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낀 점
오늘 <남산의 부장들> 영화를 봤습니다. 지난 주 친구 결혼식 참석한다고 먼 길을 가야 했습니다. 왕복 6시간 걸리는 거리인데 무언가 들을 게 필요했습니다. 그때 <남산의 부장들>관련 팟빵을 들었습니다. 먼저 CBS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남산의 부장들> 원작을 쓰신 분이 나오셨는데 그 편과 팟빵 영화공장 배드 테이스트에서 [설특집 1] 남산의 부장들 편을 듣고 먼 길을 올라갔습니다.
두 편을 들으니 꼭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평소에 정치에 관심이 많았고 예전 영화 <그때 그 사람들>을 봤는데 그 작품과 어떤 점이 다르고 비슷할까 궁금했었습니다. 비슷한 점은 후반부에 장소가 대단히 유사하게 그려졌습니다. 두 작품 다 사실적인 측면을 강조하기 위해 사건이 일어난 장소를 거의 유사하게 복원시킨 것 같습니다. 김부장이 두 부하들에게 지시하는 장소는 <그때 그 사람들> 장면이 생각나기도 했습니다. 차이점은 확실이 <남산의 부장들>은 김재규가 박정희를 암살하기까지 그 심정을 잘 추적해 갔습니다. 여러 복합적인 원인을 영화에서는 잘 드러나게 해줍니다.
김재규는 왜?
영화는 시종일관 김규평(김재규)의 심리를 추적해 갑니다. 영화에서 곽상천(차지철)과 김규평(김재규)이 개싸움을 합니다. 치고박고 싸우는 건 아니지만 말로개싸움을 하면서 총으로 서로 위협까지 합니다. 이때 김재규가 곽상천에게 "내 눈도 못 맞주쳤을 놈이"라는 대사를 합니다(정확한 대사는 아니지만). 앞에 "중령 뭐시기" 했는데 정확히 그 부분은 기억이 나질 않습니다. 이도 그럴 것이 김규평 즉, 김재규는 군 장군출신입니다. 그런데 곽상철 즉 차지철은 육군 중령이라고 나왔지만 사실은 대위 출신입니다. 군 엘리트 김규평이 대위 출신 곽상철이 자신과 비빌려는 모습에 얼마나 우습고 수치스러웠을까요. 계속되는 곽상철의 방해공작이 펼쳐지는데 그 가운데 김규평의 찌그러지는 얼굴에서 그 수치스러운 모습이 잘 드러납니다.
그런 수모에서 박통(박정희)는 묘한 줄다리기를 하는듯 합니다. 김규평이 느끼기에는 하찮은 곽상천과 자신을 저울질하고 곽상천에게로 자꾸 애정이(?) 옮겨 가는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기도 합니다. 결국 일이 터집니다. 김규평은 의외의 모습들이 있습니다. 실제로도 야권인사들과도 많은 이야기를 나눴고 의식있는 모습들이 있었다고 합니다. 민주주의에 대한 의식이 없었던 인물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미국군의 정세였시도 민감했을 것입니다. 사실인지는 모르겠지만 영화에선 미국이 박통이 끝났다고 말해주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정도까지 였는지는 모르겠지만 미국이 박정희를 싫어했던 것은 확실합니다. 이는 다른 책들과 정보들에서 나오는 사실입니다. 최근 제가 읽은 <대한민국의 설계자들>이란 책에서도 그러한 내용이 나옵니다. 장준하 선생님을 말해야 겠네요. 장준하 선생님은 해방 전 미군 OSS(미 전략정보기관, CIA의 전신)에서 훈련을 받았습니다. 김준엽, 유일한 박사님도 함께 훈련을 받았지요. 장준하 선생님은 미군쪽에서 훈련을 받았던 사람이고 독실한 기독교인이었고 철저한 반공주의자였습니다(이후 여러 진보인사들을 만난 뒤 조금 중립적이 되었습니다). 미국은 누가 대통령이 되면 좋아했을까요? 좌익경력이 있는 박정희일까요? 아니면 자신들 라인과 연결되는 장준하일까요? 그러니 장준하 선생님 암살의 배후로 박통이 지목되는 이유입니다.
그래서 최태민이라는 존재가 있기도 합니다. 미국에게 우리가 같은 편이라는 싸인으로 개신교를 이용하면 되는 것이지요. 예전 이단 전문가였던 탁명환 소장님께서 최태민을 조사한 적이 있다고 합니다. 그때 조사할 때 의외로 중정에서 사람을 보내서 그만 조사하라고 했답니다. 이후 최태민은 개신교에서 여러 집회를 많이 엽니다. 어디서 받은지 모르겠지만 최태민은 목사를 가장해서 전국 집회를 많이 열기도 했습니다. 저도 추정이지만 여러 국제정세를 봤을 때 또 이후 개신교의 보수화를 봤을 때 독재정권은 개신교를 보수화하면 미국에게 어떠한 싸인을 보낼 수 있기에 충분히 이용했지 않았나 싶습니다. 물론, 보수화된 개신교도 이용만 당한 것이 아닌 서로가 이용을 했기도 합니다.
그러던 차에 부마항쟁에서 수백만의 사람을 군대로 진압할 거라는 박통과 차지철의 말에 김재규는 결심을 했을 것이다. 민주주의에 대한 의식이 있었던 그였고 수백만의 사람이 죽으면 안 된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여러 복합적인 원인이 겹쳐서 김재규는 박통에게 "정치를 대국적으로 하십시오"라는 명언을 남기고 총을 쏘았다. 영화에서는 앞서 했지만 실제로는 총을 쏘기 전에 한 말이라고 한다.
김재규는 왜 차를 돌렸을까?
제일 이해 안 되는 장면이기도 했다. 중앙정보부(중정)로 갔으면 요원들로 군을 장악해서 실권을 잡을 수 있었지 않았을까? 많은 사람들이 이 부분을 아이러니로 생각한다. 그러나 <남산의 부장들>의 원작자 분은 생각이 조금 달랐다. 이미 군은 전두환이에게 넘어간 후라는 것이다. 김재규가 중정으로 갔었더라도 군을 통솔하기에는 역부족이었을 거라고 한다. 그리고 그 사이에 내전이 일어난다면 많은 사람들이 죽었을 것이다. 원작자는 그래서 김재규가 차를 돌려서 육본으로 간 것은 아닌가 추측한다. 또 저자는 박통 암살이 우발적이지 않고 계획적이지 않았을까 추측하고 어느 정도 계획은 세웠지만 실제 일을 벌였을 때 멘붕이 온 것은 아닌가 추측한다. 나도 어느 정도 계획은 했지만 세부적이진 않았고 우발적인 모습이 있지 않나 싶다. 죽이기로 마음은 먹었고 그 날짜를 10월 26일이 된 것으로 본다. 10월 26일에 한 것이 아니라. 어떤 평론가는 김재규그 안중근 의사를 존경하는데 그래서 10월 26일에 박정희를 암살한 것이 아닌가 추측했다.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한 것이 10월 26일 이었다. 영화에서도 궁정동으로 가기 전 안중근 의사 동상에 대한 언급이 잠깐 나왔다. 감독도 그 사실을 인지해서 넣었다고 한다.
확실한 것은 없고 모두 그럴 듯한 해석과 추측이 있을 뿐이다. 그게 역사인 것 같다.
차지철, 그는?
캄보디아에서 300만명도 죽였는데 우리가 100만명 밀어버린다고 뭔일 나겠어요!? - 곽상천(차지철)
곽상천 즉 차지철이 실제로 한 말이다. 사람을 탱크로 깔아뭉개서 죽이자는 이 끔찍한 말을 차지철이 했다. 차지철을 수식하는 말 중에 무식하다는 말 다음으로 하는 수식이 있다. 그건 바로 독실한 기독교인이라는 것이다. 술을 마시지 않았으며 꼬박꼬박 새벽기도를 다녔던 사람이고 그렇게 신앙이 좋았다고 알려진 그의 모습이다. 그런 그가 저런 무시무시한 말을 내뱉았다. 그가 박정희에게 했던 모습을 본다면 그에게 박정희는 예수 다음이던가 예수와 같은 모습의 인물이었다. 그가 지었다는 노래 가사에 박정희는 구원자로 묘사되었다. 어쩌면 차지철은 김재규와 경쟁을 한 것이 아니라 박정희를 섬긴 것인지도 모른다.
여기서 우리는 '독실한 기독교인'이리면 술과 담배를 안 하고 꼬박꼬박 교회를 출석하는 사람들을 수식한다고 할 수 있다. 세월이 이렇게 지났는데 차지철 보고 '독실한 기독교인'이라는 수식어가 계속 따라붙는 것을 보면 우리는 아직 '독실한 기독교'의 이미지를 못 바꾸고 있다. 독실한 기독교인은 위와 같은 말을 내뱉을 수 없다. 그런 말을 내뱉은 독실한 기독교인은 먼저 자신의 신앙을 되돌아보고 신앙고백부터 점검해봐야 한다. 누가 자신이 섬기는 주인인지.
영화 1987에서는 감독이 보수 개신교에게 좀더 적극적으로 메세지를 보냈다. 박휘순이 맡은 조반장이 그랬다. 그가 독실한 기독교인이라는 건 감옥에 갇혔을 때 나온다. 감옥에서 그는 성령을 받은 것처럼 찬송을 불러댄다. 그리고 조금 숨겨져 있는 장면도 있다. 감독이 인터뷰에서 한 내용이다. 사람들이 고문을 받을 때 바로 옆에서 조반장이 책을 읽고 있었다. 그런데 그 책은 신앙서적이라고 했다. 신앙서적을 읽으면서 옆에 사람은 지독한 고문을 받고 있었던 것이다.
독재의 역사에서 우리는 이 부분을 정확히 인정해야 한다. 당시의 '나'는 아니지만 내가 이어받은 전통의 교단에서는 그 당시를 '침묵'했다고 말이다. 우리가 회개해야 할 부분이요 짊어져야 할 부분이다. 다시는 되풀이 하지 않아야 한다. 차지철과 조반장. 상징적 인물로 나에겐 다가온다.
연기
이병헌의 연가가 단연 압권이었다. 물론, 다른 사람들도 충분히 기대 이상을 해줬지만 이병헌의 연기에 진심 박수를 쳐주고 싶다. 이 사람은 연기로 사생활을 뒤덮는다. 특히 이병헌은 영어를 정말 잘한다. 연예인들 영어실력을 평가하는 유튜브가 제법 있는데 그때 이병헌은 영어를 정말 잘 하는 사람으로 나온다. 실제로 할리우드 영화에도 출연은 했다. 하지만 이번에 영어가 참 어눌했다. 왜 그러지 싶었는데 실제로 김재규가 영어를 그렇게 썼다고 한다. 그 장면까지도 그대로 따라하려고 했던 것이다. 머리를 습관적으로 넘기는 장면도 있는데 이것도 김재규를 따라한 거라고 한다.
이희준도 장난아니다. 이 사람 원래 이렇게 살찌지 않았다. 이 영화를 위해 20kg를 찌웠다. 감독은 별 말은 안 했지만 본인이 감독에게 가서 차지철이라는 사람이 원래 덩치가 좀 있는 걸로 아는데 본인이 직접 살을 찌우겠다고 했단다. 대단한 건 실제로 살을 찌웠고 영화가 끝난 지금은 다시 살을 뺐단다. 이희준도 정말 대단하다. 연기도 대단했다. 곽도원이나 다른 사람들이 곽상천 역을 하려고 했단다. 하지만 다른 사람이 아니라 이희준이 연기를 했기 때문에 무식한 차지철이 잘 살아났다고 본다.
이성민도 빼놓을 수 없다. 어떤 영화 제작자분께서 한 말이다. 그분은 태어나서 오랜 시간 박통이 대통령이었단다. 그래서 박통이 죽었을 때 북한이 내려오는 줄 알았고 박통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훤하다고 했다. 그런 그가 영화를 봤을 때 이성민을 보고 깜짝 놀랐단다. 박통을 저렇게 똑같이 재현했다니. 특히나 귀가 압권이었다. 나도 박정희를 사진과 흑백 영상으로만 봤지만 똑같은 실루엣이 느껴졌다. 배우가 얼마나 연구를 했는지 느껴졌다.
지금 부산과 경남은 왜 보수적인가?
영화에서 부마 사건이 나온다. 부산, 마산 항쟁을 줄여서 부마항쟁이라고 한다. 유신독재에 저항하기 위해서 운동이 일어난 것이다. 이걸 덮으려고 박통과 차지철은 계엄령을 내려서 군대로 진압하려고 한 것이다. 지금 부산과 경산남도는 보수적인 도시로 알 고 있다. 부마 항쟁의 여러 원인들이 있지만 그 중 결정적인 것은 김영삼의 제명 사건이다. 김영삼은 정말 대단한 인물이다. 김영삼이 YH사건때 경찰서 높은 간수의 싸대기를 날려버린 사건은 유명한다. 그외에도 염산 테러를 바로 옆에서 당할 뻔 했는데 눈하나 깜짝하지 않았고 정치 깡패 용식이가 사무실을 들이닥쳤는데도 당당하게 사무실을 지키려고 했다. 옆에서 강제로 탈출시켰다고 한다. 김영삼의 이러한 패기는 정말 아무도 못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그는 반독재투쟁의 가장 강렬한 저항자였다.
그런 그의 가장 큰 불명예가 바로 3당합당이다.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에 들어가야 한다"는 명언을 남기고 3당합당을 한다. 신군부세력과 손을 잡은 것이다. 대통령이 되기 위해서. 물론, 대통령이 되어서 하나회를 해체한 것은 가장 큰 업적이기도 하지만 3당합당은 지금 부산과 경남이 왜 보수적인가로 알 수 있다. 보스정치로 지지하던 시절 부산과 경남은 김영삼이 상징 인물이다. 이 인물이 신군부와 손을 잡았다. 그렇다면 시민들을 어디에 표를 줄까? 당연히 3당합당한 정당이다. 이후 부산과 경남이 보수정권을 지지하게 된 원인이 여기에 있다고 보면 된다.
여기에서 등장하는 인물이 한명 있으니 그게 바로 노무현이다. "이의 있습니다! 반대토론 해야 합니다!"라고 그는 외친 것이다.
박정희 - 김대중 - 김영삼 - 전두환 - 노태우 - 노무현 - 문재인
이런 일련의 흐름들. 역사는 이렇게 만들어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영화 <남산의 부장들>은 우리 역사의 일련의 흔적들을, 물론 지금도 이어져 내려오는 그 흔적들을 보여주는 영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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