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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새벽설교

[설교문] 이사야서 14장 1-32절(사 14:1-32)

by 카리안zz 2020. 2.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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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은 심판에 대한 내용이 나옵니다. 바로 바벨론과 앗수르 그리고 블레셋의 심판입니다. 3절에서 23절은 바벨론, 24절부터 27절은 앗수르, 28절부터 32절까지는 블레셋의 심판에 대한 내용입니다.

먼저 앗수르의 심판에 대해서 봅시다. 25절에 하나님께서 앗수르를 나의 산에서 그것을 짓밟으리니 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예언은 열왕기하 1935절에 나옵니다. 제가 한 번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왕하 1935: 이 밤에 여호와의 사자가 나와서 앗수르 진영에서 군사 십팔만 오천 명을 친지라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보니 다 송장이 되었더라

 

다음은 블레셋의 심판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31절에 너 블레셋이여 다 소멸되리로다 대저 연기가 북방에서 오는데라고 되어있습니다. 이것은 후일에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대왕의 공격으로 그대로 이루어 집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블레셋도 살 길을 알려주십니다. 바로 32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시온을 세우셨으니 그의 백성의 곤고한 자들이 그 안에서 피난하리라 할 것이니라바로 여호와께로 오면 살 것이다는 말입니다.

마지막으로 바벨론에 대해 보겠습니다. 특히 이사야 14장은 바벨론 왕에 대한 묘사가 절절하게 되어있습니다. 바벨론의 왕이라고 하면 어떤 왕이겠습니까? 당시 중동 지역의 절대자가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그 절대자를 4절에 보면 노래를 불러가면서 비꼬고 있습니다.

4절 이후를 보면 이야 니가 그 왕이 맞냐? 그 살벌하던 그 왕이 맞냐? 세상을 다 휘져었던 왕이 맞냐? 9-10절을 제가 한 번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9: 아래의 스올이 너로 말미암아 소동하여 네가 오는 것을 영접하되 그것이 세상의 모든 영웅을 너로 말미암아 움직이게 하며 열방의 모든 왕을 그들의 왕좌에서 일어서게 하므로

10: 그들은 다 네게 말하여 이르기를 너도 우리같이 연약하게 되었으냐 너도 우리같이 되었느냐 하리로다

 

10절 망령들이 한 말이 어떤 말입니까? ’너도 별 수 없이 우리처럼 무력해졌구나. 우리와 똑같은 신세가 되었구나.‘ 이렇게 말합니다. 그런데 이 조롱하는 게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11-12, 16-17, 제가 한 번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11: 네 영화가 스올에 떨어졌음이여 네 비파 소리까지로다 구더기가 네 아래에 깔림이여 지렁이가 너를 덮었도다

12: 너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여 어찌 그리 하늘에서 떨어졌으며 너 열국을 엎은 자여 어찌 그리 땅에 찍혔는고

16: 너를 보는 이가 주목하여 너를 자세히 살펴 보며 말하기를 이 사람이 땅을 진동시키며 열국을 놀라게 하며

17: 세계를 황무하게 하며 성읍을 파괴하며 그에게 사로잡힌 자들을 집으로 놓아 보내지 아니하던 자가 아니냐 하리로다

 

어떻게 보면 27절까지 계속적으로 비웃고, 비꼬고 있습니다. 여찌보면 조금 불쌍할 법도 한데 그럼 바벨론 왕은 이렇게까지 조롱당한 이유가 있습니다. 바로 13-14절 말씀입니다. 제가 한번 읽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13: 네가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별 위에 내 자리를 높이리라 내가 북극 집회의 산 위에 앉으리라

14: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가 지극히 높은 이와 같아지리라 하는도다

 

바벨론 왕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가장 높은 하늘로 올라 가겠다. 하나님의 별들보다 더 높은 곳에 나의 보좌를 두겠다. 그리고 내가 저 구름 위에 올라가서, 가장 높으신 분과 같아지겠다.”

 

바벨론 왕이 이렇게 조롱을 받았던 이유는 또 심판을 받아야 했던 이유는 바로 하나님처럼 되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자신에게는 세계 최고의 군사와 문화력을 가지고 있고 또 그걸로 세계의 모든 나라들이 휙휙 쓰러집니다. 마치 자기가 하나님처럼 느껴지지 않았겠습니까? 그 능력들을 보고 자신을 의지했습니다. 아담과 하와를 유혹했던 악은 이렇게 사용되어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악 역시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서 무너지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서 악은 이제 우리의 발 아래 있습니다. 그러나 악은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없어져야 하는데 아직 남아 있습니다. 사회의 구조를 통해서든 아니면 개인에게서든 그 악은 여실없이 지금도 살아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나라는 아직 완성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 바벨론 왕이 스스로 의지하고 하나님이 되려고 했듯이 지금 우리의 세상에서도 하나님 말고 다른 것들을 의지하려고 하는 모습들이 보입니다. 머가 있을까요? 바로 제일 먼저 떠오르는 건 돈입니다. 물론 돈 자체가 악이라기 보다는 돈을 대하는 자세에서 악이 보입니다. 돈 앞에 굉장한 유혹이 있죠. 돈으로는 못 할게 없어 보일 때 우리는 큰 유혹을 느낍니다.

작년에 읽었던 어떤 기사 중에 참 돈이라는게 우리 구조안에 똬리를 틀고 있구나 느꼈던 기사가 있었습니다. 어떤 내용이냐면 삼성과 애플 등 대기업에 납품하는 하청업체 이야기입니다. 중소기업이지만 한 해 매출액이 2000억 이상 되는 기업입니다. 이 기업 회장님은 바로 유명한 큰 교회 장로님이십니다. 장로님이셔서 그런지 본인의 꿈이 교회를 세우는 게 꿈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실제로 교회를 많이 세우셨고 공장의 꼭대기에게 곳곳 마다 십자가가 꼭혀있습니다. 회사의 행사때 마다 찬양대 불러서 예배도 드리고 그럽니다. 얼마나 신실합니까? 그런데 그 회사 사원들은 교회를 못간다고 합니다. 회사에서 안보내 준대요. 몇 년간 그 회사에서 일한 사람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사람이 아니니까요. 관리자들이 기계만 못 하다 하면, 우리는 누구랑 비교도 할 수 없게 그냥 사람이 아니에요. 교회는 사람이 가는 거니까."

 

그 외에도 절절합니다. 또 다른 사원의 말입니다.

 

"그러다 한 날은 기계가 다 멈췄어요. 너무 더우니까 기계가 선 거예요. 다음 날 바로 에어컨이 들어오더라고요. 그때 우리가 아, 우리는 기계만도 못 하구나."

기계만도 못한 이들은, 기계가 멈추지 않는 이상 쉬지도 못한다. 휴일 특근을 나오라면 무조건 나갔다. 연월차 휴가를 두고도 아픈 몸을 이끌고 회사를 나왔다.

 

결국 이 회사에서 과로사로 2명이 죽고 맙니다. 한 주에 70시간씩 일하다가 죽어 버렸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사람이 죽으니깐 회사도 그런지 한 달에 한 번 쉬는 게 주말을 쉬게 했습니다. 그런데 걔 중에 회사 사람들 반응이 환영 받지 못하는 분위기도 있습니다. 바로 어떤 신혼 부부는 결혼도 막했겠다 바짝 벌어야 하는데 이제 주말에 못 버니깐 좋지 않았던 겁니다. 사람도 막 죽어가고 교회 장로님이 교인들 교회도 안보내고 막 분노가 일어났는데 가만히 그 회장인 장로님 입장이 한 번 되어봤습니다. 그래 아무리 그 분도 사람이고 장로님인데 본인이 그러고 싶어서 그랬겠나. 이 경쟁사회에서 회장이라는 무게가 상당했겠지. 지금 이렇게 대기업들이 요구를 많이 하고 있는데 이거 다 못 들어주면 우리 회사 나가앉고 경쟁업체에 밀려버린다. 아마 그 장로님이신 회장님은 이런 마음이 있었을 겁니다.

 

사실 이게 어디 이 회사만의 일이겠습니까. 이 회사가 조금 극단적인 면이 있었지만 어쩌면 이 상황은 우리가 겪고 있는 현실의 이야기입니다.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의 단면입니다.

 

지금의 이 시대를 포스트모던 시대라고 합니다. 모던의 시대 이후의 사회라고 합니다. 모던이란 이성이 중심인 세상이었죠. 이 이성이 세계 1,2차 대전을 맞이하고 물러나게 됩니다. 그 이후에 시대를 포스트모던 시대, 곧 이성의 시대를 해체해 버린 시대이기도 합니다. 이 시대의 특징 중에 하나가 바로 선과 악은 없다, 옳고 그름은 없다. 단지 다를 뿐이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바로 얼마 전에 이슈가 되었던 동성애 문제! 바로 이건 틀린게 아니라 다른거야!라고 세상은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정말로 이 시대가 말하는 것처럼 악은 없을까요? 틀린 건 없을까요?

 

아니요! 있습니다. 악은 우리 현실 곳곳에 그것도 명확하게 있습니다. 자살율을 볼까요? OECD 국가 중 1위를 달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좀 특이한게 있습니다. 10대에서 50대까지의 자살율은 OECD평균에 속합니다. 요즘은 약간 올라갔지만. 그런데 우리가 왜 1등이 되냐면 65세 이상의 자살율 때문입니다. 노인 자살이 어마 어마 합니다. 그런데 이 나이에 속하신 분들을 보면 진짜 고생이라는 고생은 가장 많이 한 분들 아니겠습니까? 일제시대, 6.25전쟁, 독재의 시대 아플 껀 아 겪었던 분들이 그렇게 힘들 때는 안죽었던 분들이 이제 스스로 목숨을 끊고 있습니다. 일제 시대에서도 전쟁에도 독재에도 안죽었던 분들이 지금 그때에 비하면 아주 평온하고 평화로운 시대에 죽어가고 있습니다. 저에겐 할아버지, 할머니시겠고 우리 성도님들에게는 아버지, 어머니 아니겠습니까. 엄청난 비극입니다.

 

, 있습니다. 바로 학교입니다. 왕따문제, 학교 폭력문제. 기가 막힙니다. 10대 아이들 자살 원인을 본 적이 있는데 참 가슴 아픕니다. 1위가 바로 성적과 진학문제, 2위가 가정불화, 3위가 경제적 어려움, 4위가 외로움과 고독, 5위가 친구의 따돌림입니다. 대한민국 입시가 잘못되었다는 것은 다 아는게 이걸 고치질 못합니다. 왜 물으니깐 여기 들어가는 시장 규모가 몇 조원인데 이걸 어떻게 손 대냐?라고 묻습니다. 잘못된 걸 뻔히 알면서도 우리는 그렇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가정은 어떻습니까? 이혼율이 47%입니다. 아까 전에 10대 자살 원인이 나왔지만 가정불화가 큽니다. SBS 스페셜 학교의 눈물 편을 잠깐 봤는데 거기 천종호 판사님이라고 집사님이시고 하시는데 아주 청소년에 대해 제가 보기엔 진짜 사역하고 계시는 분이십니다. 그분이 말씀하시는데 학교폭력 문제와 가정불화는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말씀하시더라구요. 그래서 문제를 일으킨 아이들이 법정에 서면 꼭 시키는게 있다고 합니다. 바로 아들에게는 아버지 사랑합니다를 외치게 하고, 아버지에게는 아들아 미안하다를 말하게 합니다. 이걸 꼭 시킨다고 합니다. 이걸 방송으로 보는데 아버지와 아들이 오열을 합니다. 몇 년간 대화 없던 부자가 이 때 처음으로 대화를 한다고 합니다.

 

이 악이 사회 곳곳에 바벨론 왕처럼 세상의 권력자들처럼 기세를 떨치는데 희망은 있어 보입니까? 감히 교회가 희망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감히 교회가 희망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얼마 전이었습니다. 사무실에서 이요한 전도사님 자리에 여러 장의 쪽지를 본 적이 있습니다. 보니깐 고등부 아이들에게 어떤 질문을 하고 고등부 아이들이 대답을 한 종이었습니다. 어떤 질문이었냐면 당신에게 있어 고등부란?”질문이었습니다. 쪽지를 보다가 한 쪽지에서 눈을 떼지 못했습니다. 한 고등부 아이가 머라고 대답했냐면 일주일 만에 만나는 희망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사회, 학교, 가정 모두 비정상에 시대에 희망을 말하는 아이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희망이 바로 교회라고 대답하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모두가 회의하는 세상에 더군다나 희망을 모를 껏같은 아이들이 배운적도 없을 아이들이 희망을 말합니다.

 

그리고 또 우리 유치부에서 그런 조그마한 희망을 본적이 있습니다. 유치부 한 아이 중에 표정이 늘 굳은 아이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낯선 사람이 새로워서 그러는 건지 아니면 먼일이 있는건지 또 아니면 원래 그런건지 참 궁금해서 우리 선생님들한테 그 아이 왜 그런지 물어보고 그랬습니다. 그런데 그 아이가 지금은 웃습니다. 아니 이제 저한테 먼저 다가와서 장난치고 그럽니다. 머 뛰어난 이론이 있었다던가 그런거 없었습니다. 그냥 가서 놀아주고 장난치고 관심가져주고 다른 아이들이랑 같이 어불리면서 놀았습니다. 저를 포함해서 우리 유치부 선생님들이 사랑할 때 아이가 웃더군요. 저는 그 웃음 속에서는 희망을 봅니다. 교회에 희망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가르쳐준 사랑이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이 줄 수 없는 사랑이 여기 있습니다.

 

저는 믿습니다. 사랑이 이겼었고 지금도 여전히 이긴다는 것을요. 이사야서 1427절을 제가 새번역 성경으로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만군의 주님께서 계획하셨는데, 누가 감히 그것을 못하게 하겠느냐? 심판하시려고 팔을 퍼셨는데, 누가 그 팔을 막겠느냐?”

 

악은 주님이 오시는 그날에 완전하게 물러나고 심판을 받습니다. 그렇다고 악에 우리는 무능하지 않습니다. , 자살율, 이혼율, 왕따, 학교폭력 등 예수님의 사랑으로 우리가 이겼고 계속 이깁니다. 오늘 이 일에 모두 희망이 되는 교회가 됩시다.

 

기도 드리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오늘 악에 대해서 들었습니다. 바벨론과 세계 제국들의 위세들이 지금 역시 이어지고 있습니다. 물론 지금은 형태를 바꾸어서 우리를 괴롭히고 있습니다. 돈이 우리를 유혹합니다. 그리고 그 돈 속에서 사회도 교육도 학교도 교회도 고통 받고 있습니다. 가끔 희망이 보이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그럴 때마다 하나님의 말씀이 떠오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를 이 고통 속에서 건져내었고 지금도 건져낼 수 있음을 믿습니다. 주님의 사랑에 능력이 있음을 믿습니다. 주님, 주님의 이 사랑 안에 늘 거하길 기도합니다. 우리를 떠나지 말아주시옵시고 우리와 늘 함께 하여주시옵소서. 주님이 함께 해주셔야 합니다.

그리고 오늘 하나님 앞에 예물을 드린 손길이 있습니다. 이 손길 가운데 주님 하늘의 복을 내려주시옵소서. 이 마음을 알아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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