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동백꽃 필 무렵>을 정주행 중이다.
우선 배우들의 연기가 정말 일품이다.
내가 본 드라마가 많진 않지만 제법 재미있게 본 드라마는 전부 배우들이 연기를 잘 했다. '응사'랑 '비밀의 숲'이 대체적으로 그런 경우다.
내용도 흥미진진이고 화면연출이라고 해야하나 그것도 감각적이다. 연기, 스토리, 연출이 고루고루 갖춰졌다. 이런 드라마를 명품이라고 하나 보다. 물론, 아직 절반만 봤지만 다 본 분들은 결말까지 정말 완벽하다고 했다. 이 삼박자를 끝까지 잘 유지한단다. 제작년인가 '라이프'가 끝에 망해서리ㅠ
2. 절반밖에 안 봤지만 눈에 띄는 부분이 있다. 과거의 자신과의 만남이다. 동백이(공효진)는 미혼모다. 7살에 버려진 고아이기도 하고 사회적 최약체이다. 이런 동백이를 좋아하는 게 용식(강하늘)이다. 문제는 용식이는 총각인데 이를 좋아해줄 부모가 어디있을까? 그런데 그의 어머니 덕순(고두심)은 동백이와 절친한 관계이다. 둘 사이엔 공통점이 있는데 덕순은 과부였다. 그러니 혼자서 애를 키우는 심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이해해줄 수 있기에 가까운 사이가 된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아들이 동백을 좋아한다길래 갈등이 생긴다.
나는 이 만남에서 덕순과 동백이 연장선으로 이어지는 걸 느꼈다. 덕순은 동백을 보며 과거의 자신을 마주한다. 그런데 덕순과 동백만이 아니다.
동백의 전남자이자 필구의 아버지 강종렬(김지석)과 용식의 만남이 또 그랬다. 종렬은 자신의 아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뒤 아들과 동백이에게 마음이 계속 갔다. 그러니 자연스레 용식과 갈등이 일어난다. 그 갈등 중 종렬이 용식이에게 말한다. '자신의 20대 중반의 모습과 같다'고. 역시 과거의 자신과 만난다. 종렬은 20대 중반 동백을 열렬히 사랑했던 자신의 모습을 용식을 보며 발견했다.
과거의 만남은 등장인물에게만 일어나지 않았다. 보는 나에게도 일어났다. 동백이 종렬과 용식을 마주하는 장면에서 나도 누군가를 뜨겁게 사랑하고 잊고 다시 만났던 날들을 떠올랐다. 동백의 행동과 말들을 통해 내가 하지 못했던 말들을 대신할 수 있어서 참 좋았다. 드라마가 어쩌면 참 좋은 심리치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긴 했다. 적어도 동백꽃 필 무렵은 나에게 그러한 치료를 조금이라도 해줬다. 간지러운 딱지를 뗏달까? 동백의 행동과 말들이 나에게 힘과 마음 가득한 웃음을 주었다.
3. 중고등부 사역을 1년 넘게 하고 있다. 나는 과거의 나와 종종 마주한다. latte is horse가 되지 않으려고 하긴 한다. 그와 별개로 내 중고등학생때가 생각난다. '아 맞아. 나도 저 땐 욕없이 못 지냈었지.', '저 나이때 한창 첫사랑에 빠져 있었지. 근데 재네들은 왜이리 여자에 관심이 없는거 같지?' 같은 생각을 종종한다.
어제부터 교회 연합 수련회를 오니 참 옛날 생각난다. 중학생, 고등학생 함께 신앙생활했던 사람들이 떠오른다. 특히 어제같이 소굽친구를 수련회에서 만났을 땐 더.
과거와 마주한다는 게 엄청 좋지도 그리 나쁘지도 않다. 되새길 추억이 있어 좋지만 지금은 함께하지 못한다는 것에 조금 아쉬움을 느낄뿐이다.
다음달 부산에 간다. 그때까진 과거의 여운들이 조금 지워졌으면 한다. 시간의 지남에 반비례해 과거의 향기가 난다. 가까운 기억이 짙고 먼 기억이 옅다. 부산에 대한 기억은 그 중간. 엄청 짙지도 그다지 옅지도 않다. 하지만 그곳에 다시 간다면 많이 짙어질 듯하다. 그럼에도 그곳에 꼭 가서 바다를 보고싶고, 달을 보고 싶다. 제일 보고싶은 건 바다 위에 떠오른 달이지만.
미완의 사이였기에 적당한 아니 적절한 향기를 머금고 있다. 부산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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