호세아 시대를 본다면 많이 곤란합니다. 당시는 우상들도 아주 많았을뿐더러 오늘 나오는 바알은 풍요의 신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이 농경사회에서 바알을 섬길지 하나님을 섬길지는 먹고 사는 문제였습니다. 아마 이스라엘 사람들은 광야에서나 하나님이 힘이 있지 과연 이 정착한 다음에도 다른 이방 신들보다 힘을 발휘할까?라는 물음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풍요를 맛본 이스라엘은 자연스레 바알을 섬기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갈 때까지 갔는지 하나님도 섬기면서 바알도 같이 섬기는 지경에까지 갔습니다. 당시에 아세라라는 여신이 있었는데 감히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 아세라를 하나님의 아내의 신으로까지 표현을 했습니다. 어찌 보면 이것은 굉장히 합리적인 판단일 수 있습니다. 좋 은게 좋은 거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게 호락호락한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좋게 보이는 보암직한 것에 휘둘리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그분은 분명 말씀하셨습니다. 신명기 6장 4절입니다. 제가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신명기 6장 4절: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어찌 보면 우상숭배를 가장한 이 악마는 우리가 생각하는 그 모습으로 나타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C. S. 루이스라는 유명한 기독교 변증가는 이 악에 대한 통찰이 담긴 책을 냈습니다. <스크루테이프의 편지>라는 책입니다. 루이스는 그 독특한 상상력으로 내가 만약 악마라면 원수들을 어떻게 굴복시킬까하며 아주 기가막히게 썼습니다. 저 같아도 내가 만약 악마라면 그렇게 뻔해 보이는 모습으로 사람들에게 나타나지는 않을꺼 같습니다.
굉장히 설득력 있게 다가갈 것이며 우리 눈 앞에 둔 문제를 건드릴 것입니다. 마치 그것이 하나님의 일이양 만들버릴 것입니다.
현대 시대에 악마는 어떤 식으로 우리에게 접근해 올까요. 아주 뿔달린 모습으로 나 악마요!라는 이름표를 붙이고 우리에게 달려 들겠습니까? 악마는 어쩌면 겉모습은 아주 온화한 모습으로 가장해서 접근할 수도 있을거 같습니다.
다시 돌아와 그리도 가난했던 초기 기독교를 생각해 봅니다. 초기 일제 시대 극심한 박해 속에서 우리의 유려한 신앙의 선배들이 있었습니다. 김구, 이승만, 김규식, 조만식, 이승훈, 여운형, 안창호, 이상재, 신채호, 주시경 등등 한국사에 빼놓을 없었던 분들이 기독교인이었습니다. 당시 기독교 인구 5%도 안 되었을 때입니다.
지금은 어떻습니까. 개신교 인구가 많게는 20%로 칩니다. 우리는 세 분의 장로 대통령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잘 사시는 분들 중에 기독교인이 꽤 많아졌습니다. 더구나 국회의 40%가 기독교인입니다. 더 이상 개신교는 약자가 아닙니다. 우리는 이제 힘을 가졌습니다. 현실은 어떻습니까.
세상은 금과 은을 참 좋아합니다. 세상은 먹음직스럽고 보암직한 것들을 좋아합니다. 세상은 큰 것들을 좋아합니다. 세상은 대형화를 좋아합니다. 세상은 있어 보이는 것들을 좋아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없이는 그것들은 의미가 없습니다. 우리는 이제 베드로의 이 고백을 회복해야 합니다.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오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는 승리의 하루가 되길 소망합니다.
기도 드리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오늘 우리는 우상이 그렇게 쉬운 상대가 아님을 알았습니다. 우상은 우리의 가장 가려운 부분을 긁어주고 우리의 가장 큰 약점을 공격합니다. 먹고 사는 큰 문제에 우상은 이것 없으면 죽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실로 정말 죽을 것처럼 보입니다. 하나님 이 우상의 유혹과 협박 속에서 우리를 지켜 주시옵소서. 우리는 한없이 연약합니다.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올바르게 살아갈 힘이 없습니다. 주님!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소서. 다만 악에서 구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 모든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하나님에게 있다는 이 믿음가지고 나아갑니다. 올 한해 이 믿음을 보이게 도와주시옵소서.
오늘 헌금을 드린 손길이 있습니다. 이 손길 가운데 하나님께서 하늘의 복을 내려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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