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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사도행전

[설교문] 사도행전 9장 32-43절(행 9:32-43, 행 9:32~43)

by 카리안zz 2020. 2.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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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932-43

 

오늘 본문에서는 중심인물이 베드로입니다. 사도행전 825절에서 베드로는 사도 요한과 함께 사마리아 방문을 마치고 예루살렘에 돌아갔었습니다. 이 행보 뒤에 바로 오늘 본문에 베드로가 다시 등장합니다. 베드로는 앞서 사마리아에 가서 복음을 전하고 사역했던 것처럼 예루살렘 주변 지역을 돌아다니며 사역하고 있습니다.

베드로가 처음 간 곳은 룻다라는 도시였습니다. 예루살렘과 지중해 사이에 있는데 지중해와 좀 더 가깝게 위치한 곳입니다. 룻다는 당시 유대지역의 행정 구역의 중심였습니다. 베드로는 그곳에서 병든 사람을 고쳐줍니다. 애니아라는 사람인데 이분은 중풍을 8년 정도 앓고 있었습니다. 애니아라는 인물이 무슨 거창한 인물인 것은 아니었을 겁니다. 예수님과 마찬가지로 베드로는 중풍병자를 고쳐주었습니다. 그리고 애니아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고침 받았습니다. 고침받은 후 베드로는 예수님이 했던 것과 비슷하게 말합니다. 오늘 본문 34절에 베드로는 네 자리를 정돈해라 했습니다. 이를 좀 더 풀어서 설명하면 마가복음 14:15절에 쓰였던 표현처럼 네 식탁을 준비하라는 말이 됩니다. ‘뭐 좀 먹어라라는 말인데 예수님이 야이로의 딸을 살리신 이후에 하셨던 말이기도 합니다.

베드로의 사역은 계속 이어집니다. 이번에는 욥바라는 도시에 가게 되었습니다. 욥바는 지중해 해안가에 있습니다. 사마리아, 룻다와 마찬가지로 이곳에서도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이곳에서의 사역 역시 누군가를 회복시켜주는 것이었습니다. 이번에는 난이도가 훨씬 올라갑니다. 죽은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여제자였던 다비다입니다. 여자에게 제자라는 말을 쓴 것이 참 놀랍습니다. 당시에는 여자들은 제자가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당시에는 여자가 제자는커녕 하찮은 존재였습니다.

다비다의 죽음에 많은 사람들이 몰렸습니다. 베드로가 욥바에 간 것도 실은 사람들의 요청때문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에 그녀는 선행과 구제가 많았다고 했는데 실로 그러했습니다. 그녀는 속옷과 겉옷을 많은 사람들에게 만들어주었습니다. 그녀에게 도움을 받았던 많은 과부들이 그녀의 시체가 놓여있는 다락방에 모였는데 하나같이 다비다가 지어준 옷들을 보여주었습니다.

베드로는 사람들을 다 내보냅니다. 마치 예수님이 야이로의 딸을 살리실 때처럼 베드로는 사람들을 다 내보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야이로의 딸에게 일어나라고 한 것처럼 베드로도 다비다에게 일어나라고 합니다. 그리고 다비다는 다시 살아나게 됩니다.

 

베드로를 통해 일어난 회복들은 예루살렘과는 점점 멀어지며 일어납니다. 마치 앞으로 점점 더 예수님의 세계가 예루살렘을 넘어 땅 끝까지 뻗어져 나감을 우리는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에서 한 가지 생각해 볼 점이 있습니다. 왜 하나님 나라의 역사의 이야기에 기록된 인물이 고작 중풍병자이며 여자였는가입니다. 베드로는 많고 많은 사람들 중에 중풍병자의 집을 방문했을까요? 왜 당시에 제대로 인정도 받지 못받던 존재인 여자가 등장할까요? , 더 모멸을 받았던 과부들이 하나님 나라의 이야기에 등장을 했을까요? 세상의 역사에서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은 적혀있지 않은데 왜 성경의 기록은 역사의 기록과 다를까요? 우리가 들었던 수많은 간증들처럼 재벌이라든가 대통령이라든가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들을 치유해서 고쳤다라는 기록이 훨씬 더 설득력 있고 많은 사람들이 보기에 좋을 거 같습니다. 하지만 이 중요한 순간에 기록된 인물들은 하나같이 무언가 부족하다 못해 보잘 것 없었던 사람들입니다. 오늘 등장하는 베드로부터 그렇습니다. 어느 역사에서 이름도 없는 어부를 기억하겠습니다. 저는 2000년 전 대한민국 땅에서 어부였던 사람이 기록된 역사를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2000년 전 갈릴리에서 어부였던 사람은 기억합니다. 하나님 나라 이야기 속에선 그런 나약하고 평범한 사람들이 등장인물로 나옵니다.

사실 오늘 본문에서 베드로가 보인 모습은 예수님께서 보이신 모습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모습을 따랐던 것뿐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손잡아주었던 사람들은 병들었고 나약했고 배제된 사람들이었습니다. 이스라엘 유대의 체재에서나 로마의 체재에서나 세상 안에서 억눌렸던 자들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회복된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교회당에서 보고싶어야 할 얼굴이 바로 여기 있습니다. 우리가 함께 예배드릴 때 옆에 보여야할 얼굴이 병들었고 장애가 있고 세상 속에서 소외되고 배제된 자들이 있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보였던 그 얼굴들이 지금 우리의 교회 속에서도 보여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모습이 우리의 성찬에도 보입니다. 우리가 성찬을 할 때 권력과 돈이 많은 사람도, 권력과 돈이 없는 사람도 다 필요 없고 함께 모여서 잔과 빵을 뗍니다. 세상에서는 모일 수 없고 함께 식사할 수 없는 사람들이 성찬의 때에는 함께 모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가능한 것입니다.

우리가 드리는 예배에서 가장 어린 하랑이에서 가장 연로하신 임권사님까지 우리가 보는 얼굴들입니다. 저는 우리의 얼굴들에서 오늘 기록된 얼굴들의 모습이 있다고 봅니다. 하나님 나라의 모습이 우리의 예배 속에서 계속해서 이어져 나가길 소망합니다.

 

 

 

기도 드리겠습니다.

우리의 교회 모습 속에서 하나님 나라의 모습이 보이길 원합니다. 우리가 드리는 예배 가운데, 성찬 가운데, 식탁 교재 가운데, 오후 시간들 가운데 계속해서 하나님 나라를 향해서 가는 시간이 될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 선교사님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어두운 땅에 복음의 빛이 선포되어지고 그 땅에 하나님 나라가 보여지는 역사가 일어나길 기도합시다.

마지막으로, 한국과 일본의 갈등 사이에서 일본 아베 정권의 정치적 야망과 뜻이 무너지길 기도 드립니다. 자신들이 전쟁을 일으킨 전범국이며 죄를 지은 일들을 진심으로 피해자들에게 사죄하길 원합니다.

이를 위해 주여 힘차게 외치고 기도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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